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세상엔 안하무인들이 많다 (1)
“각하.”
“어. 무슨 일인가?”
“지금 중국 국무원 부총리인 리신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백 대통령은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미소를 지은 다음 손짓을 하며 연락을 받으라고 전했다.
“연결해주게.”
잠시의 신호음이 있고 난 후 부총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기완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무원 부총리인 리신입니다.”
“반갑소이다. 갑자기 어쩐 일이시오?”
“대통령님과 거래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거래라……?”
백 대통령은 상대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말하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의뭉을 떨며 물었다.
“전(前) 국무원 총리인 샤오왕이 이전에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제안했던 터라 그 말이 그렇게 썩 내키지는 않는군요. 뭐, 내용이나 들어봅시다.”
“제가 알기론 대통령님께서 warrior란 놈과 친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통령은 내 눈치를 봤다.
하하.
저 자식 나는 ‘놈’이라고 칭하네…….
뭐, 넘어가고 일단 뭐라 말하는지 더 들어보자.
나는 백 대통령에게 일단 계속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요?”
“저희가 그놈 좀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여기 중국으로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대통령과 나는 동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 상황에서 고작 한다는 말이 저거다.
진짜 머리에 뇌가 아니라 우동 사리가 들었는지 원.
쯧쯧.
“부총리께서는 방금 본인이 하신 말이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당신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백 대통령은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warrior가 나와 친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를 놈이라고 부르고, 또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그를 중국으로 보내라고 하다니. 게다가 애초에 부총리 따위가 한 국가 원수에게 약속도 잡지 않고 다짜고짜 이렇게 연락을 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대통령은 갑자기 급발진하며 호통을 쳤다.
깜짝이야!
깜빡이 좀 켜고 하시지…….
예고가 없던 그의 급발진으로 나도 덩달아 놀라버렸다.
근데 가만!
이거 내가 쓰던 기법인데?
대통령께서도 뭔가를 좀 아신다.
역시 상대를 갈굴 때는 조곤조곤 말하다가 급발진하며 나가는 게 최고다.
“갑자기 왜 화를…….”
부총리 놈도 당황하며 소심하게 나왔다.
“너랑 할 말 없으니까,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너네 주석 나오라고 해. 끊어!!!”
백 대통령은 그렇게 소리친 다음 수화기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다시 힐끔 쳐다봤다.
짝! 짝! 짝!
나는 박수갈채를 보낸 다음 엄지척을 했다.
“대통령님. 역시 카리스마 넘치십니다. 아주 혼쭐을 내시는군요.”
“하아…….”
대통령은 답답한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말 세상에는 개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군요. 어떻게 저딴 놈이 한 나라의 부총리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저따위 태도라니.”
“그러니까요. 정말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네요.”
“하하하하. 진짜 그 말 그대로입니다.”
백 대통령은 내 말에 피식했다.
“그나저나 주석에게 연락이 올까요?”
“올 겁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흠…….”
대통령은 크게 콧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당차게 말해놓고도 막상 걱정하고 있는 그였다.
“왜요? 떨리십니까?”
“당연히 떨립니다. 솔직히 열 받기는 했지만, 그 중국을 이렇게 대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니까 더욱 강하게 나와야 합니다. 녀석들은 ‘감히 누가 우리를 건들 수 있겠어?’라는 바로 그 생각으로 저렇게 건방지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긴 하죠…….”
여전히 백 대통령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쉽지 않은 거 압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셔야겠죠.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저런 도의 없는 녀석들에게 굽힐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녀석들의 엄청난 약점을 쥐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쉬운 것은 녀석들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백 대통령을 똑바로 쳐다본 다음 방긋 웃으며 말했다.
“늘 그렇듯 대통령님께는 제가 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보호할 테니 대통령님은 할 일을 하십시오.”
“하하하하.”
대통령은 표정이 풀리며 웃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든든하군요. 그래요. 맞습니다. 잘못은 저들이 했지, 우리가 한 게 아니죠. 굳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통령인 제가 저들 앞에서 당당하지 않으면 누가 당당하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내게 말했다.
“라일 씨 믿고 거침없이 나아가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뒷받침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우리나라는 참 복이 많군요. 라일 씨 같은 분이 국민으로 있으니까요.”
“그럼요. 복이 아주 많죠.”
뚜두두두-!
대통령과 한참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 눈치 없이 벨이 울린다.
백 대통령은 다시 연락을 받았다.
“각하.”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중국 국가 주석인 우칭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바꿔주게.”
백 대통령은 여전히 긴장되긴 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를 향해 불끈 쥔 주먹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 파이팅을 외쳤다.
이윽고 우칭산과 연락이 닿았다.
“여보시오. 나 우칭산이올시다.”
중국 국가 주석 우칭산.
현 중국 최정점에 있는 그가 드디어 친히 나오셨다.
이전까지 중국은 태자당, 공청당, 상하이방의 3계파 체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칭산 그가 주석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예 일당 체제로 가버렸고, 이제는 그걸 넘어 일인 독재 수준까지 되어버렸다.
우칭산.
그는 그야말로 중국 권력의 독보적인 최강자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 경제적 압박을 자주 가했으며, 필요하다면 군사적 압박도 주저치 않았다.
이런 거침없는 압박정책으로 인해 그 미국조차 우칭산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그런 그가 지금 대한민국을 상대로 연락을 취해왔다.
분명 내가 벌인 일로 인해 기분이 매우 언짢은 상태로 있을 터였다.
그건 저 건방진 말투만 봐도 알 수 있다.
“안녕하시오. 주석.”
백 대통령도 호기롭게 화답했다.
