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업그레이드 (2)
“전쟁이요……?”
뜻밖의 소리였는지 이전까지 자신만만하던 백기완 대통령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
“네.”
나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확실하게 말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전쟁이라…….”
아마 이런 전개는 백기완 대통령의 시나리오에 없었나 보다.
그는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다.
아까 점심때 일단 즐기라고 말하던 그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다.
“심각한 상황이군요.”
“예. 솔직히 저도 낙관적으로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질문이 있습니다만…….”
그는 나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중국에서 항공모함을 보내도 막았던 라일 씨지 않습니까? 심지어 지금 라일 씨는 그때보다 더 강해져 있는 상태이고요.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중국보다 국방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월등하게 높은 정도는 아닐 텐데, 왜 중국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매우 심각하신 겁니까?”
사실 그의 말이 맞다.
솔직히 미국이 중국보다 강하다고 해도 아예 다른 차원에 있는 정도는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나오냐는 거지?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전 미국이 어떻게 나오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야 손쉽게 박살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대체 왜……?”
“다른 존재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
백기완 대통령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저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그 존재가 미국을 도와주고 있어요.”
“!!!!!!!”
백기완 대통령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랐다.
“그런 괴물이 또 등장했다는 것입니까?”
대통령님?
그 말은 저도 괴물이라는 뜻인가요?
따지고 싶었으나 지금 분위기가 워낙 심각한 상태라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나도 내가 괴물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네.”
“허허…….”
백기완 대통령은 기가 찬 지 실없는 웃음소리만 냈다.
“그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미국인입니까?”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했나 보다.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도 그걸 알고 싶다는 것이다.
“모릅니다.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
이것 또한 그의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인지 안 그래도 어두운 표정이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큰일이군요.”
“큰일이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대통령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솔직히 더 불안합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적인 것은 확실한 겁니까?”
“확실합니다. 녀석은 확실히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했고요.”
“맙소사…….”
대통령은 이제 입까지 벌리며 놀랐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신뢰가 엄청났나 보다.
내가 죽을 뻔했다는 말을 그의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계속 절망적인 말을 해서 그런가 대통령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더 했다가는 까무러칠 기세다.
이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녀석과 힘겨루기를 했을 때 저는 녀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거겠죠.”
“…….”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라 나는 억지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매번 말하듯, 저 warrior입니다. 저를 막으면 그냥 다 박살 낼 뿐입니다. 대처법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단 저는 제 편에서 저와 같은 존재를 만들 생각입니다.”
“당신과 같은 존재요?”
“네. 거기에는 대통령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늘 대통령은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
몇 번을 놀라는지 모르겠다.
“저에게 당신과 같은 능력을 주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가능한 겁니까?”
“시도해봐야겠지만, 이론상 가능합니다. 일단은 저도 갑자기 능력이 생긴 것이니까요.”
“…….”
백기완 대통령은 여기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싫습니까?”
“솔직히 싫지는 않지만… 제가 당신과 같은 존재가 되면 어떻게 변할지 걱정되긴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통령님처럼 올곧은 사람이 흑화한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있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하하하하.”
다행히 그는 나의 농담에 웃어줬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실 좀 급하긴 합니다. 그 녀석이 언제 일을 벌일 줄 모르니 최대한 빨리 대처해야 하거든요.”
“라일 씨.”
그는 갑자기 여유를 찾고 이전의 대통령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정리를 한 것 같았다.
“저는 이미 라일 씨와 한 배를 타기로 결정한 몸입니다. 이제 와서 물러서거나 도망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그런 비겁자가 되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확고하게 말했다.
“저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기꺼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두렵기보다는 라일 씨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는군요.”
“하하하하하.”
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나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다.
아버지보다는 많이 젊지만, 그래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일단은 좀 더 연구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쉴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예산을 더 끌어다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할 판인데 예산을 아끼고 있겠습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보안에 더 신경 써야 하니 믿을만한 요원들도 지원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인원을 더 분배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라일 씨.”
그는 사뭇 진지하게 나를 불렀다.
“네.”
“아까 많이 놀라고 당황했던 주제에 이런 소리 하는 게 우습지만……. 저는 라일 씨를 믿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라일 씨가 다 잘 해결해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의 진심은 잘 전달되었다.
