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가족만큼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2) (90/201)

89화. 가족만큼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2)

페르난도에게 협박하기 이전.

멕시코시티에서 대규모 전투를 하는 것은 솔직히 좀 부담되었기에 나는 녀석을 적당한 곳으로 유인하기로 했다.

그냥 오라고 하면 당연히 안 올 테니까 약점으로 잡을만한 게 필요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디오.”

[네.]

“페르난도한테 혹시 가족들이 있냐?”

[네. 아들과 부인이 있습니다. 여기 멕시코시티에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좋네. 주소 좀 보내줘.”

나는 곧바로 무전을 통해 부하들을 불렀다.

“류헤이.”

“예.”

“첫 번째 임무다. 타겟들의 명단과 주소를 보낼 테니까 잡아 놓고 있어. 단! 심하게 다루거나 죽이지는 마.”

“예. 알겠습니다.”

류헤이는 부하들을 이끌고 페르난도의 가족을 잡으러 갔다.

나는 녀석의 가족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죗값은 엄연히 페르난도만 치르면 된다.

알아보니 녀석의 아들은 페르난도가 하는 짓을 증오하고 있었다.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녀석의 미래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

난 페르난도와 녀석의 부하들을 유인할 구실만 만들면 그것으로 됐다.

나는 류헤이카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디오를 통해 지켜봤다.

녀석들은 내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조금은 한적한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류헤이카이들은 조심히 동태를 살폈다.

다섯 명의 경비들이 아파트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류헤이는 내게 무전을 보냈다.

“보스. 입구에 경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놈들은 카르텔 놈들이니까 그냥 제거해버려.”

“예. 알겠습니다.”

류헤이는 곧장 부하들에게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부하들을 고개를 끄덕이며 경비들에게로 다가갔다.

경비들은 동양인들이 갑자기 자기들에게 다가오자 당황했다.

그들도 들은 것은 있었기에 아무래도 내 부하라는 것을 눈치챈 듯 보였다.

“머, 멈춰!!!”

“오지 마라! 오면 쏜다!”

경비들은 류헤이카이들에게 총을 겨누며 외쳤다.

하지만 녀석들은 피식하며 경비들에게 유유히 다가갔다.

“경고한다. 멈춰 서라!!!”

“뭐래? 병신들이.”

야쿠자들은 자연스럽게 품에서 회칼을 꺼내 들었다.

“우린 총보다는 이게 더 체질에 맞아서.”

“뒤져버려 이 개새끼들아!!!!!”

투두두두두두두-!

경비들은 결국 야쿠자들에게 총을 갈겼다.

조용한 거리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아악!!!!”

갑작스러운 총격에 곳곳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팅-! 팅-!

이런 급박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야쿠자들은 평온하게 경비들에게 다가갔다.

데이터 쉴드는 총알은 너무나도 쉽게 튕겨내고 있었다.

“이런 망할-!!!”

경비들은 야쿠자들이 총알 세례에도 끄떡없이 다가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푸하하하하하하!!! 진짜 총알을 막아낼 줄이야!”

야쿠자들은 데이터 쉴드의 성능에 감탄하며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들은 이내 스프린트 자세를 취했다.

“뭐, 뭐 하는 거야?!!”

“그러면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해볼까?”

야쿠자들은 경비들에게 돌진해왔다.

“우, 우앗!!!!!”

빠른 속도로 경비들에게 다가간 야쿠자들은 높게 뛰어올라 그들을 덮쳤다.

야쿠자들은 경비들을 뒤로 넘어뜨린 다음 곧바로 칼로 그들의 온몸을 쑤셔댔다.

“죽어라. 이 자식들아!!!”

“하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최고네!!!”

경비들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머지 일원들도 아파트 쪽으로 걸어왔다.

류헤이는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타겟을 잡아라.”

“네!”

류헤이카이들은 아파트로 빠르게 진입했다.

타켓의 위치는 이미 그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출입구 다 막아!!!”

데이터 쉴드가 아파트구조와 타겟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야쿠자들은 신속하게 타겟을 한쪽으로 몰아갔다.

“여깄다!!!”

결국 야쿠자들은 복도에서 페르난도의 아들과 부인을 마주쳤다.

“쳇!”

아들은 엄마를 데리고 반대편으로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일원들이 신속하게 그 길도 막아섰다.

“워. 워. 어디를 가시려고?”

“망할…….”

페르난도의 아들은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려댔다.

“순순히 잡혀라. 그러면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설마 페르난도 때문이냐?”

아들은 페르난도를 아빠가 아닌 것처럼 대했다.

“난 페르난도와 인연을 끊은 지 이미 오래야. 그러니까 제발 괴롭히지 좀 말라고!!!”

“너는 손절했을지 몰라도 페르난도는 아닌가 봐. 너를 인질로 잡으면 미쳐서 눈 돌아갈걸?”

“…….”

페르난도의 아들은 가만히 야쿠자들을 노려봤다.

“너희들 대체 누구야?”

“위대하신 warrior의 부하들이지.”

“뭐?!!!!”

아들은 놀라며 질겁했다.

“설마 warrior가 페르난도를 타겟으로 삼은 거야?”

“그래. 따라서 녀석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분께서는 너무나 자비롭게 너희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순순히 잡히라고.”

아들은 야쿠자의 말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녀석은 옆에 있는 엄마의 눈치를 봤다.

이미 그녀는 체념하고 있는 상태였다.

“잡아가세요…….”

아들은 포박하라고 순순히 팔을 내밀었다.