아까까지 긴장했던 그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막상 실전에 오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역시 백기완 대통령.
그대로 그렇게 치고 나가십시오.
“바쁘실 텐데 친히 어쩐 일이십니까?”
백 대통령은 뻔히 녀석의 속내를 알았지만, 또 의뭉을 떨며 물었다.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없으시오?”
우칭산은 또한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서로 별말은 안 했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심리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할 말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백 대통령은 여전히 시치미를 뗐다.
“정말 없으시오?”
“없습니다.”
“흐음…….”
우칭산은 언짢은 듯 끓는 소리를 냈다.
“최근에 한국에 사이버 공격이 있지 않았소?”
안 되겠는지 결국 우칭산이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일단 상대 쪽에서 먼저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시작이다.
나는 만족스러움을 표현하며 백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버 공격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먼저 솔직하게 나왔으니 이제 연기는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소?”
우칭산의 말투는 고상했지만 열 받아 있다는 게 확 느껴졌다.
“우리 쪽 해커들이 당신네 국정원과 관공서들을 공격했다오.”
“그랬군요. 그래서 사과하시려고 이렇게 친히 연락하시는 겁니까?”
“…….”
우칭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해커들이 멍청하게 당신들에게 우리 정부의 기밀을 털렸다오.”
그는 백 대통령의 말은 무시한 채 그냥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대통령은 그에 코웃음을 쳤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일개 해커들이 벌일 일인데 어째서 국가 기밀이 털려버린 것이죠?”
“…….”
백 대통령의 팩폭에 또다시 우칭산의 말이 없어졌다.
“…그게 사실, 우리 정부 쪽에서 벌인 일이었기 때문이오. 당신들이 미리 대비해서 깔아두었던 보안 프로그램에 당해 그만 우리 기밀을 역으로 빼앗겨버렸다고 보고받았소.”
마침내 우칭산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차피 우리 쪽에서 뻔히 다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다.
“드디어 시인하시는군요.”
이제 대통령도 연기를 버리고 직접적인 화술을 사용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일단 이 일에 대해서 사과하겠소. 우리가 잘못했다오.”
의외로 사과가 빨라 나와 백기완 대통령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좀 싱거웠다.
“솔직하게 고백하고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사과는 받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암호화를 풀어주고 기밀 정보를 다 삭제하시오.”
그럼 그렇지.
그 기저에는 역시나 시건방짐이 자리했다.
“주석. 매뉴얼이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잘 읽어보시오. 맨입으로 넘어간다고는 쓰여 있지 않으니까 말이오.”
“……당장 암호화를 풀고 기밀 정보를 다 삭제하시오.”
우칭산은 우리의 요구는 무시한 채 우격다짐 식으로 일관했다.
이제는 부탁이 아니라 거의 명령조나 다름없었다.
“매뉴얼대로 한국에 어떠한 해코지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보상금으로 1조 달러를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백 대통령 또한 우칭산에게 전혀 밀리지 않은 채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대가는 내 사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당장 실행하시오.”
“사과는 당연한 겁니다. 속죄하고 싶으시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십시오.”
“대통령!!!”
결국 우칭산은 성을 내고 말았다.
“그렇게 악을 지르는 걸 보니 사과할 맘은 전혀 없었던 것 같군요.”
“내가 친히 굽히고 사과하지 않았소? 대국의 주석이 소국의 대통령에게 그렇게까지 했으면 만족하고 넘어가야지 이게 무슨 건방진 태도요!!!”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 적반하장이라나?
진짜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그렇게 모든 잘못이 저런 시건방진 사과로 다 끝나면 이 세상엔 법이 왜 필요할까?
“지금 이게 사과 하나로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은 지금 국제적으로 경악할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놓고 지금 이딴 태도라니 주석이야말로 너무한 게 아니오?”
백 대통령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갔다.
그는 간신히 이성을 잡아 형식적인 예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 필요 없소!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 하고 그 warrior란 놈에게 당장 암호화를 풀고 기밀을 삭제하라고 지시하시오!”
“그렇게는 안 됩니다.”
“마지막 경고요!!! 당장 실행하시오!!!”
“싫습니다!!!”
“야 이 자식아!!!”
우칭산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 건방진 자식!!! 지금 너 따위가 누구와 되도 않는 협상을 하려는 거야?!!!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어이. 주석.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그 기밀이 별로 중요하지 않나 봐? 그러면 그걸 세상에 싹 다 공개해도 상관없겠네?”
“이봐!!!”
그게 우칭산을 발작하게 만드는 포인트였다.
그는 미친 듯이 악을 질렀다.
“그거 공개했다가는 진짜 후회하게 될 줄 알어!!!”
“그게 싫으면 매뉴얼의 조건대로 하라고.”
“으아아아아아!!!”
우칭산은 악을 빼액 질러댔다.
“아무래도 협상 결렬인 것 같군요. 그 괴팍한 음성도 이제 듣기 싫고 더 할 말도 없으니 이만 끊겠소.”
“대통령!!! 이봐!!!”
수화기 저 너머까지 우칭산의 샤우팅이 시원하게 들려왔다.
백 대통령은 인상을 쓰며 연락을 끊었다.
“미친놈이네요.”
“그러게요.”
“휴우…….”
대통령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댔다.
“심장이 벌렁벌렁하는군요.”
“하하하.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떨림 없이 잘하셨어요.”
나는 격려해줬다.
“분명 보복하겠죠?”
“아까 반응을 보세요. 가만히 있을 놈이겠습니까?”
“하아…….”
대통령은 답답한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 걱정 마십시오. 보복엔 철저한 보복으로 제가 화답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