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두 번째 꿈 (1)
디씨소프트 근처 한 카페
나는 커피를 한잔하며 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일아.”
일수가 나를 발견하고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응답했다.
녀석은 곧장 내 앞자리에 앉았다.
“늦어서 미안. 일이 계속 생기네.”
“괜찮아. 갑자기 급하게 나오라고 한 건 나잖아.”
“어우. 회사 주인이 부르면 당연히 달려 나가야지.”
일수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피식했다.
“근데 어쩐 일이야.”
“바쁜 것 같은데 커피도 한잔하면서 여유 좀 가지라고.”
“…….”
이번에 일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설마……그 이유가 다는 아니겠지?”
“다야.”
“…….”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런 썩을! 지금 바빠 죽겠는데…….”
“농담이야. 앉아.”
나는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일수를 진정시켰다.
일수는 한 번 나를 째려본 다음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제 우리의 두 번째 꿈을 실현할 때인 거 같아서.”
“두 번째 꿈?”
일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 설마 기억 못 하냐? 실망인데?”
“너랑 나랑 같이 뭐 하자고 한 게 한두 개야지. 뭔데? 힌트라도 줘 봐.”
“아이언맨.”
“…….”
눈이 커지면서 놀라는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기억이 났나 보다.
일수랑 나는 같이 영화관에 가서 아이언맨을 봤었다.
그때 ‘영화는 자고로 여자랑 같이 봐야 하는 건데 이렇게 남자랑 단둘이서 보러 가고 있다니…….’ 같은 시답잖은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보러 같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린 연인 못지않게 같이 많은 걸 했다.
뭔가 징그럽네……
아무튼,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우리는 같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야. 토니 스타크 완전 멋지지 않냐?”
“멋지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잘 만들다니……. 진짜 사기캐가 따로 없다.”
“그러게.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는 게 어때?”
“뭐? 설마 아이언맨?”
나는 황당해하며 일수한테 물었다.
“응. 토니 스타크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냐?”
“너 지금 현실이랑 영화를 구분 못 하냐? 아이언맨을 어떻게 만들어?”
“왜?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만들겠지.”
“하하하하. 할 게 많으시네. 세계 최고의 게임도 만들어야 하고 이제는 아이언맨도 만들어야 하고.”
솔직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긴 했다.
거기에 일수는 오기가 생겼나 보다.
“야! 두고 봐라. 내가 꼭 만들고 말 테니까.”
“건투를 빈다.”
“남 일처럼 말하지 마. 너도 나랑 같이 만들 테니까.”
“내 의사는 없는 거냐……?”
“친구 따라 강남 가야지. 같이 아이언맨 개발한 다음에 한번 세계를 정복해 보자고.”
그때는 일수가 적극적이었고 나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반응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어 있었다.
“레알로?”
일수의 질문에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하하.”
녀석은 실없이 웃어댔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반응이 왜 이래? 아이언맨 만들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접니다.”
일수는 무색한지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세계 최고의 게임 만들기는 이미 이뤘으니까, 이제 두 번째 꿈을 이루어야지. 한번 같이 만들자. 아이언맨 비슷한 거.”
“좋긴 한데…….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뭐?”
“첫 번째 꿈이 실현된 거는 맞지만, 게임 관리는 그래도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지금 당장 다른 것을 하기는 좀……”
일수는 곤란해하며 말했다.
이 녀석.
역시 책임감이 엄청나다.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잖아. 박이나한테는 내가 말할게. 일수는 나랑 다른 프로젝트를 할 거니까 이제 프렌드쉽 팀장은 다른 사람 구하라고. 그리고 나도 계속 프렌드쉽 관리해 줄 테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마”
“그런다고 해도 갑자기 빠지기는 좀 그런데……”
일수는 망설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프렌드쉽은 우리의 소중한 작품이니까.
“일수야.”
나는 무게를 잡고 녀석을 불렀다.
“나도 막 억지로 너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어. 다만 나는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하기보다 너와 우리의 두 번째 꿈을 같이 이루고 싶을 뿐이야.”
그에 일수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나도 녀석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프렌드쉽을 결코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아. 프렌드쉽은 우리의 첫 번째 꿈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역시 무척 소중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급한 것은 우리의 두 번째 꿈이야.”
“더 급하다고……?”
“응. 그건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이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가 나서고 나서 지금 우리나라의 비리나 범죄율이 극히 줄어들었어. 나는 이제 내 힘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야.”
“너……. 설마 세계 경찰이라도 할 셈이냐?”
일수는 놀라워하며 물었다.
“필요하다면. 부모님의 복수도 하면서 범죄자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도와주는 거지.”
“흠…….”
일수는 고민이 많은지 말없이 콧소리만 냈다.
“게임은 솔직히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안잖아. 나중에 또 만들면 되는 거고. 그런데 부모님의 복수는 지금 당장 해야겠어. 이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가족을 불량배들에게 잃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알았다.”
일수는 결국 결심하며 말했다.
“진심이야? 솔직히 많이 힘들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이거 내 ‘기억’이 나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대사인데?
녀석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갑자기 녀석 생각이 나 콧잔등이 시려왔다.
