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깊은 원한 (1)
띠리리리-!
에이든 대통령은 전화를 쳐다봤다.
[마이클]
“하아…….”
어떤 일로 전화를 했는지 뻔했기에 에디든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전화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건 딱히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통령……!”
마이클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통령도 아시다시피 지금 몬테레이 카르텔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그런데요?”
에이든 대통령은 백기완 대통령에게 배운 모르쇠 작전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대통령님.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십니까?”
마이클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에이든 대통령은 그에게 로비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에 말에 길 수밖에 없는 그였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있었다.
“마이클 씨야말로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겁니까?”
“뭐요?”
마이클은 황당했다.
“그 일을 누가 저지른 줄 아십니까? 바로 warrior입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당장 못 하도록 막으세요!”
마이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에이든 대통령에게 윽박질렀다.
“못합니다. warrior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요?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렇게 나오는 거요? 모든 것을 다 잃어봐야 정신을 차리겠소?”
마이클은 에이든 대통령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에 에이든도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이클 씨. 경고하건대 이 일에서 손 떼는 게 좋을 겁니다. warrior가 작정하고 마약 카르텔들을 박살 내려고 해요. 잘못하면 당신에게까지 그 화가 미칠 수 있습니다.”
“이봐! 대통령!!!! 정말 이럴 거요?”
“그렇게 계속 억지를 부리셔도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마이클 씨도 어서 정신 차리고 이 일을 지금이라도 정리하십시오.”
에이든은 무서울 게 없었다.
마이클보다 더 큰 조력자인 warrior가 뒤를 봐주기로 했다.
중국에게 1조 달러를 뜯어낸 그가 지켜주겠다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에이든. 당신은 이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할 거요.”
“그 말을 마이클 씨에게 반대로 전하고 싶군요.”
“하, 하하하핫!”
마이클은 실소했다.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내가 당신 없다고 일을 진행 못 할 줄 아오? 당신의 도움은 이제 필요 없으니 이만 끊겠소.”
통화는 그렇게 끊겼다.
“마이클…….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마는군.”
에이든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
‘마약왕.’
마약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로드리고에게 사람들이 부여한 칭호이다.
그는 멕시코와 남미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멕시코 사람들 상당수도 그가 가르시아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두려울 게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미국이 일부러 그를 내버려 두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많은 금융회사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도 그를 못 건드리고 있는데 그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그에게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warrior라고 하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등장해 마약 카르텔들을 타겟으로 삼았다고 한다.
녀석은 한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중국까지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그 무지막지한 놈이 이제는 자신들을 적으로 삼고 없애려고 한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게 바로 본인 때문이라는 것을 로드리고는 알게 되었다.
예전에 그는 한국인 사업가로부터 공장 하나를 뺏은 적이 있었다.
warrior가 바로 그 사업가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미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과거의 그 여파가 지금 엄청나게 커진 상태로 그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조사해서 알아보니 warrior는 이미 카를로스 카르텔과 페르난도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모두 그 사업가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산체스에게 warrior가 선전포고했다는 전화가 왔었다.
그는 산체스 선에서 그 일이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들려오는 소문은 몬테레이 카르텔이 완전히 전멸해버렸다는 소식뿐이었다.
몬테레이 카르텔은 마약 카르텔 안에서도 메이저에 속하는 거대 카르텔이었다.
게다가 몬테레이 카르텔은 라이언 금융회사가 뒤를 봐주고 있어 미국조차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몬테레이 카르텔이 하루 만에 warrior에게 전멸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타겟이 될까 봐 불안했다.
띠리리리-!
그는 갑자기 전화가 울려 흠칫했다.
전화 소리가 그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조심스럽게 전화를 확인했다.
[warrior]
그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뻔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는 계속해서 울려댔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에 전화를 받고 있지 않았다.
알아서 소리가 끊기길 기다렸는데 그대로 통화가 받아져 버렸다.
“받아 새끼야!”
“!!!!!”
로드리고는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뭘 피하고 있어? 안 받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천만의 말씀이다 이 자식아.”
“…….”
로드리고는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들었다.
“warrior…….”
“오냐 나다.”
warrior는 패기가 넘쳐흘렀다.
“반갑다. 로드리고. 드디어 너와 통화를 다 하게 되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덤비는 것이냐?”
“응. 잘 알고 있지. 마약왕 로드리고. 그리고 내 아버지를 죽인 원흉.”
“…….”
warrior의 분노가 서린 목소리에 로드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태연한 척했다.
“네 아비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다. 굳이 그걸 들추어내서 뭐 하자는 것이냐? 보상금을 줄 테니 그냥 피차 좋게 좋게 끝내는 게 어떻겠냐?”
