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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그 자식의 정체 (5) (121/201)

120화. 그 자식의 정체 (5)

“집은 구했어?”

“응. 알아보니까 거기에 미국인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더라고.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라서 괜찮았어. 벌써 연락하는 친구도 생겼는데 걔가 좋은 위치에 있는 곳을 알려줬어.”

“오! 다행이다.”

잭슨의 호응에 크리스틴은 기분이 좋은지 흥얼대기 시작했다.

“근데 한국에는 왜 관심이 생긴 거야?”

“일단 문화가 좋은 거 같아. 음악과 드라마 같은 콘텐츠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분명 근미래에는 한국 문화가 주류 콘텐츠가 되어 있을 거야. 나는 미리 그 싹을 알아보고 투자하는 거지.”

“대단하다.”

잭슨은 벌써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크리스틴이 부러웠다.

크리스틴에 비하면 자기는 고작 컴퓨터 게임이나 프로그래밍만 하는 너드라는 게 잭슨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도 너처럼 꿈을 찾아서 거기에 열중하고 싶다.”

“하면 되지. 너 컴퓨터 잘하잖아. 저번에 네가 만들었다고 보여준 프로그램 완전 신기하던데? 그 목소리 변환하는 프로그램.”

“그 정도는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거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렇게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대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잭슨은 기분이 한결 풀렸다.

“그래. 맞어. 계속하다 보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드디어 긍정적으로 나오네.”

“흐흐. 좋아. 우리 같이 열심히 해서 나중…….”

잭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웬 괴한이 나타나 크리스틴을 덮치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피해!!!!!!”

“뭐?”

크리스틴은 잭슨이 소리치는 곳을 향해 뒤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푸슉-!

“커헉!”

무방비인 상태인 크리스틴을 보호하려다가 잭슨은 그만 괴한의 칼에 맞아버렸다.

“꺄아악-!!!!!!”

크리스틴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마, 망할…….”

잭슨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해 옷이 빨갛게 물들어갔다.

다행히 잭슨이 몸을 옆으로 피해 칼이 몸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스치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괴한은 가소로운 듯이 칼을 돌리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웬 놈이냐?”

“…….”

괴한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잭슨을 공격하려고 했다.

잭슨은 바닥에 벽돌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하압!”

괴한은 다시 잭슨을 찌르려 했다.

잭슨은 황급히 몸을 숙인 다음 앞으로 굴러 괴한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놓인 벽돌을 집었다.

“하핫!”

괴한은 재밌다는 듯이 옅게 웃었다.

그는 다시 잭슨을 처리하기 위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잭슨은 크리스틴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괴한에게 초집중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어떻게든 괴한의 공격을 피하고 그 벽돌로 녀석의 머리를 가격한다.

잭슨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하압!”

괴한은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다시 잭슨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그에 잭슨은 그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벌벌 떨고 있는 잭슨을 보며 괴한은 완전히 방심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돌진에 괴한은 잭슨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이거나 먹어!”

퍽-!

“크핫!”

잭슨이 휘두른 벽돌에 머리를 제대로 맞은 괴한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잭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쓰러져 있는 괴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죽어 이 자식아!”

퍼억-!

잭슨은 다시 벽돌로 그 사람의 머리를 내려쳤고 벽돌은 그만 부서져 버렸다.

그 남자는 몸이 축 늘어지며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잭슨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잭슨……. 괜찮아?”

크리스틴은 공포감에 젖은 얼굴로 벌벌 떨며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잭슨은 기절해 있는 괴한의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남자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잭슨은 그의 숨결을 확인해봤다.

“…….”

그 남자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삐용-! 삐용-!

그때 경찰차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크리스틴이 부른 것이었다.

잭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찰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으십니까?”

“…….”

잭슨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상함은 감지한 경찰은 괴한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잭슨을 제압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네? 그게 무슨?”

크리스틴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체포해!”

“공격은 저 사람이 먼저 했어요. 잭슨의 상태를 보라고요.”

크리스틴의 말에도 경찰은 자기 할 일을 했다.

잭슨은 순순히 연행당했다.

***

이후 재판장에서 크리스틴은 증인으로 나와 잭슨의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 열심히 증언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잭슨은 3급 살인으로 징역 5년 형을 판결받았다.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과 이미 쓰러진 상대를 한 번 더 가격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러는 게 어딨어요?!! 잭슨은 저를 보호하려다가 그런 거라고요!! 안 돼 잭슨!!”

재판장에서 끌려가는 잭슨을 향해 크리스틴은 절규했다.

잭슨은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울부짖는 크리스틴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끌려갔다.

잭슨은 그렇게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왜 그 괴한이 크리스틴을 공격하려고 했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의 정체가 공개됐지만,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었다.

