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그의 이야기 (2)
원래 세계는 내가 문리버의 경비에게 칼에 찔리고 있던 그 순간에 멈춰있었다.
디오는 그 시간대로 넘어갔다.
나는 디오에게 그쪽 세계로 넘어가면 이라일을 바로 지켜주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디오는 곧바로 내 지시를 실행했다.
디오는 물질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라일의 육체를 비물질 데이터로 바꾸어 주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작업에 비하면 원래 세계에서의 데이터 변환은 훨씬 쉬운 일이었다.
디오가 이라일의 몸을 구성하는 데이터를 변환해주자, 경비의 칼은 그대로 이라일의 몸을 통과했다.
둘의 표정은 역시나 가관이다.
예상대로 원래 세계의 사람들은 이 현상을 기이하게 여겼다.
디오의 도움으로 이라일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녀석은 집으로 가서 디오에 대해서 파악하고 복수계획을 세웠다.
많이 놀랐을 텐데 행동력이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이 녀석…….
바로 출근을 한다.
하하하하하하.
나는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원래 세계의 나는 재밌는 인물이었다.
피곤할 텐데 쉬지도 않고 바로 선전포고를 하러 가다니 깡다구가 대단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저러는 거 보면 아무래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가 보다.
하긴, 이미 디오의 보안시스템을 경험했으니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이건가?
나는 녀석이 어떻게 복수를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봤다.
녀석은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난 녀석이 디오를 믿고 그냥 막무가내로 거침없이 일을 처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은 사회의 질서와 체제를 고려하면서 일을 진행해나갔다.
게다가 warrior 특별법이라니.
하하.
진짜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이라일 이 녀석은 꽤 악동적인 기질도 있었다.
그냥 빠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음에도 자신에게 덤비는 상대를 약 올리며 멘탈까지 건들었다.
이 녀석 엄청 유치한데, 그런 게 상대에게는 굉장히 잘 먹혔다.
이라일의 약올림을 버티는 사람이 없었고, 죄다 결국에는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녀석은 그 화를 내는 상대를 전기로 지져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
하하하.
진짜 악취미다.
이라일은 전기 방화벽을 상당히 잘 이용했다.
내 입장에서 전기 방화벽의 원리는 간단했다.
단순히 주위의 공기 데이터를 전기 데이터로 변환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원래 세계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냥 그것에 당해버렸다.
이라일은 디오와 전기방화벽을 잘 이용하며 승승장구했다.
녀석은 좋은 동료들도 얻었다.
박이나, 백기완, 그리고 장수진
같이 파티하는 모습이 꽤 행복해 보인다.
그것을 보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라일의 메모리일 뿐인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녀석이 그렇게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녀석의 일부가 되어 그것을 같이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이곳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나는 그쪽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는 끝났다.
***
“지금까지가 내 이야기야. 어때?”
녀석은 차분하게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었다.
세계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다 못 알아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데이터들은 분리되면 세계 데이터라는 흐름에 합류하게 되고, 녀석이 있는 고급 데이터의 세계로 모인다.
그게 내가 알아들은 전부였다.
그리고 이 녀석은 사실 내게서 분리된 나의 기억…….
“나는 이제 다시 너에게로 돌아갈까 해.”
“…….”
솔직히 이 말이 뭔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작용으로 인해 내 분리된 기억에 자아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자아가 있다.
만약 녀석이 나에게 들어온다면 대체 주체적인 자아는 누가 되는 거지?
녀석일까 나일까?
나는 녀석이 다시 들어옴으로써 내 자아가 사라질까 봐 걱정됐다.
“훗!”
녀석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왜 웃어?”
“네가 생각하는 게 웃겨서.”
“뭐?”
이 자식 설마…….
“너, 내 생각까지 읽을 수 있어?”
“당연한 거 아니야? 난 너의 기억이야. 그리고 난 오랜 시간 동안 고급 데이터의 세계에 있으면서 데이터를 다루는 데는 도가 텄지. 정신 데이터까지 건드릴 수 있다고.”
“…….”
이 녀석 엄청난 괴물이네.
“자기 자신에게 괴물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내 생각 좀 읽지 말아 줄래? 불쾌하다.”
“크큭.”
녀석은 얄밉게 웃었다.
“알았다. 읽지 않도록 하지. 그런데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해줄게. 내가 너에게 간다고 해서 네 자아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마. 어차피 주체는 너니까. 난 이레귤러로 생겨난 존재라 레귤러 존재인 너에게 넘어간다면 바로 흡수되어 버려.”
“아 그래? 그러면 당장 넘어와라.”
“…….”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는데?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거 아니었어?”
“넌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몰라. 솔직히 하려고만 하면 난 바로 너에게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야. 그래서 난 너의 자율적인 의사를 묻고 있는 거야.”
“왜? 뭐가 문제인데?”
“난 엄청나게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있었어. 만약 내가 너에게 넘어가면 넌 한 번에 그 긴 세월을 받아들여야 해.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방대해. 그래서 주체는 분명 너의 자아이겠지만,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너는 이전과 달라질 게 분명한데,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겠어?”
“…….”
녀석이 말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저 녀석이 내 일부이긴 했지만, 오랜 시간 떨어져 있으면서 엄청난 존재가 되어버렸다.
