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내가 바로 warrior다 (7)
warrior의 폭로가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기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종 언론 매체는 warrior의 저격에 대한 그의 해명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미래찬란당 구기춘 의원입니다.”
“이렇게 제가 자리에 나서게 된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의혹에 저를 포함한 미래찬란당 의원 대다수가 억울한 누명을 썼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갑자기 나타난 warrior라는 근본도 없는 해커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놈은 거짓 정보를 가지고 마치 진실인 마냥 국민들을 선동하며 나라를 위해 지금도 봉사하고 있는 법조인들과 정치인들을 우습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녀석은 국민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자신이 해킹을 맘대로 할 수 있게 warrior 특별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을 제정해 주라고 요구하는 영상까지 올렸습니다.”
“게다가 현재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이 거기에 이끌려 warrior 특별법을 적극 찬성하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미래찬란당 구기춘 의원은 모든 힘을 다해 이 같은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을 것이며 그 극악무도한 해커로부터 이 나라가 놀아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부디 현실을 직시하시고 이 나라를 위해 그 몰상식한 법이 통과되지 않는 데에 협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구 의원의 발언은 warrior 특별법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법학계 교수들의 지지를 받으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거기에 미래찬란당 쪽에서 고용한 댓글 알바들의 합세로 warrior 특별법을 반대하는 여론 또한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즐겁게 지켜봤다.
이제껏 모든 싸움들이 좀 시시했는데 간만에 재미가 있기 시작했다.
구기춘이 왜 저렇게 자신 있게 나오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가 중요 자료를 데이터 자료가 아닌 문서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오가 거기에 관해 찾을 수 있는 것은 내용이 없는 빈 껍떼기 양식 파일뿐이었다.
아무래도 중요한 내용과 사인은 볼펜으로 작성된 듯했다.
처음으로 디오가 막히는 순간이었다.
구식이 오히려 녀석에게는 최대의 약점이었던 것이다.
“우리 유능한 디오가 막힐 때도 있네.”
[수기 자료를 데이터화 시키려면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지금 버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
장난?
“너가 업데이트되면 수기 자료를 데이터화 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만약에 미국의 어떤 사람이 연필이나 볼펜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고 쳐. 그러면 업데이트가 된 너는 그것을 바로 데이터화 시켜서 한국에 있는 내가 곧바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소리네?”
[정확합니다.]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도 충분히 괴물인데 업데이트되면 완전 난리 나겠네.
그 정도면 그냥 신 아니야?
“업데이트 언제 되는데?”
[멀었습니다. 개발자께서 한창 개발 중입니다.]
“…….”
이것 또한 재미있는 소리다.
“얘기가 나와서 물어보는 건데. 대체 너를 나한테 보낸 개발자가 누군지 언제 알려줄 거야?”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알게 될 건데 왜 지금은 안된다는 건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편할 겁니다.]
“…….”
썩을.
개발자가 단단히 막아놨는지 어떤 방법으로 물어도 대답을 안 해줄 기세다.
이 디오를 개발한 놈인데 분명 철두철미하게 막아놨을 거다.
궁금하긴 한데 나중에 알려준다고 하니 그냥 포기하자.
일단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지금은 문서 자료를 획득할 수 없다는 소리잖아…….”
그 자료가 결정적이라 어떻게든 그것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그 문서 자료들이 현재 구기춘의 특별한 금고에 있다.
나야 그곳에 맘대로 들어갔다 나올 수는 있지만 문서는 그렇지 못하는데…….
결국 방법은 구기춘이 그 금고를 직접 열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어떡한다…….”
고민을 하던 중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디오야. 장수진에게 연락해줘.”
[네.]
뚜두두두-
“네. 라일 님.”
장수진은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제 좀 잘 길들어진 것 같다.
“수진아. 잘 지냈어?”
“네.”
“내가 시키는 대로 잘했지?”
“네. 역시나 여당 쪽에서 컨택이 왔었습니다. 여론 조작 좀 부탁한다고요. 라일 님이 시키신 대로 선입금해주기 전까지는 일 안 한다고 했더니 바로 돈을 줬습니다.”
