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내가 바로 warrior다 (8) (38/201)

37화. 내가 바로 warrior다 (8)

구기춘은 넋을 잃고 장수진을 바라보았다.

그에 눈에 그녀는 너무나도 이뻤다.

장수진은 오늘 굉장히 신경 써서 꾸미고 왔다.

처음으로 샵에 가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받았다.

거기에 이라일이 사준 명품을 걸치고 등장!

“안녕하세요. 의원님. 대한일보. 박다정 기자입니다.”

그녀는 구기춘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구기춘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한껏 빠져 있다가 그만 응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의원님?”

“어, 어!”

장수진이 의아해하며 부르자 그제 서야 구기춘은 정신을 차렸다.

“네. 반갑습니다. 국회의원 구기춘입니다.”

그는 장수진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기자님께서 너무 아름다우셔서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의원님께서도 실물이 훨씬 나으셔요.”

장수진은 부드럽게 너스레를 떨어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자기 자신이 역겨울 정도였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인지……저 돼지 새끼에게 이딴 말이나 하고 있는 내가 싫다. 아……악수도 하기 싫어.’

장수진은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했다.

하마터면 표정이 무너질 뻔했지만 그동안 다진 요원 내공으로 그녀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앉으시죠.”

그녀와 악수를 마친 구기춘은 자리로 안내했다.

“차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그냥 물 한 잔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죠.”

구기춘은 냉장고에서 물 한 팩을 꺼내 컵에 따랐다.

“이거 보통 물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물입니다. 일단 많이 비싸죠. 특별히 기자님께만 드리는 겁니다. 물맛이 아주 좋을 겁니다.”

그는 꼴 보기 싫을 정도로 장수진에게 뻐겨댔다.

“아……네.”

그녀는 거기에 하나하나 응답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마셔보시죠.”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구기춘이 건넨 물을 받았다.

[마시지 마. 약 같은 거 탔을지도 몰라.]

그 순간 이라일의 무전이 들렸다.

‘나도 알고 있다고요. 요원 짬바가 있지.’

장수진은 속으로 불평했다.

하지만 이라일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게 애석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눈에 구기춘이 수상할 정도로 그녀가 물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 쳐다보는 게 보였다.

‘에휴. 개자식. 백 퍼 약 탔다.’

그녀는 물컵을 그대로 앞의 책상에 놓았다.

“왜 마시지 않으시고?”

“좀 있다 마실게요. 지금은 별로 안 내키네요.”

“…….”

실망하며 묻는 구기춘의 말에 그녀는 대충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의원님. 그럼 취재를 시작해도 될까요?”

귀찮아질까 봐 장수진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네. 그럽시다.”

“이번에 의원님께서 warrior의 공격에 맞서시면서 올린 영상을 저도 봤었는데요 warrior가 일으킨 추문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 다시 한번 밝혀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응답할 가치가 있나 싶지만 국민들께서 많이 오해하고 계시니 이렇게 해명을 할 수밖에 없군요. 다 거짓입니다. 녀석은 지금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죠. 이 모든 게 그 어처구니 없는 warrior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우리 미래찬란당을 제물로 쓰려는 수작입니다.”

“아. 그렇군요.”

장수진은 적당히 호응해줬다.

물론 속으로는 ‘개소리하네’라며 비웃었지만 말이다.

[저 새끼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진짜 저 정도면 능력이다. 능력이야.]

이라일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장수진은 방해되니까 제발 이라일이 조용히 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정말 답답한 것은 많은 국민들이 그 녀석에게 놀아나고 있고 일부 몰지각한 국회의원들 또한 선동당해서 warrior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특히 바른정치당 의원들이 정신머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warrior 녀석이 정말 국익을 위해 그 법을 만들고자 하시는 줄 아십니까? 다 녀석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익이라면 정확히 어떤 이익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녀석의 정확한 속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킹을 합법화시키면 뭔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은행 계좌를 싹 다 털어가도 안 이상할 정도입니다. 지금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이 극악무도한 해커 녀석에게 세뇌당하면 안 됩니다. 얼른 정신을 차리시고 warrior 특별법을 반대하는 쪽에 서야 합니다.”

“하긴요. warrior 특별법이 혹시라도 악용된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나겠군요.”

장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척을 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 기자님은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말도 잘 통하시네. 녀석은 분명 악용합니다. 우리가 대체 무엇을 믿고 녀석에게 그런 기득권을 줍니까?”

