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반역 (3) (100/201)

99화. 반역 (3)

“보스!!!! 보스!!!!”

드미트리가 이른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며 난리였다.

“뭔데?”

“어제 저희가 받았던 데이터 쉴드 추가분이 싹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

고작 그걸로 지금 내 단잠을 깨우는 거냐……?

“어제 로드리고 카르텔 녀석들이 들어와서 가져갔어.”

“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태평하냐고?

다 계획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니?

“그거 다 함정이야. 좋다고 신나서 가져가더라.”

나는 드미트리가 착용한 데이터 쉴드로 영상을 보내 로드리고 카르텔들이 데이터 쉴드를 훔쳐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아……. 역시 보스시군요. 괜히 보스의 단잠만 깨웠네요…….”

드미트리는 민망해했다.

알긴 아는구나…….

“아니야. 일찍 일어나고 좋지. 으아아아!!”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다음에 일어났다.

“내가 아무 대책 없이 그냥 경비를 안 세우겠냐? 다 내가 감시하고 있고 방어하고 있으니까 너희 쉬라고 그런 거지.”

“네! 감사합니다.”

드미트리는 한국식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사람들에게 나눠줄 데이터 쉴드는 오늘 올 거야. 그러니까 그건 잘 받아서 보관했다가 사람들에게 나눠줘.”

“알겠습니다!”

드미트리는 당차게 대답했다.

나는 수진이가 있는 층으로 갔다.

녀석은 한창 요리 중이었다.

“오셨어요?”

“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입에서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어제 간단하게 장 봐온 걸로 볶음밥 하고 있어요. 거의 다 됐으니까 앉으세요.”

“오케이. 고마워.”

수진이는 계란 프라이까지 만들어 밥 위에 얹어주었다.

“하하하.”

녀석은 케첩으로 밥 위에 웃고 있는 표정을 그려놨다.

별것도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네가 이런 감성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머. 왜 그러세요? 저도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라고요.”

하긴 핑크로 꾸민 방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싸울 때는 완전 상여자가 따로 없으면서 말이야.

수진이가 가지고 있는 이질적인 두 모습이 재미있어서 피식 웃었다.

밥을 떠서 한 숟가락 했다.

“야! 최고네.”

“그럼요. 누가 만들었는데요.”

수진이도 자기 몫을 가져와 앉으면서 말했다.

“전일수, 너랑 같이 연구소에서 지내면서 완전 행복했겠는데?”

“일수 오빠도 제가 요리해주면 많이 좋아하긴 했죠.”

일수 오빠라는 저 말이 괜히 오그라든다.

“일수 안 보고 싶냐?”

“보고 싶긴 하네요.”

오!

일수가 들으면 기뻐할 소리다.

“연락은 계속하냐?”

“…….”

장수진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표정은 뭔데?”

“직접 확인하면 되시는데 왜 굳이 물어보세요……? 잠깐!”

수진이는 자기 혼자 말하다가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라일 님은 메시지 내용까지 다 알 수 있잖아요…….”

수진이는 뭔가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알 수는 있지만 그러면 사생활 침해잖아. 굳이 너희 둘이 뭐라고 대화하는지 엿보는 그런 변태적인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오! 멋있는데요?”

장수진은 씨익 웃으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나같이 개념 똑바로 잡혀 있는 사람이 이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천만다행이야.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약 내 능력을 가졌어 봐. 그러면 이 세상은 그냥 지옥 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합니다. 라일 님은 맘먹으면 정말 막무가내로 다 나갈 수 있는데 안 그러시는 거잖아요.”

칭찬이 계속되니까 민망해서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그래서 둘이 연락해?”

“합니다. 사실 매일 하고 있죠.”

“하하하하.”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수진이는 이상하게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밥이나 먹자.”

조만간 일수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그나저나 로드리고 카르텔 놈들이 여기 와서 물건을 싹 다 가져가 버렸다면서요.”

“어. 바보들. 함정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가져가더라.”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굳이 나눠준 거예요?”

“그래야 신나서 열정적으로 싸울 것 아니야. 가장 자신감에 차 있을 때 그때 녀석들의 데이터 쉴드를 모두 비활성화시켜서 깊은 절망감을 주는 거지.”

“하하. 철저하게 괴롭히겠다 이건가요?”

장수진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맞아. 그냥 없애는 것으로는 너무 싱겁잖아. 어떻게든 더 괴롭힐 거야.”

“오야봉!!!”

갑자기 류헤이가 나타나며 나를 불렀다.

“왜? 무슨 일이야?”

“누가 라일 님을 만나고 싶다고 계속 여기로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잡상인들은 그냥 알아서 돌려보내면 되잖아.”

“그게…….”

류헤이는 조금 곤란해 보였다.

“좀 지위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던데요? 군대도 이끌고 왔습니다.”

“……?”

류헤이의 말에 얼른 디오로 누가 나를 찾아왔는지 확인해봤다.

하하…….

요 녀석들 봐라?

그들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분노와 희열 그 모두가 솟구쳤다.

“왜……. 그러세요?”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장수진이 물었다.

“수진아. 같이 좀 가자. 알아서 재밌는 일이 생겨버렸다.”

수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말쑥한 양복은 입은 웬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류헤이 말대로 그의 뒤에는 군대들이 서 있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예. warrior 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멕시코시티 시장 에르난데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에르난데스.”

내가 악수를 건네자 그는 받아줬다.

순간 증오심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힘이 팍 들어갔다.

갑자기 강한 압력이 들어가자 에르난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그의 손을 쓰레기 버리듯 떨쳐냈다.

