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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복수는 나의 것 (3) (76/201)

75화. 복수는 나의 것 (3)

콘스탄틴 알렉세예비치 멘델레예프

러시아의 대통령답게 그는 엄청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기백만큼은 백기완 대통령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 또한 그에 못지않은 기백을 내뿜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warrior.”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투적인 인사말이 오갔다.

“앉으시죠. 이왕 러시아에 온 거 러시아식 커피를 한번 드셔보겠습니까?”

“좋죠.”

그 말을 한 것을 바로 후회했다.

왜냐하면 잼이 들어있는 커피가 나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커피를 이렇게 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이것을 보게 될 줄을 몰랐다.

상대방이, 그것도 러시아 대통령이 준 커피를 안 마실 순 없고, 또 내가 그렇게 먹겠다고 말했으니 어쩌겠나.

난 눈 딱 감고 커피를 한 입 맛봤다.

근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맛이……. 좋은데요?”

“하하하. 그러신가요? 다행이네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질색하기도 하거든요.”

“하하. 솔직히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그대로 맛있네요.”

“하하하하.”

진짜로 웃겨서 웃는 건지 아니면 멋쩍어서 웃는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웃음이 오갔다.

“러시아에는 왜 오신 겁니까?”

나는 아까 여기에 오면서 FSB 국장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설명을 했다.

레브 국장과는 달리 콘스탄틴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렇군요. 부디 우리 러시아 땅에 함부로 들어온 그 개념 없는 놈들을 확실하게 응징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오히려 그는 화끈하게 나왔다.

“대통령님께서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걱정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위대하신 warrior 님께서 책임지고 처리하신다는데요.”

“하하하하하하.”

이 아저씨.

쾌남이다.

일단 지금까지는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제가 묻겠습니다. 한국에 스파이들은 왜 보내셨습니까?”

난 일부러 대놓고 뼈가 있는 말을 했다.

콘스탄틴 대통령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예쁜 여성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설렜겠지만, 중년 아저씨가, 그것도 러시아 대통령이 이 말을 하니 좀 섬뜩하게 들렸다.

“하, 하하……. 관심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싫으신가요?”

“아니요. 싫지는… 않죠.”

내 반응에 콘스탄틴은 희미하게 끌끌 대는 웃음소리를 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그건 warrior 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국 때문이 더 컸습니다. 녀석들이 warrior 님께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거든요.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미국의 일에 더 민감합니다. 일종의 라이벌이랄까요? 저도 에이든 대통령처럼 한국을 방문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하하하. 재밌군요.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한테는 뒤처지면 안 된다 이건가요?”

“냉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알력싸움이지요.”

자칫 불쾌할 수도 있는 내 발언에도 여유 있게 대답하는 콘스탄틴 대통령이었다.

내공이 엄청나다고 해야 할까?

“에이든 대통령은 저에게 귀화를 제안하더군요. 중국도 그랬었죠. 대통령님께서도 저에게 귀화를 제안하실 생각입니까?”

난 한번 그에게 돌직구를 던져보았다.

“솔직히 그걸 바라고는 있습니다. 누가 바라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warrior 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억지로 추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냥 저희는 warrior 님과 친교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태도는 일단 합격이다.

이전의 시건방졌던 놈들과는 아예 다르다.

콘스탄틴 대통령은 내가 바라는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했다.

“그렇군요. 아쉽겠지만 저는 귀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예. 아까도 말했다시피 warrior 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저희도 억지로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솔직히 실망했을 텐데도 여전히 신사답게 말하는 콘스탄틴 대통령이었다.

드미트리 패밀리도 그렇고, 나는 러시아와 좀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귀화할 생각은 없지만, 대통령님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영광입니다.”

콘스탄틴 대통령은 반색하며 말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 외교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콘스탄틴 대통령은 정말로 나랑 친분을 쌓을 목적으로만 대화하려 했다.

그게 오히려 고도의 작전일 수도 있겠지만, 친해져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그냥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다른 나라에도 백기완 대통령 같은 존재가 있다면, 심지어 그게 러시아 대통령이라면 더할 나위 없으니까.

“대통령님과 대화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군요.”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러게요. 저도 warrior 님과 대화를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제 슬슬 카르텔 놈들과 한바탕할 준비를 해야 해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어서 가보십시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끝까지 나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나를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전의 안하무인 격인 사람들과는 아예 결이 달랐다.

그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아닙니다. 나중에 여유롭게 날 잡아서 또 만나기로 하죠.”

“하하하하하. 좋습니다.”

“그리고 카르텔 놈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조용히 알아서 처리할 테니.”

“알아서 맘대로 하십시오. 저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콘스탄틴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거기에 피식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카를로스 님. 이곳입니다.”

부하가 그에게 눈앞에 있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짜식들. 노는 것답게 누추한 곳에서 생활하는군.”

카를로스는 코웃음 치며 비아냥거렸다.

“동태를 살펴봐.”

“예.”

카를로스의 명령에 부하는 망원경을 꺼내 드미트리 패밀리의 아지트를 감시했다.

