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새로운 국면 (8)
“마음의 준비 좀 해. 너 아마 많이 맞을 거 같거든.”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녀석을 때릴 준비를 했다.
“크윽! 이 개자식.”
“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 그러면 그냥 맞아야지.”
퍼억-!
“끄아아아악!”
나는 사커킥을 시원하게 꽂아주었다.
발에 아주 잘 맞았기 때문에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와! 방금 공격은 역대 발차기 공격 중에 제일 최고였던 것 같은데?”
“카, 카악!”
올리버 녀석은 입에 피가 많이 고였는지 끓는 소리를 내었다.
“올리버야. 이제 좀 정신 좀 차렸어?”
“으아아아아아!!”
대답 대신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가볍게 피해주었다.
철퍼덕-!
이미 한 쪽 발이 망가진 녀석이 제대로 달려들 리는 없었다.
“크윽!”
올리버는 모양 빠지게 넘어졌지만, 표정만큼은 누구보다도 비장했다.
녀석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거야? 솔직히 이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이 개자식아?!!!!”
녀석은 분노로 인해 거의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오직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보였다.
진짜…….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다.
“네가 나한테 안 개겼으면 됐잖아. 왜 개겨서 혼나고서는 이렇게 화내는 거야?”
“…….”
녀석은 세상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이제는 아예 화내기도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아……. 그냥 죽자. 이 개자식아.”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나를 무슨 병신으로 아나 보는데……. 아직 난 힘을 다 보여주지 않았어.”
“병신 맞잖아. 지금 다리도 제대로 못 쓰면서 무슨.”
“……계속 그렇게 까불어라. 그러면 더 처절하게 죽을 테니까 말이야.”
갑자기 올리버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디오야. 이거…….”
[네. 맞습니다. 녀석이 지금 라일 님께 왜곡된 정보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하. 녀석. 귀엽네.”
나를 따라 하면서 내 감각을 속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잘못된 정보는 걸러지고 있었다.
급조된 데이터 자아답게 섬세한 조작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장수진이나 일수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물며 나에게는 어떻겠는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녀석을 상대하겠습니까? 아니면 좀 즐기시면서 녀석을 속이시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디오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녀석은 정말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네가 무서워지려고 한다.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냐?”
[당연한 겁니다. 오히려 모르면 말이 안 되지요.]
“하긴……. 그런가?”
디오와는 정말 모든 것을 공유했기 때문에 녀석 말대로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디오는 그냥 내 일부이다.
[그럼 속이면서 괴롭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자.”
알아서 판을 만들어 주는 디오였다.
우리는 역으로 올리버에게 잘못된 정보를 보내주었다.
올리버는 나를 완전히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녀석의 눈에는 내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 침이나 흘리는 꼬라지 하고는.”
올리버는 나를 세상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 새끼가…….
근데 내가 봐도 추하긴 하네.
“디오야. 너 일부러 이러냐? 너무 바보 같은 거 아니야? 아무리 가짜라지만 좀 그런데?”
[이래야 올리버가 더 방심하고 라일 님께 덤빌 것입니다.]
“……알았다.”
뭔가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흐흐흐. 녀석! 자기가 세상 잘난 줄 알고 설쳤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지. 크흐흐흐흐.”
올리버는 교활하게 웃으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죽어라. 이 자식.”
올리버는 그대로 내 배에 칼을 꽂아버렸다.
내 허상은 고통스러워하며 피를 토해냈다.
“커헉!”
“크흐흐흐흐흐흐.”
올리버 녀석은 깜짝 놀라서 쓰러지는 나를 보고 교활하게 웃었다.
“맛이 어때? 너만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를 보낼 줄 알았어? 착각하지 마. 이 정도는 이 몸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난 너보다 더 뛰어나게 속일 수 있지. 크흐흐흐흐흐.”
응.
아니야.
너나 착각하지 마라.
“디오야. 요즘 들어 내가 참을성이 없어진 거 같아. 지금 때리지 않고서는 못 버티겠는데? 너무 꼴뵈기 싫어 죽겠거든.”
[……알아서 하십시오.]
디오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녀석은 한참 재미를 보고 있는데 내가 중간에 끊으니까 싫어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좀 더……. 즐겨볼까?”
[네.]
아쉬워한 게 맞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진짜로 저렇게 대답한다.
“알았다. 생각해보니까 좀 더 속여야 녀석이 더 분해할 것 같다.”
나는 더 연기를 하기로 했다.
“올리버……. 너 이 자식…….”
“하하하하하. 당황한 네 얼굴을 보니 이때까지 당하면서 생겼던 모든 짜증이 다 사라질 정도군.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어.”
“까불지 마!!!!”
내 허상은 격분하며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올리버는 그런 나를 주먹으로 시원하게 갈겼고 나는 추하게 뒤로 쓰러졌다.
“커헉!”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올리버는 통쾌한지 엄청나게 웃어댔다.
거짓이긴 한데 뭔가 보고 있자니 굉장히 열받았다.
[라일 님. 참으십시오. 더 빡쳐야 조금 이따 녀석을 더 때릴 맛이 날 겁니다.]
“…….”
이쯤 되면 사실 적은 디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오야. 너 사실은 올리버보다 내가 빡치는 것을 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섭섭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디오는 오히려 서운하다는 듯이 나왔다.
