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그녀의 과거 (2)
나는 강아지가 주인 눈치를 보듯 슬쩍 박이나를 쳐다보았다.
“하하. 그 눈빛은 뭔데요?”
“아마 들으시면……. 놀라실 수도 있어서요.”
“놀라봤자 세계 정복보다 더 놀란 이야기겠어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내가 봤을 때는 세계 정복만큼이나 놀라울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하하. 말해주세요.”
박이나는 한껏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좀 특별한 게임을 만들어볼까 해서요.”
“특별한……. 게임이요?”
“네. 좀 많이 특별한…….”
나는 씨익 웃은 다음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먹었다.
“프렌드쉽을 VRMMORPG 게임으로 만들까 해요.”
“하, 하하하…….”
역시나 박이나는 놀란 눈치였다.
“VRMMORPG가 이미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소설에서나 나오는 게임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 디씨소프트에서 최초로 만들자는 것이죠.”
“그렇군요…….”
박이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스크림을 떠 먹었다.
“별로 안 내켜 하는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재밌을 거 같아요. 단지……. 새로운 시도라 걱정되는 게 많아서 그러죠.”
“CEO 입장에서는 좀 더 생각할 게 많나 보죠?”
“일단은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가 걱정되네요. 라일 씨가 이걸 만든다면 분명 현실 세계와 완전 비슷할 거 같은데요.”
박이나가 정확히 짚었다.
지금 나와 있는 VR 게임들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하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의 간극을 완전히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이전에 올리버의 감각을 지배했었죠. 그것처럼 사람들의 감각에 변형된 정보를 보내는 방법으로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기발하긴 한데, 윤리적으로 이게 통용될지가 제일 걱정이에요. 사람들이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 못 하고 미쳐버릴까도 걱정되고요.”
박이나의 표정은 심각했다.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CEO는 아니라 이건가?
“이나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분명 윤리적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만들 생각이니까요.”
“라일 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야 믿을 수밖에 없네요.”
박이나는 표정을 풀고 나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냈다.
그냥 나를 무한신뢰하고 있는 거 같았다.
“궁금증은 해결됐네요. 사실 그날 이후 되게 궁금했었거든요. 근데 라일 씨께서 다른 일로 신경 쓸 게 많으셔서 물어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물어보네요.”
“바로 물어보셔도 됐었는데요. 솔직히 잭슨 이후로는 그 어떤 녀석도 제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요.”
“하하하하. 하긴 라일 씨라면 그러겠네요.”
“업무 이야기는 이쯤 하죠. 지금은 휴식 시간이니까요.”
“예.”
이후로 우리는 세계 명소들을 순간이동으로 돌아다녔다.
각 장소마다 시차가 났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 개념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죠?”
“같이 있은 지 12시간이 지났네요.”
“에? 벌써 그렇게나 오래 있었어요? 라일 씨랑 놀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가네요.”
“안 피곤하세요?”
“그렇게 물어보니까 피곤한 거 같기도 하고요.”
당연히 피곤하다.
한국은 벌써 새벽 2시니까.
“더 놀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 이만해야 할 것 같네요.”
“네. 기회는 많으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방긋 웃었다.
“덕분에 완벽한 하루를 보냈어요. 맛있는 것도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다 가보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나 씨와 함께해서 너무 좋았어요.”
“잘 자요. 라일 씨.”
“이나 씨도요.”
우리는 마주 보며 손을 흔든 다음 순간이동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연천 연구소.
“하하…….”
일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헛웃음 소리를 냈다.
“VRMMORPG? 그러니까 MMORPG에 VR을 접목시킨 거네?”
“게임 개발자가 지금 그거 정의나 묻고 있을 때냐?”
“네가 말하는 VRMMORPG가 내가 알고 있는 VRMMORPG와 같은 건지 확인했을 뿐이야.”
“그래서, 대답은?”
“너 진심으로 만들 생각이야?”
“응. 너랑 또 엄청난 게임을 만들고 싶거든.”
“하하. 그래?”
일수는 뭐가 부끄러운지 머리까지 긁어 댔다.
“왜 이렇게 쑥스러워해?”
“내 둘도 없는 친구 라일이가 나랑 뭘 하고 싶다니까 기뻐서.”
“왜 이래? 그런 멘트는 네가 좋아하는 수진이한테나 하셔.”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녀석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허허. 이러니까 다시 서운하려고 하네. 나도 여자 좋아하거든. 솔직히 네가 능력이 생기고 좀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뭐?”
일수는 갑자기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같이하던 시간이 많아졌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이 없어진 거 같아서. 솔직히 예전에는 게임 개발하느라 디씨소프트에서 그냥 주야장천 지냈잖아. 아! 물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냐.”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매일 있는 야근.
일한 것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월급.
지금 생활이 그때보다 만 배는 낫다.
“근데 그립긴 하더라고. 너랑 같이했던 그 시간도 소중하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나는 일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난 변함없이 네 둘도 없는 친구야. 그래서 이렇게 게임 같이 만들자고 제안하는 거잖아.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자고 친구.”
