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새 시대 (5)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집으로 왔다.
그들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조선족 킬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 망나니 같은 애들을 이렇게 길들이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하하하. 망나니 같은 놈들 참교육시키는 게 제 전문이거든요.”
“하하…….”
내 말에 경찰관은 어색하게 웃었다.
“덕분에 쉽게 잡아가네요. 이 녀석들 전부터 골치 아팠던 놈들이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경찰들은 알아서 손을 내주는 조선족 킬러들에게 수갑을 채운 다음 편하게 녀석들을 끌고 갔다.
“디오야. 방송 반응이 어때?”
나는 곧바로 디오에게 물었다.
[모두 환호하고 있습니다. 댓글 한번 확인해보시죠.]
디오는 나에게 실시간 반응을 보여줬다.
-와. warrior 역시 카리스마 장난 아님.
-이제 범죄자들 큰일 났다. 우리 warrior성이 너희들을 다 몰락시켜 줄 것이다.
-칼도 안 통하고 총도 안 통하는데 어쩔? 완전 대박!!
-warrior 정녕 당신은 인간이 맞습니까? 혹시 당신은 지구를 구하러 온 히어로?
-천하무적이 나타나셨다! 팔굽혀펴기하는 거 겁나 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하하.”
댓글들을 읽는데 뭔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경고했으니 이제 다시는 킬러 같은 거 안 보내겠지.”
“저기…… 라일 씨?”
그때, 방에서 가정부 아줌마가 나왔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는 아이튜브가 켜져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을 보고 있다가 상황이 다 종료된 거 같으니 나온 것 같다.
“이게 뭔 일이래요?”
“좀 당황스러웠죠?”
“좀이라뇨…….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어휴 세상에.”
아줌마는 벽에 박힌 총알 자국을 보며 질색했다.
“제대로 경고했으니 앞으로 이럴 일 없을 겁니다.”
“……그러겠죠?”
아줌마는 두려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여전히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생각한 건데 이 아줌마는 내 입맛에 맞게 요리를 잘한다.
두려워서 그만둔다고 하면 안 되니 확 잡아야겠다.
“절대 아줌마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니까 계속 일해주십시오. 오늘 놀라셨던 것에 대한 피해보상도 드리겠습니다.”
이럴 때는 금융치료가 답이다.
“호호호. 정말요? 그러면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바로 의욕적으로 변하는 아줌마였다.
효과가 생각보다 직방이라 뭔가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뭐 어쨌든, 나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것에 대해서 보상하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그럼 저는 라일 씨 믿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줌마는 다시 아까처럼 흥얼거리며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좀 많이 쾌활한 아줌마를 고용한 것 같다…….
***
warrior의 라이브 방송은 대한민국에 또다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사람들은 warrior를 암살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
오히려 warrior에 대한 공격은 더 큰 처벌을 불러올 뿐이었다.
warrior는 알아서 자수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비리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군(軍), 공직자, 기업가, 연예계 등 사방에서 사람들이 자수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자수하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데에는 여러 명이 같이 터져야 묻힐 수 있다는 심보도 한몫했다.
그들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또 있어? 미치겠네, 진짜….”
이 끝날 줄 모르는 자수 사태로 인해 법조계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 모든 사건을 다 처리하려면 24시간을 풀로 안 쉬고 일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비리를 다 밝혀내자니 한도 끝도 없고.
그렇다고 범죄를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또 그건 말이 안 되고.
사법부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바로 이때가 내가 개입할 시기였다.
이들로서는 내 도움을 거절하기가 힘들 거다.
나는 디오를 통해 대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두두두-
“네. 대법원장 한승재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warrior 이라일입니다.”
“…이, 이라일 씨요?!”
대법원장은 질겁하며 반응했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 그게 좀 갑작스러워서 당황했습니다.”
말까지 더듬는 것을 보아 그는 많이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대한민국 서열 3위인 대법원장이 이렇게까지 떨다니
정말 나란 존재는.
“그런데 제겐 어쩐 일로…?”
“지금 저 때문에 사법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아진 거 같아서, 그 짐을 좀 덜어드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
“하하……. 짐이 좀 많아지긴 했습니다.”
그는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뭔가 원망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짐을 덜어주시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솔직히 지금 사법부의 인력과 힘으로는 이 일을 처리하기에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다들 로봇이 아니라 인간인데, 점점 지쳐가면서 판결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게 뻔합니다.”
“…….”
그게 팩트긴 했는지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인 채로 있었다.
“그래서 제가 편하게 범죄자들을 재판할 수 있도록 다 정리해서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자료를 보시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흠…….”
