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업그레이드 (4)
“…….”
박이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설명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박이나 씨가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면 더 편하게 회사 운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동시에 제가 추구하는 일에도 동참하실 수 있고요.”
“…….”
박이나는 여전히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싫으신가요?”
“아뇨……. 싫지는 않은데 좀 갑작스러워서요.”
박이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제가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능력을 갖게 되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잖아요. 솔직히 그게 분명 좋다고만은 못하니까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박이나의 말은 옳다.
그건 분명한 팩트이다.
하지만 뒷부분에는 동의 못 한다.
왜냐면 나는 능력을 얻고 나서가 얻기 전보다 훨씬 좋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아무도 박이나 씨를 건들지 못하게 될 거니까요. 정석한 같은 놈들이 찝쩍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하. 그건 좋네요.”
다행히 내 말에 박이나는 해맑게 웃었다.
“또 만능이 될 겁니다. 뭐든지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것도 좋네요.”
박이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 능력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전 박이나 씨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보다 더 정의감이 뛰어나시니, 분명 나쁜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봐주시다니 솔직히 좋긴 하네요.”
그녀는 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박이나는 결심했다는 듯 당차게 말했다.
“저도 라일 씨처럼 그 능력이 갖고 싶어요.”
“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뭘 하면 될까요?”
“계속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네?”
“개발은 일수랑 수진이가 할 거거든요. 이나 씨는 그냥 개발한 거 받기만 하면 돼요.”
“……그게 다예요?”
박이나는 허무해 하며 내게 물었다.
“네. 개발은 데이터 지식의 전문가인 사람들이 맡을 거예요.”
“아…….”
박이나도 같이 개발하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한세월이다.
“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뭐죠?”
“라일 씨는 왜 저에게 그 능력을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데이터 쉴드 드릴 때 말 안 했었나요? 제게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거라고요. 같은 대답입니다.”
“…….”
내 말에 박이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녀는 뭔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라일 씨는 그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군요.”
“사실이니까요.”
“하하…….”
박이나는 멋쩍게 웃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저는 누군가에게 계속 공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고 나서 드는 생각이, 너무 갑자기 화제가 전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하지만 박이나는 그런 건 상관없는지 바로 거기에 반응해주었다.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입니다. 저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존재하더라고요. 그게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런 적이 나타난 이상 저희 쪽에서도 힘을 늘릴 필요가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이나 씨가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알게 될 거라 나는 솔직하게 밝히기로 했다.
“그게 라일 씨의 진짜 목적이었군요.”
박이나는 약간 씁쓸해하며 어둡게 말했다.
“아까 이나 씨가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죠? 멋대로 사용하면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인 능력이니까요. 그런데 그 엄청난 능력을 멋대로 써서 인류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적이 지금 나타났어요. 만약 우리가 그놈을 막지 못한다면 정말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그놈이 나를 없애고 혼자 독주하게 되면 정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것은 정말 제 개인적인 이익을 떠나 대의를 위한 일입니다.”
“라일 씨.”
박이나의 어두운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전 이미 라일 씨를 돕기로 마음먹었고 그 능력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라일 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영광이죠. 라일 씨를 공격하는 그 나쁜 사람을 같이 막도록 해요.”
박이나는 확고하게 제 뜻을 밝혔다.
그렇게 말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이나 씨.”
“뭘요. 라일 씨가 저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사실 그 능력을 가지면 저에게도 좋은 거잖아요.”
“물론 그렇지만,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해야죠. 인류에게 재앙이 떨어질 수도 있는 마당인데 어떻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하. 역시 박이나 씨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또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는 그녀다.
분명 이번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럼 이나 씨. 저와 또 새로운 일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기분 좋게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나는 박이나까지 포섭했다.
***
나는 집으로 와서 연구를 시작했다.
일수와 수진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나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디오야.”
[네.]
“업그레이드를 시작하자.”
[예. 알겠습니다.]
일수와 수진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데이터 응축 작업이다.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가장 초보적인 단계라 할 수 있다.
난 이미 여기에 도가 텄고, 사실 디오처럼 응축 데이터에 자아가 생긴 시점에서는 데이터를 더 응축해봤자 그렇게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인 데이터를 읽고 변환하는 단계이다.
나는 이 단계 또한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다.
문서 기록을 바로 데이터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사기긴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다.
