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그녀의 과거 (4)
“예. 고맙습니다.”
이설아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갈까?”
“네.”
이설아와 장수진은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대위가 말한 대로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설아는 사막 전용차를 보며 감탄했다.
“좋네요.”
장수진 또한 감탄하며 말했다.
“부탁하신 것은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설아는 미군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그런데 정말 두 명이서만 가실 생각이십니까?”
대위는 걱정하는 눈치로 물었다.
“네. 왜요?”
“상당히 강하시다고 들었지만, 테러리스트 놈들도 만만치는 않거든요.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서 병력을 지원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말씀은 정말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이건 엄연히 우리나라 일이고 또 저희끼리 하는 게 편하거든요.”
“그렇군요…….”
대위는 상당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무운을 빕니다.”
“네. 그럼.”
“저기…….”
대위는 뭔가 머뭇거리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네. 왜 그러시죠?”
이설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임무를 다 마치시면 저랑 데이트하러 가실래요?”
“…….”
이설아는 표정 관리가 안 됐다.
그녀는 슬쩍 장수진을 쳐다봤다.
장수진은 더 표정 관리가 안 돼서 아예 대놓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풋!”
이설아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하하하하하.”
“…….”
대위는 이설아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좋아요. 대위님. 임무 마치고 봐요. 좋은 대로 안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대위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요.”
이설아는 대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 다음 차에 탔다.
“가볼까?”
“네.”
그들은 곧장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갔다.
“언니.”
침묵을 먼저 깬 쪽은 장수진이었다.
“응. 왜?”
“아까 데이트 신청 진심으로 받아준 거예요?”
“응. 왜? 네가 대신 가고 싶어?”
“아뇨!”
장수진은 질색팔색하며 대답했다.
“그냥 의외라서요. 언니가 받아줄 줄 몰랐어요.”
“왜? 얼굴도 잘생겼잖아. 매너도 좋고.”
“처음에는 다 그렇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데이트를 해보면서 알아가는 거지. 그리고 처음부터 별로인 사람들보다는 낫잖아. 너에게 시비를 건 그놈들보다 말이야.”
“그건 맞죠…….”
장수진은 이설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시간 되시길 빌게요.”
“너도 괜찮은 사람 있으면 한번 데이트도 해봐. 젊을 때 즐겨야지 늙으면 즐기고 싶어도 못 즐긴다 얘.”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쿨하게 대답하는 장수진이었다.
“알았다~.”
이설아는 놀리는 투로 말했다.
“뭡니까? 그 말투는?”
“어머. 장수진. 많이 컸네. 대선배의 말투도 걸고넘어지고. 요새 개념이 많이 없어지셨나?”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장수진은 순간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사과를 했다.
이설아는 그런 장수진을 보며 피식했다.
“그렇게 바로 사과까지 할 건 없고.”
“…….”
“다른 이야기나 하자. 이번 작전 브리핑이나 좀 해봐라.”
“예.”
장수진은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하나 꺼냈다.
“인질은 공관장을 포함해 총 5명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바그다드 외곽 도시에 있는 조그만 건물에서 그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 놈들 규모는 1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0명 주제에 무슨 인질극을 벌이겠다고 참.”
이설아는 혀를 끌끌 찼다.
“가볍게 정리하고 오자.”
“네.”
“물론 방심은 하지 말아야지.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네.”
“장수진 씨. 대답은 잘해?”
“네.”
“하하. 요것 봐라.”
이설아는 가볍게 장수진의 팔뚝을 밀었다.
“근데 참 이상한 게 있단 말이야.”
“뭐가요?”
“그 10밖에 안되는 놈들에게 어떻게 납치됐을까? 솔직히 바그다드, 특히 한국 대사관 쪽 치안이 그렇게 안 좋은 것은 아니거든. 자살 테러라면 모를까 이렇게 쉽게 납치되었다는 게 뭔가 이상해.”
“저도 그게 이상하긴 합니다. 뭔가 일이 계획된 것처럼 술술 흘러갔습니다. 테러리스트랑 미군 사이에 어떤 교전도 일어나지 않았고요.”
“한 명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다섯 명이 동시에 납치당한다고? 말이 돼?”
“그러게요…….”
둘은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요원 짬밥으로 말하건대 분명 뭔가가 있어. 왠지 함정이 있을 거 같아.”
“함정이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있어. 이번 작전은 많이 조심해야 할 것 같아.”
“그러면서 지원을 안 받았습니까? 미군 쪽에서 먼저 준다고 한 것을요.”
“이게 꼭 말에 뼈가 있다니까?”
이설아는 다시 한번 장수진의 팔뚝을 밀었다.
“지원받을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말했다시피 미군 도움을 받으면 골치 아파져. 녀석들이 내 명령을 들으면 모를까. 분명 우리들 말은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움직일 텐데.”
“그건 그렇죠.”
장수진도 충분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튼 조심하자는 거지.”
“네.”
목적지로 가면서 이설아는 장수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해주었다.
이설아가 편해 장난도 치는 장수진이었지만 이설아의 말을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설아는 국정원 최고 요원 중 한 명이고 그가 존경하는 선배였다.
끼익-!
“도착했다.”
이설아는 차를 한쪽 귀퉁이에 세워 두었다.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자.”
“예.”
“그럼 갈아입어 볼까.”
이설아랑 장수진은 히잡을 꺼내 두르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 여자들만 보낸 것도 이런 이유지. 이렇게 두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안 보이잖아.”
