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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카람레시의 아이 (5) (176/201)

175화. 카람레시의 아이 (5)

[TI 녀석들을 처리해줘서 고맙다. 네가 놈들을 처리해줄 줄 알고 일부러 이렇게 한 건데, 어때?]

그놈이 보낸 메세지였다.

“하하……. 이 애새끼가 계속해서 내 심기를 건들고 있네.”

[네. 아무래도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느꼈지? TI 놈들을 나중에 버릴 것은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지금 이렇게 끝장나길 바라는 건 분명히 아니었어. 아마 더 이용하려고 했었던 게 분명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하. 너도 추측을 다 하는구나. 야! 그나저나 디오야.”

[네.]

“이 메시지 추적은 지금 당연히 안 되겠지?”

[예. 계속해서 하고 있는 중이지만 흔적이 아예 지워져 있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애새끼가 튀는 거랑 숨바꼭질은 잘하네…….

“뭐 찾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놈이 조용히 처박혀 살 것 같지는 않거든. 또 조만간 덤빌 텐데 그때 조지면 돼. 그나저나 그 애새끼 이름이 뭐냐?”

[사예드라고 합니다.]

“사예드라……. 내가 많이 예뻐해 줘야겠구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황은 다 종료되어서 내가 따로 뭘 할 것은 없어 보였다.

“갈란다. 사예드인가 뭔 놈인가 때문에 짜증 나는데 내 정원이나 관람하면서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겠어. 이동하자.”

[네.]

이라크에서의 상황은 일단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

“여어!”

간만에 나는 연천 연구소를 찾아갔다.

“왔냐?”

일수는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연구에만 몰두한 채 건성으로 인사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안녕…….”

인사는 했지만, 여전히 차가운 반응이다.

이 자슥이…….

탁-!

나는 정전을 시켜서 일수가 일을 멈추게 했다.

“…….”

일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이거 설마……. 네가 한 짓은 아니겠지?”

일수는 그대로 멈춘 상태에서 싸늘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맞어.”

“…….”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 자식이!!!!”

일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지금까지 하던 거 다 세이브해놨어. 그냥 잠시 멈춘 거란 말이야!!!!”

일수가 불같이 화를 냈기 때문에 나는 얼른 녀석을 달래주었다.

“시끄러!!!!”

하지만 일수는 여전히 화가 난 거처럼 보였다.

“이걸 누가 추진하자고 한 건데? 내가 하자고 했어? 네가 나한테 부탁한 거잖아. 근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하고 있어?!!!!”

나는 결국 일수의 헤드락에 당해야겠다.

그래, 친구야…….

그렇게 해서 네 화가 풀린다면…….

녀석이 헤드락을 아무리 세게 해도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비밀이다.

“하아……. 하아…….”

일수는 1분가량 내 머리를 잡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녀석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야. 너랑 대화하기 진짜 힘들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일수는 찌릿하면서 나를 노려봤다.

“또 당해볼래?”

“아니. 내가 잘못했어.”

손절당할 거 같아서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긴…….

좀 빡칠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우리 사이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대화하냐?”

“진짜……. 알았다.”

일수는 결국 체념하면서 다 내려놓고 나에게 왔다.

“이참에 쉬자. 계속 연구만 했더니 머리랑 몸이 뻐근하긴 하다.”

일수는 몸이 찌뿌드드한지 목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나저나 TI가 다 박살 났다면서?”

“오! 그래도 뉴스는 챙겨보나 보네?”

“사회에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야지. 커피 마실래?”

“좋지.”

일수는 탕비실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제조해서 가져왔다.

“와! 진짜 이 커피는 오랜만이네. 군대에서 마시고 안 마신 것 같은데?”

“요새 고급 커피만 마셨지? 이것도 한번 마셔봐. 기가 막힌다고.”

쓰읍-!

일수가 건넨 잔을 받아 가볍게 한잔 들이켰다.

“야! 하하. 맛있는데?”

“그렇지 않냐? 가끔은 이런 게 그립다니까?”

“그렇긴 하지. 솔직히 고급 음식 먹다가도 라면이 가끔 땡기기는 해.”

“뭐 그런 거지.”

새삼 녀석과 오랜만에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난 이런 게 좋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이라고 해도.

이러한 시간을 갖는 게 참 힐링이다.

근데 지금 힐링만 하려고 온 것은 아니지.

“그 박살 난 TI 일, 네가 한 거지?”

일수도 알아서 다시 화제로 돌아온다.

“응.”

“또 왜 갑자기? 이제 중동으로 진출했냐? 멕시코, 북한, 중국에 이어 이제는 중동이냐? 진짜 대단하다.”

수진이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아무리 일수라고 하더라도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충 둘러 말하기로 했다.

“설쳐대는 게 꼴뵈기 싫더라고. 손 좀 봐줬지.”

“넌 손봐주는 게 그냥 괴멸시키는 거구나.”

일수는 어이없어하면서 커피를 확 들이켰다.

“또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 것 같더라고.”

“새로운 빌런?”

“이번에는 중동 아이야. 이름은 사예드라고 하던데. 아직 10대인 아이인데 문제는 그놈이 능력자라는 거지.”

“뭔 애새끼가 능력을 가졌대?”

“내 말이……. 사실 그놈이 TI를 조종해서 난리를 치길래 막으러 갔던 거야.”

“헐…….”

일수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걔 강하냐?”

“모르겠어. 어쩌면 잭슨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해. 생체 데이터까지 잘 다루더라고.”

“…….”

일수도 아직 생체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무리였다.

