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다시는 우리나라를 무시하지 마라 (1)
흑객연맹 본부
Wolf는 한창 대한민국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공격 대상은 청와대와 국정원이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분명 국무원 총리의 쓴맛을 볼 것이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Wolf는 흑객연맹의 각 팀 팀장들을 한데 불렀다.
모두 WHR 100위 안에 드는 랭커들이다.
그중 Snake와 Tiger는 면목이 없는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다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무겁게 들렸다.
“연이은 실패에 우리의 명성과 자존심도 많이 떨어졌을뿐더러, 총리님의 기분도 매우 언짢으신 상태입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입니다.”
그동안 샤오왕 총리는 흑객연맹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대신에 그들을 자기 입맛대로 이용해 왔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다 눈감아 주었고, 심지어 해외 기관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올 때도 다 막아주었다.
그만큼 그들을 보호해주고 뒤를 봐줬던 이유는 그들이 이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면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이유가 사라진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지금까지 누려온 특권을 다 빼앗겨버리게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총공세를 취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위기 상황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Wolf는 Snake와 Tiger를 힐끔 쳐다봤다.
그들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Wolf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는 마십시오. 위기는 기회라고들 하죠. 이번에 성공하면 우리의 명성은 전보다도 더 올라갈 것이며 막대한 보상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의기소침해 있는 멤버들을 달래주며 말했다.
“다들 그러면 작업을 시작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대한 흑객연맹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Snake팀과 Tiger팀은 이번엔 연합해서 청와대 사이트를 공격하기로 했다.
이 두 팀은 디도스 공격을 통해 청와대 사이트를 완전히 날려버릴 계획이었다.
나머지들은 Wolf의 주도하에 국정원이 보호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 기밀을 빼내기로 했다.
그들은 긴장하면서 공격에 임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작업은 너무 싱겁게 이루어졌다.
청와대 사이트는 날아가 버렸고 그들은 기밀자료들을 싹 다 빼 올 수 있었다.
“하하. 새끼들 별거 아니었네.”
“괜히 겁먹어가지고 말이야. 역시 우리 흑객연맹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니까.”
흑객연맹 조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Wolf는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이상할 정도로 너무 쉬워. ……대체 뭐지?’
그렇다고 뭔가 숨은 계략이 있다고 하기에는 실제로 그들은 청와대 사이트를 날려버렸고 정보도 빼 왔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었지만, Wolf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대장. 임무에 성공해서 다들 기뻐하는 데 왜 혼자만 표정이 이리 어두워요?”
그런 그를 한 동료가 이상하게 여기며 다가왔다.
“뭔가 꺼림칙해서…….”
“뭐가요?”
“모든 게 너무 쉽게 이루어졌어.”
“에이. 우리가 맘먹고 제대로 달려드니까 그런 거죠. 그까짓 놈들이 어떻게 우리를 막아내겠어요?”
Wolf의 동료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총리님께 자료 드리고 축하 파티나 해요.”
“……그래.”
일단 Wolf는 총리를 만나 보고하기로 했다.
“Wolf. 거봐. 자네 잘 할 수 있으면서 이때까지 왜 그런 건가?”
Wolf가 국정원으로부터 탈취한 자료를 받은 샤오왕은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잘 해줘. 실패하면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지고 기분만 상하잖아.”
“알겠습니다.”
“자네가 이뤄낸 성과로 인해 우리 중국은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 이것을 볼모로 한국으로부터 갖은 이권을 얻어낼 계획이니까 말이야.”
샤오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봐. 수고했어. 나중에 또 부르지.”
“네. 안녕히 계십시오.”
Wolf는 샤오왕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나왔다.
그가 나가자 샤오왕은 총리로서 잡았던 무게를 풀고 날아갈 듯이 기뻐했다.
“하하하하하. 조만간 애송이 대통령과 만나서 딜을 해야겠구먼.”
***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차에서 내린 백기완 의원은 레드카펫을 밝으며 취임식장으로 입장했다.
이전에 내가 대통령직을 제안했을 때 못하겠다고 손사래 치던 그 백 의원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늠름한 모습으로 입장했다.
오늘따라 유독 위풍당당하고 세련되게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백 의원은 취임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이상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그의 연설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매우 적합한 인물을 뽑았나 보다.
역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취임식이 마무리될 때 참석한 모든 이가 열연한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며 백 의원, 아니, 백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해줬다.
백 대통령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건넸고, 굳이 나한테까지도 다가왔다.
그는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날이 오게 되는군요. 덕분입니다. 라일 씨.”
“뭘요. 다 대통령님의 능력이 출중하시기 때문이죠.”
“하하하하하.”
우리는 같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힘차게 악수를 했다.
취임식 이후 조촐한 만찬이 이어졌다.
난 만찬 자리에도 초대되었다.
뭔가 중년의 아저씨들만 가득한데 나 혼자 젊으니까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 어색하긴 했지만 나도 여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사람이므로 굳이 주눅들 필요 없이 당당하게 있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 모두 잔을 따르고 대통령의 건배사를 기다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은인들 덕에 저는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특별히 이라일 씨에게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
갑작스러운 백 대통령의 지목에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하하…….
