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전투 채비 (1)
“예?!!”
박이나는 역시나 내 말에 놀랐다.
“왜 하필 멕시코에…….”
그녀가 이러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좋은 투자할 곳도 많은데 굳이 멕시코에 우선적으로 지사를 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죠?”
“……그러면요?”
“전에 제가 부모님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세요?”
“서, 설마!”
놀라는 것을 보니 내가 하려는 작업을 눈치챈 것 같다.
“디씨소프트 멕시코 지사는 마약 카르텔들을 없애기 위한 본진이 될 것입니다.”
“…….”
박이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일 씨. 제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그들이 고위 관료들과도 결탁하고 있고 규모도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미군과도 교전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들었고요.”
“맞아요. 잘 아시네요.”
“설마 전쟁이라도 하실 생각이세요?”
“필요하다면 할 겁니다.”
“…….”
다시 말이 없어지는 박이나였다.
그녀는 내 말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많이 당황스럽죠?”
“솔직히 아니라고는 말 못 하죠…….”
당연하다.
그녀가 이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녀는 지금 회사 대표로서, 판매가 아닌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지사를 세우는 것을 허가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녀로서는 많은 생각이 들 것이고 이걸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의 뜻은 확고했다.
나는 그녀를 설득시키기로 했다.
“이나 씨. 많은 점이 걱정된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데 거기에 관여한다는 게 많이 두려우시겠죠.”
“네……. 사실 그래요. 제가 이런 것까지 짊어져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박이나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오히려 나는 그게 좋았다.
“제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회사를 이용하려고 하는 거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하지만, 비단 이것은 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녀에게 호소했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번 카르텔 소탕 작전이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요.”
“그럴 거라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 같아 걱정이네요…….”
박이나의 목소리는 슬픔이 묻어나왔다.
마음이 많이 여린 그녀였다.
“다칠 사람은 오직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거기에 동조했던 사람들뿐일 겁니다. 절대 다른 피해자는 나오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는 장담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으세요?”
“네. 무조건 그렇게 할 겁니다. 저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
나는 박이나가 차분히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박이나는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멕시코 지사를 우선적으로 세우겠습니다. 부디 하고자 하신 일 잘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확고했다.
“예. 그 선택 후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디씨소프트의 명성은 더 올라갈 것이니까요.”
“네. 저도 이왕 결심한 거 최선을 다해 라일 씨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제 멕시코 대통령에게 허가를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에 다시 연락하죠.”
“예.”
박이나와 통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디오를 불렀다.
“디오!”
[네. 라일 님.]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 좀 하자.”
[네. 바로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발신자 표시는 ‘warrior’라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떠신가요?]
“좋아. 그렇게 해.”
[예.]
뚜두두두-! 뚜두두두-!
신호음이 좀 길었다.
아무래도 전화를 받을지 안 받을지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 분명 알고 있을 테니 결국에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보세요.”
결국 멕시코 대통령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warrior입니다.”
“일단 전화를 받긴 했지만……, 당신이 정말 그 warrior라면 저에게 증거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험난한 일을 많이 당했는지 쓸데없이 의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나?
“좋습니다. 혹시 아이튜브 영상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기를 맘대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님 근처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는 대통령 주위에 있는 공기 데이터들을 전기 데이터로 전환시켰다.
“……예. 확인했습니다.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많이 무서웠는지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warrior 님. 제게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하셨습니까?”
“가르시아 대통령님.”
나는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친근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근절할 생각으로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네?!!!”
가르시아 대통령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가, 갑자기 왜 마약 카르텔을요?”
“싫으신가요?”
“싫다마다요!”
대통령은 황급히 대답했다.
“당연히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럽니다.”
“제 부모님이 마약 카르텔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아…….”
그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아마 모든 것이 납득됐을 거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약 카르텔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니까.
“부모님의 복수도 하면서 그 인류의 해악인 존재들도 전부 없앨 생각입니다.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정확히 어떤 협조를 원하시는지 제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제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인 디씨소프트의 멕시코 지사를 세울 생각입니다. 명목상은 그러지만 사실 그곳을 마약 카르텔들을 없앨 본거지로 만들 생각이죠.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
박이나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 대통령도 많이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설득할 차례다.
