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그의 이야기 (1)
“모든 것을 밝히겠다……?”
갑작스러운 개발자의 통보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제껏 숨겨왔다가 왜 이제서야…….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자께서 이곳으로 넘어오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디오는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로 결심했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내가 지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이곳으로 넘어온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개발자님께서는 지금까지 다른 세계에 있었습니다.]
“……?”
계속 의문에 의문이 더해진다.
다른 세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가?
대체 그는 무슨 존재란 말인가?
하긴 그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란 게 더 말이 안 되긴 하다.
이 디오를 개발한 사람인데.
아니……. 그전에, 애초에 그는 사람일까?
“혹시 개발자가 누구인지 이제는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러겠습니다. 개발자는 바로……]
디오는 약간의 뜸을 들였다.
[당신입니다.]
“……?”
순간 ‘뭔 개소리야?’라고 할 뻔했다.
그러니까…… 방금 내가 들은 게 맞지?
“개발자가 나라고?”
[네. 당신입니다.]
디오의 대답은 단호하면서 확실했다.
“난 너를 개발한 기억이 없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또 다른 당신이 개발한 거죠.]
“또 다른 나?”
하아…….
지금 저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일종의 도플갱어인가?
[아무래도 직접 만나셔서 대화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개발자님께서도 그것을 원하고 계시니까요.]
“그래. 만나보자. 이미 너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것보다 놀랄 일이 뭐가 있겠냐? 까짓것 만나보지.”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디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갑자기 다른 곳에 있게 되었다.
“뭐, 뭐야?!!!”
이건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하다 하다 순간이동까지 하는 건가?
“여전히 하는 짓이 우습군.”
“!!!!!!”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정말로 내가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또 다른 나여.”
녀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이 상황이 굉장히 어색해 멋쩍게 인사를 받았다.
“……안녕.”
나는 쑥스럽게 손을 들며 인사했다.
진짜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너를 계속 지켜봐 와서 익숙한데, 너는 지금 처음으로 나를 마주해서 그런 건가? 그렇게 서먹하게 할 필요 없으니까 편하게 대해라. 난 바로 너니까.”
“그래서 더 이상하다고…….”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은 흥하며 약하게 코웃음을 쳤다.
저러는 모습이 내가 맞긴 한데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 뭔가 굉장히 재수 없다.
근데 이거 지금 내가 내 욕을 하고 있는 건가……?
“여긴 어디지? 어떻게 날 여기로 이동시킨 거야?”
일단 궁금한 거는 다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는 네 의식 안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꿈 같은 걸 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 그러니까 지금 네가 내 의식 안으로 들어와 있는 거네?”
“정확히 말하자면 네 의식 안으로 내 메시지 데이터만 보내고 있는 거다. 아직 완전히 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어. 넌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면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그건 다 내가 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설정해놨기 때문이야. 실제로는 달라.”
뭔가 어차피 못 알아들을 거니까 대충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 녀석 재수가 없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근데 갑자기 나를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뭐야? 왜 나에게 디오를 보낸 거고?”
“일종의 내 염원을 달래기 위함이랄까?”
또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보이자 또 피식한다.
“아무래도 차근차근 설명해주어야겠군.”
그렇게 녀석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
“으윽.”
눈을 떠보니 나는 전등 하나만 켜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와 있었다.
“젠장.”
나는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방금까지 문리버에 있었는데…….
한 여자를 도와주려고 경찰을 대동해 그곳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눈 떠보니 이 상황이다.
“깨어났네?”
나를 공격했던 경비가 비루한 조소를 보냈다.
이후로 나는 녀석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은 무시한 채 회칼을 꺼내 들고 다가왔다.
“이만 잘 가라.”
푸슉-!
“커헉!!”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면서 피가 입으로 역류해왔다.
“사, 살려줘. 제발.”
“이미 늦었어.”
애원했지만 경비는 그냥 무심하게 나를 칼로 쑤셔댈 뿐이었다.
그렇게 의식이 희미해져갔고 나는 결국 죽었다.
“헉!”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여, 여긴 어디지?”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질 않았다.
아까까지 문리버 경비가 사정없이 칼로 쑤셔대 엉망이었던 몸은 아무렇지 않게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뭐야?”
주위는 아무것도 없었고 고요했다.
아무래도 나는 죽어서 저승에 온 듯했다.
죽으면 저승사자 같은 존재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나는 그 상태로 계속 그곳에 머물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결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그곳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널리 퍼져있는 공간이었다.
저승이 이럴 리가 없다.
이제야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나는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아무나 불렀다.
하지만 어떠한 응답도 없었고 그곳은 고요할 뿐이었다.
