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그녀의 과거 (3)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백기완 대통령은 심각한 얼굴로 커피를 한 모금 했다.
“이 와중에 커피는 정말 맛있군요.”
“그러게요. 하하…….”
“사실은 말입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이야기 꺼내기를 많이 망설이고 있었다.
“하아……. 그냥 말하겠습니다. 어차피 라일 씨께서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대통령은 혼자 마음을 다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북한과 중국이 우리 한국에게 병합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통령만 바라봤다.
백기완 대통령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라일 씨가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이게 말이 되나 싶습니다. 북한이야 뭐 그렇다고는 치지만. 중국까지 저럴 줄은 몰랐습니다.”
백기완 대통령 말처럼 중국이 저러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나에게 여러 번 호되게 당해서 반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나온다.
부패와 범죄가 사라지면 얼마나 달콤한지 제대로 맛봤나 보다.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됐으면 싶으니까 이렇게 나를 지도자로 세우고 싶은 거 같고.
“원하는 것은 딱 보입니다. 본인들 나라의 범죄와 부패를 계속 관리해주라. 이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합병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데이터 자아가 있는 한 관리가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죠.”
“하하하하. 그러니까요.”
백기완 대통령은 재밌다는 듯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하실 말씀이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은데요.”
“…….”
대통령은 내 말에 흠칫 놀랐다.
그는 슬며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라일 씨군요.”
백기완 대통령은 곧바로 내게 어떤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이건…….”
자료를 확인하니 중동 쪽에서 군사시설로 연료가 평소보다 더 많이 공급되고 있다는 보고였다.
백기완 대통령의 데이터 자아가 위성을 이용해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중동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근데……. 우리나라가 중동의 움직임을 그렇게 신경 썼습니까?”
난 일부러 백기완 대통령을 떠보며 물었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관심이 거의 없었죠. 문제는 청와대로 이런 메시지가 왔다는 것입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내게 어떤 편지를 보여줬다.
편지에는 아랍어로 뭔가가 적혀 있었다.
“디오. 해석 부탁한다.”
[네.]
디오는 내게 해석한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조만간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과거의 원한을 되갚아주지.]
“과거의 원한을 되갚아주겠다라…….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요…….”
백기완 대통령은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라일 씨를 부른 이유가 이것입니다. 저들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편지에는 다른 말은 쓰여있지 않고 딱 저 말만 있었다.
“디오야. 이게 어디서 왔을까?”
[모르겠습니다.]
호오…….
디오가 저런 소리를 한다.
그렇다는 것은…….
“흥미롭군요.”
나는 편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능력자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잭슨도 있었고 올리버도 있었는데 이제 와서 다른 능력자가 있다고 해도 놀랄 것은 아니지요.”
잭슨 때야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일반 사람보다 조금 강한 적이 나타났다는 정도?
“이 편지는 어떻게 받았습니까?”
“아침에 와서 보니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더군요. 수행원은 가져온 적이 없다고 합니다.”
디오를 통해 확인해 보니 아무것도 없던 대통령의 책상 위에 편지나 나타났었다.
“순간 이동해서 가져다 놓았군요. 능력자가 맞습니다.”
“하아……. 한동안 평화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요.”
백기완 대통령은 조금 지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중동에서라. 과연 중동인지도 의문스럽지만요. 단순히 아랍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추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그렇죠……. 중동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동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은 없지 않습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렇죠.”
내 말에 백기완 대통령은 살짝 인상을 썼다.
“설마……. 그 ‘소몰이 작전’ 때문입니까?”
소몰이 작전.
장수진을 최고 요원으로 만들어준 임무다.
한미 합동 훈련과 관련해서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했을 때 그를 노리는 중동의 무장 테러 집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수진 한 명에게 그냥 썰려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그들이 말하는 ‘과거의 원한’이 될 수 있겠네요.”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대비를 잘해 놓겠습니다.”
“네. 역시 라일 씨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 이제 우리는 척하면 척이지요.”
나는 백기완 대통령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뭔가 황급히 나온 것 같다면 정확히 봤다.
아무리 백기완 대통령이 나랑 각별한 사이라지만 말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장수진과 관련된 일이었다.
장수진에게는 흑역사가 있다.
모두 중동과 관련된 일이다.
하나는 2017년에 이라크에서
다른 하나는 2019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있었던 일이다.
솔직히 직감적으로 중동에서 원한이 있다면 ‘소몰이 작전’보다는 이 두 사건이 관련이 있을 거 같았다.
내가 백기완 대통령에게 이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진이의 과거를 덮어주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그것 때문에 내 따까리로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그것을 누설하면 수진이를 배신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나와 장수진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고 푸른 나무로 가득한 정원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제길……. 평화가 찾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애석함에 혀를 끌끌 찼다.
