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그녀의 과거 (6)
화르르륵-!
불타는 자동차 주위로 미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놈들 실력이 대단하긴 한가 봐요. 솔직히 2명이서 해낼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봤자지. 어차피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
대위는 한심하다는 듯이 끌끌 대며 말했다.
“젠장……. 우리 쪽에서는 얻는 것도 없고 이렇게 손해만 보네요.”
부하 장교는 애석해하며 땅을 찼다.
“이렇게 끝나는 것에 만족해야지. 이 녀석들이 불었어 봐. 그러면 우리도 바로 끝이라고.”
“진짜 대위님 말대로 폭탄을 설치해 놓은 게 천만다행이네요.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이 바닥은 항상 철두철미해야 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지.”
“하하하하. 역시 대위님이십니다.”
부하 장교는 대위를 한껏 추켜세워주었다.
“그나저나 그 두 여자 요원은 아깝네요. 둘 다 예뻤었는데요.”
“그러게……. 뭐 어쩔 수 없지.”
그들을 저질스럽게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좋아했다.
“시체 확인이나 해봐. 그 예쁜 얼굴이 아직 남아있는가 좀 보고.”
“알겠습니다. 애들아!”
장교의 부름에 다른 부하들이 다가왔다.
“잘 처리됐는지 확인 하자.”
“네!”
그들은 죽어 있는 인질들을 확인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부하들은 찬찬히 시체들을 확인했다.
“저기…….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부하 장교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총 7명 아닙니까? 근데 지금 자동차 안에는…….”
탕-!
털썩-!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고, 말하고 있던 부하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피가 줄줄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뭐, 뭐야?!!!!”
부하 장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몸을 아래로 숨기고 엄폐하러 갔다.
“망할!”
대위 또한 황급히 몸을 숨겼다.
탕-!
“끄아아아악!!!!”
또 부하 한 명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젠장할!!!!”
어느 정도 몸을 숨겼다고 생각한 대위와 부하 장교는 황급히 권총을 꺼내 들었다.
“살아있었던 건가? 어떻게?”
“그 쥐새끼 같은 년들. 이미 눈치채고 차에 안 타고 있었나 봅니다.”
“망할…….”
대위는 암담해 하며 탄식했다.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고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너무 안일했어……. 더 확인했어야 하는 건데.”
“일단은 여기를 빠져 나가보고 생각하자고요.”
부하 장교는 조심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휘익-! 푸슉-!
순간 칼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가슴을 찔렀다.
“끄아아아악!!!!”
이설아가 돌진해 그를 공격한 것이었다.
“뭔데?!!”
대위는 재빨리 이설아를 권총으로 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퍼억-!
“크윽!”
대위는 장수진의 발차기를 맞고 뒤로 넘어졌다.
“안녕. 개자식들아?”
장수진은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푸슉-! 푸슉-!
“끄아아아아악!!!”
이설아는 부하 장교를 마무리한 다음 내팽개쳤다.
“다 끝나면 나랑 데이트하자며, 대위님?”
이설아는 쓰러져 있는 대위에게 저벅저벅 걸으며 다가갔다.
“크윽…….”
대위는 이설아의 말에 민망한지 아무 말도 못 한 채 신음하기만 했다.
“이러니까 내가 도통 누구를 믿을 수 없다니까? 고마워. 덕분에 또 하나 배우네. 앞으로 데이트 신청에는 노이로제가 걸릴 거 같아.”
이설아는 칼을 돌려대며 대위 코앞에 섰다.
“자, 잠깐만! 내가 다 설명할게. 그게 말이…….”
푸욱-!
이설아는 망설임 하나 없이 대위에게 칼을 내려쳤다.
털썩-!
대위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하아……. 기분 엿 같네.”
이설아는 화가 많이 났는지 칼을 땅바닥에 내리 꽂아버렸다.
“진짜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은지…….”
장수진도 한탄하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둘은 불타고 있는 군용 차량을 쳐다봤다.
“진짜 힘 빠진다. 안 그러냐?”
“그러니까요…….”
장수진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사실대로 말하고 복귀해야지. 증거도 챙겼어.”
이설아는 테러리스트들의 건물에서 발견한 서류를 보여주며 말했다.
“가자.”
“네.”
둘은 일어나 미군 기지로 복귀했다.
***
그날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미군 측에서는 소속 대위가 테러리스트들과 공작했다는 것에 엄청나게 분노했다.
미군 사령부에서는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이 적발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그들은 이설아와 장수진에게 사과를 했다.
이설아와 장수진은 미군 쪽에서 진솔성 있게 사과를 했고, 또 별 탈 없이 지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은 미군 측에서 주도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불타는 차량을 조사하던 중 그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시체가 하나 없습니다.”
“네?”
조사관의 보고에 이설아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다 타버려서 누구의 시체가 없는 지는 바로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어쨌든 시체 하나가 비어 있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이설아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어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사실 따로 공관장과 그 일당들을 포박한 것도 아니어서, 중간에 차에서 내리려면 얼마든지 내릴 수 있었다.
