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거침없는 진격 (1)
“맞네……. 상식 밖의 말…….”
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혀를 찼다.
“진짜 라일 님의 발상은 어떻게 해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수진이도 한몫 거들며 끼어들었다.
이 자식들이…….
아주 대놓고 사람을 까네.
“다 나니까 가능한 거야. 내가 우리 군의 피해가 하나도 없이 북한 정부를 망하게 했잖아. 또 시민군에 합세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그건 그렇네요. 진짜 데이터 쉴드가 무섭긴 합니다. 이 현대사회에서 그것만 있으면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요.”
수진이는 자신의 품에서 데이터 쉴드를 하나 꺼내서 말했다.
“진짜 이 조그만 기계가 지금 세상을 흔들고 있다니.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죠.”
“그걸 누가 만들었을까?”
일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한껏 뽐냈다.
“당신이요.”
나는 녀석의 체면을 한껏 치켜세워줬다.
“근데 그러기에는 라일 님이 많이 도와준 것 아니에요? 그리고 저랑 다른 연구진들도 도왔고요.”
또 일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수진이는 팩폭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긴 수진이도 이건 아니다 싶었을 거다.
“사실 그렇긴 하지…….”
일수도 바로 수긍하기 시작했다.
“진짜 우리는 어마어마한 걸 만든 것 같다. 이러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데이터 쉴드 달라고 난리를 치는 거 아닌지 몰라.”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면 데이터 쉴드를 대가로 온갖 이권을 다 챙겨야지. 그러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국이 될 거야.”
“하하하하……. 난 이게 왜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까?”
일수는 낄낄대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항상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이루어졌었기 때문이죠. 저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네요.”
“하하하하. 그러면 또 한 가지 폭탄선언을 하도록 하지.”
내 말에 둘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와 함께 세계를 정복해 볼 생각이 있나?”
“…….”
다들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뭐야 그 반응은? 왜? 좋지 않아?”
“진짜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수진이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뭐가 아니야?”
“그게……. 제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그렇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도저히 각이 안 나오는데요.”
“각은 무슨 놈의 각? 그냥 정복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한다고요?”
수진이는 인상까지 쓰면서 내게 따졌다.
“라일 님. 저한테 그 위대한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진짜 그건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야! 뭘 정색을 하고 그러냐. 내가 설마 아무런 대책 없이 그런 일을 벌이겠냐?”
“…….”
내 말에 수진이의 표정은 바로 풀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좀 민감했네요.”
“근데 내가 굳이 적극적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거 같아.”
“왜 그러죠?”
“내가 있는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성장할 텐데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알아서 기어들어 오겠지. 그러면 나는 한국을 세계의 수도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야.”
“…….”
일수와 수진이는 서로를 쳐다본 다음 입술을 움직여댔다.
“진짜 라일 님은 우리랑은 그릇이 다른데요? 생각하는 스케일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게……. 원래 이렇게 포부가 컸던 애인지 아니면 능력이 생기고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어마어마하다. 나는 만날 때마다 애가 달리 보인다니까?”
칭찬을 하는 건지 아니면 비꼬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말 그대로 칭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거지 뭐.
“어차피 나중의 일이야. 세계가 통일되면 너희들에게 간부를 시켜줄 테니까 잘 다스리라고.”
“허허허허. 살다 살다 이제는 세계 정부의 간부가 될 예정이라니. 많이 출세했구나 전일수.”
“저도 많이 출세했네요.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하나 봐요. 라일 님 밑에 들어가니까 만사가 다 풀리고 고속 승진을 하게 되네요.”
뭐, 칭찬하는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녀석들에게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일단은 중국부터 조져야지. 그다음 미국에 남아있는 잔챙이 녀석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렇네요. 언제 조지는지 궁금했어요. 특히 그 미국의 건방진 놈들을 조질 것을 생각하니 두근두근하는데요? 그놈들 조질 때는 특별히 저 좀 많이 이용해주세요.”
수진이는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판 만들어 줄 테니까 신나게 날뛰라고.”
“흐흐. 알겠습니다.”
우리들은 행복한 상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
미국 뉴욕
금융회사 연합의 회의장.
이곳에는 금융회사 대표들뿐만 아니라 올리버 국장을 비롯하여 미국 새 정부의 고위인사들도 모여있었다.
다들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잭슨이 warrior에게 당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마이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잭슨의 죽음은 그로서는 전 재산을 투자한 코인이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리버 국장은 답답한 마음을 내비치며 회의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 그만두고 warrior에게 사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국방부 장관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이봐. 장관. 지금 제정신으로 그 소리를 하는 것이요?”
조나단은 한심하다는 듯이 장관을 질책했다.
