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북침 (4)
리원하오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어! 잘 지냈어?”
그의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친근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려나? 그래도 나는 네가 친숙하긴 한데 말이야.”
리원하오는 자기소개도 없이 갑자기 친한 척하는 상대가 많이 불편했다.
“warrior냐……?”
리원하오는 덤덤한 척 말했으나 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적의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싸늘했다.
“응. 그럼 누구겠어?”
리원하오가 그러거나 말거나 warrior의 목소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했다.
“근데 왜 재수 없게 폼 잡고 난리야? 목소리 안 풀어?”
“…….”
리원하오는 중국 내에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본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warrior의 태도가 상당히 불쾌했다.
물론 잭슨도 비슷하게 그를 대했고 리원하오 또한 그것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warrior에게는 너무나 큰 반발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잭슨은 카리스마가 있었던 반면, warrior의 태도는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리원하오는 애송이 같은 녀석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warrior. 네가 개망나니인 것은 알겠지만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리원하오는 자신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그건 warrior가 알 바가 아니었다.
“싫어. 병신 새끼야.”
“…….”
리원하오는 순간 이성을 잃고 욕을 한 사발 시원하게 뱉을 뻔했지만, 엄청난 인내심으로 간신히 참았다.
“말귀가 안 통하는 녀석이군…….”
그는 참을성 있게 잘 말했지만, 여전히 화가 많이 나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
“말귀가 안 통하는 것은 너고. 도대체 학습 능력이라는 것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warrior는 리원하오를 폭발하게 만들 셈이었는지 계속해서 이죽거렸다.
“네 전임자인 우칭산이 어떻게 멸망하는지 못 봤어?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우칭산…….”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리원하오는 깊은 씁쓸함을 느꼈다.
한때 그가 정말 우러러봤었고, 철옹성같이 영원할 것 같은 그의 권력이 이 warrior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의 몰락은 솔직히 리원하오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중국이 한국에게 1조 달러를 토해냈다는 것 자체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warrior는 그 모든 것을 해낸 것이었다.
사실 warrior가 이뤄낸 업적만 보면 녀석은 대단한 놈이다.
리원하오도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칭산을 우러러 봐왔던 그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 우칭산을 무너뜨린 사람이 warrior라는 젖비린내 나는 핏덩어리라니…….
리원하오는 그냥 그 현실을 부정해버렸다.
그래서 그는 잭슨에게 그렇게 쉽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잭슨이 warrior를 무너뜨린 다음 그의 현실을 다시 찾아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칭산. 그 시답잖은 놈이 계속 내 심기를 건드렸지.”
우칭산을 함부로 말하는 warrior의 태도는 결국 리원하오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이 개새끼가!!!”
리원하오는 그동안 참았던 화를 토해내며 포효하듯 우렁차게 외쳐댔다.
“감히 대(大)중국을 농락하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더냐?!!!”
리원하오는 본인이 이제껏 이렇게 화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난 우칭산을 모욕한 건데 중국을 농락했다고 말하다니……. 그럼 너는 우칭산이 곧 중국이었단 소리야? 와……. 좀 충격적인데?”
여전히 warrior는 장난 섞인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게 리원하오의 억장을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대체 네가 뭔데 우리 중국을……. 또 이 세계를 어지럽힌다는 말이냐? 대체 네가 뭔데?!!!”
리원하오는 갑자기 나타난 애송이로 인해 이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짜증 났다.
“뭐긴, warrior지.”
warrior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내 말 잘 들어. 알아보니까 내가 우칭산을 작살내고 막 네가 새로운 주석이 되었을 때, 그때 잭슨이 너에게 접근했더라고.”
“!!!!!”
리원하오는 warrior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건 잭슨과 그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호오! 표정 볼만한데?”
warrior는 마치 리원하오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는 방 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거기에 없으니까 안심해. 하지만 다 지켜보고는 있어.”
“…….”
warrior 말에 리원하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금 warrior의 말로 리원하오는 잭슨이 warrior에게 당해버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니까 닥치고 일단 내 말 들어. 너는 잭슨과 뒷공작을 하면서 한국을 칠 생각이었겠지만 이제 어떡하나? 나는 네가 그렇게 희망을 두었던 잭슨을 없애버렸는데.”
warrior는 확인 사살까지 시켜주었다.
아까까지 분노로 차 있었던 리원하오는 현실 파악이 되면서 화가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갑자기 엄청난 공포가 올라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리워하오는 간신히 냉정함을 유지해 나갔다.
“난 네가 북한을 꼬드겨서 한국을 공격하게 한 것도 알고 있어. 그리고 눈치 보다가 너도 중국군을 한국에 보낼 예정이었지.”
warrior는 리원하오의 속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리원하오는 부정해봤자 소용없기에 그냥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 그랬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warrior는 리원하오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다.
“이거 낯짝 두꺼운 거 보소. 너는 염치도 없니?”
