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복수는 나의 것 (1)
데이터 쉴드 프로젝트
나를 위시해 정부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디오를 보급용으로 만드는 작업인데, 이름처럼 방화벽 측면에 좀 더 집중된 버전을 만들려고 한다.
일단 나는 이 프로젝트의 임원으로 일수와 수진이를 뽑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둘만으로는 데이터 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일수와 수진이를 도와줄 연구원들을 더 뽑기로 했다.
백기완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했더니 고맙게도 흔쾌히 도와주기로 해줬다.
우리는 컴퓨터 부분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에게 비밀리에 접촉했고, 데이터 쉴드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의사를 물었다.
지원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면접을 통해 연구원들을 선발하기로 했다.
고맙게도 백기완 대통령이 작업을 다 해주었고 방금 준비가 끝났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바로 진행하도록 하죠.”
“예.”
그렇게 비밀 면접이 시작되었다.
수진이와 일수는 어색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면접관들 표정이 왜 그래? 좀 당당하게 있어.”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길래 한마디 했다.
“야. 이제껏 면접을 보기만 했지, 이렇게 심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도 이런 건 처음이라서요…….”
둘 다 이 상황을 쑥스러워했다.
“그냥 철면피 깔고 해. 내가 준 자료 이제 거의 다 숙지했으니까 너희도 어엿한 전문가라고.”
솔직히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둘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준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한 상태였다.
이제 세계 데이터와 이 세계의 데이터 구성에 대해서 나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거 거의 네가 떠먹여 준 거나 다름없잖아…….”
“그렇게 해놔도 못 따라오는 사람 수두룩해. 너희 정도나 되니까 그렇게 한 거야.”
달래줄 의도로 말한 거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녀석들은 똑똑했고 정말 열심히 했다.
일수야 원래 믿고 있었지만, 특히 수진이가 놀라웠다.
얘는 뭘 시켜도 다 잘할 거 같다.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린다.
“전 정말 계속 이해가 안 되는 게, 라일 님은 혼자서 다 할 수 있으면서 왜 이렇게 저희에게 시키는 겁니까? 면접도 라일 님의 능력으로 조사하면 믿을 만한 사람을 추릴 수 있지 않나요?”
“사실 그렇긴 하지.”
“그런데 왜……?”
수진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너희를 성장시킬 생각이야. 그래서 좀 자율적으로 맡기려고. 너희가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건데 내 맘대로 뽑기는 좀 그렇잖아. 너희 스스로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해.”
“……알겠습니다.”
수진이는 내 말이 공감이 잘 안 가는 듯했지만, 그냥 납득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이러는 게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 기억은 이제부터 반드시 동료들을 성장시켜서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함을 강조했다.
분명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걸 확신했기에 녀석의 안내를 따르기로 했다.
“그럼 면접 잘하고 보고해줘.”
“엥? 너는 같이 안 해?”
일수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나 없이도 잘하잖아. 그럼 부탁한다.”
“……알았다.”
믿고 맡겨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그곳을 나왔다.
***
드미트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가만히 있지 못한 채 방 안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warrior에게 온 연락 때문이었다.
[조만간 찾아갈게. 같이 작업할 게 있으니까.]
warrior가 이곳을 직접 방문한다니 정말 기겁할 노릇이었다.
이제 드미트리에게 warrior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는 warrior에게 개기지 않고 그의 밑으로 들어간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중국을 거의 쑥대밭으로 만든 warrior의 무용담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이야기라 당연히 드미트리도 그 일화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만약 멋도 모르고 warrior에게 개겼으면 어떻게 됐을지를 상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존재가 이제 같이 작업할 게 있다고 찾아온다고 한다.
“대체 뭘 하려고…….”
그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내심 기쁘기도 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안 해 심심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카를로스 카르텔과의 일 이후로 어떠한 활동도 하지 못했다.
warrior가 자신의 지시 없이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주 수입원이었던 마약 사업을 아예 할 수 없게 되어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warrior는 카를로스 카르텔로부터 빼앗은 비트코인을 맘대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다.
그 액수가 상당했기에 조직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그들이 그렇게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너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그들은 뭐라도 하고 싶었고 warrior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카를로스 카르텔과의 일이 드미트리 패밀리에게는 희열로 다가왔었기 때문에 그들은 내심 그런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띠디디디-!
갑자기 드미트리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신원미상의 번호였다.
warrior가 주로 그렇게 연락을 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warrior이겠거니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보스.”
그는 아양을 떨며 전화를 받았다.
“…….”
응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보스? 잘 들리시나요?”
“…….”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드미트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드미트리…….”
warrior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구냐?”
드미트리는 적의를 드러내며 물었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나?”
“!!!!”
녀석의 말에는 스페인 억양이 묻어놨다.
그제야 드미트리는 그가 누군지 눈치챘다.
“너. 혹시 카를로스 카르텔 놈이냐?”
“드디어 알아차리는군. 그런데 보스라니? 네가 조직의 보스가 아니었나? 또 누가 위에 있는 건가?”
“……알 거 없다.”
“흥! 여전히 시건방지군. 하긴 그러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우리 조직을 건들었겠지.”
“너희가 뭐나 된 거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냥 마약 장사나 하는 놈들일 뿐이잖아.”
드미트리가 가볍게 빈정거렸다.
