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가족만큼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1)
“곧 착륙하겠습니다.”
비행기 내 알림이 들렸다.
나는 풀었던 안전 벨트를 다시 착용했다.
지금 나는 멕시코로 가는 중이었다.
이 비행기는 가르시아 대통령이 특별히 마련해준 거였다.
나를 비롯해 드미트리 패밀리, 류헤이카이 일원들이 여기에 타고 있었다.
난 몬테레이 패밀리가 출입관리국과 공항 직원, 그리고 관공서 직원들을 돈으로 매수한 상태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신상정보 같은 거야 조작하면 끝난다.
녀석들은 그냥 돈을 기부한 거나 다름없었다.
쿠웅-!
약간의 떨림과 함께 비행기가 지상에 바퀴를 댔다.
이윽고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다음 문이 열렸다.
“다들 잘 들어.”
나는 데이터 쉴드 2차에 내장된 무전기를 통해 부하 놈들에게 전했다.
“우리를 이송할 차량이 오면 곧바로 그것을 타고 디씨소프트 멕시코 지사로 향한다. 거기서 일단 대기할 거야.”
“네!!!”
다들 우렁차게 대답해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쓸데없이 힘이 팍 들어가 있다.
“좀 작게 말해줄래? 귀청 떨어지겠으니까.”
“네!”
그래도 크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보스.”
그때 드미트리가 나를 불렀다.
“어. 왜?”
“근데 이렇게 대낮에 대놓고 돌아다녀도 되는 겁니까? 저희는 러시아인이고 류헤이카이 놈들은 일본인이라 몰려다니면 엄청나게 눈에 띌 건데요?”
“상관없어. 오히려 그냥 눈에 띄게 다녀.”
“네?”
드미트리는 내 말에 황당해했다.
“보스.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러면 이제껏 왜 이렇게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고 몰래 온 것입니까?”
녀석은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말이 많네.’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나는 자비로우니 친절하게 설명해줘야겠다.
“그러면 시작하기 전부터 소문 다 나면 되겠냐? 녀석들이 가만히 잘도 있겠다. 그랬으면 우리가 쓸 건물은 이미 테러로 진작에 폭파되고도 남았을걸?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멕시코에 도착했으니까 상관없어.”
“아…….”
“그리고 이런 서프라이즈가 재밌잖아. 어떠한 암시도 없었는데 우리가 여기 멕시코에서 갑자기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을 알면 아주 난리 날 거다.”
“역시 보스는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그러니까 그냥 나 믿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오케이?”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가서 또 불필요하게 크게 대답한다.
진짜 귀 나가겠다.
우리는 미리 부탁했던 버스들을 타고 박이나가 구입해 준 건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나는 페르난도 녀석에게 정보를 뿌려놨다.
곧 녀석은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산체스 녀석에게 헐레벌떡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같잖은 놈…….
페르난도.
녀석은 오래전부터 몬테레이 카르텔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페르난도는 당시 몬테레이 카르텔 보스인 로드리고가 우리 아버지를 협박할 수 있도록 나에 대한 정보를 캐서 제공해준 놈이었다.
그때 녀석은 로드리고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보스. 가족만큼 좋은 인질이 없습니다. 녀석에게는 아끼는 외아들이 있다지요.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 아주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바로 넘어올 것입니다.’
진짜 가족을 건드는 놈들은 세상 추잡하고 더러운 새끼들이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비아냥거리면서 비하하다니.
내 어찌 녀석을 가만히 두겠는가.
나는 카를로스 다음으로 녀석을 타겟으로 지목해 몬테레이 카르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되도않는 회의나 하고 앉았다.
알아서 발악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녀석들이 어떻게 대비하든 나는 차근차근 차례대로 한 명씩 없애버릴 생각이다.
우리는 디씨소프트 멕시코 지사에 도착했다.
건물은 제법 쓸만해 보였다.
“애들아. 내려라. 여기가 너희들이 생활할 공간이다.”
“예.”
다들 훈련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녀석들.
쓸데없이 목소리는 크지만 나름 쓸만한 것 같다.
나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앞에 드미트리 패밀리와 류헤이카이를 보고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장수진을 발견했다.
난 미리 가서 준비해 놓으라고 수진이를 먼저 보내놨었다.
“뭘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애들을 쳐다보냐?”
“지금 이 그림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러시아와 일본 깡패 놈들이 멕시코로 원정 전투를 치르러 왔다는 게요. 그것도 거점은 대한민국 최고 게임회사의 지사.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다 내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 거지.”
“……네. 맞습니다.”
방금 좀 반응이 늦었는데?
“이제부터 같이 전투에 참여해야 하니까 익숙해져. 녀석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네 말을 듣고 따르라고 지시한 상태니까 맘 편히 다루면 돼. 개기거나 마음에 안 드는 짓거리를 한다면 기강을 잡기 위해 좀 패도 되고.”
“알겠습니다. 또 그런 건 제 전문이죠. 맡겨주십시오.”
권력을 주자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돋는 장수진이였다.
“건물 안내나 해.”
“네.”
부도난 건물이고 안 쓴지 좀 돼서 을씨년스럽기는 했다.
퀴퀴한 냄새도 났고…….