“너한테 있을 염치는 없지.”
리원하오도 유치한 말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warrior는 어이가 없었다.
“하하하하하.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잭슨이 무너지면 내가 너한테 빌빌 길 줄 알았어? 착각하지 마. 난 긍지 높은 대(大)중국의 주석이야. 너같이 극악무도한 놈과는 내 목숨을 잃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
“아 그러셔?”
warrior는 재밌다는 듯이 웃어댔다.
“고맙다. 리원하오야. 솔직히 나는 네가 막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나한테 애걸복걸 매달릴까 봐 걱정했거든. 나는 널 겁나 혼내주고 싶은데 그러면 또 괜히 김빠지잖아. 네가 그렇게 나와주는 덕분에 너를 조지고 싶은 내 욕구가 불타오르고 있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
“뭐 말장난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지.”
warrior는 늘 그렇듯 적당히 장난스럽게 나온 뒤에 분위기를 잡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네 앞에 나타나서 네 뺨을 갈길 수 있고 너를 죽여버릴 수도 있어. 하지만 하지 않을 거야. 왜인 줄 알아?”
“…….”
리원하오의 대답이 없자 warrior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면 재미없잖아.”
“…….”
리원하오는 깊은 숨소리만 냈다.
그는 이 일을 재미로 따지는 warrior가 어이가 없었다.
warrior는 웃음기를 머금은 말투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너를 족치는 것은 내가 아니야. 바로 중국 국민들이지.”
“하!”
리원하오는 기가 차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마치 네가 신이라도 된 것 같으냐? 국민들이 나를 끌어내린다고? 아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이렇게 현실을 파악할 줄 모르는 애송이라니.”
리원하오는 혀를 끌끌 차댔다.
“그래. 정말 그런지 안 그런지는 한번 지켜봐. 마치 프랑스대혁명 같은 일이 거기 중국에서도 벌어질 테니까 말이야.”
“미친놈……. 무운을 빈다.”
“그래. 지금 많이 웃어둬. 아마 며칠 뒤면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거니까.”
“warrior. 너야말로 곧 몰락할 것이다. 너는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었어.”
“그 적들을 나는 철저하게 부숴왔다.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이만 끊지.”
리원하오는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서 수화기를 던져버렸다.
방안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리원하오는 괴성을 지르며 방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엎어버렸다.
그는 그래도 화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지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박살 내 버렸다.
“하아……. 하아…….”
그는 얼굴이 너무 붉어져서 터질 지경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울부짖는 그의 괴성만 그곳에서 울려 퍼졌다.
***
휴전선 부근
콰앙-! 쾅!
곳곳에서 지뢰가 사정없이 터지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어마어마하게 있었네.”
6.25 전쟁 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심어놓았던 수많은 지뢰가 사정없이 폭발하는 것을 지켜보며 작전사령관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 그게 다 사라지고 있다니…….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참모장 또한 감탄하며 말했다.
그 수많은 지뢰가 터져나가고 있었지만, 한국군 측은 피해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데이터 쉴드가 지켜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데이터 쉴드는 단지 한국군을 보호해주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근처에 숨어 있는 모든 지뢰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상 일부로 지뢰를 밟아 터트리면서 제거하고 있었다.
만약 데이터 쉴드의 도움 없이 이 많은 지뢰를 처리할 것을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warrior의 도움으로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게……. 나도 지금 이게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러다가 정말 우리가 북한을 정복하는 거 아니냐?”
작전사령관은 그가 죽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어 일어나고 있었다.
“사령관님!”
한 장교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현재 지뢰의 70%가 제거되어있는 상황입니다.”
“벌써 말인가? 엄청난 작업속도군.”
사령관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콰앙-!!!!!!!
그때, 갑자기 엄청난 폭발 소리가 들리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우앗!!!!!”
“뭐, 뭐야?!!!!!!”
사령관은 당황해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사, 사령관님!!”
장교가 당황해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런가?”
“방금 지뢰 제거가 100% 완료되었습니다.”
“뭐?!!! 그러면 방금 터진 게 전부 다 지뢰란 말이야?”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사령관은 계속되어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사령관님.”
“!!!!!!”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한 남자로 인해 모두 놀라 자빠졌다.
“뭐, 뭐야?!!!”
“대체 어디서?!!!!”
모두 경계하면서 그 남자에게 총을 겨누려고 했다.
“다, 당장 멈춰!!! 뭐 하는 짓이야?!!!”
사령관은 그가 warrior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채고 부하들을 만류했다.
총을 겨누었던 군인들은 모두 당황해하며 황급히 총을 내렸다.
“warrior 님. 오셨군요. 갑자기 나타나셔서 저희가 경황이 없었습니다.”
“예.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순간이동이 익숙지 않으시겠죠.”
“하하하…….”
사령관은 멋쩍게 웃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지금 참을성이 좀 없어서요. 빨리 북한 좀 점령했으면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