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업그레이드 (5)
“디오.”
[네.]
“방금 든 기가 막힌 생각인데,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처럼 내 몸을 데이터화해서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기억의 자아가 데이터로 변환되어 다른 차원으로 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 현실 안에서의 이동도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론상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내 의견을 부정하는 답변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속 시원한 대답도 아니었다.
“가능하다고 딱 말하지 않는 것이 뭔가 장애 요소가 있나 보지?”
[일단 전자기기 같은 매개체가 있지 않은 이상 아무 곳이나 바로 이동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전자기기를 통한 이동이 가능하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거다.
“일단 한번 해볼까?”
[아직 확실하게 방법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라일 님의 몸을 직접 이동시키는 거라 위험 요소가 큽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디오가 내게 겁을 주려는 의도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괜한 걱정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다.
그놈을 잡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해봐야 한다.
“할 거야. 걱정 말고 한번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라일 님을 돕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시도해볼까?”
아까 탁자의 데이터 구조를 변환했던 것처럼 내 몸의 데이터 구조를 변환해보았다.
이미 내 몸에 대한 데이터 구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존의 데이터 구조를 무너뜨리고 다시 새로 구성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나는 내 몸을 컴퓨터 데이터로 바꿔보았다.
생각보다 데이터 변환은 쉽게 이루어졌고 내 몸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되고 있는 것 같아.”
몸이 점점 사라지면서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라일 님! 용량 초과입니다!]
“엥?”
디오의 알림과 동시에 내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반동 현상으로 그만 나는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크윽!”
다행히 디오가 바로 비물질화로 내 몸을 변환시켜준 덕에 충격은 피할 수 있었다.
“망할. 용량이 문제였다니….”
[라일 님의 몸만 변환한다면 그렇게 큰 용량이 아닙니다만 문제는 라일 님의 뇌입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 너무 많아서 엑사바이트로도 계산이 안 됩니다.]
“…….”
기억의 자아가 넘겨준 지식 때문에 그런가 보다.
그 엄청난 지식을 준 것은 좋긴 한데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되네.
어찌한다…….
사람들이 보통 가지고 다니는 전자기기의 용량이 1테라바이트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되도록 용량이 작아야 한다.
“내 지식을 디오 너한테 넘겨줄 수 있나?”
[가능할 겁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저라면 라일 님이 전해준 지식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데이터 읽기 연습을 계속한 결과 이제 내 안에 있는 데이터 흐름을 읽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내 기억의 자아가 준 지식을 전부 디오에게로 옮기기 시작했다.
[라일 님의 지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좋아. 잠시 보관해줘.”
[네.]
디오의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데이터 전달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났다.
신기하게도 이전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흔적은 약간 남아 있어서, 이전에 내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하하하하. 이거 뭔가 기분이 되게 이상하다.”
기억이 사라졌다는 게 어이없어서 혼자 웃어댔다.
이러니까 미친놈 같기도 하다.
“다시 실험을 시작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핸드폰을 부엌 쪽에 둘게. 그래서 여기에서 부엌으로 한번 이동해보는 거야.”
[좋은 생각입니다.]
디오는 기분 좋게 내게 호응해주었다.
“오케이. 그러면 다시 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부엌에 둔 다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좋아. 시작한다.”
다시 데이터 변환이 이루어졌다.
기억의 자아가 준 지식이 없어진 덕에 데이터 변환은 확실히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 데이터가 된 기분은 되게 이상했다.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디오! 핸드폰으로 날 전송시켜준 다음 바로 변환시켜줘.’
나는 얼른 디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곧바로 답이 왔다.
슈웅-!
“허업!”
갑자기 내 눈앞에 부엌이 보이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갑작스러운 변환으로 인해 어지러움이 몰려왔고 나는 속이 좋지 않아 기침을 해댔다.
“망할. 매우 거지 같은 기분인데? 익숙해지는 데 좀 걸릴 것 같다.”
다행히 어지러움은 금방 가셨다.
“어찌 됐든 성공이네.”
[그러게요. 축하드립니다.]
좀 더 개발이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분명 큰 성과다.
갑자기 내게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디오야.”
[네.]
“우리 한번 일수한테로 가볼까?”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말고 바로 변환시켜.”
[예.]
나는 몸을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시켰고 디오는 그런 나를 곧바로 일수에게 보냈다.
디오는 내가 부탁한 대로 일수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나를 곧바로 원래대로 변환시켜주었다.
“으아아아아악!”
일수는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기겁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성공한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지만 너무 허무하게 성공해버렸다.
“뭐, 뭐야?!!!!”
일수는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계속 토끼 눈을 뜬 채로 나를 쳐다봤다.
“나 이제 순간이동을 할 줄 알게 됐어.”
“…….”
일수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오랫동안 녀석을 알아 왔지만 저렇게 바보 같은 표정은 처음 본다.
벌어져서 다물 줄 모르는 입에서 그만 침이 떨어졌고 그제야 일수는 정신을 차렸다.
“아잇. 더럽게.”
“지금 그게 중요해?”
일수는 되려 나에게 성을 냈다.
“만져지지도 않고 이제는 갑자기 나타나고. 넌 이제 진짜 유령이 된 거냐?”
