178화. 예상치 못한 전개 (3)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사예드는 긴장한 채로 이설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고로 인질을 잡고 협박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어차피 걔한테 돈은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할 수 있지?”
“예. 맡겨주십시오.”
이설아 밑에서 철저하게 교육받은 사예드는 너무나 예의 발랐다.
이미 사예드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역시 넌 착한 아이야. 이리 오렴.”
이설아는 팔을 벌린 다음 사예드에게 품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예드는 일어나 이설아의 품에 안겼다.
“그래.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으면 이렇게 예뻐해 줄게.”
이설아는 사예드를 사랑스럽게 쓰담어주었다.
“알겠습니다.”
사예드는 이설아의 품에 안겨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
그에게 있어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한 시간은 없었다.
오직 이설아만이 사예드의 갈망을 채워줄 수 있었다.
“설아야.”
한동안 그것을 지켜보던 김정철이 나서며 말했다.
“응.”
“나도 나서는 게 좋지 않겠어?”
자신의 아내에게 사예드가 계속해서 안겨있는 게 심기가 불편했는지 김정철은 자신의 존재감을 굳이 내세웠다.
“그래도 좋긴 하겠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사예드에게 맡겨.”
“……알겠어.”
김정철 또한 이설아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정철은 사실 사예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예드가 그와 이설아의 사이를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참에 사예드가 혼자 싸우다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예드를 혼자 내버려두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예드. 그러면 시작해 줄래?”
“예. 알겠습니다.”
***
“음! 맛있네.”
열대 과일 주스를 한 모금 쭉 들이키자 눈이 번쩍 뜨였다.
“진짜 맛있네요.”
옆에 앉아있던 박이나도 주스를 마시며 감탄했다.
우리는 지금 하와이 근처 무인도로 잠시 휴식을 취하러 왔다.
정말 아무도 없이 우리만 있어서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진짜 평화롭네요.”
나는 맑은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맑은 물과 멋진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같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게요. 너무 예쁘네요.”
박이나도 경치 감상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무인도에 갇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하하. 우리에게 순간이동 능력이 없었으면 이 순간이 전혀 평화롭지 않았겠죠. 구조되기 위해 난리 치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그랬겠네요.”
진짜 순간이동 능력은 최고다.
다른 능력들도 좋지만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진짜 예전에는 능력도 없이 어떻게 살았나 몰라요.”
“그러니까요. 만약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못 살 거 같아요.”
“저도요.”
우리는 재밌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라일 씨.”
갑자기 박이나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네?”
뭔가 아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촉인지 모르겠지만, 박이나는 나를 염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약간 골칫거리가 생기긴 했어요.”
“골칫거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근에 저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요.”
“네? 라일 씨께 시비를 건다고요?”
박이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어떤 겁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한대요? 혼나려고 작정을 했군요?”
“푸웁!”
나는 그만 마시고 있던 주스를 뿜어버리고 말았다.
뭔가 박이나의 말투가 굉장히 웃겼다.
“라일 씨. 괜찮아요?”
“네. 순간 훅 들어와서요…….”
나는 옆에 떨어져 있는 음료수를 아깝게 쳐다봤다.
에잇!
맛있었는데…….
“그러니까요. 그놈들이 겁대가리가 없더라고요.”
“근데 라일 씨에게 덤비는 사람이라면 그냥 일반 사람일 리는 없고. 설마……. 예전에 잭슨처럼 그 사람들도 능력자예요?”
역시 박이나는 날카롭다.
대충 둘러대도 찰떡같이 알아먹는다.
“네. 맞아요.”
“역시…….”
박이나는 더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상대가 능력자라고 해서 그렇게 달라질 것은 없어요. 이나 씨도 알다시피 전 굉장히 강하니까요.”
“물론 라일 씨는 그러시죠. 그 강한 올리버도 쉽게 제압하셨으니까요.”
“그래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괜찮으니까 이렇게 여유를 즐기고 있지 않겠어요?”
나는 박이나를 안심 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더 평온한 척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요새 라일 씨는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거든요.”
“생각이야 많죠. 근데 오늘은 그냥 다 잊고 즐기자고요.”
간만에 얻은 휴식을 그놈들 때문에 망칠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라일 님.]
하아…….
갑자기 등장하는 이 뜬금없는 타이밍과 저 목소리 톤.
분명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 뭔데? 설마 그 사예드인가 뭔가 하는 놈이 지금 나를 공격하러 오는 게 아니라면 나중에 말해주면 안 될까? 지금은 좀 즐기고 싶거든.”
[사예드가 라일 님을 공격하려 합니다.]
“…….”
진짜.
짜증 제대로다…….
“뭘 어떻게 공격한다고 하는데?”
[지금 라일 님이 계신 곳으로 미사일 좌표를 찍었습니다.]
“하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일 씨. 무슨 일 있는 거 맞죠?”
박이나는 바로 거기에 반응했다.
“네……. 무슨 일이 아까까지는 정말 없었는데, 갑자기 생겼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까 저에게 시비 거는 놈들 있다고 했죠? 그놈 중 한 명이 여기로 미사일을 쏘려고 한다네요.”
“네?”