그래도 적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가 지내야 하니까 적당히 구색은 갖춰 놓게 했다.
청소업체를 불러 우리가 지낼 층들은 싹 다 청소해 놨고 침실과 샤워 시설도 갖춰 놓았다.
고등학교 기숙사 같은 느낌인데, 어차피 드미트리 녀석들이나 류헤이카이에게는 원래 생활했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 지내는 데는 별문제 없을 거다.
내 방도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의 집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방을 둘러보는데 나는 갑자기 장수진의 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네 방도 안내해봐.”
“네?”
수진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얘 방을 만들기 위해 돈이 좀 들어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를 줄 알았냐?
어디 한번 그 꼬락서니나 보자.
“빨리 안내 안 해?”
“……네.”
수진이의 방을 보고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너 혼자 다른 곳에서 생활하냐?”
알록달록한 벽지에 레이스 달린 커튼하며 무슨 공주님 방이 따로 없다.
수진이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너……. 여기 전투하러 온 거 맞냐?”
“험한 일 하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수진이는 내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울상이 된 표정을 보자 또 내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 어린 나이에 고생 많은데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그냥 자비롭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대충 짐 정리가 끝나가는 것 같아 나는 모두 한곳에 모으기로 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무전을 했다.
“다들 정리 끝났으면 신속하게 2층 강당으로 내려와라. 거기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줄 테니까 말이야.”
“예!”
다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여 5분 만에 200명 전부가 다 강당에 모였다.
군기 하나는 진짜 바짝 들었다.
“현재 몬테레이 카르텔 쪽에서 우리가 온 것을 눈치챈 상황이다. 곧 이곳으로 공격이 들어오겠지.”
내 말에 녀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주목! 이야기 안 끝났어! 다시 한번 더 이러면 혼난다?”
한 마디에 강당 안은 조용해지며 긴장감이 싹 돌았다.
나는 만족스럽게 녀석들을 쳐다봤다.
“그래. 이렇게 하란 말이야. 아무튼! 이어가자면 난 여기서 녀석들과 싸울 생각은 없어.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라 민간인들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한적한 곳에서 녀석들을 조질 생각이야. 알겠어?”
“네!”
짧고 굵은 외침이었다.
이러니까 무슨 내가 군대 사단장이 된 느낌이다.
재밌기는 하네.
감탄은 이쯤하고 다시 지시를 이어갔다.
“데이터 쉴드는 항상 활성화시켜 놔라. 물론 내가 공격이 있을 것 같으면 미리 알려주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잖아.”
“네!”
“미리 사용해봐서 알겠지만, 데이터 쉴드가 활성화되어 있는 이상 너희가 다칠 일은 없어. 그러니까 마음 놓고 싸우면 돼. 알겠지?”
“네!”
“좋아! 그러면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전투할 준비를 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녀석들은 비장하게 외쳤다.
이러니까 무슨 영화 찍는 거 같기도 하다.
“오-! 카리스마 넘치는데요?”
수진이는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또 까분다?”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고요!”
꿀밤을 때리려고 하자 녀석은 황급히 방어하며 말했다.
억울해하는 표정을 보자 진짜인 것 같아서 넘어가기로 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너도 좀 쉬어.”
“예.”
수진이를 보내고 나는 방으로 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하아…….”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복수를 할 것이다.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이곳 멕시코는 부모님이 끔찍한 일을 당했던 곳이다.
그곳에 내가 이렇게 다시 왔다.
이 비극의 땅…….
더 이상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확고했다.
마약 카르텔은 이제 멸망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굳은 의지를 다졌다.
***
멕시코 몬테레이
페르난도는 부하들을 모아 한창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총알과 폭탄들을 부지런히 트럭에 실었다.
띠리리리-!
그때 페르난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다짜고짜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들려왔다.
“너……. 누구냐?”
“warrior지 누구겠어?”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하! 간댕이가 부으셨군. 친히 죽으러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기가 막혀서 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다.”
“그래? 많이 웃어둬. 이제 다시는 웃을 일 없을 테니까.”
“푸하하하하하. 가소로운 것.”
페르난도는 상대를 더 약 올리기 위해 일부러 더 과장되게 웃었다.
“역겨운 웃음소리는 그만 치우고. 한 가지 공지하려고 전화했다. 주소를 보낼 테니 거기로 와서 싸우자.”
“하! 미친 새끼. 네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우리가 적이 제안하는 장소에 순순히 가서 싸워줄 정도로 바보라고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래? 바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일 거 같은데?”
“뭐?”
페르난도는 warrior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흐흐흐.”
warrior는 끌끌 대며 비웃었다.
“메시지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페르난도는 얼른 핸드폰을 귀에서 떼 어느새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 이……. 개, 개새끼가!!!”
페르난도는 엄청난 분노로 인해 얼굴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warrior가 보낸 사진에는 페르난도의 아들과 부인의 사진이 있었다.
그들은 꽁꽁 묶인 채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었다.
페르난도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표정 좋네.”
warrior는 마치 그런 그를 현장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비웃었다.
“너 이 시발새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페르난도는 온 힘을 다해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제껏 수많은 사람의 가족을 건들지 않았었나?”
warrior는 싸늘하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들 온전히 보고 싶으면 내가 오라는 곳으로 순순히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