“무슨 짓이요?”

에르난데스는 불쾌해하며 물었다.

“별로 좋은 대화는 아닐 것 같으니까요. 그랬으면 굳이 군대를 이끌고 여기에 오지는 않았겠죠.”

“…….”

정곡을 찔렀는지 에르난데스는 나를 말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당신이 예상한 대로 그렇게 좋은 대화는 아닙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래서 시장께서는 저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당장 이 나라에서 떠나주시지요.”

에르난데스 본인은 위엄있게 말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 모습이 같잖았다.

다짜고짜 저렇게만 말하면 어쩌라는 건가?

“이유나 들어봅시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 멕시코 국민들을 선동하고 이상한 물건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찌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 마약 카르텔을 처리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시장님께서는 별로 그것을 바라고 계시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그럴 리가요. 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소. 단지 당신들이 멋대로 우리나라 일에 관여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거요.”

하!

진짜 입은 달렸다고 맘대로 말하는구나.

“이미 가르시아 대통령과 이야기가 끝난 일입니다. 그리고 시장님께서도 저희가 이 건물에 들어오도록 허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정말로 게임회사일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였소.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니 이건 엄연히 사기요. 허가를 취소하겠으니 어서 멕시코를 떠나주시오.”

“지랄하고 자빠졌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맘대로 허가해줬다 안 해줬다 하고 있어?”

“뭐요?!!!”

에르난데스는 불쾌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에르난데스.”

나는 이쯤 놀고 그만 모든 것을 밝히기로 했다.

시장은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흠칫했다.

“네가 누군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지요?”

에르난데스는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낌새를 보아하니 너도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은데?”

“……오늘 저는 당신과 처음 만났습니다.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아. 그러셔? 그럼 직접 알려주지. 네가 몬테레이 카르텔에게 밀고한 그 한국인 사업가가 바로 우리 아버지야.”

“!!!!!!!!”

에르난데스는 기겁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렇다.

이놈이 바로 우리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그 관료이다.

그때, 에르난데스 이 새끼는 모든 것을 다 몬테레이 카르텔에게 일러바쳤고, 결국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배신자라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이 녀석은 몬테레이 카르텔 편이었으니까.

순진했던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던 거지…….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친히 찾아와 주다니. 그렇게 먼저 당하고 싶었어?”

“너, 너…….”

녀석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어대며 입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내가 두렵기는 한가 봐?”

“허,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이 나라에서 꺼져!”

녀석은 결국 내 이성이 끊기게 만들었다.

퍼억-!

“끄아아아악!”

나는 녀석의 아구창에 주먹을 냅다 갈겼다.

에르난데스 녀석이 엎어지자 뒤에 있던 군대들이 나에게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수진아.”

“네.”

“저 군인 녀석들 왠지 익숙하지 않아?”

“!!!!!!”

수진이도 이제 뭔가를 눈치챈 것 같았다.

“설마……. 그놈들입니까?”

“어. 맞아. 인질 구출 작전 때 너희를 물 먹인 놈들이지.”

내 말에 수진이는 곧바로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는 걸로 봐서 많이 열 받은 거 같다.

“저놈들은 제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양보 못 합니다.”

“크큭. 그래. 맘대로 해라.”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방금 나도 수진이가 너무 무서웠다.

저렇게 열 받은 것은 처음 본다.

저놈들은 진짜 큰일 났다.

수진이는 우드득 뼈 소리를 내며 몸을 풀었다.

“이제 보니 그때의 얼굴들이 보이네요.”

순간 씨익 웃는 얼굴과 동시에 수진이는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뭐, 뭐해? 쏴버려!!”

탕-! 탕-!

멕시코 군인들은 수진이를 향해 곧바로 사격을 가했다.

단지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총을 쐈다는 것 자체가 이놈들이 얼마나 노답인지를 말해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녀석들이 저렇게 나오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어차피 데이터 쉴드가 막아주기 때문에 피해는 없고 녀석들을 공격할 명분을 얻어낸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총까지 쏴? 아주 죽여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장수진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인 것 같았다.

퍼억-!

“크학!”

수진이는 앞에 있던 군인의 총을 잡은 다음 발로 차서 그를 날려버렸다.

녀석은 여유롭게 총을 들며 내게 물었다.

“전원 다 마약 카르텔과 관련된 놈들인가요?”

“응. 전원이야.”

“그렇군요.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투두두두두두-!

수진이는 전부가 다 마약 카르텔과 연관됐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군인들은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탄을 다 소비하자 수진이는 들고 있던 총을 버리고 다른 총을 들어 다시 사격을 가했다.

녀석은 모두 섬멸하겠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투두두두두두-!

“끄아아아악!”

“이, 이런 미친!!!”

멕시코 군인들은 아비규환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젠장! 어서 공격해! 당하고만 있을 거야?”

지휘관처럼 보이는 놈의 지시에 다시 군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수진이를 조준했다.

“사격해!”

투두두두두두-!

이번에는 군인들 측에서 수진이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짧은 순간에 수천 발의 총알이 장수진에게 일제히 쏟아졌다.

튕-! 튕-!

데이터 쉴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 많은 총알들을 다 튕겨냈다.

“죽어!!!!”

군인들은 온 힘을 다해 장수진에게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수진이는 끄떡없이 서 있었다.

그 수많은 공격을 퍼부었지만, 데이터 쉴드는 작은 금조차 생기지 않았다.

수진이는 그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다 했어?”

녀석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제 내 차례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