“크하하하하하하.”
나는 너무 고소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 바보들이다. 지들 좀 도와달라고 돈까지 줬는데 오히려 반대로 공격하고 있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여당 쪽에서 격분하겠지요. 근데 그걸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쪽입니다. 국정원장님께서도 일단 라일 님의 지시를 따르긴 했지만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새를 못 참고 투정이 나온다.
“아, 놔. 아직도 나를 모르냐? 내가 여당이 설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걱정 말고 미래찬란당 비판하는 쪽이랑 warrior 특별법을 찬성하는 쪽으로 여론 형성하라고 해. 여당의 공격은 내가 막아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진아. 여론 형성하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은 다른 놈들이 좀 맡아서 하라고 하고 너는 유능하니까 그거 말고 다른 것 좀 하자.”
“다른 것이라면 어떤…….”
장수진은 불안해하며 물었다.
이러는 거 보면 얘 진짜 웃겨 죽겠다.
뭔가 귀엽기도 하고.
“일단 좀 만나서 이야기할까?”
“……알았습니다.”
“옷 좀 사야 할 거 같으니까 백화점 근처가 좋겠다. 주소 보낼 테니까 그쪽으로 지금 와줘.”
“옷이라니 대체 무슨…….”
내 말에 장수진은 황당한 눈치였다.
“궁금하지? 자세한 것은 만나면 알려줄 테니까 어서 오도록!”
“……네.”
그녀는 힘없이 대답했다.
***
나는 백화점 근처 카페에서 장수진을 기다렸다.
좀 일찍 와 버려서 미리 내 것을 먼저 시켰다.
쓰읍-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음미하고 있는데 장수진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 나를 찾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장수진은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왔다.
“뭐 마실래?”
“됐습니다.”
“얘가 임무 수행만 해서 그런가 기본 상식이 없네. 카페에 들어왔으면 1인 1잔은 기본인 거 몰라?”
“…….”
장수진은 기분이 나쁜지 입술을 비죽였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이 집 커피 잘해. 하나 시키고 와.”
나는 그녀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카드를 받아 커피를 주문하고 왔다.
“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겁니까? 갑자기 옷은 왜?”
장수진은 자리에 다시 앉자마자 임무에 대해서 물었다.
뭔지 많이 궁금한가 보다.
“수진아.”
나는 온화한 목소리로 수진이를 불렀다.
“네?”
내가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수진이는 당황한 듯 보였다.
“왜, 왜 그러십니까? 불안하게…….”
“너 여당 대표 구기춘 의원이 여자 많이 밝히는 거 알고 있지?”
“당신……서, 설마?”
장수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미인계 좀 사용하자.”
“…….”
적막이 흘렀다.
너무나 고요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번 건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표정이 처음 나를 만났을 때보다도 더 싸늘했다.
장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떠날 기세였다.
안 되겠다.
군침 도는 제안을 하자.
“잠시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장수진을 멈춰 세웠다.
“이번 거 도와주면 이라크 사건 자료 싹 다 말소해줄게. 아무도 못 찾게 흔적 하나 없이 말이야.”
“…….”
그녀는 내게 일별을 보냈다.
그런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말 진짜죠?”
좋아!
미끼를 물었다.
“당연하지. 나 warrior야. 약속한 거 무조건 지킬게.”
“……할게요.”
장수진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 테다.
“근데 제가 작업 도중에 욱해서 구기춘 그 새끼 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장수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하게 말했다.
“하하…….”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 말이 전혀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료 얻어내면 죽이든지 삶든지 맘대로 해. 그 새끼 안위야 내 알 바 아니지. 하지만 이번 임무의 목표가 자료 탈취지 암살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해둬.”
“……알았습니다.”
왠지 목적 달성 전에 장수진이 구기춘 멱을 따버릴까 봐 불안하긴 하다.
쟤 아까의 그 살기 진심이었다.
하긴…….
나라도 구기춘 같은 새끼가 찝쩍대면 죽여버리고 싶겠다.
