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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세상엔 안하무인들이 많다 (2) (61/201)

60화. 세상엔 안하무인들이 많다 (2)

흑객연맹과 정보전사들과의 사이버 전쟁 이후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다.

근데 세상은 원래 평화로웠다.

나 혼자만 난리였던 거지…….

집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아 창밖의 정원을 바라봤다.

집을 정말 잘 골랐다.

주변 풍경이 정말 예술이다.

그렇게 주위를 감상하고 있자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디오를 만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정말 이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폭풍 같았던 시기다.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거침없이 휘몰아쳤다.

생각해보면 이뤄낸 것도 참 많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라면, 그건 바로 좋은 사람들을 찾았다는 것이다.

일수야 두말할 것 없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박이나.

그녀는 점점 날로 성장해간다.

솔직히 처음에는 바지사장도 감수하자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대표직을 맡겼었다.

이상한 놈들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그녀가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녀가 회사를 말아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에게 대표를 맡기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박이나는 너무나 훌륭하게 대표직을 수행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잘해나가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그녀는 노력을 많이 한다.

박이나의 열정을 보면 그녀는 정말 못할 게 없어 보인다.

그다음은 백기완 대통령.

그는 내가 봤을 때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다.

비리가 전혀 없는 꿋꿋한 신념은 물론 훌륭한 인품.

거기에 더해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불의한 일에는 불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그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제일 좋은 것은 이렇게 훌륭한 대한민국의 서열 1위가 나를 제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걸 비선실세라고 말하던가?

뭔가 어감이 좀 구리긴 하네.

마지막으로 장수진.

얘는 좀 개기긴 하지만 그래도 시키는 일은 잘한다.

지금은 국정원에 소속되어 있긴 한데, 조만간 빼 와서 완전히 내 밑으로 둘 생각이다.

이렇게 네 명이 내 사람이려나?

어떻게 보면 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만족한다.

네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게다가 한 명 한 명이 백 명의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능하고 든든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뭔가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음미하며 다시 경치를 바라봤다.

기분이 째진다.

띠리리리-!

[박이나]

뭐지?

이제껏 편의상 업무 보고는 메신저로만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라일 씨.”

뭔가 그녀는 쑥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네.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내일은 좀 쉬고 싶은데요.”

뭐 이런 것까지 나한테 허락을 맡아?

좀 과하지 않아?

“그러시죠. 근데 대표시니까 그런 것은 저한테 일일이 보고하지 마시고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네.”

좀 정 없이 말했나?

박이나의 목소리는 약간 시무룩하게 들렸다.

“혹시…….”

그녀는 약간 주저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 바쁘세요?”

“…….”

뭘까?

이 갑작스러운 전개는?

“안 바쁩니다. 요즘 급한 일은 다 해결돼서 여유롭거든요. 근데 왜요?”

“…그래요?”

박이나는 뭔가 반가워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면 내일 저랑 점심이나 같이하실래요?”

“……좋죠. 생각해보니 우리가 만난 지가 좀 됐군요. 이참에 얼굴 보면서 이야기도 좀 합시다.”

그동안 중국 쪽 신경 쓰느라 대표로 앉혀놓고 신경을 못 쓰긴 했다.

프렌드쉽으로 인해 많이 바빴을 텐데 미안하긴 하네.

근데 이건 그만큼 그녀가 훌륭하게 일을 했다는 반증이다.

솔직히 나는 전혀 신경 쓸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

“뭐 따로 가고 싶으신 곳 있으세요?”

“전에 갔었던 곳 완전 맛있었는데요…….”

그 물 한 병에 만 원 하는 곳을 말하나 보다.

거기가 솔직히 기똥차게 맛있긴 하지.

“좋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는데 제가 쏘도록 하죠. 예약도 제가 하겠습니다. 내일 거기서 봐요.”

“진짜요? 좋네요~”

박이나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일 봬요.”

***

다음 날

나는 식당에 먼저 와서 박이나를 기다렸다.

간만에 여기 음식을 먹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설렌다.

끼익-!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박이나가 룸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박이나를 보고 순간 나는 넋을 잃었다.

한껏 꾸미고 온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과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절제미가 있는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박이나는 밝게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면서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바라봤다.

그냥 일반 청색 셔츠에 검은 슬랙스 바지다.

……뭔가 좀 비교되는데?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그동안 많이 바쁘셨죠?”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워요. 옛날부터 꿈꿔왔던 것이 지금 실현되고 있는 것이잖아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렇게 된 게 다 라일 씨 덕이죠.”

“뭘요. 저도 다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한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메뉴판을 넘겼다.

“드시고 싶은 거 다 시키세요.”

“진짜요? 그럼 골라보겠습니다.”

박이나는 신이 났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메뉴판을 읽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저랑 점심은 왜 먹자고 한 겁니까?”

“일수 씨가 요즘 라일 씨가 여유로울 것 같으니까 한번 찾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바쁘다면서요.”

허허허.

전일수.

바쁘다고 이렇게 어필하는 건가?

“그리고 저도 좀 쉬고 싶었어요. 대표되고 나서 사실 하루도 안 쉬었거든요.”