“의원님의 말마따나 warrior 특별법을 무작정 찬성해서는 안 될 것 같네요.”

“당연하죠!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warrior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믿고 뽑아주신 저희를 믿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의원님들은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검증받은 사람들이잖아요. warrior가 아니라 의원님들을 믿어야죠. 우리가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이거 쑥스럽네요. 하하하하하하하.”

구기춘은 장수진이 자신의 말에 호응해주자 신나 했다.

그걸 보고 있는 장수진은 짜증이 치밀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와. 진짜 지금이라도 내가 가서 한 대 쥐어 박고 싶다.]

이라일의 말에 ‘그걸 눈앞에서 보고 있는 내 기분은 어떠겠니’라고 속으로 외치는 장수진이였다.

“의원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이렇게 인터뷰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나라와 국민들을 위한 의원님의 염려와 심려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사 잘 써서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장수진은 구기춘에게 인사한 다음 집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저기……기자님.”

갑자기 구기춘이 장수진을 불렀다.

“혹시 오늘 바쁘신가요?”

“네? 어쩐 일로 그러시죠?”

“괜찮으시다면 저랑 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까 해서요. 기자님은 저랑 말이 잘 통하신 것 같은데요.”

“…….”

장수진은 토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구기춘 의원의 말에 호응해줘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진아! 넌 할 수 있어! 말해! 알아서 들이대고 있잖아! 제발! 지금 당장 말해!]

귀에서는 이라일이 난리법석을 치고 있었다.

‘하아……차라리 죽고 싶다.’

장수진은 속으로 한숨을 크게 외쳤다.

“네! 좋죠! 저도 의원님이랑 너무 말이 잘 통하더라고요. 근데 의원님 같이 위대하신 분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다는 게 제가 마음에 걸려서요.”

그녀는 평소보다 톤까지 높여가면서 아양을 떨었다.

[푸웁!]

이라일은 거기에 그만 참지 못하고 뿜어버렸다.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장수진의 이 모든 분노가 이라일에게로 향했다.

[잘 하고 있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하던 거 해라.]

이라일은 뭔가 놀리는 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장수진은 살인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계속 일을 진행하려 했다.

“어이구. 별말씀을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랑 함께한다는데 저야말로 없던 시간을 만들어야죠.”

“흐흐. 정말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저도 의원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더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요? 하하하하하.”

구기춘은 쑥스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으시다면 특별한 장소로 기자님을 모시고 싶은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특별한 장소요?”

“네. 기자님께 특별히 그곳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제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곳이거든요.”

“그런 장소를 저에게요? 정말요? 영광이죠.”

장수진은 감동하는 척하며 구기춘에게 알랑거렸다.

“하하하하. 그럼 같이 가실까요?”

그렇게 장수진은 구기춘의 건물로 따라갔다.

그의 건물은 으리으리했다.

장수진은 새삼 감탄하면서 그곳을 감상했다.

“여기가 의원님의 건물인가요?”

“네. 맞습니다. 하나 장만했죠.”

“와~ 진짜 멋지네요.”

“하하. 저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이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죠.”

장수진이 칭찬해주자 구기춘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장수진은 혼자 남몰래 구역질을 삼킬 뿐이었다.

구기춘은 장수진을 복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어떤 벽 앞에 멈춰 섰다.

“여깁니다.”

“여기요? 벽밖에 없는데요?”

“하하. 이제부터 보면 놀라실 겁니다.”

구기춘이 벽에 손을 대자 갑자기 푸른 패널과 함께 입력키가 나타났다.

그는 재빠르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다음 홍채와 지문인식이 시작됐다.

[확인되었습니다.]

음성 안내와 함께 갑자기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와!”

“하하하. 놀라셨죠? 제 비밀의 방입니다.”

구기춘은 활짝 미소지으며 장수진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아무에게나 공개하지 않는 곳입니다. 기자님이니까 특별히 보여드리는 거예요.”

“와. 이거 영광인데요? 너무 아름답네요.”

장수진은 방 안에 있는 온갖 화려한 장식들을 감상하며 말했다.

“먼저 씻으실래요? 아니면 그냥 바로 할까요?”

“……네?”

장수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미친 인간이 뭔 말 하나 싶었다.

[와……진짜 대단하다 저 새끼는……]

이라일 또한 감탄하며 말했다.

