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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새 시대 (3) (46/201)

45화. 새 시대 (3)

“……사퇴하신다고요?”

“네.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테니 뜻대로 하십시오.”

“…….”

의외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대통령은 그런 나를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썩 내키지 않아 하시는 것 같군요. 청렴한 대한민국을 원하시던 거 아니셨나요? 저 또한 비리를 저지른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맞겠지요.”

“안 됩니다.”

나는 단호하면서도 강하게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대통령님의 비리를 드러내지 않았던 건 나라의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난장판인데 대통령님께서 사퇴하신다면 나라에 혼란만 더 가중될 겁니다.”

“…….”

내 말에 대통령은 말없이 커피를 또 한 모금했다.

“정말 제 뜻대로 되길 희망하신다면 일단은 참아주시면서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적어도 warrior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그냥 계속 계셔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정중하게 설명했다.

그는 나를 쓱 한번 쳐다본 다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때 제가 자수하고 사퇴하도록 하죠.”

대통령은 씁쓸한 어조로 말하긴 했지만, 거기에는 분명 확고한 결의가 깃들어져 있었다.

김태하 대통령.

안타까운 인재다.

그가 미래찬란당이 아니라 다른 당 출신이었으면 그의 미래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제가 할 이야기는 이제 끝난 것 같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시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부디 미래의 대한민국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그의 악수를 받았다.

“꼭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하하하하. 믿고 있겠습니다.”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어느덧 밥 먹을 시간이군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님과 같이 식사하는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영광이죠.”

“하하하하. 그러면 따라오시지요.”

그는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렸는데 짬뽕이랑 탕수육이 나왔다.

솔직히 좀 의외였다.

더 고급진 것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식단이 조촐했다.

“제가 중화요리를 좋아해서요.”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대통령은 알아서 먼저 설명해줬다.

“저도 좋아합니다.”

나는 앞에 놓인 짬뽕을 한 젓가락 했다.

!!!!!!

미. 쳤. 다!!!!

이건 조촐함에 가려진 신의 맛이다.

내가 이제껏 먹어봤던 짬뽕 중엔 단연 최고다.

나는 거침없이 짬뽕을 들이켰다.

“하하하. 입맛에 맞으신가 봅니다?”

대통령은 흐뭇해하며 물었다.

“단지 입맛에 맞을 뿐이겠습니까? 이건 최곱니다.”

“탕수육도 맛있습니다. 한번 맛보시죠. 우리 청와대 주방장의 특기니까요.”

바삭!

오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는다면 대통령 할 맛 나겠습니다.”

“하하하하. 맞습니다. 나중에 사퇴할 때 이것 때문에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시겠다니.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했다.

“라일 씨.”

돌아가려는 찰나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네.”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일 씨 덕에 이 나라는 이제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에서 그이 진심과 의지가 충분히 느껴졌다.

“그게 대한민국 국민인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맡겨주십시오.”

나는 대통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한 뒤 청와대를 나왔다.

***

총선 이후 새 국회가 열리자마자 warrior 특별법이 다시 발의됐다.

법안 발의부터 상임위원회를 지나 곧바로 본회의까지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착착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본회의

warrior 특별법은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김태하 대통령은 warrior 특별법안에 사인하기 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통령님.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막 warrior 특별법안이 제게 올라왔습니다. 이제 사인하고 공포만 하면 모든 게 끝입니다.”

“하하하. 드디어 이날이 왔군요.”

“그럼 사인을 하겠습니다.”

슥- 슥-

대통령은 시원하게 사인을 했다.

“다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모든 일이 끝이 났습니다. 조만간 사퇴 발표를 하기로 하죠.”

대통령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이 못난 제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죠. 이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때입니다.”

“네.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이제 편히 후임에게 맡기십시오.”

“예.”

그로부터 며칠 후 김태하 대통령은 자신의 비리를 스스로 밝히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스스로 사죄하며 물러가는 그의 모습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김태하 대통령의 사퇴 발표 이후 나는 백기완 의원과 개인적인 식사 자리를 잡았다.

식당은 그와 처음에 만났던 한정식 전문점으로 정했다.

“오랜만입니다. 라일 씨.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백 의원님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라일 씨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하. 저는 딱히 의원님께 적의가 없었는데 말이죠.”