이미 나와 디오는 아마존에서 데이터를 읽는 것의 한계를 경험했다.
데이터를 읽는 능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변환도 마찬가지이다.
이전보다 변환 능력이 더 강화되긴 했지만, 데이터 감옥 300개가 아직까진 한계이다.
다중 변환 역시 강화해야겠지.
“디오. 데이터 읽기와 변환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세계 데이터의 흐름이 전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컴퓨터 데이터처럼 흐름이 활발한 것도 있지만, 아마존에 대한 데이터처럼 거의 흐르지 않는 데이터도 있다.
마치 컴퓨터 데이터가 바다와 같다면 아마존의 정보는 고여있는 작은 웅덩이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승부는 그런 미세한 흐름까지 읽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다.
상대가 아무리 데이터 흐름을 감추고 변환한다고 할지라도 기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미세한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면 나를 공격했던 놈이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데이터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했다.
내 기억의 자아가 갔었던 차원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이 세계에서도 세계 데이터는 흐른다.
그동안 나는 그 흐름에 너무 둔감했다.
하지만 집중해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단,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흐름이 내게로 들어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건 나에 대한 해킹이 엄청나게 시도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략 수천 개의 통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 애매하게 파악해서는 발전이 없다.
완전히 세세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는 일일이 데이터 통로의 개수를 세어봤다.
“5,673개.”
중간에 개수를 놓칠 뻔한 게 몇 번 있었으나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면서 끝까지 세었다.
[제가 센 숫자도 5,673입니다.]
“하하하하.”
솔직히 집중해서 세는 게 겁나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디오와 똑같이 계산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얻었다.
만약 달랐다면 진짜 멘탈이 많이 흔들렸을 거다.
어떤 데이터는 흐름이 매우 미약해서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전 같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뒀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데이터 흐름이 미약할수록 그건 엄청나게 강한 놈이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거의 안 느껴졌던 그 데이터의 흐름은 그놈의 데이터인 것으로 보였다.
사실 꼬리를 잡아 추격해보려고 했으나 녀석도 금방 눈치채서 꽁무니를 뺐다.
건방진 녀석.
네놈은 내가 무조건 잡고 말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데이터의 흐름을 읽는 연습을 했다.
일수와 수진이도 야근까지 하면서 연구하고 있을 텐데 내가 대충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녀석이 나에게 계속 접근하고 있는 이상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
나는 데이터 변환 연습도 동시에 진행했다.
하루의 반이 데이터를 읽는 연습이라면 나머지 반은 변환 연습이었다.
나는 기존에 있는 사물들의 데이터를 변환시켜보려 했다.
앞의 있는 탁자를 만지며 나는 그것을 비물질 데이터로 전환해보려 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해봤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된 시도에도 진전이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변환을…….
근데 잠깐!
“아!”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것처럼 내 머리 안에서 번뜻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그건 바로 먼저 탁자의 데이터 구조를 읽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마침 데이터 읽기가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곧바로 탁자의 데이터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직접 접촉했기 때문에 탁자의 데이터 구조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읽으니 바로 답이 나왔다.
나는 탁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이터 구조를 무너뜨렸고, 그것을 다시 비물질 데이터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탁자는 다리에서부터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털썩-!
탁자 위에 있던 노트가 떨어졌다.
“됐네.”
탁자는 완전히 비물질화 되어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다시 복원이다.”
복원은 탁자를 원래 데이터 구조대로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설계도를 따라 레고를 조립하듯이 데이터를 맞추어 나갔다.
탁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좋아.”
데이터만 읽을 수 있으면 원리는 간단했다.
그냥 원래 있었던 데이터 구조를 무너뜨리고 다시 재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복원은 그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탁자의 데이터를 변환하고 나서 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직접 접촉이 아닌 원격으로 변환을 시도해봤다.
데이터 흐름을 읽고 무너뜨린다.
나는 이 원리를 기억하며 멀리 있는 의자를 비물질로 변환시켰다.
데이터를 읽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만 끝나니 금방 변환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읽기 연습과 변환 연습을 계속했고, 며칠이 지났다.
계속된 반복 훈련으로 인해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하아…….”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데이터들이 수두룩했다.
잠시 쉬기 위해서 나는 냉장고에 가 콜라를 벌컥 들이켰다.
“잠깐!”
그 순간 또 내 머리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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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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