“하하하하!”
warrior는 이 상황에 웃어댔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살기 비슷한 묘한 적의가 심어져 있었다.
“정말 말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왜 그걸 몰라서 망하고 마는지 몰라.”
warrior는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시발! 진짜 뭐가 어쩌고 저째?”
이제 그는 웃음기가 아예 사라진 채 완전히 격분하고 있었다.
“옛날 일을 굳이 들추어내서 뭐 하자고? 네놈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어. 지금도 우리 부모님만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야. 그런데 뭐라고? 사과는커녕 보상금을 줄 테니 그걸로 넘어가자고?”
“원하는 대로 주겠다. 뭐 이렇게 흥분하고 있어?”
로드리고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끼어들었다.
그게 더 warrior를 미치게 만들었다.
“닥쳐! 이 개새끼야!!!!”
warrior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깟 돈이면 다 해결될 거 같아? 네가 얼마를 준다고 해도 죽은 내 부모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이봐. 흥분하지 말고 우리 한번 제대로 된 협상을 해보자고.”
로드리고는 수습하려고 말을 걸었지만,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필요 없어. 이 개자식아.”
warrior는 단호하게 로드리고의 제안을 거절했다.
“목 딱 씻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고 말 테니까. 어디를 도망가도, 네가 어떤 짓을 해도 소용없을 거야. 의미 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려라.”
그렇게 warrior의 전화가 끊겼다.
로드리고는 암담함을 느꼈다.
이제껏 warrior의 타겟이 되면 호되게 당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차례다.
“하! 시발.”
로드리고는 코웃음을 쳤다.
“나 마약왕이야.”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이 몸을 물로 봐도 너무 물로 보고 있는 것 같군. 그래. warrior. 어디 한번 덤벼봐라. 이 마약왕 로드리고가 친히 너에게 맞서줄 테니.”
로드리고는 이를 바드득 갈며 혼잣말을 했다.
그는 이대로 warrior에게 당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로드리고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warrior를 잡을 생각이었다.
“이봐!!”
“네!”
그가 부르자 부하가 달려왔다.
“전 병력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전해라. 조만간 전쟁을 할 예정이니.”
“전쟁…… 말입니까?”
부하는 갑작스러운 명령에 당황했다.
“그래. warrior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해왔다. 몬테레이 카르텔까지 잡아서 계속 승승장구 하나 본데 아무래도 우리가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장갑차까지 준비해서 녀석들을 쓸어버릴 준비를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부하는 로드리고의 지시에 바로 힘차게 대답했다.
그를 오랫동안 모신 입장에서 로드리고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그 적을 반드시 섬멸할 것을 의미함을 부하는 알고 있었다.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로드리고 카르텔도 warrior와의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잠깐 수진이와 이야기를 하려고 녀석이 살고 있는 층에 왔다.
“후우……. 후우…….”
수진이는 개인적으로 몸을 풀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 잠시 하던 것을 멈추었다.
“계속 꾸준히 하는구나?”
“하루라도 쉬면 몸이 찌뿌드드합니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두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진다고요.”
“훗. 그래.”
열심히 하는 사람을 누가 안 좋게 보겠나?
솔직히 이렇게 계속 노력하는 수진이가 기특해 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맥주나 한잔할까?”
“좋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진이는 반색하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아하니까 갑자기 마시기 싫어지는데?”
“또 심술부리시네.”
수진이는 내 옆구리를 툭 치며 아양 아닌 아양을 떨었다.
“그럼 마무리 짓고 내가 있는 층으로 와.”
“알겠습니다.”
내가 조촐한 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수진이가 뒷정리를 마치고 왔다.
“근데 라일 님이 저와 맥주 한잔하시자고 하시고. 어쩐 일이세요?”
“고생했잖아. 이렇게 가볍게 한잔하면서 피로를 푸는 거지.”
“오. 웬일?”
수진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촤악-!
맥주캔이 시원하게 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좋네. 짠 해요.”
“그래.”
우리는 가볍게 맥주캔을 부딪친 다음 시원하게 들이켰다.
“캬아! 진짜 살겠네요.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보스.”
“크큭. 그러냐?”
“좋죠. 여기에 짭짤한 나초도 좋은 선택이고요.”
수진이는 나초를 들어 호쾌하게 입에 물어넣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래요?”
“나. 아까 로드리고에게 선전포고하고 왔어.”
내 말에 수진이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렇군요.”
“너한테 물 먹인 놈이기도 하지?”
“그렇죠. 개자식…….”
그렇게 말하는 수진이의 목소리에서 깊은 원한이 묻어나왔다.
“원래도 최선을 다했지만, 그놈만큼은 제가 철저하게 부숴버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