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예상치 못한 전개 (2)
“뭐죠……?”
분명히 이설아는 장수진이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또 존경했던 선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설아는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장수진은 불안해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장수진을 보며 이설아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긴 했나 봐. 내가 없는 사이 너에게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나 봐?”
“그렇죠…….”
“후훗.”
이설아는 옅게 웃으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했다.
“저한테 하실 제안이 대체 뭐죠?”
이설아가 뜸 들이고 있자 장수진은 답답한 마음에 먼저 나서서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거 다 때려치우고 나에게 붙어.”
“…….”
솔직히 예상이 가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장수진은 이설아의 제안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저랑 뭘 하려고요?”
“후후. 수진아. 내가 너와 뭘 하고 싶어서 지금 이런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설아는 장수진을 같잖다는 듯이 바라봤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와 나의 급은 천지 차이야. 같이 뭘 하기는 뭘 해? 넌 그냥 내가 하는 거에 얹혀가는 거지.”
장수진은 이설아를 매섭게 노려봤다.
방금의 그 발언은 장수진을 대놓고 업신여기는 것이었다.
“언니. 말이 좀 심하신데요?”
“내가 틀린 말을 했니? 지금의 네 꼴은 또 어떠니? 이라일이 하는 것에 얹혀가고 있을 뿐이잖아. 너는 그냥 그런 존재야.”
“언니!”
장수진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봐. 장수진.”
이설아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아까의 그 친근하면서도 인자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
갑자기 장수진의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수진은 저절로 양팔이 벌어진 상태에서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다.
퍼억-!
이설아는 그대로 장수진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헉! 컥!”
엄청난 통증에 장수진은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켁켁거리며 장수진은 눈물까지 흘렸다.
“꼭 당해야 정신을 차리니? 어디서 교양 없게 소리를 지르고 있어?”
“크흑!”
장수진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이설아를 노려봤다.
“하! 실력은 없으면서 독기만 가득한 것은 여전하네.”
이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내가 제안이라고 좋게 말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야. 너에게 자비를 베푸는 거지.”
“……자비?”
“그래.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너는 살려주고 싶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수진은 경악하며 물었다.
“난 대한민국을 없애버릴 생각이거든.”
“네?!!!”
가면 갈수록 이설아의 답변은 가관이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제대로 들었으면서 다시 물어봐? 한국을 없애버린다고.”
“…….”
장수진은 이설아에게 따지려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애쓰지 마. 이미 내가 너의 생체 데이터를 조작해서 네 몸을 조종하고 있으니까.”
이설아의 말을 듣자마자 장수진은 다시 자신의 데이터를 복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데이터가 유입되어 방해하기 시작했다.
장수진은 그 순간 엄청난 절망감을 느꼈다.
이설아의 말대로 그녀와 장수진의 능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늠할 수 없는 강력함에 장수진은 바로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언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하하. 내 강함을 직접 맛봐서 힘으로는 안 될 거 같으니까 이제는 회유 작전이야? 진짜 장수진. 너를 내가 어떻게 해야겠니?”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요? 그러면 그 사예드도 언니가 조종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 맞어. 그 아이는 너와는 달리 정말 착한 아이지. 내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해 주니까.”
방금의 그 말로 장수진은 이설아에 대한 정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래도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배라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설아는 완전히 악당으로 변해있었다.
“너도 지금이라도 나에게 와서 사예드처럼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살 수 있어. 어때? 나에게 붙을래?”
“저는…… 못하겠습니다.”
“와. 장수진. 내가 이렇게까지 참아주고 선의를 베풀어주는데도 이걸 거절한다고? 너 정말 못된 아이구나?”
“한국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에 어떻게 동참해요?”
“그 한국이 노답이니까 그러지.”
이설아는 장수진의 턱에 손을 대며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카람레시에서 그 일이 일어난 후 나는 한국이 일 처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한번 지켜봤어. 근데 하는 꼬락서니가 진짜 영양가 없더라고. 나를 완전히 없던 사람으로 만들던데?”
“언니. 그건 국가 안보상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언니도 요원으로 그렇게 계약을 했고요. 대신 조국을 위해 순국한 이름 없는 별로 우대를 했고요.”
“하하하하하!”
이설아는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너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너라면 나와 같은 상황에서 기분이 좋겠니? 뭐 그건 그런다 쳐. 거기까지만 했으면 정말 좋았겠지. 그런데 이후에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
“그게…… 뭔데요?”
“너, 김정철 기억나?”
김정철.
이설아와 친했던 요원 선배였다.
장수진은 그제야 그가 카람레시 사건 이후로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떠올렸다.
“네. 기억납니다.”
“그래. 내 죽음에 의문을 품고 진상을 밝히려는 김정철을 정부는 살해하려고 했지.”
