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악당본색(惡黨本色) (2)
“어젯밤 미 상원의원 로버트 의원이 자신의 집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칼에 수차례 찔린 것이 사인으로 드러났는데요. 그의 아들도 거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그 새끼. 결국 일을 저질렀네.”
아침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를 혀를 내둘렀다.
요즘은 일부러 미국 쪽 뉴스를 확인한다.
녀석 또한 나처럼 자신이 한 일을 숨기기 위해 외부 데이터 유입을 막고 있어서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금 저 사건도 디오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막혀있다.
그 자식도 학습 능력은 있는지, 이제 철두철미하게 흔적을 다 없애 놓는다.
“하……. 간만에 느껴보는 답답함이네.”
이전까지는 알고 싶은 것은 다 알 수 있었는데 방해자가 생겨 모르는 게 생기니 많이 답답해졌다.
하기야 원래는 이렇게 모르는 게 정상이겠지만, 이미 더 높은 차원을 경험한 입장에서 낮은 차원에 있게 되면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나만 답답한 게 아닐 테니까.
내 쪽에서도 필사적으로 우리 쪽 정보를 막고 있다.
녀석 또한 많이 갑갑할 것이다.
띠리리리-!
일수다.
나는 곧바로 일수 쪽으로 순간이동했다.
“깜짝이야!”
일수는 화들짝 놀라서 그만 자빠져버렸다.
“진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일수는 많이 놀랐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이미 몇 번 봤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래”
“이건 진짜 적응이 안 된다고.”
“네가 불러놓고서는…. 아무튼, 뭔 일인데”
일수는 나를 찌릿 한번 노려봤다.
“진짜 얄미워 죽겠네. 하아…….”
녀석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다 만들었어. 확인해봐.”
“오! 진짜”
역시 일수는 성실하다.
상태를 보아하니 내가 부탁한 이후로 정말 하루도 안 쉬고 개발했나 보다.
나는 일수가 보여주는 데이터 응집체에 가까이 갔다.
세 개의 파란 구체가 내 앞에 놓였다.
“안녕하십니까.”
세 개의 구체는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다들 자아가 생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벌써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대단한걸”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일수는 이제 어느 정도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손을 대며 데이터들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아직도 디오의 초기 버전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구색은 갖춘 셈이다.
내 노하우가 있으니까 업그레이드야 계속해 나가면 된다.
나는 일수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일수는 거기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분 좋게 호응해줬다.
“대단하다. 역시 넌 내 친구야.”
나는 녀석을 끌어안으려고 했다.
“워워! 나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남자가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또 질색하길래 그만뒀다.
짜식…….
튕기기는.
“이 정도면 이제 몸 안으로 받아들여도 될 거 같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내가 알려줄게. 그나저나 장수진 쪽은 어떻게 됐어”
“수진이는…….”
일수가 설명하려는 데 수진이가 타이밍 좋게 딱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왔어요 이번에도 순간이동 하셨어요”
“응. 덕분에 심장마비 걸릴 뻔했지. 진짜 수명이 단축된다니까”
일수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저 녀석.
괜히 수진이 앞에서 엄살이다.
“안 그래도 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네 진행 상황은 어떠냐”
“흐흐. 한번 보실래요”
기분 나쁘게 자신 있어 하는 장수진이었다.
녀석이 이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여줘 봐.”
“제 안에 있어요.”
“뭐”
일수랑 나는 동시에 놀라며 물었다.
일단 나보다 일수가 더 놀란 상태인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랬는데”
일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요. 방금 성공하고 온 거예요. 오빠에게 말하려고 왔는데 라일 님이 와 계신 거죠.”
“…….”
일수는 기가 차는지 뭐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수진이보다 진도가 늦은 것에 자존심이 좀 상한 거 같았다.
“넌 세 개를 동시에 만들었잖아. 네가 더 대단해.”
바로 녀석을 달래주었다.
그러자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일수 이 녀석만큼 다루기 쉬운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럼 확인해볼까나”
나는 수진이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왠지 일수 녀석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일수야…….
전에도 말했지만 얘는 내 스타일 아니야.
녀석의 착각은 그냥 무시하고 나는 수진이 안에 들어간 데이터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수진이가 만든 데이터 응집체는 꽤 역동적이었다.
구성도 촘촘하게 잘 되어 있었다.
아까 일수에게 했던 말은 취소다.
장수진 이 녀석이 엄청난 놈이다.
벌써 이 정도 수준까지 오다니…….
수진이는 일수보다 훨씬 더 성장한 데이터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괜히 말해봤자 일수만 의기소침해질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엄청나네.”
“그렇죠”
역시 수진이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 만했다.
인정.
“데이터 자아가 들어올 때 힘들지는 않았어”
“솔직히 기분이 이상했지만 금방 적응했어요. 이래 봬도 전 고강도의 정신력 훈련을 받은 요원이라고요. 이 정도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죠.”
“하하하.”
그래.
너 잘났다.
“일수야. 사람들 불러올 테니까. 준비 좀 해줘. 우리도 어서 작업하자!”