“구기춘 같은 새끼에게 알랑방귀 뀌라고 해서 미안하긴 한데 이 임무. 너만큼이나 적합한 사람이 없다. 그 새끼가 오죽 여자를 밝혀야지. 솔직히 너가 예쁘긴 하거든. 좀만 꼬리 치면 바로 넘어올 거야.”
“알았어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무슨 자료를 녀석에게서 빼내야 하는지나 알려줘요.”
장수진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아무래도 기분이 많이 상한 듯 보였다.
나는 괜히 자극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지금 내가 미래찬란당 의원들 부동산 투기 사건 터트린 상태잖아.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결정적인 증거는 못 올렸어. 다 뒤져봤는데 안 나오더라고. 알아보니 이 새끼들이 중요 자료를 문서 자료로만 남겨놨나 봐. 그걸 빼내야 녀석들이 빼도 박도 못하는데 그게 지금 구기춘 의원의 비밀 금고로 모두 한데 모여 들어있다네.”
“비밀 금고요?”
“응. 그 금고가 구기춘 의원의 비밀의 방에 있어. 그게 듣자 하니 그 새끼가 여자들이랑 뭔가 은밀한 취미를 즐기는 방이라네? 너가 호감을 보이는 척만 좀 해주면 구기춘 그 놈이 널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하아……듣기만 해도 토 나오네.”
장수진은 암담한지 이마를 짚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아도 졸라 싫긴 하겠다.
“아무튼 거기서 자료만 가져오면 되죠?”
“응. 그렇긴 한데 문제가 있어.”
“뭔데요?”
“그 금고가 뭔가 퍼즐처럼 괴팍한 장치로 되어있나 봐. 문제는 그 방법을 구기춘 그놈만 알고 있어. 그래서 그 녀석이 직접 금고를 열게 만들어야 해.”
“에휴……겁나 까다롭기까지 하네.”
장수진은 푸념하며 말했다.
“부탁한다. 너가 잘할 거라 믿어.”
“네.”
“오케이. 그럼 믿고 맡긴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이전에 미인계 사용해본 적 있어?”
“없는데요……당신이 처음 시키는 겁니다.”
그녀는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흐흐. 이거 영광이구먼.”
“전 아니거든요.”
“이참에 한번 해보는 거지. 일단 뭐든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장수진이 나를 찌릿 쏘아봤다.
그만 자극하자.
이러다 삐쳐서 안 하겠다.
“대신 내가 미인계에 도움도 될 겸 예쁜 옷 사줄게. 그걸로 기분 풀어라.”
“그래서 백화점에 온 거였군요……갑자기 뜬금없이 옷 산다길래 뭔가 했는데 그게 이런 의미였다니.”
장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가요. 명품관 가도 되죠?”
“……어. 그래. 뭔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는데?”
미인계는 하기 싫지만 옷 사는 건 좋다 이건가?
“아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면서요.”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뭔가 도발적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 가자.”
뭐 그걸로 기분 풀렸다면 됐다.
***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구기춘은 이번 사태에 대한 인터뷰가 잡혀 있어서 기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똑! 똑! 똑!
“어!”
그가 노크에 답하자 비서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의원님. 기자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예. 들어오시죠.”
비서의 안내로 장수진이 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138화. 북침 (1)
투두두두두!!!!!
북한군들은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습격한 괴한들을 공격하느라 바빴다.
“죽어라. 이 간나 새끼들!”
그들은 열심히 총알을 퍼부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칼 하나가 날아와 북한 병사의 몸에 꽂혔고 그는 비명을 질러댔다.
퍼억-!
조금의 틈도 없이 갑자기 장수진이 달려들어 그 병사의 복부를 때리는 동시에 단검을 빼내었다.
“와…….”
전일수는 그 모습에 감탄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진짜 장수진이 겁나 멋있긴 해.”
“지금 한가하게 감상이나 할 때예요? 빨리 안 도와줘요?”
“오케이. 저도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본인들은 필사적인 반면 장수진과 전일수는 마치 소풍을 온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북한군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야! 니들.”
장수진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북한군들에게 물었다.
