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세상엔 안하무인들이 많다 (5)
“각하. 우칭산이 돈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
백 대통령은 깜짝 놀라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우칭산이 굽히고 들어왔다고요?”
대통령은 오죽 기가 찼는지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다.
“네. 굽힐 줄 모르는 놈이니까 항공모함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에서야 비로소 숙이고 들어왔죠.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진작에 항복했을 겁니다.”
“하하하하.”
대통령은 내 말에 멋쩍게 웃었다.
“내 살다 살다 중국한테 삥까지 뜯는 것을 다 경험하네요. 1조 5000억 달러라……”
그는 감탄하며 그 액수를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백 대통령은 뭔가 꺼림칙해하며 말을 꺼냈다.
“정말 우칭산이 이대로 돈만 주고 물러설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나는 거의 확신하며 대답했다.
“저도 왠지 그럴 것 같아 불안하군요.”
“걱정 마십시오. 녀석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끽해봐야 저나 대통령님을 암살하려는 것 외에 뭘 더 하겠습니까?”
“하하하. 그걸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네요.”
대통령은 약간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 특수부대원들이나 스파이들은 파악을 마친 상태입니다. 녀석들의 움직임은 제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역시 철두철미하시군요.”
“게다가 사실 저는 녀석들이 공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 말에 백 대통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봤다.
“왜인가요?”
“그것을 빌미로 전 또 한바탕 일을 벌일 생각이니까요.”
“일을 벌인다고요?”
“네. 만약 정말로 우리를 암살하려 한다면 저는 우칭산을 포함해 중국 행정부를 다 갈아 엎어버릴 생각입니다.”
“……진심이십니까?”
완전 진지하게 말했는데 백 대통령은 못 믿겠다는 투다.
하긴 중국 행정부를 갈아엎는다는 내용 자체가 허무맹랑하긴 하지.
하지만 저건 디오 Ver.2를 가진 나에게는 굉장히 현실감 있는 소리다.
“제가 언제 이런 걸로 실없는 소리 한 적 있었나요?”
“……”
백 대통령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는 여태껏 내가 한 일을 보아온 산 증인으로서 내가 말한 것은 꼭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또 한바탕 세계가 난리가 나겠군요.”
“그 주역이 바로 우리인데 설레지 않습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
그 또한 내 말에 호쾌하게 웃었다.
“뭔가 사고뭉치인 것 같지만 뭐 좋습니다. 어쨌거나 권선징악 사필귀정 아닙니까? 그런 것의 주역이라면 백번이고 하지요.”
“하하. 그럼 같이 이제는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고요.”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적극적으로 임하죠.”
백 대통령과 나는 서로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웃었다.
***
“네. 받았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중국 엘리트 암살 요원인 류우녕은 상부에서 보낸 타겟 목록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럼 녀석들을 잘 처리해주게.”
“맡겨주십시오. 순식간에 처리하겠습니다.”
“믿고 있겠네. 무운을 빌지.”
“예.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마친 류우녕은 다시 한번 목록표를 살펴봤다.
[전일수 – 디씨소프트 직원]
[박이나 – 디씨소프트 대표]
[장수진 – 국정원 요원으로 추정]
[최복례 – 이라일의 가정부]
상부에서 선정한 타겟은 총 4명으로 모두 warrior의 최측근들이다.
측근에는 백기완 대통령도 있었으나 그를 암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상부도 그건 무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암살 목록에서 그를 제외시켰다.
사실 주 타겟은 이라일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이라일에 대한 많은 암살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다고 한다.
이라일이 아이튜브에 직접 업로드한 영상을 보면 녀석에게는 총과 칼을 포함한 어떠한 물리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녀석은 이상한 전기 공격을 사용한다.
영상에 있던 조선족 킬러들도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이라일을 직접 암살하는 것도 사실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상부에서는 녀석 또한 타겟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상부는 녀석의 주변 인물들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녀석에게 보복할 생각인 것 같다.
류우녕은 목록표에 있는 박이나와 전일수를 먼저 눈여겨봤다.
이 두 타겟은 같은 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제일 제압하기 쉬워 보였다.
일단 그는 그 둘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류우녕은 전화를 꺼내 자신의 팀들에게 연락을 했다.
“일단 박이나와 전일수부터 처리한다.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
“전 팀장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박 대표님도요.”
박이나에게 업무 보고를 마친 전일수 팀장은 그녀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러게요. 정말 요즘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정신 차리고 보면 항상 이 시간이에요.”
“이젠 회사가 거의 집이네요. 집은 진짜 자러만 가는 곳이고요.”
“저도요.”
박이나는 전일수의 말이 공감돼 미소를 지었다.
“낼은 토요일인데 좀 쉬시나요?”
“네. 급한 것은 다 끝나서 이제 휴일까지 일할 필요는 없거든요.”
“다행이네요.”
“대표님은요?”
“저도 좀 쉬려고요.”
“그래요? 그러면 혹시……”
전일수는 조심스럽게 박이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내일 혹시 따로 약속이 있으신가요?”
“약속이요?”
박이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없어요. 그냥 집에서 쉴 예정이었어요. 왜요?”
“저 지금 라일이네 집에 가서 내일까지 놀 예정이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실래요?”