크리스틴 또한 그 남자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그는 단지 도박에 빠져 단지 빚을 많이 지고 있던 불량배였을 뿐이었다.

크리스틴은 계속 꾸준히 잭슨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고 감옥에서 나오면 꼭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잭슨은 자기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준 크리스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잭슨은 크리스틴의 편지에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버텨갔다.

하지만 그가 감옥에 들어오고 8개월째.

갑자기 크리스틴의 편지가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같이 한국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여전히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편지가 끊길만한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지났다.

감옥에 들어온 지 1년째.

그제야 잭슨은 왜 크리스틴의 편지가 끊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잭슨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차라리 크리스틴이 그가 싫어져서 편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러 온 그의 어머니는 크리스틴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잭슨은 미친 듯이 절규했다.

그는 완전 멘붕에 빠져 폐인처럼 지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망나니가 되었다.

그는 계속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는 교관까지 폭행했다.

그래도 인간적이었던 교관들은 잭슨이 그렇게 변한 이유를 알았기에 그를 달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다.

잭슨도 어머니가 있었기에 버티면서 나갈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출소 날짜가 거의 다 찼을 때 들려오는 소식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잭슨은 완전히 절망하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살하기로 했다.

잭슨은 가지고 있는 옷을 묶어 목을 매달려고 했다.

[보안 시스템 가동.]

갑자기 그의 머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그가 능력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

“잭슨 앤서니. 그 녀석의 이름입니다.”

“잭슨 앤서니라……. 제가 봐왔던 요주 인물들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에이든 대통령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당연합니다. 이전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놈이었으니까요. 갑자기 능력을 얻게 되었고 최근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대체 왜 한국과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입니까?”

“복수하기 위해서죠.”

“복수요? 설마…….”

에이든 대통령은 뭔가 좀 아는 듯한 눈치였다.

“맞습니다. 크리스틴 살인사건. 한국에서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사건이죠. 미국에서도 유명한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상원의원으로 있었죠. 그때 저는 한국의 태도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한국 정부는 일이 커질까 봐 그 사건을 대충 마무리 짓고 끝내려고 했었으니까요.”

부정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치부를 말하려니 씁쓸했다.

“결국 그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가해자가 자살해버렸으니까요.”

2017년에 일어난 크리스틴 살인사건.

미국 유학생 크리스틴이 한밤중에 동료 유학생 마틴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한국 정부는 책임을 떠맡기 싫어 황급하게 사건을 정리하게 했고 마틴을 서둘러 미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다시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섣부른 마무리로 인해 증거들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고 가해자인 마틴까지 자살해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혹들이 있었지만 그런 글들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그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 갔다.

“대통령께서는 크리스틴이 왜 죽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사실 마틴이 크리스틴과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

“하하.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시다니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대통령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마틴은 크리스틴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거의 말도 안 하는 사이였죠. 크리스틴과 제대로 대화도 안 해본 마틴이 그녀를 죽인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군요……. 그렇다면 마틴은 왜 크리스틴을 죽인 거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죠.”

“네?!!”

내 말에 에이든은 경악했다.

“그 말인즉슨 설마……. 로버트 의원이 그랬다는 것입니까?”

깜짝 놀라며 묻는 에이든 대통령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로버트 의원.

아들 로버트 주니어가 잭슨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었다.

하지만 잭슨이 살인으로 인해 감옥으로 가면서 로버트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고, 그는 다시 선거에 도전해 당선되었다.

“하!”

에이든은 기가 막힌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로버트……. 그 악마 같은 새끼.”

에이든은 가감 없이 분노를 드러냈다.

“망나니 같은 아들보다 그는 더 극악무도한 놈입니다. 자신의 선거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크리스틴을 죽인 것이죠. 마틴 또한 걸림돌이 될 것 같으니까 자살로 위장시켜 살해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놈이었을 줄을.”

에이든은 로버트 의원의 진실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한국 쪽에서도 그걸 거들었죠. 로버트가 돈으로 꼬드겼었거든요. 그러니까 사건이 순식간에 정리됐을 수밖에요. 그래서 지금 잭슨이 한국을 부숴버리려는 겁니다.”

“그, 그런…….”

“녀석은 저처럼 능력을 얻고 나서 그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돌아버렸죠. 그 삐뚤어진 녀석이 앞으로 뭔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게다가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녀석이라 더 무서운 놈이에요.”

녀석의 처지가 딱한 것은 이해가 됐다.

나도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왜곡된 복수는 용납 못 한다.

그리고 설령 내가 녀석을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한국을 부숴버리려고 하는 녀석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warrior 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에이든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말씀하시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아내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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