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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그 자식의 정체 (4) (120/201)

119화. 그 자식의 정체 (4)

퍽-!

사물함에서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내고 있던 잭슨을 누군가가 뒤에서 갑자기 다짜고짜 가격했다.

“커헉!”

잭슨은 그대로 머리가 앞으로 날아갔고 그만 사물함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잭슨은 흐르는 피를 닦으며 뒤를 돌아 자신을 때린 상대를 쳐다봤다.

“뭘 봐 병신 새끼야.”

190cm를 훨씬 넘는 근육질의 남자가 잭슨을 같잖다는 듯이 쳐다봤다.

“안 그래도 버스에 지갑을 놓고 내려서 아침부터 기분이 거지 같은데 왜 눈에 띄고 지랄이야?”

“지갑을 잃어버린 게 내 탓은 아닐 텐데.”

짝-!!!!!

그 남자는 자신에게 대꾸하는 잭슨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버렸다.

어찌나 강한지 잭슨은 휘청거리며 사물함에 몸을 부딪쳤다.

“이 건방진 새끼가 어디서 말대꾸야?”

그 남자는 주먹을 들어 다시 잭슨을 때리려고 했다.

“로버트 그만해!!!”

갑자기 한 여학생이 나타나 로버트를 만류하며 나섰다.

로버트가 너무 강해서 아무도 선뜻 나서서 그를 막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용감하게 나선 것이었다.

“크리스틴. 이 건방진 새끼는 좀 더 맞아야 한다고.”

“힘이 남아돌면 운동장에 가서 럭비나 하시지? 엄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그 아름다운 금발 소녀는 로버트를 향해 당차게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로버트는 재밌다는 듯이 방정맞게 웃어댔다.

“크리스틴. 너도 나한테 저렇게 맞고 싶은 거야?”

“어디 한번 때려봐. 아빠한테 말해서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줄 테니까.”

“하하. 건방진 년. 아주 말은 잘해.”

“말만 잘하는지 진짜로 그러는지는 한번 확인해보시던가.”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판사였다.

안 그래도 냉혹한 판사로 유명한데, 자신의 딸이 맞았는데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로버트를 잡고 늘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리 개망나니 같은 로버트라도 섣불리 크리스틴을 때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로버트의 아버지가 상원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그가 크리스틴을 때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였다.

“만약 네가 문제를 일으켜서 선거 때 조금이라도 차질을 준다면 나는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의 아버지는 망나니 같은 로버트에게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안 그래도 로버트의 아버지는 그동안 로버트가 학교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덮느라 에너지를 많이 빼앗겼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로버트로 인해 덜미가 잡힌다면 그는 정말 폭발할 지경이었다.

로버트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시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가 사주기로 했던 슈퍼카는 날아가는 것은 물론 집에서까지 쫓겨날 판이었다.

로버트는 아무것도 못 한 채 크리스틴을 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때릴 용기가 없으면 이만 가줄래?”

크리스틴은 도도하면서도 품위 있게 말했다.

로버트는 약이 올랐지만, 간신히 화를 주체하고 있었다.

“크리스틴. 계속 그렇게 까불다가는 정말 큰코다칠 거야.”

로버트는 치켜세운 검지를 크리스틴의 얼굴에 가까이 대며 말했다.

“애꿎은 사람이나 때리는 그 더러운 손. 내 앞에서 치워줄래? 굉장히 역겹거든.”

“하! 하하하!”

로버트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냈다.

“병신 같은 놈들끼리 끼리끼리 잘 놀아라. 야! 잭슨.”

로버트의 부름에 잭슨은 몸을 움찔했다.

“나중에 보자. 차라리 지금 여기서 맞는 게 더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거다.”

“그럴 일 없을 거니까 꺼져.”

크리스틴은 로버트를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로버트는 썩소를 날리며 크리스틴을 향해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사라졌다.

크리스틴은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며 로버트가 사라지는 것을 한동안 지켜봤다.

잠시 뒤 그녀는 자기 옆에 있는 잭슨을 쳐다봤다.

“잭슨 괜찮아? 세상에……. 피가 계속 흐르네.”

크리스틴은 황급히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잭슨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이 정도쯤이야 별거 아니야.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흉지지 않을까 모르겠네. 진짜 로버트 그 개자식.”

평생 욕 하나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녀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풋!”

잭슨은 그 이질감 때문에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속도 좋네. 넌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그냥. 네가 욕을 하니까 뭔가 웃겨서.”

“웃기긴 뭐가 웃겨? 그런 개망나니 같은 녀석에게는 이런 욕도 사치라고.”

크리스틴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분했는지 계속 씩씩거렸다.

“크리스틴. 난 괜찮으니까 넌 나서지 마. 괜히 나 때문에 네가 피해를 입을까 봐 걱정돼.”

“걱정 마. 너 우리 아빠 모르냐? 안 그래도 로버트 녀석이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감옥에 당장 집어넣을 거라면서 벼르고 있어. 그런 녀석은 거기서 고생 좀 하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잭슨은 그윽한 눈으로 크리스틴을 바라봤다.

잭슨은 크리스틴이 로버트를 막아준 것도 고마웠지만, 자기보다 더 화를 내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그는 자기가 소꿉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다고 자부했다.

“끝나고 뭐하냐?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좋아! 나 뭐 다른 약속 없어.”

잭슨은 크리스틴의 물음에 반색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흐흐. 좋아. 그러면 학교 끝나고 보자고.”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해사한 미소를 보냈다.

