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악당본색(惡黨本色) (3)
“선전포고라니, 대체 왜……?”
박이나는 충격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잭슨. 그 자식이 결국 일을 저지른 거죠.”
“라일 씨!”
통화를 마친 백기완 대통령은 황급히 나를 불렀다.
“지금 빨리 청와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네. 바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백기완 대통령은 집무실로 돌려보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정말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박이나는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네. 정말 그럴 것으로 보이네요.”
“…….”
박이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경악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사를 읽어주었다.
“warrior가 미국 대통령 에이든을 꼬드겨서 미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었다. 에이든은 그걸 들키자 한국으로 도주……. 하핫!”
기사를 읽다가 기가 막혀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진짜 언론은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은 최고라니까요.”
“근데 이런 걸로 전쟁이 가능한 거예요?”
“전쟁하고 싶으면 무슨 이유를 갖다 못 붙이겠어요? 아무거나 적당한 이유 골라잡으면 되죠. 이게 적당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요.”
“…….”
박이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은 거 맞죠? 라일 씨께서 막을 수 있는 거죠?”
“최선을 다해 임해야죠.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장담은 못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역으로 당하는 것은 나일 테니까.
“대신 이나 씨도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더 쉽게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어요.”
“예. 저도 최선을 다해서 라일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일단은 돌아가셔서 쉬고 계세요. 전쟁이 당장에 일어나지는 않을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박이나와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그녀도 집무실로 돌려보냈다.
곧바로 나는 에이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warrior 님.”
“뉴스 확인하셨나요?”
“네……. 정말 황당하더군요. 그 빌어먹을 자식들.”
에이든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큰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한순간에 자신을 역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저희 쪽에서도 이제 나서야죠. 그래도 다행히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부통령의 입장에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많네요. 여론전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방금 다 연락을 취해 놨습니다. 주지사들도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다들 마약 사건을 덮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녀석들의 더러운 속내를 알고 있더라고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겠죠. 물론 바보들이 꽤 있는 것 같지만요.”
“하하…….”
에이든 대통령은 씁쓸해하며 웃었다.
“일단 여론전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 주세요. 그러는 동안 저도 대비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내 안에서 또 투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잭슨.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르고 설치다가 어떻게 되는지 내 똑똑히 보여주도록 하지.
***
미국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단위로 벌어졌다.
“마약 카르텔 사건을 덮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모를 줄 아느냐?!!!”
“왜 애꿎은 미군들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느냐? 당장 쓸데없는 전쟁 멈춰라!!!”
미국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며 열심히 정부에 항의했다.
모두 에이든 대통령이 주지사들과 합작한 결과였다.
그러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잭슨 쪽에서도 사람들을 풀어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었다.
“언제부터 미국이 한국에게 놀아났나? 우리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당장 한국을 응징해야 한다!!!”
“한국은 에이든 대통령과 손잡고 미국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에 응당한 보복을 해야 한다!!”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반역자 취급을 했다.
그에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격분하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초래됐다.
자칫, 내란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경찰들은 황급히 시위대 사이를 중재하며 나섰다.
한 언론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한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80%를 넘었다.
하지만, 정치인들 쪽에서는 거의 전부가 한국과의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금융회사 연합이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하수인인 상원의원들은 전쟁을 반대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고, 이미 미국의 수뇌부는 잭슨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전쟁을 바로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아무래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 정부에게 항의하고 협상 제의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힙니다. 이미 전쟁이라는 답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백기완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비해야죠. 전쟁.”
“……결국 그것밖에는 없는 것입니까?”
“가만히 학살당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대통령은 씁쓸해하며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하아……. 미국과 전쟁이라.”
미국과의 전쟁.
그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이건 지금 부정할 수 없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였다.
한탄만 할 수는 없다.
살아남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승산은 있는 겁니까?”
“대통령님도 알다시피 그냥 붙으면 당연히 우리가 집니다. 이길 확률은 그냥 0%입니다.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본다 한들 답은 없습니다.”
“…….”
이미 대통령도 데이터 자아를 통해 계산해봤는지 조용히 끌끌 대며 웃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붙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있는 한 우리가 미국과 그냥 붙을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먼저 미국 본토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내 말에 백기완 대통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슨?”
