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북침 (6)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사령관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어이없어하며 바라봤다.
“그러니까요. 제가 살다 살다 별의별 것을 다 경험합니다.”
그들 앞에는 북한 군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한국군과 섞여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않으면 이게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warrior 님.”
사령관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네. 왜 그러십니까?”
“정말로 이 녀석들에게 데이터 쉴드를 나눠주실 생각이십니까?”
사령관은 이제껏 적으로 지내 온 놈들에게 데이터 쉴드를 나눠준다는 게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눈치였다.
“그래야 이 녀석들도 잘 싸울 수 있을 거니까요.”
“그러다가 만에 하나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사령관님.”
나는 그를 나지막하게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
“저 warrior입니다. 데이터 쉴드를 한순간에 고물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란 뜻이죠. 만약 배신한다면 가혹한 응징만이 남아있을 겁니다.”
나는 사령관에게 내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사령관은 숨을 깊게 내쉰 다음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일단 가지고 있는 데이터 쉴드는 다 뿌렸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물량은 연천 연구소에서 보급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장교가 와서 우리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
“알았다. 일단은 대기시켜.”
“네!”
장교는 힘차게 대답한 다음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warrior 님. 저는 이제 warrior 님이 하시려는 일에는 의문이 없습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예. 말씀하시죠.”
나는 최대한 편안한 태도로 말했다.
사령관도 그렇게 긴장한 듯한 눈치는 아니었다.
“지금 북한군과 우리 군이 섞여 있는 이 상황에서 혹시 지휘체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좋은 질문입니다.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군요. 사령관님이 바로 최고 선임자입니다. 북한군들에게는 이미 사령관님의 말을 전적으로 들으라고 지시해 놓은 상황입니다.”
“아……. 그렇군요.”
사령관은 안심하면서 말했다.
혹시나 북한군과 우리 군이 이중 지휘체계로 갈지 불안했었나 보다.
내가 그 정도로 엉터리는 아니다.
“애초에 북한 쪽은 원래는 병사였던 녀석을 대표로 데려다 쓰는 거라 지휘체계가 엉망입니다. 놈들이 사령관님의 말을 잘 듣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
내 말에 사령관은 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warrior 님의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설치고 있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대우를 해주자 사령관은 숙이고 들어와 주었다.
“뭘 감사까지야. 이게 다 우리나라 잘되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사령관은 갑자기 좀 오버하면서 나에게 호응해주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좀 많이 감동을 받았나보다.
어찌 보면 이 사람, 다루기가 쉬운 사람이다.
“하암…….”
사령관은 고개를 돌리며 조심히 하품을 했다.
하긴…….
지금 잠도 못 자고 계속해서 상황에 들어가 있는 중이니 많이 피곤하겠지.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이택근 녀석을 당장에 무너뜨리고 싶은 욕심에 좀 무리하게 군을 굴리기는 했다.
[이미 피로도가 최고치에 달한 사람들이 60%입니다. 이러다가 북한군의 총이 아니라 피로 때문에 죽겠습니다.]
디오.
이 자식은 딱 내 생각을 읽고 팩폭을 날린다.
이럴 때는 정말 꼴 뵈기 싫다.
“알았어. 인마. 쉬게 해주면 될 거 아니야.”
어차피 나도 좀 많이 피곤한 상태라 쉬고 싶었다.
“사령관님.”
사령관은 한 번 더 하품을 하다가 내가 부르자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채비는 다 차린 것 같으니 일단은 좀 쉬죠. 사령관님이 지금 잠 못 자고 깨어 있는 시간이 벌써 34시간째입니다.”
“아, 아닙니다. 소싯적에는 48시간도 깨어 있었습니다.”
“지금 나이를 생각하십시오.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지금 사령관님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잠 못 자서 죽어 나갈 판입니다.”
순간 말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게 모두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양심이 찔리기는 했지만 이미 뱉은 거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뭐 내가 안 재우려고 안 재웠나.
좀 열심히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일단은 쉬시고 8시간 뒤에 봅시다. 따로 경계병이나 근무는 서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사령관님도 그냥 걱정 마시고 푹 쉬시면 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은 내 말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한 건지 군말 없이 지시한 대로 해주었다.
아마도 그냥 이제 나를 최고 통솔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
뭐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하니까.
