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핵전쟁 (2)
“이제 준비가 다 된 겁니까?”
리원하오는 두근거리며 잭슨에게 물었다.
“준비야 원래 됐습니다. 당신들이 나서는 것은 나중 일로 미루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저도 본격적으로 그 warrior 녀석을 공격해야겠습니다.”
잭슨은 깊은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예전에 금융회사 연합의 제안을 거절했었지요?”
“그랬었죠. 멍청한 놈들하고는 상종하고 싶지 않거든요.”
“하하하하하하.”
잭슨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호쾌하게 웃었다.
“멍청하다니……. 크큭. 정말 그 녀석들에게 딱 정당한 표현이군요. 좀 전에 만나고 왔는데 정말 발암이더라고요.”
“잭슨 님도 아시다시피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거긴 그냥 나르시즘에 빠진 병신들 집단인 것 같아요. 대책이 없더라고요. 같이 망하기 싫어서 황급히 발을 내뺐었죠.”
“하하하하하하.”
잭슨은 껄껄대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병신들 주제에 제법 힘이 있어서 일단은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우선은 녀석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리원하오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잭슨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거기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금융회사 연합 놈들은 그렇다고 치고 아무튼 이제 주석께서는 한국을 칠 준비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북한도 같이 꼬드겨줬으면 좋겠는데요.”
“염려 마십시오. 북한이야 좋다고 저희를 도울 겁니다. 들어보니 warrior가 전에 북한에 사람을 보내서 난리를 쳤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그 일로 북한에서도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하하하. 좋네요.”
잭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렇다면 리원하오 주석님. 바로 일을 진행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arrior는 제가 막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당신도요.”
***
경계선에서 전투가 끝나고 우리 쪽의 분위기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멕시코군들만 그랬다.
“하하하! 우리가 그 미국을 이기다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야.”
“맞아. 선조들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라고. 과거 미국과의 전쟁에서 얻은 치욕을 다 씻는 듯한 기분이야.”
“하하하하. 생각보다 별거 없더만. 괜히 겁먹고 있었어.”
멕시코군들은 내가 도와줘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 하는지 서로 자신들의 무용담을 말하느라 정신없었다.
반면, 일수나 박이나의 분위기는 완전 정반대였다.
특히 박이나는 충격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나 씨. 표정이 많이 어둡네요. 괜찮아요?”
“아……. 네…….”
안 괜찮은 게 확실하다.
“사람이 죽은 걸 처음 봐서 그런가요?”
“……. 네 직접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죠.”
박이나는 여전히 어둡게 말했다.
“그렇다고 후회는 안 해요. 이건 분명히 제가 선택한 거고. 여전히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박이나는 나름 기운을 내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그러는 게 더 마음이 쓰이긴 했다.
“이나 씨.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하셔도 돼요.”
“아니에요. 계속할 거예요. 라일 씨 도와드려야죠. 오늘도 제 도움 받으셨잖아요.”
박이나는 밝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 맞아요. 받았죠. 감사합니다.”
나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라일아.”
갑자기 일수가 끼어들며 말했다.
“왜?”
“승전했는데 왜 이렇게 다들 죽을상이야. 다들 얼굴 펴. 저 멕시코군들 봐봐. 다들 즐기고 있잖아. 이겼으니까 원래 저러는 게 정상 아니야?”
일수는 자기들끼리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멕시코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파티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뭐 하는 거예요?”
수진이도 거들면서 나왔다.
녀석은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맥주캔을 가져왔다.
“그리고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런 날을 한잔해야죠.”
녀석은 신세 좋게 나에게 맥주를 한 캔 건넸다.
“이건 어디서 났냐?”
“저 녀석들에게 달라고 하니까 그냥 주던데요?”
수진이는 멕시코군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친화력 좋네.”
“제가 좋다기보다는 저 녀석들이 좋은 거 같아요. 텐션 맞추는데 힘들더라고요.”
촤악-!
수진이는 먼저 맥주캔을 깠다.
“한잔해요. 그렇게 죽을상으로 있지 말고.”
“…….”
수진이의 말이 맞았다.
녀석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였는데 괜히 우울하게 있을 필요가 없다.
나도 맥주 한 캔을 받아 깠다.
일수랑 박이나도 따라서 맥주를 깠다.
“좋네요. 다들 건배!”
“건배!”
우리는 힘차게 건배를 하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왜 진작에 이걸 안 마셨나 싶다.
진짜 천상의 맛이었다.
“장수진 고맙다. 안 마셨으면 후회할 뻔했어.”
“흐흐. 그렇죠?”
장수진은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어댔다.
“이나 언니.”
갑자기 장수진은 박이나를 불렀다.
“네. 수진 씨.”
박이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수진이를 쳐다봤다.
“언니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어요. 물론 사람 죽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죽고 우리 가족이 죽는다고요.”
저 말은 내가 군대에서 중대장에게 들었던 말인데…….
장수진 입을 통해 이렇게 다시 들으니까 소름이 돋았다.
“그렇죠…….”
박이나는 납득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불편한 건 여전해 보였다.
당연하다.
사실 나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계속 녀석들에게 기회를 줬던 것이고…….