“…….”
“난 정철이를 구해줬어. 그리고 지금 나랑 잘살고 있지.”
“언니. 저 언니가 무슨 말 하는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 지금 라일 님으로 인해 다 숙청되었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옛날과 달리 비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던 말이에요. 언니도 잘 알잖아요.”
“흐흐흐흐. 수진아.”
이설아의 목소리를 친근하면서 동시에 싸늘했다.
장수진은 소름이 끼쳤고 두려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대한민국은 이라일의 공포정치로 인해 그냥 본성을 숨기고 사는 거야. 만약 공포정치가 끝난다면 바로 이전으로 돌아올걸?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 아예 새롭게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거지. 그래서 전부 다 쓸어버릴 거야.”
“언니……. 방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응. 진심이야.”
“미쳤어……. 정말로 미쳤어…….”
장수진은 이설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처가 깊은 것은 이해가 됐으나, 이것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 것이었다.
이라일의 말이 맞았다.
이 위대한 힘은 정신상태가 온전한 놈이 갖고 있지 않다면 재앙이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겠지. 시간을 좀 더 줄게. 일주일 후에 다시 너에게 올 거야. 그때까지 확실히 정해줬으면 좋겠어. 그 이후로 기회가 없다는 것만 알아줘.”
“언니. 라일 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언니야말로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세요.”
“하! 수진아. 너 지금 되게 착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라일이 무서웠으면 내가 이렇게 안 했겠지.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는 지금 라일 님을 과소평가하고 있어요. 언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단 말이에요. 제발 부탁이니까 생각을 고치고 그만둬요.”
“대답은 일주일 후에 들으러 올게. 그때는 다른 대답을 하길 바란다.”
이설아는 장수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 다음 사라져버렸다.
“하아!”
장수진은 이설아가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막아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설아를 막아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장수진은 다음 날 이 일을 이라일과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흠…….”
수진이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사실 사예드가 배후가 아니라 이설아였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러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네.”
이설아가 상당한 실력자이긴 한가 보다.
아예 모르고 있었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거 같아 기분이 좀 안 좋았다.
“그래서 너는 누구 편에 붙을 건데?”
“당연히 라일 님에게 붙어 있죠!”
장수진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한국을 없애버리겠다는 편에 어떻게 붙어요? 당장 막아야죠.”
“대답 한번 좋군.”
나는 녀석을 만족스럽게 쳐다봤다.
“내가 계속해서 너에게 말하지? 나한테 붙어 있는 선택 후회하게 하지 않겠다고. 나만 믿어.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테니까 말이야.”
“……네.”
보통은 자신 있게 말했던 수진인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대답이 시원찮은데? 이제 나 못 믿겠어?”
“그건 아닌데요……. 라일 님. 이번만큼은 만만치 않을 거예요.”
수진이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제가 직접 당해봤는데…… 잭슨 때보다도 더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설아는 라일 님보다 훨씬 이전부터 능력자였다라는 것을 생각하세요.”
“야! 뭔 상관이야?”
나는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 앞에서는 그딴 거 의미 없어. 나한테 개긴다? 그러면 그냥 아주 다 박살 나는 거야.”
“…….”
“그러니까 확실히 정해. 나한테 붙을 거야 아니면 그 미친년에게 붙은 거야?”
“라일 님께 붙는다고요.”
“그러면 그냥 나를 믿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반응이 그나마 나았다.
“대한민국을 멸망시킨다고? 내가 있는데 감히 그딴 소리나 하다니. 너무 나를 만만하게 보나 봐.”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려대며 전투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또 새로운 적의 등장에 심심할 틈이 없을 예정이었다.
***
TI 벙커.
이설아는 흥얼거리면서 벙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끼익-!
그녀는 앞에 있는 철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왔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설아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사예드와 김정철이었다.
“응. 다녀왔어.”
“어떻게 됐어?”
김정철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설아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라일에게 많이 길들어졌나 봐. 고민이 많은 것 같길래 1주일 시간을 줬어.”
“그럴 거 같았어. 근데 수진이 그 녀석 바로 이라일에게 쪼르르 가서 다 말할 것 같은데?”
“네 말대로 이미 그랬어.”
“역시나…….”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라일하고는 싸워야 해.”
“그건 그렇지.”
김정철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수진이가 거절하면 진짜로 죽일 거야? 그럴 확률이 높을 거 같은데.”
“당연하지. 난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하하하. 살벌하네.”
“옛 동료를 죽인다는 것은 굉장히 슬프지만, 나에게 덤비겠다면 어쩔 수 없지. 죽일 수밖에.”
이설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사예드!”
“네. 설아 님.”
이설아가 부르자 사예드는 그녀에게 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아무래도 수진이가 우리에게 붙으려면 작업이 좀 필요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