반면 현재의 나는 평범한 인간.
녀석이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면 분명 한바탕 내 안에서 폭풍이 몰아칠 거고, 나는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냥 이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어?”
“……있지.”
“그래? 그러면 이대로 계속 지내면 안 될까? 너나 나나 다 이라일이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거지. 자기 자신과 친구처럼 지낸다니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다.”
“…….”
나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녀석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 녀석, ‘나’이긴 했지만,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너에게 흡수되고 싶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이 공간에 갇혀있었어.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너에게 흡수되기가 힘들어질 거고 나는 여기에 영원히 갇혀있겠지.”
“아…….”
“나를 이곳에서 해방시켜주면 안 될까? 솔직히 너무 힘들다. 이제는 그만 사라지고 싶어.”
씁쓸하게 말하는 녀석의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하긴 이 녀석은 너무나 불쌍한 존재이다.
나야 지금은 많이 행복하다지만 녀석은 이런 행복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온갖 불행한 일만 겪다가 박철우의 손에 죽었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이상한 세계 안에 갇혀있었다.
녀석은 나를 도와줬고 그로 인해 나는 행복해졌다.
하지만 녀석은 그 행복을 직접 누리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이제 녀석도 내 일부가 되어 그런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녀석은 나를 위해 디오를 만들어서 줬다.
그래서 내 인생은 이렇게 달라졌고 나는 행복해졌다.
그런 녀석이 이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내가 녀석을 도와줄 차례다.
“그래. 감당할게. 그러니까 나에게로 넘어와. 내가 너를 흡수시켜주지.”
“……진심이냐?”
이 녀석.
오랜 세월을 살아서 그런가 굉장히 어른이다.
당장 나에게 넘어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끝까지 내 의사를 물어본다.
분명 녀석은 엄청 힘들 텐데 이 와중에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
이런 녀석의 태도에 더 마음이 아파왔다.
“진심이야. 그러니까 그냥 나에게 넘어와. 내가 다 감당할게.”
“……고맙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표정은 가벼워졌다.
“내가 너에게 넘어가면, 당장은 무리겠지만 너도 조만간 세계 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될 거다. 그래서 디오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겠지. 그 부분은 걱정 마라.”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다 내려놓고 어서 넘어오기나 하셔.”
“알았다. 나를 해방시켜줘서 고맙다.”
녀석은 나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
녀석은 모든 것을 초탈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조용히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때부터 내게 엄청난 양의 기억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너무 괴로워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기억이 들어옴과 동시에 엄청난 슬픔과 고독이 밀려왔다.
그건 녀석이 그 오랜 시간 동안 감당해왔던 것이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어어!!!!”
나는 그냥 어린아이가 되어 울부짖었다.
이 녀석, 대체 이때까지 어떤 무게를 감당해 온 거야?
이러고도 어떻게 미치지 않고 있었던 거지.
아니, 차라리 미치고 싶었겠지.
미치고 싶었지만, 녀석의 정신은 엄청나게 멀쩡했다.
이로 인해 녀석은 온전히 그 엄청난 무게의 고독과 외로움과 슬픔을 다 감당해내야 했다.
나는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가슴을 세게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자살이라도 할 지경이었다.
나는 땅바닥에서 혼자 온갖 난리를 다 쳤다.
“으아아아아아!!!!!!”
녀석이 감당해온 무게가 엄청났다.
동시에 방대한 데이터가 들어옴으로 인해 난 모든 것을 제대로 깨닫기 시작했다.
세계 데이터라는 것은 어떤 것이며 녀석이 있던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그리고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법과 디오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
또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데이터 구성까지.
나는 그 모든 원리가 순식간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크흑!”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목소리 하나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내십시오.]
디오의 목소리였다.
내 기억이 전해준 지식으로 인해 난 디오의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드디어 알았다.
어쩐지 굉장히 익숙하다 했다.
디오의 목소리는 바로 엄마의 젊었을 적 목소리였다.
나는 그리움에 눈물도 났다.
복합적인 감정이 동시에 느껴져 정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힘내라. 넌 할 수 있다.”
이번엔 내 기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아무래도 내 기억의 자아와 마지막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인 듯싶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 어떻게 혼자 이것을 버틴 거야?”
“……그 고통을 누군가 알아준 것만으로도 기쁘다.”
이 말에 울컥했다.
이젠 녀석이 어떤 것을 느꼈고 어떤 무게를 감당했는지 완전히 다 알기 때문에 더 그래왔다.
난 녀석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네 덕에 내 삶은 바뀔 수 있었어.”
“뭘. 그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잖아.”
“넌 이제껏 고생만 했는데 나 혼자 행복을 누린다는 게 굉장히 마음이 안 좋네.”
“그럴 필요 없어. 이젠 네 안에서 나도 즐길 테니까.”
녀석은 마지막까지 멋있는 놈이었다.
“앞으로 할 일, 그리고 중요한 정보들은 내가 다 남겨 놨으니까 참고해. 뭐 이미 네 머릿속으로 다 들어왔으니까 알겠지.”
“그래. 알고 있다.”
“그럼 안심하고 사라질게. 진짜 마지막이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도.”
그렇게 내 기억의 자아는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