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업그레이드 (3)
이건 무슨 소리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일수를 쳐다봤다.
일수는 의기양양하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네 ‘디오’ 같은 거 하나 만든 거 같아.”
“!!!!!!!”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네가 만들었다고……?”
“응.”
여전히 해맑은 일수였다.
“어떻게?”
말이 안 된다.
내가 옆에 붙어서 같이 개발했다고 해도 될까 말까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네 덕에 나도 세계 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잖아. 네가 예전에 응집된 세계 데이터가 자아를 가진 것이 바로 디오라고 설명해 줬던 게 생각나서 나도 한번 데이터를 응집해보려고 시도해봤어. 그런데 되는 거 같더라고.”
“…….”
일수 이 자식.
천재인가?
아무리 내가 가이드를 잘 해줬다지만 그걸 또 곧잘 따라 하다니…….
“한번 확인해 봐도 돼?”
“응.”
일수는 나를 연구소 안에 있는 극비 실험실로 데리고 갔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한테 처음 보여주는 거야.”
녀석은 사원증을 찍으며 내게 말했다.
“영광이군.”
“크크. 그래. 영광인 줄 알아라.”
일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컴퓨터들이 몇 대 있었고 중간에는 실험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투명한 푸른 구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그건 일수 말대로 응집된 세계 데이터였다.
나는 신기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응집된 세계 데이터가 현실에서 이렇게 가시적으로 구현된 것은 나도 처음 본다.
뭐 사실 나도 이렇게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해봤긴 했는데…….
어쨌거나 신기하긴 하다.
나는 일수가 만든 응집 데이터에 손을 대었다.
응집된 구체 안에서 데이터들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아직 구조가 단순하고 데이터가 별로 안 들어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다.
나는 맨바닥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면 진도가 반 이상이 나간 거다.
나는 대뜸 일수에게 다가가 녀석을 꼭 안아 주었다.
“사랑한다.”
“야! 왜 이래? 나 남자 안 좋아하거든!!!”
일수가 너무 질색하길래 바로 놓아주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넌 짱이다. 내 친구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하하하하. 뭐 이 몸이 뛰어나긴 하지.”
일수는 내 칭찬에 한껏 뻐기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일수야.”
나는 흐뭇하게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 왜?”
“오늘부터 풀로 야근이다. 쉬는 날 없다.”
“…….”
일수는 완전 질색하며 나를 경멸하듯이 쳐다봤다.
“장난?”
“장난 아니야. 장수진이랑 너랑 이제 같이 풀로 야근할 거야.”
“오! 수진이랑? 그러면 또 내가 열심히 일할 맛이 나지…….”
밝아진 일수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이게 나를 뭔 호구로 아나?”
일수는 바로 내게 헤드락을 걸었다.
“야, 야! 아파!”
일수가 정말 나를 안 놔줄 기세로 헤드락을 걸었기 때문에 비물질화를 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저거 사기 기술! 나도 조만간 저걸 배워야겠어.”
“오! 잘 생각했어. 근데 그러려면 야근을…….”
“이 자식이 진짜!!!!”
일수는 정말로 화를 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긴급상황이란 말이야. 좀 도와줘.”
지금은 달래줄 때이다.
그래도 일수는 착해서 바로 내 말에 따라준다.
“오케이. 이 형님이 특별히 봐주도록 하겠어.”
그렇게 말하는 일수였지만 걱정이 앞서긴 하는지 한숨을 푹 깊게 내쉬었다.
“하아……. 또 야근이라니……. 허허허허.”
녀석은 허탈한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실없이 끌끌 댔다.
“이 불쌍한 인생. 언제 야근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허허허허.”
현실을 받아들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가면서 일수를 힐끗 쳐다봤는데 녀석은 내게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하.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부탁한다.
일단 상당히 긍정적이다.
솔직히 마음속 한 편에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일수 덕분에 완전히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곧바로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왜요?”
녀석은 잠에서 깨다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워서 잤나 보다.
“수진아. 그래. 고생했으니까 일단은 쉬고 내일부터 풀로 야근에 들어가자.”
“……네?”
수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내일부터 좀 빡세게 일할 예정이라는 것만 알아둬. 오케이?”
“……네.”
녀석은 빨리 다시 자고 싶은지 대충 대답한 것처럼 보였다.
크크.
어떤 미래를 다가올지 모른 채 그냥 ‘네’라고 하다니.
애석하구나.
푸하하하하하.
혼자 속으로 박장대소하며 전화를 끊었다.
***
다음 날
연구소에 온 장수진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장수진 또한 어제의 일수처럼 정색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풀로 야근이라고?”
“……라일 님. 이건 정말 아니죠.”
장수진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어제 네가 ‘네’라고 했잖아.”
“제가 언제요?”
잠결에 대답해서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녹음해준 것을 들려주었다.
“…….”
장수진은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차라리 죽여요. 무슨 풀로 야근이에요?!!”