그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래요. 이렇게 쉬는 날도 있어야죠. 그리고 어제 말한 대로 여기는 제가 쏩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라일 씨랑 같이 밥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데 이렇게 얻어먹기까지 하다니. 완전 행복한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 얼굴을 붉혔다.

생각보다 박이나는 음식을 간단하게 시켰다.

더 시키라고 했지만 다 못 먹는다고,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때 느꼈던 그 맛들을 다시 음미했다.

역시나 여긴 최고다.

그동안의 근황들도 이야기했다.

나는 박이나에게 중국과 있었던 일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계속 놀라워하며 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박이나의 찰진 리액션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신이 났는지 너무 혼자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너무 나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계속해주세요. 너무 재밌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했기 때문에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뭔가 혼자 신나서 자기 말만 떠들어대는 아재가 된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만하고, 이제 이나 씨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그래요?”

박이나는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밥은 다 먹은 것 같은데 여기서 말고 카페 가서 더 이야기할까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제가 최근에 기가 막힌 곳을 알았거든요.”

“오! 좋죠.”

왠지 박이나가 추천하는 카페.

엄청 괜찮은 곳일 거 같다.

“그럼 가볼까…….”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끼어들었다.

이번에도 직감이 딱 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거다.

***

“중국에서 금한령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인증 기준을 강화해 진입 장벽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각 언론단체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압박을 보도하느라 난리였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뭔 일이야? 전혀 기류가 없었잖아?”

중국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기업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전혀 내막을 알지 못하고 있어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들은 갑자기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

전혀 대비되지 않았었기에 인증 기준을 만족시킬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떡하지?”

모두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중국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군사적 압박도 가했다.

서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근처에 전함들을 위치시켰고, 갑자기 추진된 군사 훈련도 심상치 않았다.

또 중국의 압박이 있었는지 북한의 동태도 수상쩍었다.

군은 예상치 못한 중국의 움직임으로 인해 비상이 떨어졌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유를 전혀 모르는 국민들 또한 갑작스러운 중국의 행보에 당황했다.

나라 안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하하하하. 하는 꼬라지 하고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작 한다는 게 이런 추잡한 짓이라니.

진짜 수준 떨어진다.

“라일 씨.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요?”

백 대통령은 보복이 이 정도로 심할 줄은 예상 못 했는지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솔직히 경제 보복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군사 압박까지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건 그냥 순 깡패 아닙니까?”

대통령은 중국의 어이없는 행동에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거 다 블러핑입니다.”

나는 백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저 녀석들은 한국에게 어떠한 공격도 하지 못합니다. 어차피 패는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 짓거리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폭행위에요. 다른 나라에서 저 꼴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겠습니까?”

실제로 지금 미국과 대만에서는 중국에게 엄청난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었는지 그런 눈치 전혀 안 보고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녀석들 화가 단단히 났긴 났나 보네요. 전쟁이라도 할 기세인 것 같은데요.”

나는 피식하며 백 대통령을 쳐다봤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전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은 총, 칼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무기도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핵, 미사일, 전함, 전투기 같은 것들은 제 앞에서는 무의미하니까요.”

“하하하. 어마어마하군요.”

대통령은 기막혀하며 웃어댔다.

“하지만 총, 칼은 못 막아요. 제가 구식에는 약해서요. 만약 진짜로 총, 칼 들고 떼로 쳐들어오면 답이 없을지도 모르죠.”

“하하…….”

이번의 웃음은 멋쩍은 웃음이었다.

“농담한 거예요. 어차피 그럴 일은 없습니다. 군사적 압박, 그냥 하라고 하세요. 다른 나라의 불만만 키워 자기 목을 조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다행히 내 말에 백 대통령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게 있어 보였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걱정인 것은 저런 조치에 대한 여파가 상당할 거라는 겁니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나라 무역의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니까요. 기업가들은 지금 모두 죽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죠. 분명 경제적인 면에서 타격이 있으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은 고민하며 물었다.

“암호화 해제와 기밀 건을 가지고 다시 협상해야 할까요?”

“그건 안 됩니다. 녀석들이 바라고 있는 게 바로 그거니까요. 이 모든 게 1조 달러를 안 내놓으려고 수작 부리는 겁니다. 그 돈은 기필코 받아 내야 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패는 1조 달러를 받아 낼 때 사용하시고, 다른 패를 이용합시다.”

“다른 패요?”

“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경제적 압박에는 똑같이 경제적 압박이죠.”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디씨소프트랑 나이스를 박살 냈던 것 보시면 모르겠습니까? 중국 기업들 싸그리 박살 내주도록 하겠습니다.”

“…….”

백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건 마치 ‘진심이냐?’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이건 ‘대단하다’라는 뜻인 것 같다.

사실 중국 기업 조지기는 불과 며칠 전까지의 나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조지는 것 자체는 쉽다.

문제는 그에 대한 보복이지.

누가 봐도 내가 그렇게 했다는 게 뻔한 상황에서 혹시나 내 주변 사람들이 타겟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계속 항상 나와 같이 있지 않는 이상 모두 온전히 지키기에는 무리다.

하지만 최근에 겪은 일로 인해 이제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나를 불렀다.

“어. 왜?”

[곧 업데이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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