이 녀석.
고단수다.
“좀 석연찮지만, 일단은 넘어간다.”
지금 디오랑 실랑이를 벌일 때가 아니다.
일단은 올리버 녀석을 처리해야 한다.
“좀 많이 맞자 이 자식아. 하하하하하.”
올리버는 나를 올라탄 다음 신나게 패기 시작했다.
퍼억-! 퍽-! 퍼억-! 퍽-!
아주 올리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미친 듯이 나를 때려댔다.
“이러니까 기분이 어때? 이 자식아. 좋냐? 좋아?!!!!”
녀석은 엄청나게 흥분해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내 허상은 완전 떡실신이 돼서 숨만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하하하! 이 장면을 나만 보기엔 아쉽지. 전 세계로 송출해야겠어.”
녀석은 완전 신났는지 자기 상상 속에서 라이브까지 하기 시작했다.
“다들 보고 있나? 지금 보이는 바와 같이 내가 warrior를 완전히 작살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녀석은 신나서 막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계속 듣고 있자니 살인 충동만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렇게 한참을 말하던 녀석은 검을 들었다.
“이제 warrior의 최후를 보게 될 거다. 그리고 내가 세계 최강이 되는 거지. 크흐흐흐흐흐.”
올리버는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죽어라. warrior!!!!!”
녀석은 그대로 내 이마에 단검을 꽂아버렸다.
슈슈숙-!
그와 동시에 모든 게 다 사라지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허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뭐?”
올리버는 망연자실하며 멍하니 내 허상이 있던 곳만 바라봤다.
쾌감이 컸던 만큼 충격도 컸나 보다.
녀석은 현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지금껏 속았다는 거야……?”
올리버는 너무 분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결국 나는 너에게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이냐…….”
올리버는 충혈된 눈으로 멀쩡하게 서 있는 나를 노려봤다.
“응. 맞아.”
나는 덤덤하게 말하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아까 뭐라고 했지? 좀 많이 맞자?”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네가 좀 많이 맞아야 할 것 같은데? 가짜긴 했는데 네가 그렇게 나를 엉망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열 받더라고.”
“하하하…….”
올리버는 허무한 듯 쓸쓸히 웃었다.
퍼억-!
바로 사커킥을 또 날려주었다.
“커헉!”
아까와 같은 쾌감이 올라왔다.
역시 이렇게 시원하게 때리는 게 최고다.
곧바로 나는 쓰러져 있는 녀석 위에 올라탔다.
“나를 아주 묵사발로 만들어놓던데……. 이제는 네가 한번 당해봐라.”
“젠장할!”
퍽-! 퍼억-! 퍽-! 퍽!
나는 올리버가 그랬듯이 녀석의 얼굴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커헉-! 컥!”
올리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신나게 맞았다.
“야! 아파? 아프냐고? 처참하게 맞고 있던 나를 보던 내 마음이 더 아파!!!”
나도 미친 듯이 녀석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니까 올리버 녀석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진짜 쾌감 오진다.
“크하하하하하.”
짜릿함을 느끼며 나는 신나게 웃었다.
“하아……. 하아…….”
올리버는 대자로 뻗어 누우며 숨만 가쁘게 내쉬었다.
“잭슨이 남겨둔 힘을 받고 신났었겠지. 하지만 잭슨이 정말로 바란 것은 이것이었다. 바로 너의 멸망이지.”
“하하. 썩을…….”
올리버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했다.
이제는 녀석도 나를 이길 수 없음을 어느 정도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네 데이터 자아는 이제 폭발하기 직전이야. 단시간에 엄청난 힘을 요량으로 얻었던 만큼 대가도 큰 거지.”
“그 미친놈을 믿었던 내가……. 바보지…….”
올리버는 이 와중에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허상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던데.
이런 것에서는 놈이 나보다 낫네.
“남길 말은?”
“없다……. 죽여라…….”
“싫은데?”
“뭐?”
순간 녀석의 얼굴에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근데…….
아쉽지만 전혀 잘못짚었어.
“나를 살려주려는 거냐?”
“내가 미쳤냐?”
“……그럼……. 뭐냐?”
곧바로 녀석의 얼굴에서 그 희망이 사라졌다.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 살고 싶긴 하나 보다.
“아까 내 말 못 들었어? 네 데이터 자아는 곧 터질 거야. 넌 이제 곧 알아서 죽어.”
“…….”
“데이터 자아가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거든. 한번 지켜보려고.”
올리버는 장난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아주 끝까지 지랄이군.”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라일 님.]
그때 디오가 나를 불렀다.
“알고 있어.”
올리버는 주둔해 있는 미군의 모든 화력을 다 나에게 쏟아붓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해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근데 미안하지만…….
이 몸은 수 백발의 핵미사일을 막아낸 사람이야.
물론 그 화력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핵미사일에 비하면 갓난아이 수준이라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야 올리버 녀석이 김빠지지 않고 나를 공격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더 쓰면 쓸수록 데이터 자아가 터지는 속도는 가속된다.
“warrior. 내 마지막 공격을 받아라!!!!”
녀석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쥐어짜며 나에게 공격을 퍼부으려고 했다.
“!!!!!!”
역시나 녀석의 데이터 자아는 버티지 못하고 터지려고 했다.
“하하. 이제 과연 어떻게 되는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