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아마존 전투 (8)
“이게……. 대체 무슨…….”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존재가 또 있었던 것이다.
“너…… 누구냐……?”
분명 이 녀석은 내 말을 듣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알 거 없어.]
역시나 메시지가 쓰여졌다.
이제껏 내가 저런 입장이었는데, 당하는 입장에 서니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어디서 가짜가 나를 따라 하고 있어?”
[네가 지금 그 가짜에게 당하고 있잖아.]
하하하…….
이거 진짜 열받네.
이제껏 나에게 당했던 놈들이 왜 그렇게 성을 냈는지 알 것 같다.
이거 굉장히 열받는다.
‘디오.’
나는 속으로 디오를 불렀다.
[네.]
‘추적 가능하겠어?’
[사실 계속 시도하고 있었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상대는 저와 비슷한 수준의 데이터 자아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군…….’
나 같은 존재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미 나는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반면, 녀석은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겁이 나지는 않는다.
단지 박살 내야 할 존재가 더 생겼을 뿐이다.
상대가 그 누구든 내 앞길을 막는다면 부숴버릴 생각이다.
“당하긴 뭘 당해? 잘 대처했잖아. 이 바보야.”
[흥! 여유로운 척 연기하기는.]
아…….
진짜 저 메시지 겁나 열받네.
“내가 너를 못 찾아낼 거라 생각하나 본데 큰 오산이야. 기다리고 있어. 내가 너도 박살 내 줄 테니까.”
[기대할게. 근데 그러려면 여기 있는 제이슨 대령부터 처리해야 되지 않을까?]
데이터 보호막이 여전히 제이슨을 감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디오. 일단 이 데이터 보호막부터 해체 가능해?’
[한번 해보겠습니다.]
디오가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잠시 대기했다.
[하하하하. 생각보다 어려운가 보지?]
녀석의 비아냥거리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디오. 더 이상 놀림 받으면 나도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은데……. 아직 멀었어?’
[최대한 해보고 있는 중이지만 쉽지가 않군요……. 해체한 순간 곧바로 복구해버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다시 역으로 당할 분위기였다.
뭔가 수를 써야 했다.
나는 제이슨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에 손을 댔다.
[ㅋㅋㅋ. 애쓴다. 이제껏 쉽게 쉽게 나가다가 갑자기 막히니까 당황스럽지?]
진짜 저 메시지 좀 어떻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나도 저랬을까 싶다.
현재 기억의 자아가 자신의 지식을 모두 나에게 넘겨준 상태.
녀석에게 지식을 이어받은 뒤로 나는 매일 꾸준히 데이터 다루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데이터 응집은 이미 마스터한 상황이었지만 변환은 아직 미숙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숙하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해보기로 했다.
보호막에 손을 대니 데이터 흐름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엄청나게 견고한 데이터 구조였다.
디오가 왜 애먹고 있는지 알만했다.
‘디오. 나도 도와줄 테니까 같이 하자.’
[알겠습니다.]
이제껏 연습했던 것을 바탕으로 나는 데이터 보호막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계속해보니 적응돼서 더 빠르게 해체가 가능했다.
팽팽했던 기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보호막 데이터 구조는 점점 무너져갔다.
하지만, 곧바로 반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복구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망할……. 우리도 더 박차를 가하자고!’
나도 온 집중을 다 해 보호막 데이터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외부에서 데이터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은 그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오. 내가 데이터를 차단하고 있을 테니까. 네가 보호막 좀 해체해 줘.’
[알겠습니다.]
디오랑 나는 이미 최고의 콤비라 죽이 척척 맞았다.
“우린 시답잖은 네놈과는 차원이 달라!”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데이터 벽을 만들어 놈이 보내는 데이터의 유입을 막았다.
확실히 데이터 유입을 막자 복구가 끊기기 시작했다.
‘디오. 되는 거 같아. 얼른 빨리 해체해.’
[예. 알겠습니다.]
데이터 유입이 끊기자 보호막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려갔다.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장수진!”
“네!”
갑자기 내가 부르자 수진이는 흠칫하며 깜짝 놀랐다.
“빨리 제이슨을 공격해! 지금이 기회야.”
“알겠습니다.”
역시 요원 짬바가 있어 수진이는 바로 말귀가 통했다.
수진이는 단검을 꺼내 바로 제이슨의 심장에 꽂았다.
푸슉-!
“커헉!”
제이슨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고 곧바로 몸이 축 늘어졌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처리한 것이다.
“장수진. 물러서!”
유입이 거세게 들어와 더 이상 막기는 한계였기에 얼른 장수진에게 외쳤다.
수진이는 내 말대로 황급히 뒤로 달아났다.
“크흑!”
나도 얼른 제이슨에게서 물러났다.
지잉-!
