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카람레시의 아이 (3)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무조건 전멸입니다…!”
라드는 태도를 바꿔서 말했다.
윽박지르고 따져봤자 상황만 더 악화될 게 뻔했다.
라드는 아예 대놓고 빌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소년은 라드의 태도에 밝게 웃기 시작했다.
이렇게 웃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웃으니 정말 천진난만한 애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은 웃음을 거두고 라드를 빤히 쳐다봤다.
“이봐.”
소년은 라드의 턱을 잡아 땡겼다.
“살고 싶어?”
“……네.”
“그래?”
소년은 라드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난 너희를 살려주기가 싫은데?”
“…….”
라드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계속해서 동료들은 죽어 나갔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장난 같아 보였다.
“내가 제일 죽여버리고 싶은 게 너희 같은 테러리스트들이야. 네놈들 때문에 내 친구들이 다 죽었고 나도 죽을뻔했거든.”
“그게 저희는 아니지 않습니까?”
라드는 완전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아. 여기 TI 일당들 중에는 내가 당했던 사건들과 연관된 놈들이 좀 있거든.”
“그게 무슨…….”
“난 다 알 수 있어. 그래서 그놈들은 죽도록 이렇게 내버려 두고 있는 거야.”
“…….”
라드는 소년이 계속 알아듣지 못 할 말만 해댔기에 답답할 지경이었다.
투두두두두두-!!!!
그때 그들에게 총알이 날아왔다.
“으아아아아악!!!”
라드는 자신의 몸에 총알이 박히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
하지만 그는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뭐, 뭐야?!!!”
그는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분명 총에 맞았는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뭐해? 병신아, 안 일어나?”
소년은 한심하다는 듯이 라드를 바라봤다.
라드는 황급히 일어났다.
“지금 이라크군에게 죽고 있는 새끼들은 다 그 사건과 관련된 놈들이야. 하지만 나는 관련 없는 놈들은 보호해주고 있어. 방금의 너처럼 말이야.”
“…….”
절망은 순식간에 희망으로 바뀌었다.
“하, 하핫!”
라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하하하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그 큰 뜻을 몰라보다니요.”
라드는 소년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그에게는 이제 소년이 마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알았으면 빨리 싸울 준비해.”
“예!”
라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년의 말대로 보호를 받는 사람과 그냥 죽는 사람이 구별되어 있었다.
“뭐, 뭐야?!!! 나는 왜 멀쩡한 거지?”
“모르겠어…….”
이라크군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TI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콰앙-!
“끄아아아악!”
그들 사이로 포탄이 떨어졌다.
“뭐, 뭐야?!!!!”
분명 포탄이 그들 한가운데에 떨어져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는데도 그들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들 겁먹지 마라!”
갑자기 자신만만해진 라드가 나서서 TI를 향해 외쳤다.
“우리의 신께서 보호해주고 계신다. 어서 정신 차리고 이라크군을 공격하자!!!!”
라드는 몸소 앞장서며 나섰다.
투두두두두-! 탕-! 탕-!
그를 향해 총알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하! 이거 기분 최고인데?”
그는 총과 포탄이 무수히 날아오는 살벌한 전장 한가운데에서 마치 산보를 하듯 가볍게 걸어 다녔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TI들은 라드가 멀쩡히 이라크군에게 걸어가는 것을 보며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그게 현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 또한 라드와 마찬가지로 무적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우린 보호를 받고 있어.”
“그래! 그냥 멍하니 있어봤자 어차피 해결된 건 없어. 우리도 라드를 따라서 나서자고.”
라드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TI들은 그를 따라 이라크군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TI의 거침없는 진격이 시작되었다.
***
한편 이라크군.
“사령관님. 갑자기 TI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TI의 동태를 살피던 장교가 황급히 사령관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그는 매우 다급해 보였다.
사령관은 그런 그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야?”
“갑자기 공격이 전혀 먹히질 않고 있습니다. 피해 하나 없이 여기로 진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뭐?!!!”
사령관은 질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 그들은 완전히 겁을 먹고 있었지만, 막상 공격을 해보니 TI들은 개박살이 나고 있었다.
TI는 이라크군의 공격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한 것도 그렇고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는 것도 수상했지만, 어찌 됐든 공격이 통하고 있었기에 이라크군 측에서는 안심하고 TI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공격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사령관은 다시 북한과 중국의 사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이제까지 우리를 가지고 논 것인가?”
이라크군 사령관은 탄식하며 벽을 때렸다.
희망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콰앙-!
“끄아아아악!!!!”
밖에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라크군도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으아아아악!!!”
“의무병!!! 빨리 치료해!!!”
유리했던 전황은 급격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망할!!”
사령관은 두려움이 온몸을 지배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령관님. 어떻게 합니까?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데요.”
