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두 번째 꿈 (3)
“잘 되어가?”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일수와 수진이에게 과일을 내오며 물었다.
둘은 완전 집중했는지 내 말에 반응조차 안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했다.
내가 아무리 쉽게 풀이해주었다고 하지만 분명 엄청 힘들 텐데.
그럼에도 저렇게 열심히 해주고 있으…….
“으아!!! 못 해 먹겠어!!!!!”
방금까지 혼자 한 칭찬이 무색하게, 일수는 갑자기 급발진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뭐야? 너 언제 왔냐? 표정은 왜 그래?”
일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많이 어렵냐?”
“당연한 거 아니냐?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에게 준 거냐?”
“공부는 네가 나보다 더 잘했잖아.”
“장난? 갑자기 혼자 넘사벽인 존재가 되어 놓고서는 그런 말이 나와?”
“거참 시끄럽네요.”
수진이가 참다 참다 한마디를 꺼냈다.
녀석은 나와 일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 시켜놓고서는 방해하는 게 어딨습니까? 그리고, 일수 씨는 많이 여유로운가 보죠?”
수진이는 매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왠지 폭발할 것 같았다.
일수는 찍소리 안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그 자리를 피했다.
“하! 가시나. 무서워라.”
띠리리리~!
왠지 모를 무색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백기완 대통령]
“예. 대통령님. 어쩐 일이십니까?”
“라일 씨. 공장 장소 선정했습니다.”
“오! 됐군요. 어디인가요?”
“연천입니다. 마침 주변에 인가도 없고, 이용되는 용지도 아니더군요.”
“좋네요.”
“그럼 미룰 것도 없이 바로 작업 시작하도록 하죠.”
백 대통령은 당차게 말했다.
역시나 이 인물은 한 번 하기로 결심하면 막힘 없이 일을 진행해버린다.
“예. 좋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네. 맡겨주십시오.”
백 대통령과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는데…….
[라일 님.]
또 뭔 일이 있을 때 등장해주시는 디오다.
“왜? 무슨 일이야?”
[미국 NSA에서 계속 라일 님의 통화를 감청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귀찮게 하네.”
몇 주 전에 디오는 CIA와 NSA에서 본격적으로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줬다.
녀석들은 방금도 나와 백 대통령의 통화를 엿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천하무적의 디오가 있다.
[통화 내용은 서로 그냥 일반적인 안부만 묻는 것으로 바꿔서 녀석들에게 전송했습니다.]
역시나 척이면 척이다.
“잘했어. 어차피 나랑 백기완 대통령이 친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는 마당에 아무런 통화도 안 하고 있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의심스럽겠지. 앞으로도 계속 내용만 적당히 바꿔서 전달해줘.”
[네.]
NSA
이 녀석들도 영양가 없는 놈들이다.
자국민도 모자라서 다른 나라 사람까지 감시하고 있으니…….
녀석들은 예전부터 광범위 통신 감청 시스템을 만들어 이용했다.
코드네임 Night가 바로 그것이다.
감시 대상은 엄청나게 광범위적이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바로 사찰에 들어간다.
터놓고 말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놈들은 다른 나라 수상들이나 대통령들까지 사찰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비밀리에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만, 공개되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거다.
당장 이것을 공개해서 녀석들이 곤욕을 치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먼저 해야 할 일도 있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선은 그냥 녀석들 눈에 되도록 안 띄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미국 대통령 에이든은 CIA와 NSA에서 온 보고서를 받았다.
그들은 한국과 warrior를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보고하고 있었다.
우선 그는 NSA에서 온 보고서부터 읽었다.
보고서에는 모두 특이사항이 없다고만 쓰여 있었다.
warrior에 대한 감시를 시작한 이래로 계속 같은 말이다.
녀석은 참 희한한 놈이다.
우선 통화도 잘 안 할 뿐더러,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도 몇 안 된다.
주로 통화하는 사람이 다섯 명인 거 같다.
그런데 그중에 한국의 대통령이 껴 있다.
인간관계가 넓지도 않은데 거기에 대통령이 속해있다는 것 자체가 웃기다.
대화 내용도 심각한 게 아니다.
다 간단하게 안부나 묻는 거다.
대통령과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일반인이라니.
녀석은 인터넷에 들어가도 별로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뉴스 보는 거나 쇼핑하는 거다.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것 같다.
주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것만 보면 녀석은 얼간이 중의 얼간이다.
하지만 분명 녀석은 혼자서 중국을 박살 낸 존재.
이렇게 평범하다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
분명 이게 다가 아닐 것이다.
확실히 뭔가가 있다.
녀석이 정보를 조작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에이든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이번에는 CIA의 보고서를 읽어갔다.
[1조 5,000억 달러에 대한 행방 묘연]
[특이사항 없음]
CIA의 보고서 또한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분명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중국의 정보전사들과 흑객연맹이 완전히 박살 났으며, 1조 5,000억 달러를 받아냈고 정부 요인들도 교체시켰다.
그런 놈이 그 이후로 거짓말처럼 이렇게 평온하게 있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그는 비서를 불렀다.
“네. 대통령님.”
“각 기관들에게 별다른 정보가 안 나온다고 안일하게 있지 말고 계속해서 집요하게 녀석을 파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에이든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내 반드시 너의 그 은밀한 속내를 밝히고야 말겠다.”
***
“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어?”
일수는 주변 경치를 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게. 진짜 신기하네. 뭔가 이국적이야.”