“잘 선택했어. 저항해봤자 어차피 맞기만 더 할 테니까 말이야.”

야쿠자들은 아들과 부인의 팔을 묶은 다음 끌고 갔다.

그들은 인질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나머지 카르텔 일당들은 싹 다 정리했다.

따로 경찰들은 오지 않았다.

이미 가르시아 대통령과는 알아서 하겠다고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류헤이카이들은 페르난도의 아들과 부인을 내게 끌고 왔다.

“만나서 반갑다. 페르난도의 아들.”

“그딴 놈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말아 줄래요?”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당돌하게 나왔다.

나는 녀석의 패기가 재밌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 같아도 그딴 놈이 아빠라면 싫겠다.”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이나 말해요. 원하는 게 무엇이죠?”

“페르난도의 목숨.”

내 말에 부인은 흠칫하며 놀랐다.

아들 녀석은 그에 비하면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면 하려던 일 계속하시죠. 순순히 응해줄 테니까요.”

“그래도 엄연히 네 아빠인데 아무 감정도 없는 거야?”

“그게 녀석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높은 기개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속은 짧게 감탄했다.

“온갖 흉악한 짓을 하고 다녀서 많은 사람들이 녀석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도 저는 다 알고 있어요. 아마 당신도 그중 한 명이겠죠.”

“맞아. 그놈이 나를 걸고 내 아버지를 협박했고 결국에는 내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어.”

“……그랬군요.”

갑자기 녀석은 내게 무릎을 꿇으며 절했다.

“페르난도를 대신해서 사죄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녀석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용서를 빌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그리고 네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페르난도를 가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페르난도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녀석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저라도 이렇게 당신에게 사과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녀석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떨림이 들려왔다.

10대 소년의 말이 내게 이렇게 깊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야……. 너 이름이 뭐냐?”

“티아고입니다.”

“티아고.”

“네.”

“난 페르난도를 포함해 마약 카르텔들을 모조리 섬멸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어.”

“!!!!!!!”

티아고는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따라서 페르난도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을 거야. 그건 받아들여라.”

“……알겠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그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

내 말에 녀석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죽도록 노력해서 꼭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를 빈다. 내가 세상을 바꿔줄 테니까. 너는 페르난도와 다른 놈이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라.”

“…….”

녀석은 눈물을 참으려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사…… 합니다…….”

티아고는 힘겹게 입을 떼며 말했다.

나는 류헤이에게 손짓해 사진을 찍도록 지시했다.

이제 페르난도를 유인할 차례였다.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페르난도는 분노를 내비치며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디오를 통해 알아보니 녀석은 정말로 자기 가족이 잡혀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야. 이거 장난 아니니까 헛짓거리하지 마. 정말로 네 아들과 부인을 지금 내가 붙잡고 있으니까 말이야.”

녀석은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부하를 통해 확인했다.

쿵-!

전하기 너머에서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소…… 보내라…….”

결국 결심한 듯 녀석은 입을 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네 핸드폰으로 보낼 테니까 바로 시간 맞춰서 오라고. 안 오거나 뻘짓거리 하면 알고 있지?”

“……알았다.”

“그럼 거기서 보자.”

나는 페르난도 녀석과 통화를 끊었다.

“장수진!”

“네!”

“전투 준비한 다음에 이동하자.”

“예!”

수진이는 내가 지시한 대로 빠르게 행동했다.

병력의 30%는 여기 남아 건물을 지키는 것으로 했고, 나머지 70%가 전투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가 페르난도 일당들을 부른 곳은 사막과 같은 황무지였다.

건물과 나무 같은 것들이 하나 없는, 광활하게 뻥 뚫린 곳이었다.

“여기서 전투한다고요?”

장수진은 어이없어하며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왜?”

“이제껏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몸 숨길 데 하나 없는 이런 운동장 같은 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스포츠 하는 것도 아니고 뭡니까?”

“맞아. 스포츠야.”

“네?”

“예전 로마 시대 검투사처럼 그냥 뒤돌아설 것 없이 화끈하게 싸우는 거지.”

“…….”

장수진은 자신이 입을 계속 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경악하며 나를 바라봤다.

“턱 빠지겄다. 뭘 그렇게 놀래?”

“진짜 저는 라일 님의 생각을 알 수가 없네요.”

“언제는 알았었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게 편할 거야. 그러면 일이 다 해결되어 있을 테니까.”

“……네.”

이미 나를 많이 경험해본 수진이는 이 말을 몸소 체감하고 있어서 그런지 군말 없이 따랐다.

우리는 페르난도 녀석들이 올 때까지 그대로 앉아서 기다렸다.

멕시코의 날씨는 너무 더웠다.

게다가 지금 그늘 하나 없는 사막 한복판에 있어서 더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끄떡없었다.

내열 기능이 있는 데이터 쉴드 덕에 우리는 모두 쾌적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내열 기능을 이렇게 써먹을 수도 있다니……. 정말 우리가 어마어마한 것을 개발했어요.”

장수진은 새삼 감탄했다.

“아직 감탄하기에는 이르지. 더 좋은 것을 개발해야 해. 이쯤에서 내뺄 생각은 하지 마라.”

“안 뺍니다. 저한테 좀 상냥하게 대해주시면 안 돼요?”

“네가 이렇게 자꾸 기어오르는데 어떻게 그래?”

“하아……. 정말.”

수진이는 체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모습에 피식하고 있는데 도로에서 여러 대의 차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온 것 같네.”

“그렇네요.”

나와 장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하들을 불렀다.

“애들아. 손님들 모실 준비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