근데 솔직히 백 의원 입장이 백번 이해된다.

나 같았어도 온갖 비리를 싹 다 공개하고 다니는 놈이 갑자기 만나자고 하면 뭔가 이상했을 거다.

여기서 태평한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지…….

“그때 말씀하셨던 warrior 특별법. 정말 그 말대로 됐군요.”

백 의원은 혼자 감탄하며 말했다.

“솔직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밝혔다.

“한 개인에게 일방적인 특권을 주라니. 정말 기가 막힌 제안이었으니까요.”

“하하하하. 사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라일 씨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거기에 동참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라일 씨는 맘먹고 막무가내로 하려고 하면 다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조율해가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좋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

“라일 씨도 받으십시오.”

그도 나의 술잔을 따라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우리는 술잔을 부딪친 다음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모든 게 뜻대로 이루어지고 나서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맛이 기가 막혔다.

“저는 이렇게 라일 씨와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영광입니다. 미래의 대통령님과 이렇게 친분을 맺을 수 있어서 말이죠.”

“네?!!”

백 의원은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미래의 대통령이라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이제 대통령 하셔야죠.”

그의 반응과는 다르게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곧 대선이지 않습니까?”

나는 당연한 건데 왜 그렇게 반응하느냐는 듯이 물었다.

“그 말은… 저보고 대통령 후보로 나가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당연하죠. 백 의원님이 후보로 나가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간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저는 대통령 할 그릇이 못 됩니다.”

백 의원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체면상 내빼는 게 아니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히려 그게 더 나를 피곤하게 만들긴 했다.

“의원님. 방금 그릇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놈의 정치판은 이제껏 그릇이 안 된 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비리가 터지니까 아주 다 우수수 나가떨어지는 거 보십시오. 반대로 의원님은 이렇게 떳떳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비리를 안 저지르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보다는 제가 능력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의원님 정도면 훌륭합니다. 제가 단순히 의원님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단호하면서도 강한 어투로 말했다.

“의원님의 그 추진력, 또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 그 모든 것을 눈여겨보고 의원님을 제 협력자로 선택했던 겁니다.”

“…….”

그는 처음 warrior 특별법에 대한 제안을 말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이 많은지 말없이 있을 뿐이었다.

“아까 warrior 특별법에 대한 제 제안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셨댔죠? 그런데 보십시오. 현재 그게 어떻게 됐습니까? 그 법안, 만장일치로 통과되지 않았나요? 의원님이 대통령이 될 거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원님은 분명 보란 듯이 커다란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이라…….”

그는 피식하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라일 씨께서는 정말 제가 대통령직을 잘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완전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확고하게 말했다.

그 또한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뭔가 그의 눈에서 의지가 생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대신 라일 씨께 도움을 많이 요청할 것 같습니다.”

“하하. 오히려 환영입니다. 이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시 백 의원의 잔에 술을 따랐고, 그도 내 잔을 채워줬다.

“그러면 미래의 대통령을 위해 건배를 하도록 하죠.”

“하하. 쑥스럽습니다. 그래요! 한번 까짓거 해봅시다!”

“하하하하. 좋습니다. 미래의 대통령을 위하여!”

“위하여!”

우리는 경쾌하게 잔을 부딪친 다음 시원하게 털어 넘겼다.

***

중국 흑객연맹 본부

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Wolf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Wolf님, 총리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부하의 안내에 한 중년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현(現) 중국 국무원 총리인 샤오왕이었다.

“총리님. 어서 오십시오.”

Wolf는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샤오왕을 맞았다.

“오랜만이네.”

샤오왕은 손을 들며 Wolf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앉으시죠.”

그는 총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한국 국정원을 공격하는 데 실패했다지?”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네. ……면목 없습니다.”

Wolf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자네도 실패할 때가 있군. 믿고 있었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Wolf는 고개 숙여 샤오왕에게 사죄했다.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가 직접 나서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 또한 알고 있어.”

총리의 말에 Wolf는 사색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부하 선에서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뭐 한 번쯤은 오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다음은 곤란해.”

말의 내용은 자비로웠지만, 그것을 말하고 있는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고요해 섬뜩함이 느껴졌다.

Wolf는 그 긴장감으로 인해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국정원을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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