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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두 번째 꿈 (2) (70/201)

69화. 두 번째 꿈 (2)

백기완 대통령과 면담이 있어 나는 또 상춘재에 왔다.

언제나 그렇듯 깔끔하고 단아한 곳이다.

대통령은 수행원을 시켜 커피를 내오게 했다.

나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했다.

“맛이 어떱니까?”

“좋은데요?”

“다행이군요.”

백 대통령은 만족해하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는 우리 아빠보다는 좀 어리긴 했지만, 마치 아빠가 아들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이 뭔가 좋았다.

나도 그에게 방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대통령은 슬슬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1조 5,000억 달러를 어떻게 사용할지 이제 구체적으로 논의하려고 합니다.”

“…….”

백 대통령은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했다.

저건 생각이 많을 때 나오는 행동이다.

몇 번 만나다 보니 이제 파악됐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 돈을 따로 사용하고 싶은 데가 있으신가 보죠?”

“예. 맞습니다. 물론 warrior 특별법 때와 마찬가지로 제 사적인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이기도 하죠.”

“하하하하하하.”

백 대통령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댔다.

“따로 예산을 편성해 놓겠습니다. 라일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죠.”

“…….”

전적으로 믿겠다 이건가?

“1조 5,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이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고요?”

나는 한번 그를 떠보며 물었다.

“그 돈이야 어차피 라일 씨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벌 수 있는 돈 아닌가요? 라일 씨가 굳이 그 돈을 챙겨가려고 욕심낼 거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사실 이건 라일 씨가 다 받아낸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니 라일 씨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맞겠죠.”

“…….”

다 맞는 말이라 따로 할 말이 없었다.

“뭐, 그래도 일단 나랏돈이니, 형식상 어디에다가 쓰실 건지는 물어보겠습니다.”

“그 돈으로 무기를 만들 겁니다.”

평온해 보이던 대통령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그는 분명 엄청 당황했다.

“무, 무기요?”

“예.”

완전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대통령도 이걸 농담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라…….”

대통령은 갑자기 고민이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다.

나보고 맘대로 사용하라고 해놓고서는 무를 수도 없으니 많이 난감한가 보다.

그러게 무턱대고 함부로 그렇게 결정하는 거 아닙니다.

“왜 그러시죠? 제가 무기를 개발하면 우리나라 국력은 엄청나게 강해질 겁니다. 문제가 되는 게 있습니까?”

“……있죠.”

대통령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라일 씨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정말 민감한 문제입니다. 국제 관계를 반드시 생각해야 하죠. 일례로 핵을 들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없어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 이야기였어?

나는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눈치챘다.

“이번 중국과의 일로 라일 씨와 한국은 국제사회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라일 씨의 위상이 다 퍼져있어요. 그런데 그런 라일 씨가 1조 5,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한다는 걸 알면 전 세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맞다.

현재 전 세계 정보국에서 나를 주의 깊게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파악했다.

중국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는데 안 그러는 게 이상하지.

지금 상태만으로도 다들 겁먹고 있는데 내가 나서서 무기를 개발하겠다면 백 대통령 말대로 다들 까무러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국제 관계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무기 개발을 공개했을 때의 문제지.

“그거야 비밀리에 개발하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백 대통령은 얼른 자신의 말에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라일 씨의 능력은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무기를 개발하려면 군수 공장도 있어야 하고 실험도 해야 하는데…… 미국 쪽에서는 수상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감지해서 걸고넘어질 것입니다.”

“한국에 직접 와서 보지 않는 한 절대 감지 못합니다. 왜냐면 제가 위성까지도 막아버릴 테니까요.”

“…….”

백 대통령은 경악하며 나를 쳐다봤다.

이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동안 여기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게다가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근데 미국도 바보는 아닌 이상 아무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면 되려 의심할 것입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이 넘쳤다.

디오 Ver.2뿐만 아니라 내 기억의 지식까지 다 흡수한 상태이다.

지금 내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하하하하하.”

백 대통령은 다시 웃어댔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저는 라일 씨를 믿고 허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미 라일 씨 맘대로 하라고 말한 상태라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요.”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다 도와드릴 테니까요.”

“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무기 개발에 힘써주시지요.”

“알겠습니다.”

***

우리 집.

거실 소파에 수진이와 일수가 앉아 있었다.

수진이 옆에 앉아 있는 일수는 쑥스러워하고 있다.

반면 수진이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한 채 나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서로 몇 번 만나서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같이 일할 사이니까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지?”

“전일수입니다. 함께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일수는 불필요하게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장수진입니다. 영광이랄 것까지는 없는데요.”

일수의 오버를 그대로 잘라버리는 장수진이었다.

