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갑작스러운 방문 (1) (72/201)

71화. 갑작스러운 방문 (1)

“각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백기완 대통령에게 수행원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죠?”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에서요……?”

백기완 대통령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근데 그게…… 에이든 대통령이 각하와 직접 연락하고 싶다고 합니다.”

“…….”

백 대통령은 좀 당황스러웠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뭐, 사실 그가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그건 그렇게 상관이 없긴 했지만…….

백 대통령은 상대측에 의도가 궁금했다.

이유가 뭘까?

최근에 스파이들이 잡혀버린 것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과의 일 때문에?

경우의 수는 많았다.

어차피 지금 잘못은 미국이 했다.

내가 굳이 위축될 필요는 없지.

백 대통령은 당당하게 나오기로 했다.

“연결해주시오.”

“네.”

잠시 뒤 그는 에이든 대통령과 연락을 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백 대통령님. 이렇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상대는 친근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나왔다.

이전의 몇몇 개념 없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교양과 인품이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이제껏 무례한 외교만 경험했던 백기완 대통령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친히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뭘요.”

에이든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하하.”

백 대통령도 같이 웃었지만, 경계는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저 웃는 얼굴의 뒤에는 다른 속셈이 있다.

그는 계속 이 말을 의식적으로 되새겼다.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백 대통령은 질질 끌 필요 없이 바로 에이든 대통령에게 속내를 물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되도록 빨리 날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요.”

에이든 대통령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예의 있게 말하는 듯하면서도 일방적인 태도다.

본인들이 갑이라 이건가…….

백 대통령은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별로 만나고 싶지 않지만, 거절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미국은 현재 세계 최강의 국가이자 한국의 최대 우호국.

굳이 비위를 상하게 해서 좋을 게 없다.

“친히 여기에 오시겠다니 영광입니다.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죠.”

대통령은 미국의 방한 제안에 엄청 기뻐하는 듯 연기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럼 조만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들어가시지요.”

짧고 간결했지만, 그럼에도 진을 다 빠지게 하는 통화였다.

“하아…….”

백기완 대통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한이라…….”

***

아침 일찍 공항에 군인들이 도열해 서 있고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비행기가 착륙한 다음 문이 열렸다.

미국 대통령 에이든이 손을 흔들며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백 대통령은 얼른 다가가 그를 맞이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이든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백 대통령에게 악수를 건넸다.

백 대통령도 어색한 속내는 숨긴 채 방긋 웃으며 그의 악수를 받았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들은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준비한 환영식이 끝나고 바로 만찬을 가졌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상투적인 이야기만 했다.

예를 들면…….

“영어 실력이 뛰어나시군요. 발음도 좋으시고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런 식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나서 회의장에 둘만 남겨졌을 때야 비로소 에이든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백 대통령님.”

에이든 대통령은 이전까지의 가벼운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게 나왔다.

“어차피 다 아실 테니까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최근에 저희 쪽에서 보낸 스파이가 그만 잡혀버리고 말았지요?”

그렇게 말하는 에이든은 전혀 민망해하지 않는 태도였다.

오히려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랬죠…….”

백 대통령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에이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에이든은 정중하게 사죄했다.

“잘못을 시인하시니,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일단 이렇게 말했지만 백 대통령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과만 하러 굳이 여기에 온 게 아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셨던 겁니까?”

“사실 warrior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

에이든 대통령의 돌직구에 백 대통령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색을 최대한 감추었다.

“그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이든 대통령의 물음에 백 대통령은 속으로 짧게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입을 뗐다.

“그냥 우리나라의 유능한 인재일 뿐입니다.”

“유능한 인재라…….”

에이든은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 유능한 인재가 정말 엄청나더군요. warrior 특별법이라는 게 있을 정도면 이 나라에서 그 친구의 영향력이 엄청난가 봅니다.”

“네. 엄청나죠. 덕분에 지금 우리 한국은 완전히 청렴한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하하. 부럽네요. 저희 미국도 비리가 적잖이 있는데, warrior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백 대통령은 따로 할 말이 없어서 멋쩍게 웃었다.