“흐흐. 제가 다 작업을 해 놓은 상태거든요.”
***
며칠 전.
나는 멕시코에 가서 가르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순간이동을 배운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 갑갑한 비행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진짜 저번에 이동할 때는 답답해서 죽을 뻔했다.
“으악!”
미리 공지를 해 놓은 상태였음에도 가르시아 대통령은 내가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자 까무러치며 놀랐다.
“노,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습니까?”
안 그래도 눈이 큰 가르시아 대통령이었는데 저렇게 놀라니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농담할 정도로 지금 저희 쪽 상황이 좋은 게 아니라서요.”
“하하…….”
내 말에 가르시아 대통령은 멋쩍게 웃었다.
“뉴스를 봐서 아시겠지만, 미국 쪽에서 지금 저희 한국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희한한 건 보통 그런 소식은 극비로 먼저 들어오기 마련인데, 저희는 뉴스를 통해서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 미국 수뇌부의 배후에 있는 자식이 다 작업을 해 놓아서 그런 겁니다.”
나는 가르시아 대통령에게 잭슨과 관련된 일을 비롯하여 이번 사태에 대해 자초지종을 다 설명해주었다.
“맙소사…….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요.”
가르시아 대통령의 잭슨 존재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런 놈이 지금 전 세계를 파괴하려고 하니 최악이지요. 녀석은 분명 한국만 공격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근엄하게 자세를 잡고 가르시아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음 타겟이 멕시코가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
내가 공포감을 불어 넣자 가르시아 대통령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만약 제가 이 싸움에서 진다면 그 이후에 다른 나라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박살이 날 겁니다. 마치 제가 마약 카르텔들을 손쉽게 박살 냈듯이요.”
“그, 그런…….”
위기감을 불어넣는 작전은 잘 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매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금이 딱 치고 나갈 때였다.
“여기 온 이유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멕시코가 한국을 도와 미국과 싸워주기를 요청하러 왔습니다.”
“!!!!!!”
가르시아 대통령은 또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충격이 컸는지 그는 바보처럼 어버버하기만 했다.
“저, 저희도 미국과 싸우라고요?”
그는 상당히 망설이며 말했다.
이해는 된다.
누가 미국과 싸운다는데 겁을 먹지 않겠는가?
“다음 타겟이 멕시코가 될 수도 있다는 제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녀석과 맞서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
가르시아 대통령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지금 제가 대책 없이 대통령님께 동맹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녀석에게 맞설 수 있는 설계를 짠 다음에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부디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할 말은 다 했다.
나는 조용히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겠습니다.”
결국 가르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동맹할 것을 약속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참전하는 군인들은 제가 최선을 다해 지켜드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되긴 했습니다. 소중한 젊은이들의 목숨이 제 오판으로 인해 그냥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지켜드릴 겁니다. 제 계획대로만 따라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warrior 님의 지시에 전적으로 따르도록 장군들에게 특별히 지시해 놓겠습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
이 사람도 백기완 대통령처럼 한 번 하기로 결정했으면 거침없는 스타일인가 보다.
이로써 나는 멕시코를 얻었다.
미국과 접경 지역에 있는 곳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해졌다.
그다음 할 일은 디에고를 만나는 것이었다.
“후앗!”
디에고 또한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자빠져버리고 말았다.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보다 어떻게 이렇게 온 거죠?”
“자세한 건 알 거 없고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
“할 말이요?”
디에고는 상당히 불안해했다.
하기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겠지.
“너! 나를 도울 생각 있냐?”
“…….”
디에고의 표정은 굳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피식했다.
“강요는 아니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거절한다고 해서 너에게 어떠한 해코지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말고.”
“…….”
녀석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왜, 싫어?”
“아뇨. 그것보다는… 당신이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이상해서요.”
“그건 네 아버지 문제였잖아.”
“네?”
내 말에 디에고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너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너는 그런 현실을 철저하게 부정해 왔었고. 너를 믿기 때문에 이렇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는 거야. 어때?”
“조, 좋습니다.”
디에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훗. 좋아. 그럼 너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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