[수진아. 거의 다 왔어. 좀만 참고 더 꼬셔서 금고 좀 열게 만들어봐. 그 뒤에 죽이든지 살리든지는 너 알아서 해.]

이라일은 장수진을 달래면서 말했다.

장수진은 안간힘을 다해 속을 진정시켰다.

마음을 다 잡은 그녀는 구기춘을 향해 말했다.

“의원님 너무 급하시네요. 이렇게 비밀의 방에 왔는데 먼저 구경부터 하면 안 돼요?”

장수진은 새침하게 말했다.

“하하……이거 내가 너무 급했나? 그래요 구경시켜드릴게요.”

구기춘은 좀 민망한지 볼을 긁어댔다.

“의원님. 이건 뭐예요?”

장수진은 벽에 달린 손잡이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하하하. 이건 제 금고입니다.”

“금고요? 신기하게 생겼네요.”

“네. 특별히 독일에서 주문 제작해서 수입해 왔거든요. 스위스 은행의 금고도 만들었던 아주 권위 있는 금고 장인이 만들었는데 저만이 알고 있는 조작법으로밖에 열 수 없어요.”

“와. 혹시 구경할 수 있을까요? 이런 건 처음 봐서 어떻게 열리는지 너무 궁금해요.”

“하하하하. 우리 기자님은 호기심이 많으시네요. 좋습니다. 까짓것 보여드리죠.”

구기춘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금고 손잡이를 잡았다.

“뭐 봐도 모를 건데 그냥 이런 거구나 하고 지켜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구기춘은 이리저리 손잡이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끼익-

이윽고 금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럼 공개하겠습니다. 제 금고입니다.”

“우와!”

장수진은 안에 들어있는 각종 금괴와 돈뭉치들을 보며 놀랐다.

“엄청난데요?”

“하하.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평생 먹고 놀아도 모자라지 않을 돈을 가지고 있죠.”

“대단하시네요! 근데 저건 뭐예요?”

장수진은 그곳 한쪽 구석에 있는 서류 뭉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건 그냥 중요 서류 뭉치들입니다. 자세하게 알려드릴 수는 없네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장수진은 코웃음 쳤다.

“내가 저것 좀 가져가도 될까?”

“네?”

구기춘 의원은 당황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장수진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내가 저것 좀 가져가겠다고. 이 변태 개 호로 쌍놈의 새끼야.”

139화. 북침 (2)

백두단 대장은 피식 웃으며 장수진에게 다가왔다.

“동료들이 다 죽을 동안 넌 그렇게 폼이나 잡으면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 진짜 악질이네.”

장수진은 대장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약하면 그냥 죽는 거다. 나약한 놈들은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해.”

“……무슨 거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거지?”

장수진은 대장에 말에 기가 찼다.

그녀는 증오심을 느끼면서 단검을 고쳐잡았다.

“너도 곧 죽겠다. 약하니까 말이야.”

“하!”

대장은 재밌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 시답잖은 능력 없이도 꽤 하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넌 버러지일 뿐이다.”

대장의 말에 장수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러지?”

장수진은 대장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버러지보다 약한 너는 그럼 대체 뭘까?”

“하하하하하. 미친년.”

대장은 완전히 장수진을 얕보며 실소했다.

장수진이 동료들을 다 손쉽게 썰어 버렸는데도 대장은 여유가 넘쳤다.

마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태도였다.

“되도 않는 말싸움은 그만하고 이제 실력으로 겨뤄볼까?”

“좋지.”

백두단 대장과 장수진은 서로를 마주 보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선공은 대장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하압!”

“!!!!!!”

생각보다 엄청 빠른 대장의 공격에 장수진은 살짝 당황했다.

촤악-!

장수진은 옆으로 간신히 피했지만 약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옆구리 쪽 옷이 찢어지면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진아!!!!!”

전일수는 장수진이 부상을 입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하…….”

얼마 만에 입어보는 상처인지 몰랐다.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네. 너 꽤 한다?”

장수진은 대장이 처음 그녀에게 단검을 던졌을 때부터 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장수진이 이런 제안을 했던 것도 대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장수진은 오히려 안에서 피가 끓어 올랐다.

“고맙다. 덕분에 재밌을 거 같네. 긴장감도 넘치고 말이야.”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이 정도 핸디캡은 줘야 싸움이 재밌어지지 않겠어?”

이번에는 장수진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슈욱-!

백두단 일원들을 처리했던 것처럼 장수진은 대장에게 난도질을 가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10번의 공격이 갔다.