“그렇죠. 동양 남자들이 여기에서 돌아다니면 너무 대놓고 드러나니까요.”
“가끔은 이런 문화가 임무 수행 중에 도움이 될 때가 있어.”
“그렇네요.”
이설아랑 장수진은 서로를 체크해 주었다.
“됐다. 이러면 잘 모르겠다.”
“예.”
복장을 다 갖춘 둘은 차에서 내렸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임무 수행하기 딱 좋은 분위기네.”
이설아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거기 뭐야?!!”
갑자기 그들을 향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랍어로 말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대충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예상이 됐다.
이설아와 장수진은 굳이 말해봤자 이라크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들킬 게 뻔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너네 뭐야?”
그 사람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딱 보아하니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일당임이 틀림없었다.
“이 자식들이.”
이설아와 장수진이 계속 대답이 없자 테러리스트는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지금 이게 장난인 줄 알아? 이 시간에 왜 돌아다녀?”
그는 총을 겨눴다.
이설아와 장수진은 조심히 손을 들었다.
“벙어리야 뭐야? 여자들이 이 시간에 돌아다니면 죽고 싶다는 것밖에 더 돼?”
그는 장수진부터 수색하려고 했다.
퍼억-!
이설아는 그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목을 때려 기절시켰다.
털썩-!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로 쓰러져버렸다.
“데리고 이동하자.”
“네.”
이설아와 장수진은 그를 끌고 차로 데리고 갔다.
“깨워.”
“네.”
이설아의 명령에 장수진은 그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으윽-!”
몇 번 때리자 그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앗!”
“입 닥쳐.”
이설아는 그에 목에 칼을 대며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도 그대로 얼어버렸다.
“뭐, 뭐야?”
“입 닥치라고! 내가 물을 때만 말해!”
“히익!”
이설아가 힘을 더 줘 목에 칼이 약간 들어가자 그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는 두려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설아의 말을 알아듣는 걸로 봐서 그는 영어를 할 수 있는 거 같았다.
“너 테러리스트지?”
“……그렇다.”
역시 그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이설아는 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한국인 인질을 붙잡고 있지?”
“……그래. 맞다.”
그는 망설였지만, 이설아가 무서워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 근데 그 한국인 인질들……. 정말 붙잡힌 거 맞아?”
“뭐?”
그는 예상외의 질문에 당황했다.
“붙잡힌 것처럼 연기하는 것은 아니고?”
“…….”
그는 이설아의 질문에 말이 없었다.
이설아는 그에 씨익 웃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을 테니까.”
“…….”
그는 두려움에 침을 꿀꺽 삼켰다.
“수진아. 대답할 생각이 없단다. 저기 왼팔부터 잘라버려라.”
“네.”
장수진은 이설아의 명령에 따라 테러리스트의 왼팔을 붙잡고 칼로 내려치려고 했다.
“자, 잠깐!!!!”
그는 다급하게 외쳐댔다.
그에 장수진은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대, 대답할게. 그러니까 하지 마.”
그는 많이 무서운지 눈에 눈물까지 고여있었다.
“빨리빨리 대답해. 안 그러면 손 날아가니까.”
“알았다.”
“그럼 말해봐.”
“너희도 알다시피…… 이건 다 쇼야.”
그의 대답에 동시에 이설아와 장수진은 서로를 쳐다봤다.
사실 이설아가 다 안다고 말했던 것은 그를 떠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계속해봐.”
“사실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돈을 얻으려고 그놈들과 합작해서 이 일을 벌였다.”
“그놈들 누구?”
“공관장 말이다…….”
“하!”
이설아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실소했다.
장수진도 황당한지 코웃음을 쳤다.
공관장이 돈을 얻기 위해 자진해서 인질이 된 것이었다.
받은 보상금은 테러리스트랑 나눌 생각이었나 보다.
“어쩐지 이상했어. 그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거든.”
“하하. 이 개새끼들.”
이설아와 장수진은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이제 다 말했으니까 나를 좀 풀어…….”
“닥쳐!”
퍼억-!
이설아는 다시 테러리스트의 목을 쳐서 그를 기절시켰다.
“언니……. 어떡하죠? 저 그 새끼들 구해주기 싫은데요?”
“하아…….”
이설아도 화가 많이 났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철수하죠. 어차피 그 자식들 안전할 거 아닙니까?”
“이대로 철수하자고? 그건 내 성질에 안 맞는데?”
“…….”
이설아의 싸늘한 목소리에 장수진조차 소름이 돋아버렸다.
“테러리스트들 다 조지고 그 개 같은 공관장 새끼도 조지지 않고서는 화가 풀리지 않겠어.”
“……설아 언니.”
“가자. 건방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네. 알겠습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지만, 장수진 또한 화가 많이 나 있었기에 놈들을 박살 내고 싶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의 건물 근처에 도착했다.
두 명의 경비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자식은 왜 떠난 지가 언제인데 왜 안 오는 거야?”
“또 어디서 놀다가 자빠져 자는 거 아니야? 저번에도 길거리에서 자고 있다가 들켰잖아.”
“하! 나, 새끼 빠져가지고. 내가 찾으러 갔다 올게.”
“하아……. 알았다. 너도 도망치면 안 된다. 돌아와야 한다.”
“걱정 마. 금방 데리고 올 테니까.”
경비는 이설아에게 제압당했던 동료를 찾아 떠났다.
그는 거리로 나섰다.
퍼억-!
그리고 곧바로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