“이제껏 warrior가 어떻게 했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요? 녀석은 자신에게 대든 놈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왔소. 그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볼 때 이제 와서 사과한다고 한들 당신이라면 받아 줄 수 있겠소?”
“…….”
장관은 조나단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지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금융회사 대표가 나서서 말했다.
“난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데 최악은 무슨 놈의 최악?”
그에 마이클이 일어나며 말했다.
“망할!!!!”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회의장 안에는 한숨들이 오고 갔다.
“잭슨 그놈이 유일한 warrior의 대항마였기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다 참으면서 그 미친놈에게 희망을 걸었었는데……. 그게 다 망해버렸다고!!!!”
마이클은 목에 핏줄까지 설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 미친놈은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결국 warrior에게 죽고 말았어. 개자식!!!!!”
콰앙-!!!
마이클은 책상까지 내려칠 정도로 격해져 있었다.
“마이클. 품위에 맞게 행동하시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는 하지만 예의를 지켜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요?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같은 상황임에도 참고 있지 않소. 어서 똑바로 자리에 앉으시오.”
부통령은 마이클의 무례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여전히 격식은 갖춘 상태였지만 말투에서는 마이클을 무시하는 게 느껴졌다.
“하!”
마이클은 부통령의 말에 기가 차는지 코웃음을 쳤다.
“부통령. 많이 컸네? 누구 덕에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마이클도 부통령에게 한껏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허수아비면 허수아비답게 알아서 기란 말이야. 지금 상황 파악 못 해?”
부통령의 발언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마이클을 더 흥분하며 부통령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마이클! 참아.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조나단이 중재하며 마이클을 말리기 시작했다.
“시발. 진짜 이놈이나 저놈이나….”
조나단의 만류에 마이클은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마이클. 당신은 지금 warrior와 끝까지 결사 항쟁을 벌이자는 건가?”
부통령은 마이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지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마이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부통령을 쳐다봤다.
“그래.”
“하! 핵미사일도 다 막아버린 녀석을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야? 게다가 우리 미군은 녀석이 도와주는 멕시코군에게 맥없이 쓸려 버린 상황이라고. 그 어떤 군사적 방법도 통하지 않는단 말이야.”
“몰라!!! 그건 알아서 하란 말이야!!!! 돈 받아 처먹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 봐!!!”
마이클은 또다시 폭발하며 부통령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다들 그만 해요!!!!”
분위기가 더 격해지려고 하자 이번에는 올리버가 나서며 말했다.
마이클과 부통령은 숨을 거칠게 쉬면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중에 밝히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말해야겠군요.”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면 말했다.
“사실 잭슨이 우리에게 남긴 게 하나 있습니다.”
“뭐?!!!!”
올리버의 발언에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마이클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올리버……. 갑자기 무슨……?”
부통령과 국방부 장관도 이 사실을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올리버만 쳐다볼 뿐이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볼 생각이었죠. 여러분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가 산으로 가니 이제 공개해야겠습니다.”
회의장 안의 사람들은 모두 올리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실 잭슨이 죽는 시점에서 갑자기 제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잭슨이 자기가 죽을 것을 대비해 남겨 놓은 거 같습니다.”
“……대체 그 미친놈이 뭐라고 한 거요?”
조나단이 뭔가 기대하는 눈치로 올리버에게 물었다.
사실 회의장 안의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다.
“제게 자료를 남겨 놓았으니 확인하라고 하더군요.”
올리버는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게 아무래도 우리의 마지막 희망 같습니다.”
***
중국 베이징
리원하오의 관저.
그는 매일매일 불안에 떨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warrior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 맘 편히 있었던 적이 없었다.
“망할.”
그는 어떻게든 잠을 자보려고 술을 마셔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은 떨쳐지지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계속 술만 마셔서 그는 매우 초췌한 상태였다.
똑똑똑!!!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수행원이 들어왔다.
그는 몰골이 많이 상한 리원하오를 보며 흠칫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보고하러 갔다.
“무슨 일이야?”
“북한이 결국 새 정부를 세웠답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손을 뺐다고 합니다.”
“……뭐?”
리원하오는 예상 밖의 보고에 당황했다.
이미 그는 북한 정부가 망했고 이택근이 척결되었다는 보고를 받아 맘을 졸이고 있었다.
북한이 망했다면 그다음 타겟은 자동적으로 중국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게 warrior가 한 짓임을 알았기에 북한이 남한 밑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남한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리원하오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어 많이 답답해했다.
“주석님…….”
수행원은 이번에는 많이 망설이면서 보고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하아…….”
분위기를 보아하니 분명 좋은 보고가 아닐 것이 뻔했기에 리원하오는 큰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말해봐.”
“그게……. 그 북한 새 정부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