챙-! 채앵-!

백두단 대장은 장수진의 속공을 가볍게 막아냈다.

“고작 이런 공격으로 나를 잡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빨리 죽는 게 소원이라면 더 거칠게 해줄게.”

약이 오늘 장수진은 더 빠르게 대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챙-! 채앵-!

대장은 이번 공격도 잘 막아냈다.

“호오! 이러니까 상대할 맛이 나기 시작하는데?”

“좀 닥치고 싸워라. 이 미친놈아.”

“내 입을 닥치게 만들고 싶으면 더 나를 몰아세우던지.”

대장은 얄밉게 장수진에게 이죽거렸다.

장수진은 얕잡아 보이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장수진은 검을 한 바퀴 돌린 다음 그대로 대장을 내려찍었다.

대장은 왼쪽 옆으로 살짝 돌며 장수진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게 장수진의 노림수였다.

아래로 향하던 단검은 그대로 옆으로 방향을 틀며 대장을 향해 날아갔다.

“뭐……?”

푸슉-!

장수진의 단검이 대장의 허벅지에 그대로 꽂혔다.

“끄아아악!”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면서 대장은 비명을 질렀다.

장수진은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단검을 돌리면서 빼냈다.

그로 인해 대장의 오른 허벅지는 살점이 떨어지면서 심하게 파여버렸다.

“크어헉!”

대장은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네가 왼쪽으로 피할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피할지 솔직히 그건 찍어야 했던 건데……. 다행히 잘 찍었네. 나로서도 도박이었지. 만약 틀렸으면 반대로 내가 엄청 위험해졌을 테니까 말이야.”

“네 이년!!!!!”

대장은 너무 인상을 쓴 나머지 코에 주름이 심하게 잡혔다.

그는 장수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 그러게 누가 왼쪽으로 돌래? 오른쪽으로 돌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잖아. 근데 대단하긴 하다. 나는 네 몸통을 노렸는데, 네가 피하면서 허벅지에 맞은 거잖아. 뭐, 그래서 치명상은 면한 것 같다. 근데 그 다리로 움직일 수나 있겠어?”

장수진은 썩소를 날리며 대장을 놀려댔다.

대장은 고통과 수치가 더해져 얼굴이 심하게 붉어졌고 이마에는 핏줄이 터져 나올 듯이 부풀어 있었다.

“죽어!!!!!”

휘익-!

대장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허벅지가 아작 나 있었기 때문에 장수진은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어이쿠야! 무서워 죽겠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면서도 장수진은 연기를 하며 대장을 농락했다.

“이 쌍년아!!!!!!!”

악에 받친 대장은 표독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퍼억-!!!!!!!!

장수진은 옆차기로 대장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묵직한 소리가 들리면서 대장은 시원하게 옆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아잇! 아파라!”

장수진은 통증으로 인해 인상을 썼다.

“이건 괴물이야 인간이야? 니들은 얼굴까지 단련하냐? 뭐 이렇게 단단해?”

장수진은 아픈 다리를 매만지며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끄어어억!”

대장은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대단하긴 하네. 인정. 보통은 이 발차기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으면 즉사였어.”

“하아……. 하아…….”

대장은 장수진의 놀림에 대꾸할 힘도 없어 보였다.

“아쉽네. 능력을 사용 안 하고 싸웠는데 결국 결말은 이렇군. 아무래도 너희들은 살기 글렀나 봐.”

장수진은 고개를 돌려 두려움에 떨면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북한군들을 향해 말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엄청난 절망감만 감돌았다.

“간만에 재밌긴 했는데 아쉽다. 결국 너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장수진은 단검을 높이 치켜세웠다.

“죽어라.”

푸슉-!

장수진은 쓰러져 있는 대장의 등에 단검을 내리꽂았다.

대장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축 늘어지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에휴……. 이 싸움도 이렇게 끝나버렸네.”

“수진아! 괜찮아?”

전투가 끝나자마자 전일수는 장수진을 향해 달려왔다.

“옆구리에서 계속 피나는데? 다리도 많이 아파 보이고…….”

“이 정도는 괜찮아요. 옆구리는 그렇게 많이 다친 것도 아니에요. 끝나고 병원에는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진짜 얼굴마저 단단한 줄은 상상조차 못 했어요.”

장수진은 장난 가득한 얼굴로 전일수에게 말했다.