박이나는 갑작스러운 공격 소식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이나 씨. 진짜 죄송한데요. 즐기는 것은 잠시 멈추도록 하죠. 이 아름다운 곳에 미사일이 떨어지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네. 당연하죠. 저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좀 강하긴 할 거예요. 저보다는 한참 못 미치기는 하지만요.”
“예. 알겠습니다.”
박이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처럼 보였다.
이 여자…….
멘탈이 강한 것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
“그럼 막도록 해볼까요?”
나는 곧바로 여기로 좌표가 찍혀있는 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뒤졌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녀석이 흔적을 완전히 다 지운 것은 아니어서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좌표가 여기라면 날아올 수 있는 미사일은 한정적이다.
사예드 그놈은 중국의 미사일을 이용하고 있었다.
“디오. 당장 해제 작업 들어가.”
[네. 이미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좋아.”
디오가 미사일 시스템을 멈추는 동안 나는 녀석이 어디서 데이터를 보내고 있는지 길을 찾았다.
“애송이 녀석.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알아서 등장해주었다.
그 건방진 녀석에게 어른의 힘을 알려줄 차례다.
최근에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 단련했던 능력이 하나 있다.
바로 데이터 복구 능력이다.
설령 녀석이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놨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나는 다시 그 흔적을 복구할 수 있다.
그 애송이 녀석이 아무리 도망을 잘 친다고 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잡았다!”
녀석의 위치는 금방 찾았다.
문제는…….
“진짜 이 건방진 자식이…….”
“왜 그러세요?”
박이나는 내가 화가 잔뜩 나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여기로 미사일을 쏘려고 하는 놈이 지금 제집에 있네요?”
“네?”
“하하. 진짜 혈압 오르게 하네.”
나는 주먹을 손바닥을 쳐 대며 몸을 풀었다.
“갔다 오겠습니다. 그 녀석을 지금 조지지 않고는 못 참겠거든요.”
“네. 잘 다녀오세요.”
나는 내 집으로 바로 이동했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그 시건방진 녀석이 서 있었다.
“이봐. 누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있으래?”
“아무도 안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들어왔을 뿐인데?”
저 뻔뻔한 개 논리는 뭐지?
이 자식, 만 13세라고 했지?
그러면 지금 몇 학년이야?
중2?
시발…….
어쩐지.
“아가야. 너 어른한테 덤비면 큰코다치는 거 학교에서 안 배웠냐?”
“학교를 잘 안 다녀서.”
“아 그래? 아주 한마디를 안 지는구나. 죽을라고.”
“죽여보시던가.”
누가 나한테 중2병 걸렸다고 했냐?
내가 지금 저거랑 수준이 같다고?
앞으로 나한테 중2병 걸렸다고 하면 찢어버린다.
“네가 이 아저씨에게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미안. 이만 떠날 거라서.”
녀석은 나한테 씩 웃으면서 손 인사를 날렸다.
“…….”
녀석은 마치 사라질 것처럼 말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뭐, 뭐야?”
“뭐 해? 안 가고?”
나는 당황해하는 녀석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익!”
몇 번 시도해봐도 순간이동이 되질 않는지 녀석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올 때는 맘대로이지만 나가는 것은 맘대로가 아니거든. 나가려면 집주인한테 허락 맡고 나가야 해서.”
나는 집에 있는 모든 데이터 통로를 막아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태워버렸다는 게 맞겠지.
“그렇게 막 도망치려고 하면 내가 옳다구나 하고 그냥 지켜만 볼 줄 알았어? 천만의 말씀이다. 이 애송이 자식아.”
나는 녀석에게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녀석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네가 뭔데 나에게 명령이야? 이거나 한 대 먹어.”
나는 녀석에게 달려가서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퍼억-!
사예드는 황급히 데이터 쉴드를 쳐서 내 공격을 막았다.
“어쭈! 막아?”
쨍그랑-!!!
나는 힘을 더 강하게 줘서 녀석의 데이터 쉴드를 깨부숴 버렸다.
“이런 미친…….”
데이터 쉴드가 산산조각이 나자 녀석은 기겁했다.
원래 이렇게 무식한 것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이럴 필요가 있었다.
“네가 나를 완전히 우습게 본 모양인데 말이야. 내가 참을성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저, 저리 안 가?!!!”
녀석은 거실 탁자 위에 있는 꽃병을 집어 내게 던졌다.
“이거나 먹어!!!”
하지만 꽃병은 천천히 날아와 내 품에 살포시 안겼다.
“뭔데?!!!”
녀석은 황당해하며 나를 바라봤다.
“내 앞에서 기존의 물리법칙은 의미가 없어. 꽃병이 쨍그랑하면서 깨지길 기대했겠지? 하지만 안 돼. 이게 너 몸값보다 비싸거든.”
“…….”
사예드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빛 좋네? 죽여버리고 싶게 말이야.”
나는 녀석의 생체 데이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 이익!!!!”
녀석은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등바등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네 대장이 우리 수진이에게 재밌는 짓을 했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번 너에게 해보려고.”
“이거 안 풀어?”
“얘야. 이 세상은 네가 떼쓰는 대로 돌아가는 그런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야.”
나는 녀석이 때리기 좋은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 그만해!!!”
녀석이 불안에 떨며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무시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할까?”
“안 돼!!!!”
퍼억-!!!!!
너무나 시원하고 통쾌한 소리가 들렸다.
“커헉!”
녀석은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새끼야. 입 꼭 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