“그거 아냐? 방금 너희가 쏜 핵미사일 공격이 전부 다 무의미하게 됐어. 우리 보스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 봐. 그 무서운 핵미사일이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렸네.”
장수진은 끌끌 대며 웃기 시작했다.
“다들 내 말귀 못 알아들어? 핵미사일은 네 녀석들이 자랑하는 비장의 카드였잖아. 그런데 그게 지금 아무렇지 않게 막혀버린 거야. 더 이상 이러는 게 무의미하다고.”
“…….”
북한군들은 장수진의 말에도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너희들은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이제 북한 정부는 무너질 거야. 그래도 지금 이 짓거리를 계속하겠다는 거야?”
장수진이 이렇게 말했어도 북한군에는 어떤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기회는 충분히 줬어. 그냥 죽자.”
장수진은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돌려댔다.
“어서 저년을 죽여버려!”
사격 명령에 북한군들은 마치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장수진에게 총을 쏴댔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했을뿐더러 본인들 죽음을 자초하는 것뿐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데이터 쉴드의 보호로 공격이 통하지 않는 장수진은 늘 그렇듯 북한군들을 단검으로 베어나갔다.
“야! 너희 진짜 너무 약해. 좀 괜찮은 애들 없냐? 이러면 몸풀기도 안 된다고.”
장수진은 애를 가지고 놀 듯 북한군들을 상대했다.
슈욱-!
그때 장수진에게 단검이 날아왔다.
장수진은 피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본능적으로 그 공격을 피했다.
“뭐냐?”
장수진은 단검이 날아오는 쪽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풍채가 예사롭지 않은 그들은 일반 군복과는 다른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하하하! 건방진 년. 우리 북한군의 자랑 백두단이 왔다.”
북한군들은 특수부대의 등장에 모두 환호했다.
“와아아아!!!!! 백두단이 오셨다.”
“어서 저 괴물 같은 년을 죽여주세요!!!!!”
장수진은 마치 광신도 같은 북한군의 반응을 경멸하듯 쳐다봤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총알도 안 통한다고 이 병신들아. 저딴 놈들이 내 상대가 되겠냐?”
장수진은 어이없어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북한군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진짜 세뇌 교육이 무섭긴 한가 보다. 전혀 이성적으로 뭘 볼 줄을 모르네.”
“수진아. 저런 바보들은 나에게 맡겨.”
갑자기 전일수가 끼어들며 말했다.
“너무 너만 노니까 내가 소외당하는 것 같잖아. 나도 많이 발전했으니까 한번 지켜봐 주라고.”
“예. 알겠습니다.”
장수진은 손을 내밀며 전일수를 앞으로 안내했다.
그에 전일수는 가볍게 몸을 풀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하하. 들어와. 한번 싸워 보자고.”
“으아아아아아!!!”
백두단은 기합을 내지르며 일제히 전일수에게 달려들었다.
슈욱-!!!
한 부대원이 전일수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크흑!”
데이터 쉴드의 보호로 그의 주먹만 아플 뿐이었다.
그 군인은 고통스러운지 손을 흔들어댔다.
“와. 다른 사람들은 주먹이 그냥 깨지던데 너는 그래도 멀쩡하네. 몸이 얼마나 단단한 거야? 훈련 잘 받긴 했구나?”
“닥쳐!!!”
그는 다시 발로 일수를 찼다.
쾅-!
하지만 역시나 데이터 쉴드에 막힐 뿐이었다.
“크윽!”
그는 발이 아픈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아직은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안 통한다고. 애쓰지 말라니까?”
일수는 얄밉게 백두단을 놀려대고 있었다.
“잠깐만요 일수 오빠.”
갑자기 장수진이 그를 불러세웠다.
“응? 왜 그래?”
“저 이 녀석들과 한번 싸워 보고 싶어요.”
“……뭐?”
전일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장수진을 바라봤다.
“북한군들이 자랑할 만하네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요. 요즘 전투다운 전투를 못 하고 일방적인 공격만 하니까 몸이 찌뿌둥한 것 같거든요. 간만에 제대로 된 전투를 하고 싶네요.”