“오케이.”
일수가 준비하러 간 동안 나는 사람들을 부르러 갔다.
“다 준비되셨나요”
나는 줄지어 서 있는 박이나, 전일수 그리고 백기완 대통령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반면, 박이나와 백기완 대통령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직이요……. 마음이 준비가 좀 필요하네요.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박이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긴 나도 너무하긴 했다.
대뜸 시간 있냐고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순간이동 시켜버렸다.
박이나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때 박이나의 놀란 표정이 귀엽기는 했다.
좀 너무한 거 같아서 사과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해주니 박이나는 이해해주었다.
백기완 대통령도 박이나보다 정도가 덜하긴 했지만, 많이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전에 내가 순간이동 하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기는 했어도 직접 해보는 것을 처음이라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백기완 대통령도 바로 나를 이해해주었다.
“다들 급하게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제가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하하하. 좋네요. 미루는 것보다는 낫죠.”
백기완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지만 왠지 나한테는 다정한 것 같다.
박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동 때문에 속이 매스꺼운 것처럼 보였다.
“이나 씨. 많이 힘드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정도야 참을 만해요.”
걱정돼서 계속 쳐다봤지만, 박이나는 손을 들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훈련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들에 적응해야 한다.
그 녀석은 남의 사정을 봐줄 만큼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수진이야 어떻게 알아서 데이터 자아를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보내주는 게 더 빠르고 편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자아들을 주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네.”
다들 각오했는지 비장하게 대답했다.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요. 한 번에 끝내는 게 나을 거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네.”
“그럼 갑니다.”
나는 일수가 만들어준 데이터 자아들을 세 사람의 뇌에 들어가게 했다.
“꺄아악!”
“크흑!”
“허업!”
세 사람 다 고통스러운지 바닥에 쓰러지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에 난 장수진을 쳐다봤다.
“야……. 네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들 힘들어하는데”
“훈련받은 저니까 참아낸 거라니까요.”
“……알았다. 너 잘났다.”
이왕 시작된 거 멈출 수는 없다.
아까 이들에게도 말했다시피 그냥 버텨서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게 낫다.
“크으윽!”
다들 괴로워하기는 했지만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산 사람들이다.
장수진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다들 정신력으로 밀릴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을 믿고 나는 계속 데이터를 주입해줬다.
“다 됐네.”
데이터 자아가 전부 다 들어갔다.
성공했다.
“하아……. 하아…….”
다들 거칠게 숨을 몰아내 쉬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네 말대로 한 번에 끝나는 게 낫다.”
일수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도 이렇게 힘들었었냐”
“아니. 나는 그냥 바로 쉽게 들어왔어. 내 기억의 자아가 미리 내 뇌에다가 작업을 해 놓은 상태였거든.”
“그러면 너도 우리한테 그렇게 작업을 해주지 그랬냐”
일수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다 훈련의 일부야. 직접 너에게 데이터 자아를 만들라고 부탁한 것도, 또 이렇게 데이터 자아를 생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도 말이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없단 말이야.”
“에휴. 나도 그 기억의 자아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수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그렇게 부러워하지는 마. 내가 기억의 자아를 받아들였을 때는 이것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었으니까. 난 녀석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겪었었던 외로움과 고통을 다 받아들였어야 했어. 강해지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정말 어떻게 버텼나 싶다.
“지금 너희는 내 덕에 쉽게 능력을 얻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 갖지 말라고.”
“알았어. 그냥 어리광 좀 부려본 거야.”
다행히 일수는 나를 이해해주는 듯 보였다.
백기완 대통령과 박이나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둘은 어느새 혈색이 돌아왔다.
“하아……. 이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엄두도 못 낼 겁니다.”
“저도요.”
둘은 질색하며 말했다.
한 번에 작업을 끝낸 것은 잘한 일이다.
매운 것도 질질 끌기보다는 한 번에 털어 넘기는 게 더 나은 법이니까.
중도에 포기했으면 아마 점점 더 힘들었을 거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이번 것은 한 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작업이라 그런 거지, 앞으로 이럴 일은 없습니다.”
난 둘을 안심시키면서 말했다.
“이제 들어온 데이터 자아와 친숙해지면서 능력을 사용해보십시오. 아마 재밌을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네.”
백기완 대통령과 박이나는 신기해하면서 자신 안으로 들어온 데이터 자아와 대화를 시도했다.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말을 걸었다.
“응. 왜 그래”
[당장 뉴스를 확인해 보십시오.]
평소보다도 더 급박한 듯한 디오의 목소리였다.
분명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진 것이다.
나는 신속하게 인터넷에 들어가 뉴스를 확인했다.
“망할…….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네.”
띠리리리-!
백기완 대통령의 핸드폰도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아마 청와대 쪽에서도 방금 이 사실을 안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에서도 정보가 느린 걸 보면 잭슨 그 새끼가 작업을 해 놓은 것이겠지…….
“무슨 일이에요”
이상함을 느낀 박이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박이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박이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경악했다.
[미국. 한국에게 선전포고.]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뉴스 기사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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