“네? 근데……제가 갑자기 말도 없이 가면 실례가 아닐까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박이나 씨가 오면 반색할걸요?”
“정말요?”
그렇게 말하는 박이나는 뭔가 기뻐 보였다.
“그러면 혹시 라일 씨한테 저도 가도 되냐고 물어봐 줄 수 있으세요?”
“흠……”
전일수는 그러길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것보다는 서프라이즈로 갑시다. 그편이 더 재밌을 거 같거든요.”
“네? 그래도 돼요?”
“걱정 마요. 단짝 친구로서 보장하건대 이라일 걔 놀라긴 해도 무조건 좋아할 겁니다. 같이 가요.”
“음……”
박이나는 갑작스러운 전일수의 제안이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서 같이 놀고 싶었다.
그녀는 결국 결심한 듯 대답했다.
“그래요. 같이 가요.”
“좋습니다. 그러면 짐 챙기신 다음에 아래 주차장에서 봐요.”
“네~.”
일수는 이미 짐을 다 챙긴 상태라 주차장에 미리 와서 박이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수 씨.”
전일수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박이나는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가볼까……”
전일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딱 봐도 굉장히 수상한 사람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박이나에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품에서 칼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나 씨!!!! 뒤, 뒤!!!!!”
전일수는 질겁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네?!!”
전일수의 외침에 박이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웬 괴한이 칼을 들어 그녀를 찌르려고 했다.
“꺄아아아악!!!!!”
그녀는 당황해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비명만 질러댔다.
퍽-!
“크윽!”
그때 괴한은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에게 발차기를 맞고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냐?!!”
그 누군가는 회색 후드를 둘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체형을 보아하니 여자임이 분명했다.
퍽-!
그녀는 괴한에게 돌려차기를 가해 그가 들고 있던 칼을 날려버렸다.
“크윽!”
괴한은 고통스러워하며 발차기를 맞은 손을 감쌌다.
그는 회색 후드를 쓰고 있는 사람을 도끼눈을 뜨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누구냐?!!!!”
괴한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네놈들이 노리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장수진.”
장수진은 똑같이 중국어를 쓰며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후드를 벗으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수, 수진 씨!”
박이나는 놀라워하며 장수진을 불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리고 저 사람 아세요?”
“라일 님이 알려줘서 구하러 왔습니다. 저 녀석은 저를 포함해 여러분들을 죽이러 중국에서 온 킬러입니다.”
“네?!! 킬러요?”
박이나는 자신이 살면서 킬러를 실제로 만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에 그녀는 멘붕에 빠져버렸다.
“대체 갑자기 왜?”
“라일 님에게 보복하기 위해 여러분들을 해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여러분들은 라일 님께 소중한 사람들이니까요.”
“소중한 사람이요?”
박이나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저 단어가 귀에 들어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괴한이 장수진을 공격하려고 다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수진 씨! 조, 조심해요!!!”
“알고 있습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이놈부터 처리하고 나서 합시다.”
장수진도 자세를 잡으며 괴한과 대치했다.
“너가 장수진이라고? 알아서 죽으러 왔군. 타겟이 한 곳에 다 모이니까 편하네.”
“죽긴 누가 죽어? 여자라고 얕보면 곤란한데.”
“하하하하. 그럼 어디 한번 실력 좀 보여줘 봐라.”
괴한은 장수진에게 돌격해 그녀에게 주먹을 날렸다.
장수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괴한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퍽-!
“크윽!”
괴한은 장수진의 주먹을 맞고 신음했다.
“무시하지 마라고. 그렇게 동작을 크게 하면서 뻔히 보이게 공격하면 누가 맞아주냐? 반대로 너만 혼자 처맞겠지.”
“이 자식이!!!”
괴한은 다시 자세를 취한 뒤 장수진에게 돌격했다.
하지만 장수진은 가볍게 몸을 턴하면서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곧바로 그의 등에 발차기를 가했다.
퍽-!
“커헉!!!”
괴한은 모양 빠지게 그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장수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괴한의 한쪽 팔을 잡아 위로 올리고 무릎으로는 등을 누르며 그가 못 움직이도록 제압했다.
“크윽! 이거 안 놔?”
“놔줄게. 못 쓰게 만든 다음에 말이야.”
장수진은 잡고 있는 괴한의 팔을 위로 확 꺾어버렸다.
“으어어어어어!!!”
팔이 나간 괴한은 괴성을 질러댔다.
“시끄러워!”
퍽-!
장수진은 곧바로 일어나서 그 괴한의 얼굴에 사커킥을 날려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꺾였다.
괴한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와……대박.”
전일수는 방금의 전투를 보며 감탄했다.
그는 박수까지 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장수진은 그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그럴 분위기가 아닌데요……”
장수진은 그런 전일수를 나무라며 말했다.
“진짜 완전 대박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잘 싸워요?”
전일수는 장수진의 그런 반응은 상관하지 않으며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채로 물었다.
솔직히 방금 싸움은 어느 액션신보다도 더 화려했다.
그걸 눈앞에서 바로 봤으니 전일수는 저렇게 감탄할 수밖에.
“일단 위험하니까 여기를 벗어나서 말합……”
그때 장수진의 눈에 새로운 괴한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그 괴한은 품에서 총을 꺼내 전일수를 겨누고 있었다.
“아,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