부하가 창문 틈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그들은 술판을 벌리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파티를 하고 있는데요?”

“하! 나! 이 새끼들. 우리 비트코인을 가져다가 아주 즐겁게 펑펑 쓰고 있나 보군. 신세 좋네. 개 같은 놈들.”

분노로 인해 카를로스의 이마에는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그는 드미트리 패밀리에 대한 화가 도저히 가시질 않아 그들을 친히 없애버리려고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다.

카를로스 카르텔은 드미트리 패밀리가 많은 양의 마약을 거래하기를 원해 좋다고 빚까지 져가며 물량을 다 확보해 놨었다.

어차피 거래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빚을 갚고도 돈이 엄청 남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웬걸.

녀석들에게 돈을 못 받은 것은 물론 원래 가지고 있던 비트코인마저 녀석들이 가져가 버렸다.

재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비트코인이 다 없어진 마당에 빚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들은 경제적 타격이 막심했다.

궁지에 몰린 카를로스는 어떻게 해서든 드미트리 패밀리에게 돈을 다시 받아내야만 했었다.

그래서 카를로스는 녀석들의 정보를 캤다.

하지만 이상하게 드미트리 패밀리에 대한 정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유능한 해커들을 고용해 다 뒤졌는데도 누가 의도적으로 막아놨는지 쥐꼬리만 한 정보 하나 얻을 수 없었다.

가지고 있던 돈이 정말 아예 바닥나 버렸기에 카를로스는 기를 쓰고 드미트리 패밀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결국 그들은 정보를 얻어냈고, 중국 국경을 넘어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녀석들이 희희낙락거리면서 파티나 벌이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머리꼭지가 안 돌아가고 버티겠는가.

카를로스는 전부 다 찢어 죽여버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전부 다 사살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

차분하게 말하는 카를로스였지만 그 말 안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려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예. 알겠습니다.”

카를로스의 명령에 조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드미트리 패밀리의 아지트로 접근해나갔다.

그들은 입구 근처까지 빠르게 진입했다.

그런데 입구에는 경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다.

“이 새끼들. 경비까지 파티에 참여하고 있고 아주 신났네 신났어. 누구는 손가락만 빨고 있는데 말이야…….”

“개자식들. 다 죽여버리겠어.”

카를로스 카르텔 조직원들은 드미트리 패밀리가 경비까지 없이 허술하게 있자 어이가 없었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드미트리 패밀리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카르텔들은 모두 거침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1층에는 입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반면, 건물 위층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짜식들. 우리가 여기 들어온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자빠졌네.”

“놔둬. 곧 우리 손에 죽을 텐데, 즐길 수 있을 때까지는 즐기라고 해.”

그들은 빠르게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카를로스 카르텔들은 큰 문이 있는 곳 앞에 멈춰 서 대기했다.

문 너머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엄청 시끄러웠다.

드미트리 패밀리들이 여기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신호하면 들어가서 일제히 다 갈기는 거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은 카를로스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두 카를로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카를로스는 조직원들에게 손을 앞으로 내리며 공격 신호를 보냈다.

“죽여!!!”

“으아아아아아!!!”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

조직원들은 일제히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곳에 총을 갈겼다.

와장창창-!!!

여기저기서 물건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은 부서진 물건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었다.

“머, 멈춰!!!”

갑자기 카를로스는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야?!!!”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 소리는 모두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게 부서져 버렸으니 그곳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카를로스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잘못됐어.”

“맞아. 뭔가 잘못됐어.”

“!!!”

갑자기 누가 나타나 카를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시선을 돌리니 어떤 젊은 동양 남자가 그를 비웃으며 유유히 서 있었다.

“너, 넌 누구냐?!!!”

카를로스는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난 그를 보며 당황했다.

“그건 좀 이따 말하기로 하고, 일단 한 대 맞자.”

“뭐?”

갑자기 그 동양 남자는 냅다 카를로스 쪽으로 돌진해왔다.

“뭐, 뭐야?!!!”

카를로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빨리 다 저놈을 쏴버려!!”

그의 명령에 부하들은 달려오는 그 동양 남자를 향해 일제히 총을 갈겼다.

투두두두두두두-!

하지만 총알은 그 남자의 몸을 가볍게 통과해 지나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카를로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다들 아연실색하며 질겁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남자는 힘차게 달려와 어느새 카를로스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반갑다. 카를로스.”

그 남자는 그렇게 인사하며 카를로스의 아구창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퍼억-!!!

“크헉!”

카를로스는 그 남자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쓰러져버렸다.

“지금이다! 애들아.”

그 남자의 신호에 어디서 숨어있던 드미트리 패밀리 놈들이 일제히 등장했다.

그들은 카를로스 카르텔에게 총을 겨눴다.

“이, 이런!!!”

“망할!!!”

카르텔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 쏴버려!”

“네!”

그 남자의 명령에 드미트리 패밀리의 역공이 시작됐다.

투두두두두두-!

“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카를로스 카르텔은 그렇게 순식간에 총에 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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