“하하하하하. 살아 있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섭한 소리야?”
끼이이익-!
장수진이 문을 열고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어? 라일 님. 언제 오셨어요?”
수진이는 신기해하며 내게 물었다.
“방금.”
“순간이동 해서 왔어.”
일수는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수진이는 그래도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뭔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순간이동 해서 왔어. 난 이제 그런 것도 가능해졌다.”
“아……. 그게 이 현실에서 가능한 소리예요?”
수진이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물었다.
“나도 설마 설마 했는데 가능하더라고.”
“……진짜 대단하시네요.”
수진이는 질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너희들이 열심히 연구해주는데 나라고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나도 며칠 연구했는데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됐어. 그나저나 너희들 쪽은 어때? 잘 돼 가?”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다.”
일수는 갑자기 씨익 웃었다.
“한번 봐봐.”
일수는 저번처럼 투명한 푸른 구체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 구체는 저번보다 훨씬 정교해진 데이터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자아도 생겼군.”
“맞아. 이제 말도 하더라고. 이름은 ‘베프’라고 지었어.”
하하…….
진짜 작명 센스 하고는.
라고 입 밖으로 말했다가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해서 그냥 속으로 삼켰다.
“베프야 인사해라. 내 친구 이라일이다.”
[안녕하십니까. 베프입니다.]
일수는 데이터 자아에 스피커를 연결해 직접 소리가 나오게 했다.
이렇게 하니까 느낌이 새로웠다.
“진짜 신박하다. 이러니까 마치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
디오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들리는 것이었지만 이건 직접 내 귀로 들리는 거라 확실히 다른 느낌이긴 했다.
“한번 확인해볼게.”
나는 좀 더 세밀하게 베프를 관찰해보았다.
초창기 디오에게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그 어떤 슈퍼컴퓨터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지닌 상태다.
“대단하네. 내 기억의 자아는 여기까지 오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는데 너는 며칠 만에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그거야 네가 나에게 엄청난 힌트를 줬으니까 그런 거지. 거의 밥을 떠 먹여준 수준인데 그것도 못 하면 쓰겠냐?”
서로를 칭찬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수진이는 어느 정도 했어?”
“일수 오빠에 비하면 한참 부족해요.”
수진이는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만든 데이터 응집체를 내게 보여줬다.
녀석 말대로 베프에 비하면 훨씬 수준이 떨어지고 아직 자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막 데이터를 다루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수진이 또한 속도가 엄청났다.
“뭐라 하지 마세요. 저도 엄청 노력한 거라고요. 이제 막 배워서 어쩔 수 없어요.”
내가 혼낼 줄 알았는지 알아서 제 발 저려서 변명하는 장수진이었다.
그 모습이 웃겨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야. 아무 말도 안 했다. 왜 혼자 난리야?”
“별로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니야. 훌륭해.”
“네?”
수진이는 의외의 소리를 들었는지 많이 놀란 눈치였다.
“뭐야 그 반응은? 훌륭하다고.”
“정말요?”
“그래. 네 말대로 넌 늦게 시작했잖아. 발전 속도로만 치면 네가 최고인 거 같은데?”
내 칭찬에 수진이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뭔데 부끄러워하고 난리야?”
“그냥……. 라일 님에게 이런 칭찬은 처음 듣는 것 같아서요.”
“이번에는 잘했네.”
“헤헤.”
순간 수진이는 소녀처럼 웃었다.
“칭찬받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시켜.”
“예! 맡겨주십시오.”
수진이는 사기가 한껏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다들 고맙게도 열심히 해주고 있다.
“일수야.”
“어.”
“넌 진도가 빠른 것 같으니까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
일수는 약간 불안해하며 물었다.
“박이나 씨랑 백기완 대통령을 위한 데이터 응집체도 만들어 줘.”
“……한 개도 아니라 두 개를 더 만들라고?”
일수는 경악하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너 나를 과로로 죽일 셈이냐?”
“에이. 설마 내가 그러려고. 이제 ‘베프’에게도 자아가 생겼으니까 같이 응축시키면 수월해질 거야.”
“…….”
그 말에도 일수는 여전히 심각해 보였다.
“부탁이야. 박이나 씨랑 백기완 대통령은 데이터를 다루지 못한단 말이야. 좀만 더 수고해줘.”
“……하아…….”
내가 손을 잡고 애걸복걸하자 일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렇게 고생한 거에 대한 대가는 내가 똑똑히 받아낼 거야.”
“별장 하나 큰 거 만들어 줄게. 우리 집보다 더 큰 걸로. 거기에 500억 얹어서 준다.”
“콜!”
금융치료보다 더 좋은 치료는 없다고 했던가.
갑자기 일수 얼굴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다.
“그럼 또 힘차게 해볼까?”
갑자기 일수는 확 살아났다.
금융치료의 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이만 연구를 계속하러 가볼게.”
“그래. 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녀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순간이동 해서 돌아왔다.
확인해보니 갑자기 사라진 나를 보며 수진이와 일수는 경악하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이 웃겨 혼자 껄껄대며 웃었다.
“!!!!!!!!”
그때 갑자기 미세한 데이터 흐름이 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