“백기완 대통령님.”

미소만 짓던 에이든 대통령의 얼굴에 갑자기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표정을 싹 바꾸고 백 대통령을 쳐다봤다.

“저희가 잘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미 warrior와 당신에 대한 정보는 다 파악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있었던 일도 모두 자세하게 알고 있고요.”

“…….”

에이든 대통령의 바뀐 태도에 백 대통령도 없던 투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움츠리고 있었던 백 대통령은 이제는 자신 있게 나오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중국 쪽에서 먼저 저희를 공격했고, 저희는 그에 대한 대응을 했을 뿐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응 내용이 도저히 저희 미국 측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더군요.”

“어떤 게 말이죠?”

“하하. 몰라서 묻습니까?”

에이든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warrior 혼자서 도합 15만 병력의 크래커를 박살 낸 것은 그냥 그렇다 하고 넘어가더라도…… 중국 공장의 가동을 모두 멈추게 한 것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 미국까지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게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죠?”

백 대통령은 의뭉을 떨며 물었다.

어차피 warrior가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을 게 분명했다.

계속 시치미를 떼면 상대는 할 말이 없다.

“다 warrior가 그렇게 한 게 아닙니까?”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대통령. 정황상 warrior밖에 그 짓을 할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모르는 척할 거요?”

“정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뿐입니다.”

“…….”

에이든 대통령은 입술을 비죽였다.

“지금 증거가 없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시는가 본데, 만약 warrior가 그렇게 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오. 그래도 모르겠소?”

“모르겠습니다.”

백 대통령은 이라일을 완전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미국 측에서 절대 증거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

백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니 에이든 대통령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1조 5,000억 달러는 어떻게 할 셈이요?”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게 없어서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

백 대통령의 모르쇠 작전에 에이든 대통령은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윽박지르고 협박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경우를 잘 알았기에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미국도 warrior가 두렵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는 것이었다.

에이든 대통령은 최대한 살살 달래는 태도로 백 대통령을 상대하기로 했다.

“저는 미국과 한국이 서로 친구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대통령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백 대통령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한국은 미국에 해가 가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저희를 괴롭히지만 않는다면요.”

그는 뒤에 조건을 확실히 했다.

에이든 대통령은 거기에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백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저 여유로움에 어이가 없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절대 이런 태도로 나오지 못했다.

주한 미국을 철수시키겠다는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반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가 한국을 왜 괴롭히겠습니까?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요.”

“정말 그 말씀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백 대통령은 약간의 불쾌함을 내비치며 말했다.

에이든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가면 별다른 소득 없이 적대감만 생기게 할 것 같아 그만하기로 했다.

그는 최근에 알아낸 것에 대해서만 더 이야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에 직접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연천에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에이든 대통령은 백 대통령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감지했다.

바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기에 유심히 보지 않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에이든 대통령은 분명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 별거 아닌 사업입니다.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별거 아닌 사업이라면 대체 무슨?”

에이든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냥 간단한 군수 공장입니다. 최근에 북한의 도발이 있어서 대비하기 위해 만들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전방에 있는 게 바로바로 물자를 공급하기가 수월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도 한번 그곳에 방문할 수 있겠습니까?”

“…….”

백 대통령은 망설여졌다.

분명 본인 입으로 별거 아닌 군수 공장이라고 했기 때문에 못 가게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가서 혹시나 우리의 프로젝트가 들켜버린다면…….

에이든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에 백 대통령은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이라일을 믿었다.

이라일라면 분명 이 모든 것을 듣고 있으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 구상해놨을 거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백 대통령은 결심하며 말했다.

“굳이 원하신다면 같이 가도록 하죠. 그렇게라도 해야 의심을 풀 수 있다면 말이죠.”

“하하하하하. 확인해서 나쁠 게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9.11 테러 이후로 많이 민감해져서 그러니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이든 대통령은 백 대통령의 뼈가 있는 말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이해합니다…….”

백 대통령은 전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투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계속 오가고 있었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들은 연천에 갈 준비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