이렇게 관심받는 것은 좀 별로긴 한데.
“모두 아시다시피 라일 씨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비리와 부당한 일들을 드러냈습니다. 라일 씨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썩어빠진 정치판이 계속 이어졌겠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부당함을 싹 다 정리했고 새 판을 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분이 저와 함께 새 정치판에 모여있죠.”
그는 힘차게 말하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갑시다!”
“옳소!”
“좋습니다!”
그의 힘찬 발언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호응해주기 시작했다.
“그럼 건배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여기저기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나도 적당히 옆에 있는 사람과 건배를 하고 잔을 들이켰다.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던 사람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 백기완 대통령이 어느새 내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많이 드십시오. 라일 씨.”
“네. 감사합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하하하하하. 그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군요.”
“계속 듣다 보면 곧 익숙해지겠죠. 그나저나 대통령님…….”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쯤에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취임식 날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애석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곧 그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니까…….
“이 만찬이 끝나는 대로 저와 잠시 만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근데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군요.”
“네. 좀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알겠습니다. 좀 있다 뵙도록 하죠.”
일단 우리는 남은 만찬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잠깐의 달콤했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대통령 집무실로 갔다.
“그래서 하실 이야기가 무엇이죠?”
“곧 중국 국무원 총리 샤오왕이 방한할 겁니다.”
“…….”
국무원 총리 샤오왕
‘중국의 이인자’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삭제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외교관들 사이에는 간사하고 영악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샤오왕은 또 외교적 만남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협박도 거침없이 일삼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백 대통령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무슨 이유로 갑자기 여길 온답니까?”
“대통령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래요?”
백기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전에 혹시 흑객연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중국의 해커집단 정도라는 것만 압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해커집단은 아니죠. 중국 정부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까요.”
“중국 정부가 뒤를 봐준다고요…?”
대통령은 그건 잘 몰랐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다른 나라들의 항의 때문에 그들의 불만을 누르고자 대외적으로 중국 정부는 흑객연맹을 척결하려는 척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잘했다고 칭찬하며 흑객연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죠.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국무원 총리 샤오왕입니다.”
“……그렇군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건 왜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대통령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최근 그놈이 흑객연맹을 시켜 청와대 사이트와 국정원을 공격하게 했으니까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전 전혀 몰랐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나는 피식하며 대답했다.
“제가 아무 일도 없게 만들어버렸으니까요.”
“……그게 무슨?”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이 청와대 사이트를 날려버렸고 국정원에서 자료를 빼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공격당한 곳은 제가 만든 가상의 사이트이고 녀석들이 국정원에서 빼갔다고 착각한 자료 역시 제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데이터입니다.”
“아……. 라일 씨가 미리 다 작업을 해 놓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안심하며 말했다.
“알아보니 샤오왕 그 녀석, 지금 우리 약점을 잡은 줄로 착각하며 기뻐하고 있더군요. 녀석은 조만간 그것을 볼모로 대통령님과 거래를 할 예정입니다.”
“이런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
쾅-!
백기완 대통령은 분노하며 책상을 내리쳤다.
“우리가 반대로 녀석들을 속이며 제대로 역공을 날려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감히 우리를 얕잡아보다니, 그 값을 톡톡히 치르도록 해줘야겠군요.”
백 대통령은 투지를 드러내며 말했다.
***
샤오왕은 한국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며 혀를 찼다.
“역시 소국이라 그런지 볼품이 없구먼.”
그의 눈에 마중 나온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하!”
그것을 보며 샤오왕은 코웃음을 대차게 쳐댔다.
“총리님.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외교부 장관입니다.”
장관은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 나라는 예의가 없군. 대국의 총리가 왔는데 대통령이 직접 오지도 않고 말이야.”
샤오왕은 악수를 받아주기는커녕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장관에게 면박을 줬다.
한국의 약점을 제대로 잡고 있다고 착각한 그라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총리님을 맞이하려고 청와대에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장관은 기분이 많이 상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계속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에잉! 한심하기는.”
샤오왕은 대놓고 무례하게 나왔다.
그는 안내를 받아 청와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샤오왕 총리님.”
백기완 대통령은 그를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안녕하시오. 샤오왕이올시다.”
그는 백기완 대통령 앞에서조차 전혀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꼿꼿하게 서 있으며 무례하게 다가왔다.
백 대통령은 그냥 그런 것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들은 회의 장소에 도착했다.
“소국이라 그런지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도 볼품없군요. 이렇게 작은 곳에 있으니 숨 막히고 답답합니다그려.”
“하하하하. 무조건 커야 좋은 것이겠습니까? 실속이 있어야지요.”
대통령 또한 그를 견제하는 말로 화답했다.
그에 샤오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통령을 노려봤다.
“소국이 주제도 모르고 대국에게 덤비다가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십니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백 대통령은 그에 말에 인상을 썼다.
“아! 이미 한 방 먹었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소이만.”
“한 방을 먹었다…?”
“최근에 청와대 사이트가 날아가 버리고 기밀이 유출되지 않았습니까?”
샤오왕은 비웃으며 백기완 대통령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대한민국은 뒤집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