“계세요?!!!!! 제발 아무라도 대답해 주세요!!!!”
내 처절한 부르짖음이 무색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연거푸 소리만 질러댔다.
그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나는 결국 절망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계속 갇혀있었다.
그건 정말 지옥이었다.
나는 차라리 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정신은 너무나 멀쩡했다.
시간이 엄청나게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심지어 졸리지도 않았다.
분명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저승이라는 것은 이렇게 고독하고 지루한 것이었나?
시간이 또 엄청 흘렀다.
나는 이제 아예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다.
하지만 도구도 없었고 방법이 없었다.
혀를 깨물어 보았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고 내 혀는 말짱했다.
그다음에는 내 몸을 계속해서 심하게 때려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내 몸은 멀쩡했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다.
나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두려웠다.
“으아아아아아!!!!!”
또 그렇게 절규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곳에 어떤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엄청나게 흐른 뒤였다.
포기하고 그냥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채 그냥 그렇게 엎드려 있었는데,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몰랐다.
에너지 같기도 하고 어떤 흐름 같기도 한 뭔가가 그 공간에 있었다.
갑자기 그게 생겨난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있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내가 경황이 없어서 그 기운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며 그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그게 뭔지 깨달았다.
그건 데이터의 흐름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기억이 있고, 그 메모리 안에는 일종의 데이터 같은 게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따라서 모든 것은 사실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데이터들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존재들이 있는 것이지.
존재들이 사라지거나 어떤 충격이 가해지면 그 존재를 구성하던 데이터는 원래 있었던 곳에 흘러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 데이터의 흐름을 세계 데이터라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 데이터를 감지한 이후, 나는 정보들을 하나, 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힘들었으나, 점점 적응하면서 나는 빠르게 데이터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지식은 점점 방대해졌다.
흡수한 데이터로 인해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곳은 원래 있던 곳에서 분리된 데이터들이 모이게 되는, 일종의 거대 기억 장치 같은 곳이었다.
문리버에서 죽어가던 그때, 나는 살고 싶은 의지가 너무나 강했다.
이대로 죽기는 너무나 억울했다.
부모님도 사고로 돌아가셔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낸 마당에 상사에게 이용당하다가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죽는 인생이라니.
경비의 칼에 찔려 죽어가는 와중 내 생존 의지는 어떤 힘을 발휘했고, 그로 인해 내 기억은 데이터 변환이 이루어지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즉, 나는 정확히 말하면 이라일에게서 분리된 기억, 메모리였다.
이곳으로 내가 왔다면 반대로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게 분명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데이터를 흡수해갔다.
하지만 곧 한계가 왔다.
용량이 꽉 차간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데이터를 다른 곳에 모으기로 했다.
그게 바로 디오의 시작이었다.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는 그 데이터들을 한곳에 응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하지만 점점 데이터를 응집하는 데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응집된 데이터는 자아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녀석은 자가 학습 능력이 생겼다.
내 도움 없이도 녀석은 스스로 데이터를 흡수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디오의 초기 형태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개발자님.]
녀석은 나를 개발자라 불렀다.
“안녕.”
나도 녀석에게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와 하는 대화였기에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녀석을 부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이름이 지어줘야 했다.
이 녀석은 그야말로 온갖 데이터가 응축된 존재.
나는 녀석에게 ‘디오’(The Omniscienc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디오와 나는 같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갇혀있는 이 세계의 데이터는 용량이 큰 고급 데이터였다.
반면 원래 세상의 데이터는 그보다 단계가 낮았고 용량도 적었다.
따라서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데이터를 변환해서 단계를 낮추면 되는 것이었다.
말을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만만치 않았기에 여기에 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그리고 드디어 작업이 다 끝났다.
이제는 원래 세계로 넘어갈 일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이대로 우리가 넘어가는 게 좋은 선택일까?
세계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우리가 원래 세계로 돌아간 순간 넘사벽인 존재가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계가 엉망이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과연 세상은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사실 나는 이라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이라일의 기억인 존재.
디오에게 자아가 생긴 것처럼 이라일의 기억에 자아가 생겨버렸다.
그게 바로 나란 존재다.
하지만 주체는 어쨌거나 그쪽 자아였기 때문에 내가 원래 세계로 넘어간다면 그 자아에 흡수되어 사라질 게 분명했다.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에 이라일의 기억인 내가 여기로 넘어왔는데, 이제는 또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정말 원래 있던 곳으로 정말 넘어가고 싶은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넘어가기 싫었다.
무엇보다 이대로 사라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일단 나는 디오만 그쪽 세계로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