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다시는 우리나라를 무시하지 마라 (6)
[라일 님.]
“알아봤어?”
[네. ‘시브즈’가 압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브즈’라…….”
시브즈(Thieves)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지금도 그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메가 히트작 레전드 오브 더 스톰(Legends of the Storm)을 만든 회사다.
레오스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했다.
10년 동안 PC방 점유율 1위를 독차지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최근에 우리 프렌드쉽이 그 자리를 빼앗았다.
“이 자식들, 십 년 동안 해 처먹었으면 만족하고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자리를 안 빼앗기려고 추잡스럽게 나오네.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지 치사하게 압박을 넣다니…….”
[그 이유도 맞긴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뭔데?”
[‘시브즈’의 모회사가 바로 ‘미티어’이기 때문입니다.]
“하! 그런 거였나…….”
미티어(Meteor)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투자회사다.
원래는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였는데, 시브즈 같은 게임 회사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나갔고 현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투자회사가 되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중국계라 샤오왕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 배후는 샤오왕인 셈이다.
“하하. 그 아저씨 진짜 안 되겠네.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선빵을 날리신다?”
나는 어떻게 샤오왕을 요리할지 고민했다.
“디오!”
[네.]
“당장 샤오왕에게 전화 걸어!”
[알겠습니다. 그냥 전화하면 안 받을 테니 녀석의 아들 번호로 돌려서 연락하겠습니다.]
“오케이!”
뚜루루루-!
“어. 아들 웬일이야?”
샤오왕은 따뜻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개뿔. 나다!”
“너, 너는…!”
‘너가 왜 거기서 나와?’가 딱 이 상황에 맞는 구절일까?
샤오왕은 질겁하며 반응했다.
“어, 어떻게 이 번호로 연락한 거냐?”
“그건 알 거 없어.”
“네, 네 이놈! 설마 우리 아들을 건든 거냐?”
“야. 말 좀 그만 더듬어라. 한 나라의 총리가 왜 이렇게 모양 빠지게 떨고 난리야?”
“너 이 자식! 정말 죽고 싶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우리 아들 어쨌어?”
샤오왕은 깊은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녀석은 아무래도 지 혼자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골려줘야겠다.
“사지 다 찢어서 묻어버렸다. 아주 마지막까지 발악하더라고.”
“이 개자식아!! 죽여 버리겠어!!”
너무 시끄러워서 전화기에서 귀를 뗐다.
귀청 떨어지겄네…….
“아휴 시끄러. 야! 안 죽였으니까 좀 닥쳐라. 그냥 네 아들 번호만 빌려 쓴 거야. 이딴 거에나 놀아나고 있고. 이거 완전 호구가 따로 없네.”
“…….”
녀석은 급 조용해졌다.
민망한지 헛기침도 해댔다.
“…이 나를 상대로 계속해서 장난질이나 하고 있군. 정녕 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은 건가?”
“그러고 싶은 건 너겠지.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다. 근데 생각보다 별로더라? 응징한다더니 좀 더 거창한 걸 할 줄 알았는데, 하는 짓이 고작 우리 신작이나 견제하는 거라니. 진짜 좀팽이가 따로 없네.”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고작 시작일뿐이다.”
“그래? 아쉽지만 그냥 시작만 하고 끝날 것 같은데?”
“……뭐?”
샤오왕은 불안한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크크.
이 녀석 아무래도 이전에 당한 게 있어서 내가 두렵긴 하나 보다.
“네가 나에게 선물을 보내줬으니까 나도 답례해줘야지. 기대하고 있어. 곧 재밌는 거 하나 터질 테니까.”
“너! 대체 뭔 짓거리를 꾸미고 있는 거야!”
샤오왕은 또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이만 끊자. 네 그 요란한 목소리 들으니까 머리가 다 아프다. 선물이나 잘 받아라.”
“이봐!! 야!!”
뚝!
더 들을 필요 없이 그냥 끊어버렸다.
어차피 계속 소리만 지르고 있을 거다.
이딴 녀석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 자국민의 손으로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디오!”
[네.]
“너 전에 샤오왕 이 녀석이 도박 사이트의 확률을 조작했다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필요하실 것 같아 소스 코드 증거자료까지 미리 다 준비해놨습니다.]
“역시 넌 최고야. 그거 전부 다 중국계 포털사이트에 게시해버려.”
[예. 알겠습니다!]
샤오왕.
이게 내가 너에게 선사해 주는 빅엿이다.
어디 한번 잘 맛보거라.
***
중국은 현재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그 모든 게 warrior란 아이디가 게시한 글과 자료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 전체에 국무원 총리 샤오왕의 비리를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그것도 메인 화면에 떡하니 말이다.
warrior는 샤오왕이 음지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샤오왕이 필리핀 서버를 이용해 교묘하게 뒤에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밝히며 서버 주소까지 싹 다 올렸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큰 문제인데 더 대박인 것은 그가 그 사이트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warrior는 샤오왕이 유저들의 돈을 빼돌린 정황과 승부 조작을 했던 행적까지 다 폭로했고, 거기에 덧붙여 사이트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투자한 사람들의 수를 조작했던 기록을 소스 코드와 함께 공개했다.