사실상 적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이미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사령관은 북한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전혀 되지 않는데 계속 무의미한 공격을 해봤자 피해만 늘어갈 뿐이었다.
“후퇴하자…….”
사령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도저히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부하 장교도 더 할 말은 없었다.
그 역시 사령관의 이런 지시가 현실적이고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전군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뭔 놈의 퇴각은 퇴각이야?”
“!!!!!”
갑자기 의문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령관과 부하는 놀라 기절할 뻔했다.
“하!”
나는 모양 빠지게 기겁하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누, 누구냐?!!!”
사령관은 재빨리 일어나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딱 봐도 두려워 떨고 있는데 말하는 것하고는.”
“뭐?”
내가 대놓고 비웃자 사령관은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했다.
[설마 우리가 지금 여기 이라크군 사령관을 조지러 온 것은 아니지요?]
디오 저 녀석은…….
내가 쓸데없는 도발을 하고 있자 바로 저렇게 돌려서 질책을 시작한다.
“알았어. 인마!”
지금 밖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있고 이 사람들한테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인데 나 혼자 놀고 있을 수는 없지.
그냥 꼬락서니가 웃겨서 놀렸던 것뿐이라고.
“일단 시간 없으니까 바로 본론부터 말하자면 난 warrior야. 만나서 반갑다.”
“warrior?!!!”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놀라는 사령관 녀석이었다.
“몰랐어? 너 눈치 되게 없다.”
“우리를 다 몰살시키려고 이렇게 온 것이냐? 우리가 대체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냐?!!!”
이 녀석 뭔가 혼자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혼자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우리를 다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 아니더냐?!!! TI 놈들 데리고 장난이나 치고 있고. 사람 목숨이 장난이야?!!!!”
TI를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고 착각하고 있나 보다.
“야……. TI 데리고 노는 놈은 다른 애새끼거든? 착각하지 말아 줄래? 나는 지금 너희를 도와주러 온 거야.”
“뭐?!!”
사령관의 벌어진 입은 닫힐 줄 몰랐다.
“너희가 나한테 뭐 했냐? 왜 괜히 오해하고 난리야? 그리고 나는 공격하기 전에 선전포고하고 해.”
“warrior 님!!!!”
갑자기 사령관은 내게 와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태세 변환이 우디르급이라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제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이미 당신의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위대하신 warrior 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사령관은 부담스러운 말투로 내게 탄원했다.
아…….
이런 건 오그라들어서 딱 질색인데.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고 했던가…….
진짜 갑자기 확 도와주기 싫었다.
콰앙-!!!!
“끄아아아악!!!!”
근처에서 폭발 소리와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죽어라!!!”
“하압!!!!”
TI 놈들이 어느새 여기까지 도착해버렸다.
“알았어. 일단 시간 없으니까 바로 싸우자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전군에게 명령 내려서 TI 놈들하고 당장 싸워.”
“네!!!”
사령관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짬밥이 있는지 사령관 폼은 갖춰져 있다.
“그럼 나는 나가서 그 건방진 녀석들 좀 구경해볼까?”
밖으로 나가보니 TI들이 검을 들고 설쳐대고 있었다.
그들은 이라크군들을 붙잡아 검으로 목을 내리치려고 했다.
“테러리스트들 아니랄까 봐 아주 지랄 맞게 놀고 있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겨워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죽어라!!!!”
TI 놈 하나가 자신이 붙잡은 병사에게 칼을 내리쳤다.
챙-!
“뭐, 뭐야?!!!!”
푸른 패널 막이 등장해 공격을 막자 녀석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직-!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전기 맛을 보게 해주었다.
“…….”
하지만 녀석은 멀쩡했다.
[그 녀석이 꽤 견고한 데이터 쉴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벼운 공격으로는 뚫을 수 없을 겁니다.]
디오가 바로 상황 분석을 해주었다.
“하! 애송이 주제에 좀 한다 이거야?”
그렇게 발악한다면 더 혼내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나는 직접 가서 녀석을 조지려고 했다.
“하압!”
그때 갑자기 수진이가 나타나서 그 TI 놈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커헉!”
수진이의 질량 변환 발차기를 맞은 녀석은 멀리 날아가 건물에 부딪혔다.
쿠콰쾅-!
충격이 얼마나 강한지 건물 벽이 그만 무너져내렸다.
“…….”
살벌한 장면이 연출되자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진아…….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뭔 킥을 그렇게 무식하게 날려버리냐?”
“저 건방진 테러리스트 놈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요. 초장부터 아주 박살을 내버릴 거예요.”
수진이는 의욕이 넘쳐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의욕이 넘친다고 하기보다는 많이 빡쳐 있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라크 병사는 멍청한 표정으로 수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
이해한다.
수진이는 병사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려고 했다.
“어딜 가?”
그때 건물 잔해에서 수진이가 날려버린 TI 놈이 저벅저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