예전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지만, warrior를 등에 업은 드미트리는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
이미 이들의 안전은 warrior가 보장해주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상대를 더 농락하기 시작했다.
“돈은 좀 많은 것 같더군. 덕분에 비트코인은 잘 쓰고 있다.”
“이 개새끼가!!!”
아무래도 비트코인이 녀석의 발작 버튼이었나 보다.
상대는 격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워, 워. 왜 흥분하고 난리야? 진정해.”
드미트리는 상대를 완전히 깔보며 놀리고 있었다.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하! 왜? 여기 와서 전쟁이라도 할 셈이냐?”
“우리가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뭐……?”
예상외의 말에 드미트리는 당황했다.
“이미 너희들에 대한 정보는 다 파악해 놓은 상태다. 조만간 찾아가지. 목 딱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뚜-! 뚜-! 뚜-!
그렇게 통화가 끊겼다.
카르텔 녀석들이 이곳에 쳐들어온다니…….
이곳 러시아에 녀석들이 온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드미트리는 카르텔 녀석의 말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조만간 전쟁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
“으아! 다 뽑았다.”
“저도요.”
일수와 수진이는 일이 다 끝난 건에 환호하며 서로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너희 많이 친해졌다?”
“그럼. 지금 한 달 가까이 계속 붙어서 지내는 데 안 친해지겠냐?”
그렇게 말하는 일수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펴있었다.
이 녀석…….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아무래도 수진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정말 수진이랑 같이한다면 뭐든지 해낼 거 같은 기세다.
“좋은 동료인 거 같습니다.”
수진이도 딱히 친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뭔가 로봇이 말하는 것 같다.
“영혼 어디 갔냐? 진짜 너는 사회성 좀 배워야겠다.”
수진이는 나를 찌릿 쏘아봤다.
가볍게 꿀밤으로 응징했다.
“애 괴롭히지 말고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나 점검해봐.”
일수는 수진이를 도와주기 위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주 이젠 흑기사가 따로 없네…….
“알았다.”
나는 녀석들이 뽑은 사람들을 체크했다.
지원자 100명 중 녀석들이 선별한 인원은 10명.
디오를 통해 알아보니 모두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문제없네. 이대로 같이 진행하면 될 거 같아.”
“오케이. 다 끝났다.”
일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몸에 힘을 풀었다.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나 보다.
“내가 명단 대통령님께 보고하고 결재받을 테니까 그동안 쉬고 있어. 이제부터 또 달려야 하니까.”
“와……. 소름 돋게도 이제껏 준비작업만 했지 아직 프로젝트는 시작도 안 했네.”
일수는 기막혀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벌써 진이 다 빠지네요.”
힘들어하는 것은 수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어허. 왜 이리 엄살일꼬?”
“저, 저 공감 능력 하나 없는 놈. 진짜 왕재수지 않냐?”
“라일 님이 좀 그러긴 하죠. 조금만 상냥해도 좋을 거 같은데요.”
이것들이 바로 앞에서 나를 씹고 있다.
아주 둘이 죽이 잘 맞는다.
뭐 친해 보이니까 좋아 보이긴 하는데…….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좀 쉬었다가 다시 힘차게 달려가자. 이제 됐어?”
“‘이제 됐어?’라는 말만 없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요. 아쉽네요.”
됐다.
말을 말자.
둘이서 잘 놀고 있으라 하고 나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백 대통령은 늘 그렇듯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바로 사인을 해주었다.
그 뒤 데이터 쉴드 프로젝트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일수와 수진이는 자신들이 뽑은 사람들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야 나갈지 논의했다.
연구소와 공장 건설도 별 탈 없이 잘 진행되었다.
계속해서 러시아와 미국의 감시가 있긴 했지만, 심하다 싶으면 경찰들에게 정보를 뿌려 스파이들을 잡아가게 했다.
이제는 방벽까지 설치되어 접근할 수도 없다.
이윽고 시설이 완공되었고 데이터 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그곳에 다 모였다.
모두 완성된 건물을 보며 감탄했다.
다른 시설은 일반 연구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복지 시설만큼은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우와-! 없는 게 없네. 없는 게 없어.”
일수는 자신이 머물게 될 시설을 보며 어린애처럼 놀라워했다.
일수 말대로 여기에 온갖 것을 다 설치해놨다.
고급 식당 시설은 물론, 마사지 샵, 클리닉 센터, 매점, 카페, 목욕탕 등등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은 죄다 있다.
이건 내가 특별히 백 대통령에게 강조했던 부분이었다.
대통령은 내 요구를 훌륭하게 들어주었다.
“중국한테 받은 돈이 넘쳐나잖아. 프로젝트에 잘 임해달라고 특별히 힘 좀 썼지.”
“이야-! 역시 내 친구라니까. 고맙다. 이러면 정말 일할 맛 나겠어.”
“이제 집에도 못 간 채 몇 달 동안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야! 진짜 집에 안 가도 되겠다.”
일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걸 누가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럼 여러분. 다들 지금부터 수고해주시길 빕니다.”
“네!”
사기가 올라갔는지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난 만족스러워 미소를 지었다.
[라일 님.]
그때 갑자기 또 등장하는 디오다.
“이번엔 뭐냐?”
“카를로스 카르텔에서 드미트리 패밀리를 공격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