“또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겠군…….”
***
2017년 이라크
투두두두두두
군용 헬기가 미군 기지에 착륙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헬기가 잘 내려오도록 안내하느라 바빴다.
슈욱-!
이윽고 안전하게 착륙한 헬기의 문이 열렸다.
“후우-!”
장수진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진짜 좁아서 죽는 줄 알았네.”
그녀는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한국에서 요원이 온다고 하던데 웬 애송이 녀석들이 왔네.”
“뭐야? 위문 공연하러 온 거야? 얼굴은 예쁘긴 하네.”
미군들은 헬기에서 내린 장수진을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문제는 그 말소리가 장수진의 귀에까지 다 들렸다.
“뒷담 할 거면 너희들끼리 뒤에서 안 들리게 해라. 다 들리니까.”
장수진은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들은 그런 장수진이 같잖은지 피식했다.
“저 새끼들이…….”
열받은 장수진은 미군들을 제압하려 들었다.
“수진아! 참아.”
같이 온 요원 선배는 황급히 장수진을 말렸다.
이설아
장수진의 직속 선배로 국정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해서 장수진을 교육해왔다.
여자 요원은 얼마 안 됐기에 그녀는 장수진에게 든든한 존재였다.
실제로 이설아는 장수진을 잘 챙겨주었다.
그녀 또한 장수진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저런 무개념들 상대해봤자 너만 피곤해. 그냥 무시하고 우리는 우리 임무만 해결하고 가자.”
“후우……. 알겠습니다.”
장수진은 숨을 깊게 내쉬며 화를 삭였다.
이설아의 말 대로 여기서 미군과 괜히 갈등을 일으켜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한 장교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아까 그들을 놀렸던 군인들과는 달리 교양 있어 보였다.
장수진은 그에게 달려 있는 대위 마크를 확인했다.
“장교는 좀 개념 있는 거 같네요.”
“야! 장수진!”
한국말로 해서 대위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이설아는 아연실색하며 반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위는 영문을 모른 채 그들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이설아는 싱긋 웃으며 얼른 상황을 무마시켰다.
“수진아……. 너 진짜 혼난다.”
이설아는 이를 꽉 물고 정색하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화난 이설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기에 장수진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들어갔다.
“이라크에서 작전 수행하는 동안 여기를 본진으로 이용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다른 필요한 것이 있으며 저에게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앞서서 안내하는 대위를 따라갔다.
“구출 작전은 바로 시작하실 건가요?”
“예. 필요 없는 짐만 두고 파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잡혀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1분 1초라도 빨리 우리가 왔으면 싶을 거니까요.”
이설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대위는 사뭇 감탄하며 그들을 쳐다봤다.
“여기입니다. 짐 정리하는 동안 제가 차량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예!”
이설아는 기뻐하며 사라지는 대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휴. 얼굴도 반반한데 매너까지 좋네.”
“당연한 거 아니에요? 반대로 저 녀석들이 우리 캠프에 오면 우리도 잘 대해줄 거란 말이에요.”
“허허. 수진아. 네 말이 맞다만, 모두가 그렇게 개념이 있는 건 아니야. 저런 개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참 슬픈 현실이네요.”
장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짐을 툭 뒀다.
“컨디션은 어때? 좀 쉴까?”
“언니가 아까 말하지 않았어요? 잡혀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소중하다고요. 그리고 아까 오면서 많이 쉬었어요.”
“하하. 역시 장수진이네.”
그들이 여기 이라크에 인질을 구출하러 왔다.
아직 사람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관장과 대사관 직원들이 납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한국에게 수천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단 돈을 주기보다는 이설아와 장수진을 파견해 인질들을 구출하고자 했다.
일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이설아의 덕을 봤기 때문에 국정원에서는 이번에도 이설아를 파견했다.
이설아는 자신의 후계자로 장수진을 생각했었기에 그녀를 성장시킬 겸 장수진도 데리고 왔다.
“언니. 근데 이런 건 특수부대가 와서 해야 하는 일 아니에요? 이렇게 소규모로 진행해도 되는 거예요?”
“특수부대들까지 들어가면 인질이 잡혀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잖아. 높으신 분들은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 주가 떨어지는 거에 민감하다고. 이라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대상으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무서워서 가겠냐?”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결국 언니 목숨만 위험해지잖아요.”
“걱정 마라. 이 언니 이설아다.”
이설아는 장수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말했다.
“테러리스트 놈들은 뼈도 못 추릴 거다.”
“…….”
이설아는 밝게 말했지만, 장수진은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저기요.”
그때 대위가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차량 준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