녀석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야! 걱정하지 마. 그 녀석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나한테는 안 돼. 이라크에서도 내가 좀만 힘쓰니까 무서워서 바로 도망치더라고. 놈이 능력자라고 해봤자 아직은 애새끼일 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뭐 근황 이야기는 이쯤하고, 우리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아! 아까 네가 방해한 거 말이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껄껄 웃었다.

“구현은 잘 되어 가냐?”

“하고는 있는데 어렵긴 하네. 사실 게임을 만든다기보다는 인간의 감각을 조작하는 장치를 만들고 있으니까 뭔가 이상하기는 해.”

“하하. 그런가?”

“근데 구현되면 진짜 대박일 것 같기는 해. 사실 VRMMORPG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게임이 없어서 그랬지, 잘만 만들면 무조건 성공할 콘텐츠라고.”

“한번 지금까지 만들어진 거 체험해봐도 되냐?”

“뭐, 아직은 게임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궁금하다면 체험하게 할 수는 있지.”

일수는 나에게 어떤 장비들을 주었다.

“그거 착용하고 저기 의자에 앉아.”

일수는 한쪽 구석에 있는 안마의자처럼 생긴 것을 가리켰다.

나는 안내에 따라 그곳에 앉았다.

“너 능력 쓰면 안 된다. 그냥 이 기계가 네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에 그냥 몸을 맡겨.”

“알았어.”

“그러면 아까 나눠준 안경 착용하고 팔찌 끼어.”

“오케이.”

나는 일수가 설명해준 대로 다 착용했다.

“그럼 시작한다.”

지잉-!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완전히 눕게 되었다.

피슝-!

갑자기 눈과 팔에 뭔가를 착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졌고 내가 눕고 있다는 감각도 사라졌다.

나는 어느샌가 도시 한복 판에 서 있게 되었다.

“오오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뭔데? 대박인데?”

나는 뛰어보기도 하고 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땅바닥도 짚어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다.

모든 게 다 현실 같았다.

사실 VRMMORPG라는 게 아예 없었던 개념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회사들이 시도했던 장르이지만, 나오는 것마다 이렇다 할 흥행을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현실 같은 몰입도를 기대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거는 그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주고도 남았다.

이건 정말로 현실이었다.

“대박이다.”

“아아!”

갑자기 안내 방송 같은 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라일아. 들리냐?”

“어! 들려.”

“오케이. 제대로 들어가고 있구먼. 이왕 네가 이용해보는 거 전체 방송도 제대로 들리는지 실험해봤다.”

“좋네.”

“그럼 하나 더 실험해볼게.”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쿠콰콰콰쾅-!!!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서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게…….

소설에서 말하는 게이트라는 건가?

“야! 뭐야? 지금 게임 시작한 거야?”

“어! 한번 해봐.”

쾅-!

“끼에에에에에!!!”

갑자기 웬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게 내 앞에 등장에 포효하기 시작했다.

“…….”

솔직히 지릴 뻔했다.

가짜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은 그렇지 못한다.

“…일수야. 이거 너무 무서운데?”

“가짜인 거 알잖아. 한번 체험해봐.”

뭔가 일수의 목소리가 장난기 가득한 것은 기분 탓일까?

이 녀석…….

이걸로 나한테 복수를 하고 있는 걸지도.

“끼에에에에에!!”

괴물은 입을 크게 벌린 다음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런!!!”

나는 옆으로 몸을 던져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쿠웅-!

“크윽!”

아스팔트 도로에 몸을 굴렀더니 몸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야. 일수야……. 고통까지 구현시키면 어떻게 하냐…….”

나는 상처가 쓰라리는 것을 느끼며 어이가 없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공포 체험이나 다름없었다.

“이래야 더 리얼하지. 어때? 재밌지? 계속 즐겨봐.”

이로써 확실해졌다.

일수는 나에게 복수하는 게 분명했다.

“끼에에에엑!!!”

괴물은 꼬리를 들어 나를 내려치려고 했었다.

“이 건방진 티라노 새끼가 누구한테 개기는 거야?”

탁-!

결국 나는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지지지직-!!!

“끼에에에에엑!!!!”

티라노는 더 큰 괴성을 질러대며 그대로 전기충격에 의해 쓰러졌다.

“별것도 아닌 게 말이야.”

“…….”

희미했지만 방송에서 일수의 한숨 소리가 옅게 들렸다.

하하…….

기대했겠지만 안 된다 이놈아!

“이 정도면 체험 충분한 거 같아. 끝내자.”

“그래…….”

다시 의자가 올라왔고 현실의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감각이 막 바뀌니까 어지럼증도 약간 생기기 시작했다.

“좀 즐기지 그걸 못 참고 능력을 사용하냐?”

“너 이거 직접 해보고 하는 소리냐? 그냥 맨몸으로 티라노랑 어떻게 싸워?”

“그런 게 재미지.”

“개소리는 그쯤 하시죠? 개발자님.”

나는 가볍게 녀석의 몸을 툭 때렸다.

“재미없는 자식. 그나저나 어때? 괜찮은 거 같아?”

“괜찮기를 넘어서서 대박인데? 이거 전세계를 강타할 것 같아.”

“하하. 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자신감이 생기긴 하네.”

“빈말이 아니야. 솔직히 그 티라노는 지릴 뻔했어.”

다시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오케이. 그러면 이대로 추진해야겠어.”

“하하. 그래. 파이팅해라.”

끼익-!

갑자기 연구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진이었다.

“라일 님. 와 계셨네요?”

“응. 확인차 들렸지. 잘 구현했던데? 수고했어.”

“네…….”

수진이는 누가 봐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저기……. 라일 님.”

“응. 왜?”

“저랑 잠깐 대화 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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