“까짓거 하지 뭐. 네 말대로 내가 먼저 하자고 했던 거고. 또 이 몸도 세계 평화에 일조하고 싶기도 하고.”
일수는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일부러 내 걱정을 줄이려고 그러는 듯싶었다.
농담 속에 섞여 있는 녀석의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아프기도 했다.
일수는……
내게 있어 정말 고마운 존재다.
“고마워. 진짜로 너무 고마워.”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사이에 뭘 이런 거로 다.”
일수는 가볍게 넘기며 말했다.
“대신 지원은 빵빵해야 한다?”
“풋!”
결국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못 말리네. 알았다. 걱정 마라. 섭섭지 않게 다 챙겨줄 테니까. 유능한 조수도 한 명 붙여 줄게.”
“조수? 누구?”
일수는 큰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장수진.”
“!!!!!!”
녀석은 토끼 눈을 하며 놀랐다.
“그…… 국정원 직원분?”
“응. 이제 그 녀석을 국정원에서 나오게 한 다음에 내 직속으로 둘 예정이거든. 그래서 걔한테도 나 좀 도와달라고 하려고.”
“그래? 그러면 내가 그분이랑 이제 같이 일하는 거네?”
일수는 굉장히 그 소식을 반색했다.
“뭐…… 그렇지.”
“나이스!”
일수는 갑자기 히딩크처럼 어퍼컷 세레모니를 했다.
“……왜?”
“아니 뭐 나에게도 봄이 오나 싶어서.”
“……????”
지금 이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일수 저 녀석 뭔가 기분 나쁘게 배시시 미소를 짓고 있다.
잠깐!
생각해보니 쟤 우리 집에서 집들이 파티할 때도 장수진에게 관심을 가졌었는데……
“일수야……. 너 설마? ……안 된다 일수야.”
“뭐가 안 돼?”
“너 걔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라면서.”
“…….”
지금 그걸 잘 알면서 그러냐?
장수진이가 분명 겁나 예쁘긴 하지만 얼굴만 봐서는 안 된다.
걔가 얼마나 살벌한 애인데…….
“일수야 네 미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장수진이는 좀…….”
일수는 내 말에 바로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이 녀석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것 같다.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 말도 안 통한다.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그래……. 잘 해봐라.”
“하하하하.”
일수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녀석은 갑자기 열정이 가득해 보였다.
뭐 어쨌거나 내 계획에 동참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괜찮은 건가?
일수와 대화가 끝나고 나는 이어서 곧바로 장수진을 만났다.
애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오늘 유난히 더 나를 경계하네. 누가 뭐 잡아먹냐? 대체 왜 그러는데?”
“아주 대단하시더군요. 혼자서 그렇게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다니요…….”
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이 몸의 위대함에 대한 일종의 경외인가?
하하하.
하긴 국정원 요원인 수진이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혼자서 해버렸다는 게 더 와닿을 것이다.
“뭘 새삼스럽게 그래? 내가 최강인 거 아직도 몰라?”
“압니다만…… 정말 매번 놀라울 따름이라서 그럽니다.”
“알았어. 칭찬 그만해. 그런다고 내가 너에게 일을 안 시킬 것은 아니니까.”
“……또 뭘 시키시려고 부른 겁니까?”
수진이는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러면 내가 너를 뭐 하자고 여기 불렀겠냐? 같이 만나서 놀자고 불렀겠니?”
“……아니죠.”
녀석은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이번에는 어떤 일입니까?”
“일단 그걸 말하기 전에. 너 국정원 이제 그만둬라.”
“네?!!!”
수진이는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만두라는 겁니까?”
“너를 내 밑으로 아예 두고 싶어서.”
“…….”
수진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뭘 그렇게 바보같이 쳐다만 보고 있어? 다른 의도는 없고 단지 네가 유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니까 그러겠다는 거야. 어때? 영광이지 않아? 이 몸의 조수가 된다는 게.”
내 말에 수진이의 한족 눈썹이 위로 치켜 올려졌다.
말 안 해도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왜, 재수 없어? 너 표정 다 티나.”
“아, 아닙니다.”
정곡을 찔렀는지 수진이는 당황해했다.
“뭐 나도 인정해. 솔직히 좀 재수 없긴 했다. 무튼 넘어가서, 내 밑으로 완전히 들어 올래 말래? 들어오면 재밌기는 할 거야. 다양한 것들도 경험할 거고. 아! 그리고 월급이랑 복지도 잘 챙겨줄게. 그것만큼은 보장한다. 그러니까 박봉 받지 말고 내 밑으로 와.”
“…….”
수진이는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먼저 결정해서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윽고 수진이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다음 입을 열었다.
“국정원 그만두고 라일 님 밑에서 일하겠습니다.”
“정말? 진짜야?”
“네.”
수진이는 확실히 결심했는지 칼같이 대답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나는 수진이에게 악수를 건넸다.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수진이도 내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고 있을 일수가 생각나 그만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수진이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수락해서 내가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기분이 좋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뭐 착각은 자유니까 알아서 생각해라.
***
미국 워싱턴 D.C
백안관
미국 대통령 에이든은 막 첩보를 받았다.
그 보고서에는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 벌어졌던 일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에이든은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흠……. 엄청나군.”
에이든은 그 보고서를 보며 감탄했다.
“warrior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