다시 보호막이 생성되었고 제이슨 심장에 꽂혀 있는 단검이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제이슨은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라일 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수진이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일단은 녀석을 마저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한껏 까불더니 별거 아니네.”
나는 최대한 비꼬며 말했다.
[흥! 버거웠던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넌 연기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뭔 연기 타령이야. 나한테 진 게 창피해서 괜히 이상한 트집이나 잡고 있는 네 꼴이 우습다.”
서로의 계속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 녀석 말투를 보아하니 나랑 같은 과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중2병 걸린 것 같은 말투다.
솔직히 내가 저런 말투를 사용했다는 게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상관없다.
상대를 열받게 만드는 데 이 말투가 완전 제격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을 뿐이다.
[정말 내가 너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직접 나타나서 나와 싸우던가.”
일부러 녀석을 도발하며 물었다.
[개수작 부리지 마. 도발해서 내 정체를 드러내게 하려는 거 누가 모를 거 같아? 나를 너무나 우습게 보고 있나 보군. 난 너처럼 정체를 드러내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거다.]
“맘대로 해라. 내가 직접 찾아서 네가 누군지 밝혀낼 테니까.”
[ㅎㅎㅎㅎ. 기대하지.]
그 말과 함께 데이터 보호막은 사라졌다.
“하아…….”
간만에 느껴 본 긴장감으로 인해 그만 다리가 풀렸다.
“괜찮습니까?”
수진이는 걱정된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랑 비슷한 존재가 있는 거 같아.”
“네?!!”
수진이는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야. 세계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놈이 더 있어. 언제부터 녀석이 그럴 수 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개입할 생각인 거 같아.”
“…….”
수진이는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녀석의 힘을 직접 경험한 것은 난데, 왜 네가 더 충격을 받냐?”
“그렇긴 한데…… 라일 님과 같은 존재가 더 있다니. 이건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소리입니다. 만약 그놈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 말인즉슨……. 네가 지금까지 나를 재앙으로 생각했다는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말꼬리를 잡자 수진이는 당황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했다.
계속 장난칠 기분은 아니라 이쯤 하기로 했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맞아 재앙이지. 그놈이 미친놈이라면 정말 큰 일이야.”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녀석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막 힘이 생긴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것일까?
녀석은 분명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나를 공격했을까?
모르겠다.
일단은 마약 카르텔 일은 마무리하는 게 먼저일 거 같다.
“애들아, 이만 돌아가자.”
“네.”
우리는 브라질에서 마련해준 본진으로 향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결국 마약 카르텔은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소탕되었다.
내가 정보를 계속 풀었던 덕에 아마존 전투에서 살아남은 마약 카르텔 녀석들은 더 이상 숨어 있을 곳이 없었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 차근차근 보복을 당했다.
전 세계 뉴스가 이 일을 다루고 있었다.
“현재 마약 카르텔 전부가 없어진 상태라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마약 카르텔을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각 나라들은 미국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계속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사람들은 난리였다.
-마약 카르텔이 전부 다 박살이 났대…….
-미친……. 실화냐?
-대체 warrior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미군 특수부대까지 싹 다 쓸어버렸대.
-헐……. 미국까지 건드려?
-근데 미국은 할 말 없음. 뒤에서 마약 카르텔 도와주고 있었던 거 자기들 입으로 자수했는데 어쩔 거야?
-그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그냥 warrior에게 또 당하는 거지.
-ㅅㅂ. 미국까지 건든다고? 이러다가 진짜 난리 나는 거 아니야?
-warrior가 다 알아서 하겠지. 뭐가 걱정이야?
“풋!”
마지막 댓글이 웃겨서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러세요?”
수진이는 혼자 웃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며 쳐다봤다.
“사람들이 쓴 댓글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한 번도 나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멋대로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웃기지 않냐? 내가 당연히 미국을 손쉽게 박살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미 간접적으로 라일 님의 힘을 봤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진이는 빈말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확신이 없었다.
그놈을 만난 이후로 이전까지 당연했던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녀석은 그 뒤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디오를 통해 녀석의 정체를 계속 뒤지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내가 하는 일에 딱히 개입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매 순간 녀석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디오에게 특별히 보안에 신경 써주라고 강조했다.
그때가 버겁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이 흘러가기는 했지만, 분명 녀석은 강했고 조금만 밀렸으면 당하는 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너 혼자서는 안 돼. 앞으로는 동료들과 같이 성장해서 나가야 해.’
갑자기 내 기억의 자아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그때는 단순히 동료애를 느끼고 싶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짜식아…….
진작에 제대로 말했으면 좋았잖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데이터 쉴드를 개발하면서 수진이와 일수가 세계 데이터를 어느 정도 다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역시 녀석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좋아.
사실 내가 너무 먼치킨이라 심심하긴 했어.
더 이상 발전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는데, 간만에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네.
“수진아.”
“네.”
“한국에 돌아가면 너도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