그는 내 제안에 고민이 많은지 콧숨을 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해는 한다.
내가 검찰총장도 박살 내 버렸고 나로 인해 그의 동료 판사들도 비리가 싹 다 드러나게 됐는데 당연히 조심스럽겠지.
갑자기 등장한 나한테 많은 부분을 맡기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힘에 부칠 거다.
자!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일단 거절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그를 좀 더 꼬셔보기로 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최종적인 판결은 사법부의 일이니까요. 제가 그 권한까지 가져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편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자료 정리를 해주고 안내를 해드리겠다는 뜻입니다.”
“그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솔직히 라일 씨께서 법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정리하고 안내를 해주겠냐는 것입니다.”
그래.
이해한다.
로스쿨도 안 나온 내가 판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안내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겠지.
근데 디오를 가지고 있는 내가 이 나라에서 그 누구보다 법에 정통한 걸 어떻게 해?
“저 warrior입니다. 슈퍼인공지능이 탑재된 초(超)인간이 바로 저죠. 대법원장님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지만, 솔직히 저보다 법에 능통한 사람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미 저는 제 힘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못 미덥다면 일단 제가 보내는 자료들을 보고 결정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그럼 한번 보내주십시오. 보고 나서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나는 디오를 시켜 대법원장에게 자료들을 바로 보냈다.
이제 할 일은 편안히 기다리는 거다.
그 자료를 보고도 내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정리를 잘해놓을 수가 없으니까.
그건 거의 뭐 떠 먹여주는 수준이다.
그래도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다.
지가 지 복을 발로 차는 거지.
띠리리리~!
자료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전화가 왔다.
“라일 씨.”
“네. 어떠신가요?”
확신의 찬 대법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라일 씨의 안내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완전 대박이네요!”
***
내 도움으로 재판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처리됐다.
사법부에서도 처음에는 내가 준 자료를 반신반의하며 참고했다.
하지만 점점 사용하다 보니까 내가 준 자료에는 흠이 하나도 없고 일일이 다 내 자료가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확인조차 안 하고 바로 결론 부분만을 참조해 일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변호사와 검사는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판사가 그 자료를 토대로 판결을 내리면 끝이었으니까
그로 인해 재판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진행됐다.
자수 행렬에 끼어든 사람들 중에는 재판할 게 너무 많아 사법부가 일 처리를 대충할 것을 노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참 딱한 일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범죄자들은 딱 그들에게 알맞은 형량을 받았다.
내가 준 자료를 근거로 말하면 그 누구도 판결에 대해 토를 달지 못했다.
그만큼 디오는 오류 없이 철두철미하게 정리해놨다.
초스피드 재판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는 인원이 엄청나게 늘었지만,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냥 기존의 방에 인원을 더 추가시켜, 죄수들이 이전보다 더 불편한 생활을 감내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더 혹독해진 감옥 체험을 통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다시 안정되어 갔다.
이제 다음 일은 대선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른정치당은 백기완 의원을 후보로 내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미 정치판 내에서는 내가 백기완 의원과 결탁하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전에 구기춘에게 백기완 의원은 내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이 퍼진 듯했다.
이로 인해 백기완 의원을 제외한 다른 후보자들은 감히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이러면 공산주의와 다를 게 뭐냐? 난 이런 걸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하하…….
멋쩍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백기완 의원과 친분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선거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각 당에 맹세했다.
그리고 덧붙여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할 테니 맘 편히 후보자들을 내보내라고 전달했다.
하지만 결국 어떤 후보자들도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비단 내가 무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기존에 차기대선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은 죄다 비리에 연루되어 사라진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비리는 없지만 경험이 부족한 인물들만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애초에 대통령감이라고는 지금 백기완 의원밖에 없었다.
다른 당들은 백 의원에게 상대가 안 될 게 뻔하니 괜한 노력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상 초유의 긴장감이 하나도 없는 대선이 치러졌고, 그렇게 백기완 의원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백기완.’
중국 국무원 총리인 샤오왕은 뉴스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백기완 의원이 당선됐음을 확인했다.
“결국 이렇게 됐군.”
한국에 대한 정보망에서 백기완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이건 그가 전혀 눈여겨볼 필요가 없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듣보잡이 갑자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그냥 유력한 정도가 아니다.
사실상 독주다.
샤오왕은 백기완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이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샤오왕은 이 인물이 최근에 자신을 좀 거슬리게 만들었던 warrior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인물이 이제 한국의 대통령이 됐다.
“하하하. 재밌네.”
샤오왕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총리님.”
“Wolf. 새로 당선된 애송이 대통령 신고식 좀 거하게 치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