나 역시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장수진은 뒷좌석에서 계속 내가 준 자료를 공부하고 있었다.
쟤도 진짜 독한 놈이다.
지금 우리 셋은 새로 지어질 군수 공장 터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원래는 나 혼자만 갈 생각이었으나, 둘이 너무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는 것 같아 바람도 쐬게 할 겸 데리고 나왔다.
일수야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수진이는 저 모양이다.
기특하면서도 좀 밥맛인, 양가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끼익-!
아직 목적지에 다 도착한 것이 아니었는데 도로가 끝이 났다.
공사 차량들은 한창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야 할 것 같다. 수진아 이제 그만 보고 내리자.”
“네.”
수진이는 그제야 태블릿 PC를 껐다.
“으아아아!”
녀석은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좀 쉬라고 데리고 나왔는데 여기서까지 공부만 하고 있으면 데리고 나온 내가 좀 그러잖아.”
“지금 엄청난 양의 숙제를 던져줘 놓고서는 그런 말이 나옵니까?”
수진이는 원망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다 할 수 있으니까 시키는 거야. 너 똑똑하잖아. 국정원 최고의 요원이 왜 이렇게 엄살이야?”
“이건 완전 다른 분야라고요. 뭐 정말 자세하게 적어 놓으셔서 어떻게 따라가고는 있지만요.”
“그래. 봐봐 할 수 있잖아.”
나는 격려차 가볍게 녀석의 머리를 두드려주었다.
“근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대체 라일 님이 멀게만 느껴지네요. 세계 데이터라는 것은 전 처음 들어봤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아예 나오지도 않더군요. 이 모든 것들을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솔직히 공부하면서 소름 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하하하. 네가 이 몸의 진가를 드디어 알아보기 시작하는구나.”
“또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가볍고 유치해요.”
“이게 잘 나가다가…….”
이번에는 훈육차 머리를 콩 하려 했다.
수진이는 휙 하며 그냥 피해버렸다.
허허.
얘 좀 보게?
좀 약이 올라 다시 콩 하려고 했는데, 수진이는 코웃음 치며 그것도 가볍게 피해버렸다.
“애들아. 그만하고 저기 좀 봐라.”
수진이랑 내가 한창 실랑이하고 있는데 일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녀석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백기완 대통령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오셨군요.”
백 대통령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바로 이곳입니다. 어떻습니까?”
“좋은데요? 비밀스러운 연구하기에 정말 딱 좋은 곳입니다.”
“하하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백기완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다 나라를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는 내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나도 거기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있는데 한 중년 아저씨가 다가왔다.
“여기 현장 책임자입니다.”
백 대통령은 내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 안내 좀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공장 터를 둘러보러 갔다.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서, 일단 멀리서 망원경 같은 것으로 감시하기는 불가능했다.
“숨겨져 있어서 딱 좋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에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해서 담장까지 만들 계획입니다.”
“좋습니다.”
한창 그렇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디오가 나를 불렀다.
[라일 님.]
“무슨 일이지?”
[미국과 러시아에서 보낸 첩자들이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아직 공장을 만들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냄새를 맡고 접근해 왔다.
이제 전기 방화벽에 거리 제한도 없어져서 바로 지지려다가 다른 좋은 생각이 났다.
“수진아.”
“네.”
“부탁 좀 하자.”
“…….”
이제 이 녀석은 싫은 기색을 숨기지도 않는다.
“너 자꾸 기어오르면 혼난다. 표정 관리 안 할래?”
정색하고 말하니까 바로 반응이 온다.
짜식이 요즘 풀어주니까 까불고 있어.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요즘 머리만 쓰느라 몸이 찌뿌드드했지? 미국과 러시아에서 보낸 첩자들이 벌써 냄새를 맡고 여기 근처에 와 있는데 교육 좀 시켜주고 올래?”
“……알겠습니다.”
“위치는 폰으로 보내줄 테니까 확인하면서 잡어.”
“네.”
“그러면 출발!”
내 명령에 수진이는 바로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
녀석 왠지 기뻐 보였다.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저쪽이 체질에 맞나 보다.
첩자들 잡는 것은 엄청 싱겁게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미 녀석들의 위치 정보를 수진이에게 보내고 있었고, 첩자들은 정보 파악과 감시만 할 줄 아는 놈들이었지 전투에 능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수진이는 몸도 풀 새도 없이 녀석들을 그냥 한 번에 제압해버렸다.
그런 다음 옛 국정원 동료에게 전화해 녀석들은 바로 인계했다.
가볍게 임무를 마치고 온 수진이에게 나는 엄지척을 날려줬다.
“잘했다.”
“진짜 너무 쉬워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네요.”
“그러게. 짜식들. 보낼 거면 좀 강한 애들로 보내지.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요.”
수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어쨌거나 녀석들은 약점 잡힌 거야. 국정원에서 수상한 놈들을 발견해서 쫓아가 잡았더니 첩자인 상황이 된 거니까. 녀석들은 원하는 정보는 얻지도 못한 채 우리한테 덜미만 잡힌 거지.”
나는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쥐새끼들도 처리했으니 다시 구경을 시작할까?”
***
띠리리리-!
에이든은 집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
“무슨 일인가?”
“감시하러 갔던 요원들이 전부 잡혀버렸습니다.”
“…….”
에이든은 골치가 아픈 듯 손으로 미간을 만져댔다.
“……알겠네.”
그는 씁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서는 그는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당장 방한 날짜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