“하하. 알았다.”
일수는 만족스러워하며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가볍게 녀석의 주먹을 치며 화답해주었다.
“그럼 게임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세계관 같은 건 정했어? 정통 판타지로 갈 거야?”
“아니. 그보다는 프렌드쉽 세계관으로 가면 어쩔까 싶어.”
정통 판타지 세계는 너무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괴리감이 클 것 같았다.
프렌드쉽 세계관은 실제 세계와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일단 시작은 그렇게 갔으면 싶었다.
“흐음……. 그럼 스토리나 세계관은 프렌드쉽을 그대로 이용하면 되니까 기술 부분에만 신경을 쓰면 되겠군.”
“응. 구현 방향은 플레이어의 감각에 조작된 데이터를 보내는 식으로 하려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범죄를 계획하는 거 같다. 이전에 올리버 녀석을 속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응.”
“근데 나는 아직 데이터 조작에는 익숙지 않은데…….”
“그러니까 연습해서 되게 해야지.”
너무 단호하게 말했나.
일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방금 되게 재수 없었던 거 아냐?”
“그런 것 같긴 하다. 근데 솔직히 맞는 말이야.”
“알았다.”
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또 열심히 해야지. 솔직히 데이터를 더 잘 다루게 되면 나에게도 좋은 거고.”
“잘 알고 있네.”
“근데 라일아. 나 혼자만 연습하면 심심할 거 같은데…….”
“하하. 알았어.”
바로 장수진에게로 이동했다.
“후우……. 후우…….”
수진이는 헬스장에서 한창 웨이트 트레이닝 중이었다.
“어쩐 일이시죠?”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수진이는 놀라지 않았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나보다.
“너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뭔데요?”
“이렇게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이터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겠어?”
수진이는 기구를 내려놓은 다음 일어섰다.
“또 무슨 일을 꾸미시는 건데요?”
수진이는 나를 수상하게 쳐다봤다.
“그냥 재밌는 게임 좀 만들어보려고. 너도 도와주었으면 해.”
“저는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데이터 자아를 가지고 있는 애가 그걸 지금 핑계라고 대고 있냐?”
“…….”
수진이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당연히 없겠지.
데이터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한 웬만한 프로그래머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어도 이번 게임은 만들 수 있어. 네가 데이터 조작 능력만 키우면 말이야.”
“데이터 조작 능력이요?”
“자세한 설명은 일수한테 들어. 바로 할 수 있지?”
“…….”
수진이는 내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금방 눈빛을 거두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따져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다.
수진이는 곧바로 짐을 정리한 다음 떠날 준비를 했다.
“연천 연구소로 가면 되나요?”
“응. 가서 일수랑 연습 좀 해봐.”
“알겠습니다.”
마음을 잡은 수진이는 덤덤하게 말하며 연천 연구소로 떠났다.
나는 흐뭇하게 녀석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띠리리리-!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백기완 대통령님.]
“어쩐 일이실까?”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대통령님.”
“라일 씨. 바쁘십니까?”
“아뇨. 방금 볼일은 다 끝났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잠시 여기 청와대로 와서 커피 한잔하시지 않겠습니까?”
“좋죠.”
나는 순간 이동해서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서 오십시오.”
백기완 대통령도 이제 순간이동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익숙하게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시죠.”
늘 그렇듯 나는 앉던 자리에 앉았다.
“좋은 커피를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백악관에서 기가 막힌 커피를 맛봤거든요.”
나는 가볍게 백기완 대통령에게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 그거 큰일이군요. 막 그렇게 좋은 커피를 준비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렇다는 것은, 나를 부른 이유가 같이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이야기하는 데에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것을 준비해야겠네요.”
백기완 대통령은 갑자기 직접 커피를 내리려는 것을 멈췄다.
농담 삼아서 말한 건데 대통령께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백악관에서 마셨던 것은 블루마운틴이었죠. 저도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백기완 대통령은 끼어들 틈도 없이 움직였다.
탁-!
백기완 대통령이 가볍게 손을 치자 책상 위에 커피 두 잔이 나왔다.
“하하. 이제 능력을 잘 다루시는군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죠.”
“농담으로 한 거였는데 대통령님을 수고롭게 만들어버렸네요.”
“뭘 이런 거 가지고요.”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했다.
“이건 백악관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이 좋은데요?”
“그래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백기완 대통령을 눈에 띄게 기뻐해 주었다.
“이 시간 지구에서 만들고 있는 커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이동시켰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커피를 만들던 사람이 당황했을게 눈에 선하다.
“하하하. 이거 도둑질 아닌가요?”
“방금 메시지를 보내서 상황 설명을 하고 돈을 지불했습니다. 바리스타가 괜찮다고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군요.”
“하하하하하.”
예상외의 행동을 보여줘서 재밌었다.
“라일 씨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요. 다음에는 천천히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요.”
“하하. 알겠습니다.”
백기완 대통령도 좀 과하다 싶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제게 할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