그녀의 미소를 본 잭슨은 이마가 아픈 것조차 잊을 정도로 달콤함에 빠져 있었다.

“그나저나 몇 시야? 세상에!”

그 달콤함은 크리스틴이 복도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봄으로써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수업 늦겠다. 어서 가자. 나중에 만나! 로버트 조심하고!”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의 교실로 달려갔다.

잭슨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잭슨은 사물함에 다시 물건을 집어넣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끝나고 크리스틴을 만날 생각해 휘파람까지 불며 싱글벙글했다.

그 순간 잭슨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쾅-!

갑자기 로버트의 주먹이 날아와 잭슨의 사물함을 강타했다.

잭슨은 위기를 직감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내뺐기 때문에 다행히 잭슨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어쭈! 이 새끼가 피해?”

로버트는 곧바로 잭슨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에도 어디 한번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이 새끼야.”

잭슨은 발버둥 치며 로버트의 손을 떼내려고 했지만, 그의 악력이 너무 강해 멱살을 풀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결국 잭슨의 로버트에게 힘없이 맞기 시작했다.

“제, 제발 나를 내버려 둬.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잭슨은 로버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난리를 다 쳤다.

하지만 로버트는 흔들림 없이 잭슨을 꽉 붙잡고 있었다.

“내가 아까 아침에 그냥 그때 맞는 게 더 좋을 거라 했지? 넌 뒤졌어 이 새끼야.”

퍽-! 퍽-! 퍽-!

그렇게 가혹한 폭행이 계속 이어졌다.

퉤-!

어느 정도 다 때렸다 싶은 로버트는 쓰러져 있는 잭슨에게 침을 뱉었다.

침은 잭슨의 얼굴에 정확히 떨어졌다.

“오! 나이스 샷!”

로버트는 쓰러져 있는 잭슨을 향해 얄밉게 이죽댔다.

“그 같잖은 년 믿고 까부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년은 내가 우리 아버지 당선되고 나면 날 잡아서 조질 거야!”

퍽-!

“커헉!”

로버트는 잭슨에게 다시 한번 발차기를 가했다.

잭슨은 신음하며 맞은 곳을 부여잡았다.

“낼 보자. 병신 새끼야.”

로버트는 쓰러져 신음하는 잭슨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친구들과 함께 희희낙락거리며 사라졌다.

“흑, 흑흑.”

잭슨은 서러움에 복받쳐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로버트와는 달리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힘이 약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크리스틴의 아버지처럼 판사도 아니었고 또 가정 형편상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었기에 고소를 해봤자 로버트네의 어마어마한 변호사진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잭슨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탓하며 서러움에 땅만 쳐댈 뿐이었다.

***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근데 그 모자랑 마스크는 뭐람?”

크리스틴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잭슨을 향해 물었다.

“그냥. 좀 감기 걸린 것 같아서.”

“…….”

크리스틴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잭슨을 바라봤다.

그녀는 대뜸 잭슨에게 다가가 그의 마스크를 벗겼다.

“세상에…….”

크리스틴은 엉망이 되어 있는 잭슨의 얼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쾅-!

“안 되겠어. 더 이상은 못 참아!”

분노한 크리스틴은 식탁을 내려찍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잭슨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

“어, 어디가?”

“당장 아빠에게 말해야겠어. 정말 해도 너무하잖아!!!”

당황한 잭슨은 크리스틴을 만류하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크리스틴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까지 흘렸기 때문이다.

“걱정 말고 따라 와…….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잭슨은 그대로 크리스틴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잭슨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상처를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로버트를 벼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잭슨의 상처를 보고 망설임 없이 일을 진행시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굉장히 척척 진행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로버트의 아버지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기꺼이 잭슨을 도와 로버트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만들었다.

결국 로버트는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잭슨!!! 너 이 개새끼!!!!”

로버트는 재판장 안에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잭슨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경비들에게 제압당했다.

“너 이 새끼!!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로버트는 계속 절규하며 그대로 끌려 나갔다.

나중에 로버트의 아버지가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게 그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크리스틴. 정말 고마워. 요즘 진짜 학교 다닐 맛이 난다니까?”

“그러게 내가 뭐랬어. 나한테 다 맡기라고 했잖아. 내 말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크리스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학기가 거의 다 끝나가서야 이런 평화가 왔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야? 아무튼 고맙다 크리스틴.”

“뭘. 이런 걸 가지고.”

크리스틴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크리스틴 저번에 말했던 할 이야기가 뭐야?”

“아! 지난번에 말한다고 해놓고서는 로버트 일 때문에 정신없어서 말 못 했다. 사실 말이야…….”

크리스틴은 웃고 있었지만, 또 그러면서도 슬픔이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나……. 곧 한국으로 떠나.”

“어?”

잭슨은 크리스틴의 말에 당황했다.

“내가 전부터 한국에 관심 있었다고 말했잖아.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가게 되었어.”

“…….”

그녀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가는 거라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잭슨은 마음이 울적해졌다.

“괜찮아. 나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나중에 네가 한국으로 놀러 올 수도 있는 거고.”

“놀러 갈게!”

잭슨은 자신 있게 말했다.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지르고 봤다.

“흐흐. 좋아. 거기서 같이 놀면 그것도 재밌겠다.”

크리스틴은 기뻐하며 말했다.

“아직 가려면 좀 남았으니까 작별하기 전까지 같이 많이 놀자.”

“그래.”

잭슨은 아쉬움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봤다.

“늦었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볼까?”

“응. 내가 데려다줄게.”

“흐흐. 좋아.”

둘은 식당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 둘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몰래 그들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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