“저와 중국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가 통하겠군요. 저는 놈들을 충분히 박살 낼 수 힘이 있습니다. 녀석들에 대한 정보는 이미 다 파악해 둔 상태고 무기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카르텔 녀석들과 교전을 하는 만큼 저희도 많은 피해를 감당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해 하나 없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르시아 대통령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다 만반의 준비를 해 놨으니까요.”
“…….”
내 확신에 찬 목소리에도 대통령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여기에 난 쐐기를 박기로 했다.
“가르시아 대통령님. 딸의 복수를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내 말에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저도 가족을 녀석들에게 잃은 사람으로서 대통령님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 분노와 슬픔은 정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
“그 녀석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입니까? 가족을 죽인 원수들이 그렇게 계속 또 다른 누군가의 가족들을 죽이면서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실 겁니까?”
나의 자극에 가르시아 대통령은 마침내 닫았던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제 딸 그라시아는 마약 카르텔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르시아 대통령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와 슬픔, 그 모두가 묻어났다.
“녀석들은 제 딸을 강간한 다음 나체로 길바닥에 버려두었습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눈물이 나옵니다.”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가 제게는 지옥입니다. 딸 아이만 생각하면 돌아버릴 지경이니까요. 제가 그놈들을 어찌 가만둘 수 있겠습니까? 당장 쓸어버려야 속이 풀리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회사가 멕시코에 지사를 만들 수 있도록 허가를 해 주십시오.”
“허가하겠습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단호한 목소리로 만들었다.
“부디 제 딸의 원수도 갚아주시고 이 멕시코를 그놈들의 손아귀에서 구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제 곡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통령의 허가도 받아냈다.
***
연천
데이터 쉴드 연구소 옥상
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곧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예정인 데에 비해 세상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 이질감이 상당히 이상하게 다가왔다.
곧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떨림이 있었다.
“이라일.”
그렇게 여러 감정에 빠져 있는데 어느새 옥상에 올라온 일수가 나를 불렀다.
“왔냐?”
“이야~ 날씨 좋네.”
일수도 구름이 예쁜 푸른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이러니까 고등학교 때 생각나네?”
“그러게.”
일수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 옥상에 자주 올라가 같이 대화를 많이 나눴다.
거기서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들자던 다짐을 하기도 했었지.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런 삶을 살고 있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일수는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하하하. 너 같은 친구를 둔 난 참 복이 많아. 네 덕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꿈들이 현실로 이루어졌잖아.”
“하하하하하. 진짜! 고등학생 때는 정말 이게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우리는 이후로도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 웃고 떠들었다.
간만에 녀석과 가져보는 여유였다.
너무나 행복했다.
“야. 너 근데 연애할 생각은 없냐?”
갑자기 일수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애는 뭔 연애야?”
“이제 원하는 꿈들도 이뤘으니까 사랑도 해봐야지. 삶이 너무 피폐한 거 아니야?”
“그렇게 피폐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은 해.”
“오!”
일수는 내 말에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요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도 있냐?”
녀석의 표정이 왠지 기분 나빠서 좀 골려주기로 했다.
“응.”
“누구?”
“장수진.”
“야!!!!”
일수는 바로 정색하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자식. 나를 연적으로 둘 생각이야?!!!!”
“농담이야. 수진이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안심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 바로 그만두기로 했다.
농담이라고 하니 바로 일수의 표정이 풀렸다.
진짜 콩깍지가 제대로 쓰였나 보다.
“박이나는 어때? 난 너가 박이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
일수는 그러면서 혼자 피식 웃었다.
뭔가 그 웃음이 기분 나빴다…….
“뭐냐 그 웃음은?”
“아니야. 그냥.”
그러면서도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한번 생각은 해봐. 박이나 괜찮은 사람이잖아.”
괜찮긴 하지.
배울 점도 많고.
근데 애는 갑자기 왜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거야?
“이제 다른 대화나 하…….”
띠리리리-!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박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