[근무는 라일 님이 알아서 다 하신다고 했으니까 저는 이만 쉬어도 되겠습니까?]
“…….”
갑자기 디오 이 자식은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야. 농담을 할 거면 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던가……. 그렇게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말하면 전혀 농담처럼 안 들리거든?”
[농담 아닙니다.]
“…….”
진짜 할 말이 없다.
얘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너는 솔직히 잠 안 자도 되잖아. 나는 인간이라 잠을 안 자면 죽어요. 아까 네가 병사들이 총에 죽기 전에 피로로 죽겠다고 말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맞는 말이긴 하군요. 말싸움으로 저를 이기시다니 제법이시네요.]
하하하하…….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디오야. 애초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할 것 아니냐.”
[저를 너무 당연시하게 이용하시는 것 같아 심술 좀 부려봤습니다. 다 자고 있는데 저만 일하고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아무래도 디오의 자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 얘 진짜 사람처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뭐 사실 고맙기는 하니까 달래주면서 이용하기로 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잖아. 너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수고해주면 고맙겠는데?”
어이쿠!
마지막에 좀 본심이 많이 드러나 버렸다.
[뭐. 라일 님이 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뒤는 저에게 맡기시고 편안하게 쉬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흐흐. 그럼 부탁한다.”
편하게 디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나도 좀 쉬기로 했다.
***
에에에에엥!!!!
북한 마을 전 지역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주민들은 모두 당황해하며 거리로 나왔다.
며칠 전.
한국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공지와 함께 50세 이하 남자들은 죄다 군대로 끌려갔기 때문에 안 그대로 분위기가 흉흉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불안해 미치려고 했다.
“이제……. 공격이 시작되려는 것인가요?”
“어떡하죠? 우린 이제 다 죽는 건가요?”
사람들은 죽을상을 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후! 후!”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북한 주민 여러분.”
“?????”
방송을 듣던 사람들은 갑자기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당황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뭐죠? 갑자기?”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방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이라 해봤자 지금 남자들은 군대로 끌려간 상황이니 여성분들이 대부분이겠군요. 어쨌든 제 말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하는 사람은 격식 없이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다.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warrior라고 합니다. 혹시나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남한에서 사회적 위치가 좀 있는 사람입니다.”
“!!!!!”
다들 그 방송에 화들짝 놀랐다.
남한 사람이 지금 방송을 하고 있다니 그들로서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이게 굉장히 이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제가 이렇게 방송을 대놓고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조용히 하고 들어봐봐.”
사람들은 집중하지 못한 사람들을 나무라며 방송에 집중시켰다.
“예. 그렇게 제 말을 잘 듣도록 유도해주시는 하는 거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안내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집중해서 듣느라 일순간 고요해졌다.
“빠른 시일 내에 이택근은 척결될 것이고 북한 정부는 이제 무너질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방법으로 북한 정부를 무너뜨릴 생각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요.”
“세상에…….”
주민들은 warrior의 충격적인 발언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지금 이 방송은 북한 전역에 동시에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이택근을 처단하고 싶은 사람들은, 각 마을별로 곧 안내원이 파견될 예정이오니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내원이 파견된다고?”
주민들은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지잉-!
“엄마야!!!!”
“깜짝이야!!!!!”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으로 인해 다들 놀라 자빠졌다.
분명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우욱-!”
그 사람은 이상하게 속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이동할 때 약간의 어지럼증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건 약간이 아니잖아.”
그 사람은 혼자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왼쪽 팔에는 완장을 차고 있었다.
완장에는 ‘안내’라는 말이 쓰여 있어 사람들은 그가 방송에서 말한 안내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네. 방금 각 마을로 안내원들이 도착했을 겁니다. 북한 정부를 자기 손으로 직접 없애고 싶은 사람들은 그 안내원에게 지원한 다음 설명을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것 한 가지만은 여러분에게 보장하겠습니다.”
warrior는 북한 앵커처럼 당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원하신 사람들은 제가 철저하게 지켜드릴 것이며 편하게 자기 손으로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부디 모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빨리 지원하셔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방송은 끝났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사람들이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저기요! 지원하겠습니다.”
“저도요!!”
“나도!!!!”
하지만 내용을 받아들이는 순간, 혁명의 불꽃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