“야. 지금 너도 알다시피 많이 급한 상황인데 도와주면 안 될까? 내가 보상으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장수진은 많이 답답해 보였다.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냅다 소리를 지르는 장수진이었다.
나랑 일수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할게요…….”
“진짜?”
“어차피 매번 똑같은 시나리오잖아요. 저는 결국 라일 님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건 맞지.”
그 말에 장수진은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아…….”
녀석은 체념한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근데 이건 너한테도 좋은 거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무지 강해질 테니까.”
“다 좋은데 좀 쉬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 녀석이 계속 도발해 온단 말이야. 여유롭게 있다가는 우리가 당할 판이라서. 다행인 것은 일수가 많이 진도가 나간 상황이야. 일수한테 지도 받으면 너도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일수는 방긋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했다.
일수는 장수진에게 듬직한 인상을 보이려고 그렇게 한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는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다.
“알았습니다. 바로 하죠.”
장수진은 힘이 빠진 채로 터벅터벅 실험실로 걸어 들어갔다.
“일수야 부탁한다. 저 녀석 멘탈 케어 좀 잘해주고. 연구도 부탁할게.”
“알았어. 나만 믿어.”
그렇게 말하며 일수는 얼른 장수진을 달래러 갔다.
“하하하하하. 역시 내 친구야.”
띠리리리-!
흐뭇하게 일수가 가는 것을 바라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박이나.]
아…….
그동안 너무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이나 씨.”
“라일 씨. 잘 쉬셨어요?”
“예. 어제 간만에 꿀 같은 잠을 잔 것 같네요.”
진짜 집에 들어 오자마자 뻗었었다.
간만에 편안하고 안락하게 잔 것 같다.
덕분에 지금 컨디션이 매우 좋다.
“다행이네요.”
내가 잘 쉬었다는 거에 박이나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다.
“라일 씨.”
갑자기 박이나는 뭔가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저 보고 싶지 않았어요?”
“보고 싶었죠.”
“그래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말투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저 좀 만나실 수 있으신가요? 회사 일 관련해서도 그렇고, 라일 씨가 거기서 어떻게 지냈는지도 듣고 싶네요.”
“좋죠.”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박이나를 만나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나이스지.
“어디서 볼까요?”
“다른 곳에서 보면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나 씨 집무실에서 보면 어떨까요?”
“아……. 하긴.”
박이나는 그때 같이 점심 먹었을 때를 떠올렸는지 바로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지금 바로 거기로 가겠습니다.”
“예. 조심히 오세요.”
나는 곧장 디씨소프트 본사로 갔다.
똑똑똑!
“네.”
“이라일입니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박이나가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하얀 수트를 입고 있는 그녀는 한층 더 우아하게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정말로요.”
박이나는 나를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라일 씨. 커피 좋아하시죠?”
“네.”
“우리가 전에 갔었던 카페에서 가져온 커피가 있어요. 바로 준비해서 내올게요.”
“오! 감사합니다.”
그때 그 카페가 커피를 정말 잘하긴 했다.
나는 박이나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했다.
“와. 역시 최고네요.”
내가 좋아하자 박이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고생이랄 건 까진 없고……. 그냥 그렇죠 뭐.”
“라일 씨 부모님과 관련된 일. 마무리는 잘하셨나요?”
“네……. 후련해요.”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박이나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라일 씨 말대로 지금 저희 디씨소프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심상치 않아요. 특히 마약 카르텔을 처치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미쳤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물론 저희 디씨소프트를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그건 소수일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지지해주고 있어요.”
“거봐요.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요.”
“하하하하하. 진짜 라일 씨는 대단하시다니까요.”
박이나는 호탕하면서도 기품있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저랬으면 방정맞다고 느껴졌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웃는 것조차 아름다울 수 있나 싶다.
“사실 저는 회사의 이미지나 이득을 떠나서 마약 카르텔이 사라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라일 씨가 하신 일을 지지했죠. 역시 라일 씨는 마약 카르텔을 모두 없애주셨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어요. 라일 씨는 정말 모두의 영웅입니다.”
이 ‘영웅’이라는 소리는 정말 계속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오그라들 수가 없다.
하지만 박이나가 또 이렇게 말해주니 싫지만은 않다.
“영웅이라니 과찬입니다. 저는 그냥 부모님의 복수를 한 것이고 나머지 것들은 그냥 따라온 것이죠.”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게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됐으니까요. 정말 최고입니다!”
박이나는 내게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계속 칭찬을 했다.
계속 듣고 있자니 민망해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나 씨.”
이번에도 좀 가볍지 않은 부탁이라 최대한 진지하게 나왔다.
“예.”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많이 급해서요…….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부탁이라뇨? 어떤?”
박이나는 호기심 반 불안한 반으로 물어보는 거 같았다.
“예전에 이나 씨만 따로 노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했었죠?”
“……그랬…… 었죠.”
박이나는 약간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이제 이나 씨와도 같이 일하고 싶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이나 씨에게도 저와 비슷한 능력을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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