그 뒤에 둘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많이 어색하네. 뭐, 일하면서 차차 친해지도록 해.”

나는 이만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태블릿 PC를 꺼내 둘에게 하나씩 건넸다.

“뭡니까?”

“뭐야?”

둘은 동시에 나에게 물어봤다.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해야 할 것들.”

둘은 이해가 안 되는지 또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하하하.”

이번에는 그만 못 참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이 합이 아주 잘 맞는 것 같네. 좋아 좋아.”

“…….”

둘 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됐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야. 넘어가.”

그냥 둘이 그러고 있으라고 하고 넘겨버렸다.

“갑자기 무슨 공부입니까?”

수진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기를 개발하는 건데, 그러려면 사전 지식이 좀 많이 필요해서.”

“……지금 무기를 개발하는데 게임 개발자랑 국정원 직원을 뽑으신 겁니까?”

수진이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응. 무기가 좀 특별해서 프로그래밍 기술이 많이 필요하거든.”

“대체 무슨 무기를 만드시려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AI의 이름이 디오인데, 난 이 디오를 양산화시킬 계획이야.”

“!!!!!!”

일수야 이미 내가 여러 차례 설명했던 터라 덤덤했지만, 수진이는 내 말에 깜짝 놀랐다.

수진이가 일수처럼 디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도 내 안에 뭔가 엄청난 스펙의 인공지능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뭐가?”

“그 엄청난 AI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면 세계 최강으로 계속해서 군림할 수 있을 겁니다. 왜 굳이 양산화하려고 하십니까?”

“당연히 내 디오보다는 스펙이 낮은 걸 개발하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을 거니까 그건 걱정 마. 그리고 초짜인 네가 개발할 건데 당연히 내 디오보다 한참 못 미치지 않을까?”

“…….”

수진이는 내 말에 어이없어했다.

“사실 이것도 이해가 안 됩니다. 이미 그 디오라는 것을 라일 님이 개발했는데, 양산형도 직접 개발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빠르지 않습니까? 왜 굳이 개발 같은 거를 한 번도 한 적 없는 저를 뽑으신 겁니까?”

“네 말이 맞아. 사실 내가 직접 개발하면 더 효율적이고 빨리 끝날 일이지.”

“……그런데 왜?”

“그러면 너무 쉽고 재미없잖아. 그리고 난 너와 일수를 성장시키고 싶어. 너희를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동료로 키우고 싶거든.”

사실 이건 수진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봐도 이해가 안 될 일일 것이다.

내가 굳이 이러는 게 우습겠지.

하지만 이건 다 내 기억의 자아를 위해서이다.

녀석은 내가 동료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온 거다.

나 또한 이제껏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한 녀석에게 그 행복과 기쁨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녀석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남겨놓았다.

[이제 너 혼자서는 안 돼.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려면 동료들도 같이 성장시켜나가야 해.]

이건 단순히 우정을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거기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랬을 거다.

나는 그냥 녀석의 메시지를 믿고 그대로 하기로 했다.

이제 혼자서 일하기보다는 팀으로 일할 것이다.

정말 신뢰로 끈끈하게 뭉쳐진 그런 팀 말이다.

그리고 동료들을 성장시키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이득이다.

내 기억과 디오가 함께 작업해왔던 것처럼, 혼자서 개발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서 같이 개발하면 당연히 속도도 더 빨라진다.

나중에 같이 디오 Ver.3을 개발할 수도 있겠지.

물론 그건 좀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

“동료요?”

수진이의 표정은 뭔가 좀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저를 라일 님의 동료로 생각해주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너를 굳이 뽑았겠냐?”

내 말에 수진이의 얼굴이 붉어지며 쑥스러워했다.

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감격은 나중에 맛보고 일단 현실 파악부터 좀 하자. 내 동료로 성장하고 싶으면 이제 공부 열심히 해야 해. 둘 다 방금 나눠준 태블릿 PC 좀 봐봐.”

내 말에 둘은 전원을 켜 화면을 봤다.

“둘 다 프로그래밍에는 능숙하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정말 이해하기 쉽게 다 풀이해놨고 가이드 라인까지 싹 다 제시해놨어. 물론 그래도 어렵기는 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될 거야.”

“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 이해하는 것을 둘째치고 양도 엄청나네.”

일수는 화면을 보며 경악하며 말했다.

“당연히 만만하지 않지. 양산형이긴 하지만 그 디오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오 마이 갓!”

수진이의 표정도 밝지 않다.

“나 그만두면 안 될까?”

“저도…….”

“어허! 무르기 없어! 도망 못 치니까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해서 그거 숙지하도록.”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하아…….”

일수는 절규했고 수진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 나는 피식했다.

“그럼 다들 수고하라고.”

그렇게 디오 양산형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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