“그 기대에 부응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예.”
우리는 웃으며 서로 악수를 주고받았다.
나는 청와대를 나와 간만에 내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니 많이 설레기도 했다.
역시 집만 한 게 없다고 했던가.
[라일 님.]
하지만 불길한 예고가 왔다.
“어. 왜?”
“인터넷을 확인해 보십시오.”
나는 곧장 핸드폰으로 나이스에 들어갔다.
“……이게 뭐냐?”
나이스에는 내가 공항에서 백기완 대통령과 만났던 모든 순간들이 다 찍혀 기사로 나가고 있었다.
“너 내가 아까 기자들이 사진들 못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근데 왜 올라와 있는 거지?”
[분명 막았는데 제 감시망을 뚫고 올려놨습니다. 내리려고 계속 시도 중이지만 그것도 막히고 있는 중입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놈 짓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기사를 차근차근 더 확인했다.
“하하하. 이 새끼가…….”
욕이 절로 나왔다.
오늘 일과 관련된 모든 기사에 녀석이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안 나타나서 섭섭했지? 네가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이렇게 다시 나타났어.]
진짜 깐죽대는 게 엄청나다.
이 녀석은 사람 열받게 하는 데는 아주 뭐 있는 거 같다.
[전처럼 라일 님이 저를 도와주시면 내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쩌시겠습니까?]
“됐어. 애쓰지 마. 어차피 이미 그 장면을 본 사람도 많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홧김에 모든 포털사이트를 엎어버리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랬다가는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는 꼴밖에 더 될 게 없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할 바에는 어서 동료들에게 능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나았다.
이렇게 넘기려고는 했지만, 기분이 더럽기는 했다.
“간만에 재밌는 놈이 등장했네.”
이 warrior가 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배로 더 갚아주겠다.
***
집으로 가려다가 나는 곧바로 연천 연구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잘 다녀왔어?”
“응. 그것보다 일수야. 너 어디야?”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나는 바로 녀석의 위치를 물었다.
“여기 연구소지. 왜?”
잘 됐다.
연구소에 없었으면 픽업해서 갈 생각이었는데 그냥 바로 연구소로 직행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지금 그쪽으로 가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래.”
일수는 물어볼 게 많은 듯 보였지만 일단은 내 요청대로 해주었다.
연천 연구소에 도착하니 일수가 마중 나왔다.
“흐흐. 왔냐?”
녀석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다녀왔다.”
“대단하신 분 나오셨어. 마약 카르텔을 정말로 박살 내다니. 진짜 네가 이러는 게 나는 정말 새삼 놀랍다.”
일수는 혀를 내두르며 나를 칭찬하기 바빴다.
“네 덕에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워졌어. 확인해 보니까 라틴 아메리카 쪽에서는 네가 거의 영웅이던데?”
“뭐 그렇게 됐지.”
칭찬이 오그라들기도 했고, 지금 이런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가 급해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일수야.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어.”
“……응.”
나는 일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다 설명했다.
일수는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에서 일수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아까 있었던 기사 이야기까지 나는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아. 녀석은 지금껏 만났던 적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바로 목덜미를 물릴 것 같은 느낌이야.”
“흐음…….”
일수는 고민하며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데?”
“지금 나처럼 너희도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하려고 해.”
“흐흐흐흐.”
놀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일수는 내 말에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뭐야? 그 반응은?”
“이제껏 내가 뻘짓거리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일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데?”
“네가 멕시코로 떠난 한 달 동안 내가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
나는 일수에게 데이터 쉴드 개발을 계속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방어적인 면에서는 충분하다고 판단되니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법을 더 익히면서 3차 버전에는 정보적인 면을 더 보완하라고 했었는데…….
“난 네가 떠난 이후로 계속 연구에 집중했어. 수진이랑 네가 멕시코에 가서 고생하는데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일수는 한껏 자랑스러워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세계 데이터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지만, 계속 연구하다 보니 점점 깨닫게 되었고 재미도 있더라고. 그래서 이전보다 배는 더 열심히 연구했지.”
“너 설마…….”
뭔가 녀석이 엄청난 걸 말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네가 지금 원하는 것에 내가 도달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