“설마……. 폭발하기 전에 탈출한 건가?”
대위 쪽에서 자기들을 토사구팽할 것은 사실 뻔했을 거다.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시체가 없으니 중간에 빠져나왔을 가능성은 더욱 높았다.
“조사관님!”
갑자기 미군 병사가 캠프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어떤 서류 더미를 들고 있었다.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공관장이 탈출한 것 같습니다.”
“뭐? 어디 줘봐.”
조사관은 부하 병사가 가져온 서류를 받아 살펴보았다.
“이런 미친…….”
서류에는 공관장이 테러리스트들과 같이 있는 사진들이 있었다.
“한국인이 테러리스트와 함께 있다는 제보를 받아 조사해보니 공관장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녀석들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크크큭.”
둘의 대화를 듣던 이설아는 끌끌 대기 시작했다.
“하하……. 시발.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설아는 실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저기……. 저도 그것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지요.”
조사관으로부터 서류를 받은 이설아는 곧바로 내용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병사의 말대로 공관장이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있었다.
심지어 그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시발……. 신세 좋네.”
이설아는 덤덤한 듯이 말했지만 누가 들어도 그 목소리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이설아는 서류를 다시 넘겨준 다음 밖으로 나와 장수진을 찾았다.
“네?!!!”
이설아에게 모든 것을 들은 장수진은 경악했다.
“그 개자식이…!”
“바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놈을 처리하지 않고 어떻게 복귀해? 위에다가는 내가 보고할 테니까 처리하고 가자. 도와줄 거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혼자하려고 했어요?”
장수진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하하하. 하긴……. 준비하자 그 개새끼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네.”
이설아의 보고를 받은 국정원은 곧바로 공관장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정원은 미군의 도움을 받아 얻은 자료를 이설아에게 보내주었다.
그들은 공관장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의 자료를 받아 곧바로 작전을 수행할 준비를 했다.
“역시 나쁜 놈들에게는 자비로우면 안 돼. 이렇게 뒤통수를 치잖아. 이번에는 깔끔하게 처리해야겠어.”
이설아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하며 탄창을 챙겼다.
“준비 끝났습니다.”
장수진은 허리춤에 단검을 꽂으며 말했다.
“좋아. 출발해보자고.”
이설아와 장수진은 미군 측에서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역시 지원은 거절해서 두 명만 왔다.
히잡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냥 봐서는 이들이 한국 사람인지 이라크 사람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설아와 장수진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관찰했다.
그들이 도착한 동네는 뭔가 을씨년스러웠다.
테러리스트들의 동네여서 그런가,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렀다.
이설아는 슬쩍 GPS 장치를 확인했다.
“알려준 바로는 저기인데.”
이설아는 한쪽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건물 입구에는 기관단총을 든 경비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딱 봐도 테러리스트들이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네.”
“그러게요.”
“이동하자.”
이설아와 장수진은 슬며시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공관장 놈이 다 말해서 이렇게 히잡을 쓰고 접근해봤자 바로 들킬 거야. 그냥 한 번에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알겠습니다.”
장수진은 품에서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슈욱-! 데구르르르-!
“기, 기습이다!!!!”
수류탄이 자신들에게 굴러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경비가 소리를 쳤다.
콰앙-!!!!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장수진의 정확한 투척에 경비들은 바로 처리되었다.
“가자!”
곧바로 장수진과 이설아는 건물 안으로 돌진했다.
탕-! 탕-!
“끄아아아악!!!”
그들을 상황을 확인하러 나오는 테러리스트들을 가볍게 처리해나갔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들에게는 불리했기에 그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적들을 사살했다.
“바로 올라가!”
“네!”
건물 안으로 들어온 장수진은 서둘러 계단 위로 올라갔다.
탕-! 탕-!
“끄아아아악!”
장수진은 내려오고 있던 테러리스트들도 곧바로 처리해버렸다.
공격 템포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탕-! 탕-!
“으아아악!”
장수진은 2층 복도로 나오는 테러리스트 또한 신속하게 처리해나갔다.
1층에서도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설아 또한 거침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번 뒤져볼까?”
장수진은 방들을 확인하며 공관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2층에는 죽어 있는 테러리스트들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1층에 있나?”
볼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장수진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1층 복도에는 테러리스트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국정원 안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빡친 이설아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장수진은 혼자 감탄하며 이설아를 따라갔다.
이설아 또한 1층을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 2층은 다 정리했어요. 2층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응. 덕분에 이 언니가 많이 정리했다.”
이설아는 농담 섞인 말투로 말하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저 방이 마지막 방이다.”
이설아는 복도 맨 끝에 자리하고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은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걸어갔다.
끼익-!
이설아는 방문을 연 다음 곧바로 총을 겨누었다.
“뭐야?!!!”
이설아는 예상외의 광경에 황당해했다.
방 안에는 테러리스트들은 없고 젊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당신들 뭐야?!!”
이설아의 물음에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지만, 아랍어로 말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지……?”
이설아는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왔다.
“하하하하하. 걸려들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