하지만, 기회를 줬음에도 그것을 걷어찼다면 어쩔 수 없다.
그다음에는 나도 거침없이 나올 수밖에.
“우리 이나 언니가 너무 착하네요.”
수진이는 여전히 침울한 박이나를 토닥여 주었다.
“너도 착하네.”
“어머!”
수진이는 어울리지 않게 능청스러운 소리를 냈다.
“우리 라일 님께서 제게 그런 말을 다 하시고 어쩐 일이실까요?”
“그러게……. 저런 말도 할 줄 알고.”
일수는 옆에서 또 그걸 돕고 있다.
진짜 저 콤비들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너희는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는데?”
“우리 원래 친했어. 몰랐어?”
일수는 수진이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수진이도 따라서 일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나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다음 맥주를 들이켰다.
“그나저나 라일 님. 아까 어떻게 했길래 잭슨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맞어. 나도 그게 궁금했어.”
“좀 괴팍하게 했지. 짜증 나서 아예 데이터 통로를 전부 태워버렸어.”
“네?!!”
일수와 수진이는 같이 놀라며 소리를 크게 냈다.
진짜 죽이 아주 척척 맞는다.
“그게 가능한 거였군요…….”
수진이와 일수는 이제 데이터를 다루는 데 어느 정도 도가 텄는지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녀석이 보내는 데이터를 역으로 전기 데이터로 변환시켰지. 너희도 연습하다 보면 할 수 있게 될 거야.”
“진짜 대단하시네요…….”
수진이는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흔들어댔다.
“그러면 잭슨 그 녀석은 이제 끝난 건가요?”
“아닐 거야.”
수진이처럼 나도 그런 기대를 잠깐 하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잭슨은 여전히 멀쩡한 것 같았다.
일단, 녀석이 죽었다면 내가 녀석이 어떻게 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그 말인즉슨 녀석이 버젓이 살아있어 내 데이터 유입을 막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미군 측에서는 물러선다는 말이 없다.
그 녀석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잭슨이 없는데 나한테 덤빌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말이 없는 걸로 봐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될 거 같았다.
“아무래도 더 거센 공격이 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야.”
“……. 그렇군요.”
수진이는 짧게 혀를 찼다.
“잭슨의 경우를 보니 정말 이 힘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말 선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최악으로 작용할 수도 있네요. 만약 현재 잭슨만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으. 정말 끔찍했겠어요.”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일수는 소름이 끼치는지 양어깨를 긁어대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그 녀석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해. 그 미친놈은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 사는 사람을 전부 다 죽여버릴 수도 있는 놈이니까.”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살인은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디오와 함께 계속해서 녀석을 캐고 있는 중인데 백악관에 근무하는 몇몇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아무래도 녀석의 손에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다 죽여버린다고요?”
박이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내 말을 들으니 잭슨을 막아야 하는 의욕이 생겨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박이나의 의욕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그녀에게 잭슨의 무서움을 더 일깨워주었다.
“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녀석입니다. 그냥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야말로 최악이죠.”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라…….”
박이나는 혼자 내 말을 대뇌이기 시작했다.
“라일 씨.”
갑자기 박이나는 내 손을 붙잡았다.
“저 열심히 할게요. 그 사람이 그렇게 세계를 망쳐두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네.”
나를 비롯하여 일수와 수진이는 갑자기 급발진하는 박이나를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래요. 역시 라일 씨가 하는 일은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하하. 그 정도까지라고요?”
“라일 씨.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저 열심히 할게요.”
혼자 갑자기 열정에 찬 박이나였다.
난 일수를 힐끗 쳐다봤고 일수는 입술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박이나 알아서 마음을 잡을 거 같다.
의기소침해 있는 것보다 의욕이 넘치는 게 더 나으니까 상관없으려나…….
“네. 감사합니다. 일단은 즐겨요.”
“네! 좋습니다.”
박이나는 이제 본인이 의욕적으로 건배를 하려고 했다.
우리도 다 같이 거기에 호응해줬다.
“그럼 세계를 지키는 멋진 사람들. 다들 파이팅입니다.”
“파이팅!”
그렇게 우리는 소소한 축하를 하며 밤을 보냈다.
***
다음날
대한민국 청와대.
백기완 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데이터 자아와 함께 어떻게 하면 미국의 공격에 잘 대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똑 똑 똑!!!!
그때 갑자기 누군가 집무실을 두드렸다.
“백기완 대통령님. 접니다.”
그의 수행원이었다.
백기완 대통령은 뭔가 평소보다 그의 목소리가 다급함을 느꼈다.
“들어오시죠.”
“네.”
대통령의 예상대로 수행원의 표정은 많이 안 좋았다.
그는 얼굴이 창백한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 그게…….”
수행원은 이상할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다.
“방금 보고가 들어왔는데 지금 북한이 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합니다.”
“뭐요?”
백기완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당황했다.
이제껏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북한의 공격이라니…….
미국을 도와서 이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둘은 전부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원수지간이 아니던가.
백기완 대통령은 북한이 갑자기 한국을 공격하는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백기완 대통령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국방부 장관입니다.”
“예. 장관. 어쩐 일이십니까?”
“그게 지금…….”
장관은 조금 주저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여기 서울로 핵미사일을 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