앞에서는 부패 척결을 구호로 외치고 비리와 범죄에는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주창하던 그가 실제로는 부패 그 자체였다라는 사실에 많은 중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총리께서 어떻게……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확률 조작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인터넷상에서는 상당히 절제된 표현들을 써가며 샤오왕의 실체를 부인하는 듯한 댓글들이 많았지만, 음지에서는 모두 그를 욕하느라 바빴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에는 warrior가 올린 증거들이 너무 빼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한국의 warrior에 대한 소문은 중국인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다.
중국인들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warrior가 거짓말쟁이네 사기꾼이네와 같은 소리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한편 샤오왕의 불법 도박 사이트를 이용했던 유저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추적으로부터 안전한 다크 웹 커뮤니티를 이용해 자신들의 진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샤오왕. 그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분명 시치미부터 떼겠지만 증거가 확실하다고.
-씨발. 그 자식 때문에 잃은 돈이 100만 달러가 넘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샤오왕을 칼로 쑤시지 않고서는 못 살겠다.
-암살단 모집합니다. 같이 죽이러 갑시다.
-나도 합류하겠다. 그 새끼 죽여버리자.
샤오왕의 사이트를 이용했던 사람들 중에는 삼합회 인원들도 다수 포함됐었다.
그들은 진짜로 샤오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샤오왕은 각 포털사이트 대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글 안 내리고 뭐 하고 있어?!!”
“총리님 그게……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글이 안 내려갑니다.”
대표들은 한결같이 다 같은 대답이었다.
“이 씨발!!! 왜 다들 그렇게만 말하고 있는 거야? 좀 어떻게 해보란 말이야. 안 되면 포털사이트 자체를 폐쇄해!!”
“총리님……. 지금 그것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듣기론 warrior 그놈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짓을 했었는데 거기서도 뭔 짓을 해도 글을 못 내렸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할!!!”
샤오왕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포털사이트 대표들에게 기대해봤자 답이 안 나올 게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Wolf! Wolf!!”
샤오왕은 급하게 Wolf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를 모질게 대하긴 했지만 결국 샤오왕이 사이버상의 일로 의지할 존재는 Wolf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총리님.”
아무래도 이전에 심하게 당한 것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렸는지 Wolf는 샤오왕의 부름에 황급히 대답했다.
“지금 하던 거 다 멈추고 당장 글 좀 내리게!!”
“……알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해! 그러면 이전의 일은 다 잊어줄 테니까.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장 해!!”
Wolf는 조직원들과 같이 한창 한국과 warrior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총리의 명령으로 인해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이것 또한 warrior와 관련된 일이었으므로 Wolf의 의욕은 여전히 불타올랐다.
그는 조직원들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내릴 것을 명령했다.
“Wolf……. 이거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요?”
그러나 포털사이트 측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warrior의 글을 내릴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게 warrior가 올린 글과 자료는 내려갈 생각이 없이 딱 버티고 있었다.
Wolf는 잠시 고민한 다음 부하에게 명령했다.
“안 되겠다. 당장 Bear를 불러.”
Bear
WHR 35위에 있으며 디도스 공격의 귀재로 유명한 해커다.
“Wolf. 무슨 일이야?”
Bear는 Wolf의 부름에 달려왔다.
“Bear. 아무래도 글을 직접 내리기는 무리인 거 같다. 그냥 포털사이트 자체를 날려버리자.”
“오케이. 맡겨줘. 당장 시작하지.”
Bear 팀은 신속하게 각 포털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가했다.
아예 사람들의 유입을 막아버리자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전혀 안 먹히고 있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예 끄떡없어. 계속 공격하고 있지만, 그 상태 그대로야.”
“하아……. 망할.”
Bear는 골치 아픈지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Bear! 뭔가 이상해.”
그때 갑자기 한 팀원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며 Bear를 불렀다.
“왜 그러는데?”
Bear는 그 팀원의 모니터를 쳐다봤다.
“!!!”
Bear는 기겁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거기에는 라이브로 메시지가 써지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쓴다 애써. 딱해서 도저히 못 보겠다. ㅋㅋㅋㅋㅋㅋㅋ]
“Bear…… 이, 이거.”
“아무래도 맞는 거 같네.”
warrior였다.
이번에는 Bear 팀을 타켓으로 삼은 것이다.
그 순간 Bear의 머릿속에는 warrior가 원격으로 자기 팀 컴퓨터를 전부 다 박살 내버렸다는 Snake의 말이 떠올랐다.
“야! 당장 인터넷선 뽑고 전기 내려!!”
Bear의 외침에 팀원들은 전기를 내리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끄아아아아악!!!”
문을 열려고 도어락을 만진 팀원이 갑자기 온몸을 떨어대며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문손잡이에서 전기가 심하게 흘러서 못 만지겠어요!!”
“뭐?!”
Bear는 황당해하며 문 쪽으로 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어락을 살펴봤다.
도어락에서는 미세한 지지직 소리와 함께 뭔가 스파크 같은 게 튀었다.
“크윽!”
그는 감히 도어락을 잡을 엄두를 못 낸 채 발만 동동 굴렀다.
“Bear!”
그때 다른 팀원이 그를 불렀다.
“……왜?”
“이 메시지 좀 확인해 보세요.”
Bear는 동료가 가리키고 있는 모니터 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너희는 여기서 못 나간다. 손잡이 만지는 순간 바로 전기 충격이야. 그러니까 뻘짓거리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거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