아까 살벌하게 백두단을 썰어버렸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아무튼 장수진 대단해 진짜. 그 칼부림에서 이 정도만 다친 것도 용하다 용해.”

전일수는 장수진에게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사실 그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백두단 대장이 장수진의 옆구리에 상처를 냈을 때는 정말 인내심에 한계가 왔었다.

하지만 그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제했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라는 타이틀에 자부심을 느끼는 장수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일수는 직감적으로 그게 더 최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일수는 장수진을 끝까지 믿었고 결국 장수진은 멋지게 백두단의 대장까지 제압했다.

“하하하. 전 최고의 요원이라고요. 그 누구도 제 상대는 안 돼요. 아! 라일 님은 제외하고요.”

“그래. 그 자식은 제외해야지.”

전일수는 장수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 전일수의 눈에 대장이 일어나서 장수진에게 달려드는 게 보였다.

장수진은 뒤돌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의 얼굴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직 그녀를 죽이겠다는 집요한 집착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일수는 소리를 지르며 대장을 막으려고 했지만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대장은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장수진을 공격했다.

채앵-!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장수진조차 놀라서 반응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전일수가 입을 떼면서 침묵이 깨졌다.

갑자기 데이터 장벽이 나타나 대장의 공격을 막은 것이었다.

그는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장수진. 그 사이에 재빨리 데이터 쉴드를 다시 사용했구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제가 사용한 거 아니에요…….”

“……뭐?”

장수진의 말에 전일수는 깜짝 놀랐다.

“니들 뭐 하고 있냐?”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 그곳을 쳐다봤다.

“누군 죽어라 핵미사일 막고 있었는데 너희들은 여기서 장난질이나 하고 있냐?”

“이라일!!!!”

일수는 깜짝 놀라면서 나를 불렀다.

“진작에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싸우고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더니……. 아주 놀고 자빠졌어.”

내가 뭐라고 하자 수진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탁-!

나는 가볍게 핑거 스냅을 날렸다.

백두단 대장은 전기에 감전돼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쓰러졌다.

이번 공격으로 그의 숨은 완전히 멎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뒤처리도 깔끔하게 못 하고 뭐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좀 정색하면서 무섭게 말했더니 장수진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라일아……. 너무 뭐라 하지 마.”

일수도 내 눈치를 보면서 살살 말했다.

애가 이렇게 나올 정도면 내가 지금 겁나 분위기를 잘 잡은 것 같긴 하다.

나는 표정을 풀고 씨익 웃었다.

“야! 장수진.”

나는 쫄아 있는 장수진의 어깨를 툭 쳤다.

장수진은 흠칫하며 놀랐다.

“대단하다.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데? 혼자서 백두단을 이렇게 작살낸다고? 진짜 엄청나다 너.”

갑작스러운 칭찬에 장수진은 어리둥절해했다.

“야! 진짜 칭찬하는 거니까 걱정 마. 디오가 그러는데, 자기가 계산해본 결과 백두단, 특히 저 대장 녀석은 전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엘리트 요원이래. 네가 그런 녀석을 이긴 거라고. 물론 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뭐 저 상태로 일어나서 공격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맞어! 나 진짜 깜짝 놀랐다고. 심장 멎을 뻔했어. 진짜 라일이 너가 도와줘서 다행이야.”

일수는 내가 분위기를 풀어주자 재빨리 거기에 맞춰 바로 오버하면서 말했다.

저러는 건 다 위축되어 있는 수진이를 위해서겠지.

진짜 전일수……. 눈물 나는 로맨스다.

수진이 저 녀석은 일수가 이렇게까지 지를 생각해 주는 줄 아는지 모르겠다.

“핵미사일 막는 데는 문제 없었습니까?”

“문제 없었겠냐?!!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순간 그때의 끔찍했던 순간이 떠올라 울컥하면서 말했다.

내가 다시 화를 내자 수진이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아! 잘못은 네가 아니라 잭슨이 했지. 화풀이해서 미안하다. 그때의 압박감만 생각하면 내가 화가 절로 나서.”

나는 녀석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 많은 미사일을 사라지게 하다니……. 정말 이라일 너란 녀석은.”

일수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로 나를 칭찬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인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일수는 앞에 있는 북한군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호오……. 이제는 능숙하게 화제 전환까지?

화내기도 싫을뿐더러 저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화제 전환에 맞춰주기로 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이곳에 있던 북한군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일수와 수진이를 향해 말했다.

“오늘 북한은 나에게 정복당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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