장수진의 눈에서 투지가 불타올랐다.
전일수는 대신 싸워서 장수진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장수진은 이미 싸우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다.
“그래. 네 뜻이 그러하다면…….”
하는 수 없이 일수는 장수진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다.
“감사합니다.”
장수진은 기뻐하며 백두단 앞으로 나아갔다.
백두단은 경계하며 장수진을 노려봤다.
“방금 공격으로 깨달았겠지만, 너희가 그렇게 공격해봤자 데이터 쉴드가 막아주기 때문에 네놈들 손과 발만 아플 뿐이야.”
갑자기 장수진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데이터 쉴드를 해체시켰다.
“자, 장수진!”
일수는 놀라며 외쳤다.
하지만 장수진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는 특별히 데이터 쉴드 없이 너희를 상대해주도록 할게.”
“!!!!!”
그곳에 있던 모두가 놀란 눈으로 장수진을 쳐다봤다.
“너희에게 큰 제안을 할까 해. 만약 너희 백두단인가 뭔가가 나를 이긴다면 난 그대로 여기서 물러나는 것으로 할게.”
“만약 우리가 진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백두단 중 한 명이 장수진에게 물었다.
장수진은 피식하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다 뒤지는 거지.”
“…….”
그녀의 말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같은 편인 전일수마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어차피 내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너희는 그냥 개죽음당하는 거야.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서 너희에게 기회를 주는 거지. 어때? 한번 해볼래?”
이들이 장수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백두단은 옳다구나 하고 장수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 건방진 년. 우리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군. 우리를 상대하다가 중간에 불리해지면 그 비겁한 능력을 다시 사용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걱정 마. 능력 사용한 순간 내 패배로 간주할게.”
“하하하하하하하.”
백두단은 장수진의 말에 단체로 박장대소했다.
“스스로 구렁텅이에 들어가는 꼴이군. 뭐 우리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지. 좋다. 넌 이 백두단을 무시한 값을 톡톡히 치를 거다.”
백두단은 능력이 없는 장수진은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완전히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런 그들은 장수진은 재밌어하며 쳐다봤다.
“진심으로 상대하는 게 좋을걸. 허무하게 죽기 싫으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장수진은 자세를 잡았다.
백두단들도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장수진은 진지하게 싸움에 임했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을 사실 백두단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일수를 공격했을 때의 그들의 움직임은 어느 엘리트 요원 못지않았다.
수많은 전투를 치른 장수진은 그들이 고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데이터 쉴드의 보호 없이 싸운다는 게 어느 정도 압박으로 다가왔는지 장수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으아아아아아!”
그 순간 백두단의 공격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백두단의 총원은 15명.
그중 하나는 아까 일수를 공격하면서 다친 상황.
먼저 5명의 일원이 장수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슈욱-! 슉-!
그들은 장수진을 둘러싸며 공격을 퍼부어댔다.
“흐앗!”
백두단의 공격이 상당히 빨랐는지 장수진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일수는 불안해하며 그 장면을 쳐다볼 뿐이었다.
“수진아! 조심해.”
“걱정 말아요.”
곧바로 장수진의 반격이 들어갔다.
그녀는 재빨리 앞으로 구른 다음 백두단 일원의 다리를 가격했다.
퍼억-!
하지만 그는 다리가 꽤 튼실한지 장수진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서 있었다.
반대로 장수진의 다리가 아픈 지경이었다.
“아휴! 망할!”
장수진은 인상을 쓰며 짧게 신음했다.
“무슨 금강불괴냐? 몸이 왜 이렇게 단단해?”
“이게 바로 우리 백두단의 무서움이다. 너의 그 시시한 공격 따위는 우리에게 통하지 않아.”
“하! 무식하게 몸만 단단하나 보네.”
장수진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근데 니들 몸이 아무리 단단해봤자 검을 막을 정도로 단단하겠냐?”
백두단은 검을 든 장수진을 보며 흠칫했다.
장수진은 재빨리 공격을 시작했다.
촤악-!
“끄아아아악!”
단검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백두단 일원은 어쩔 수 없이 두 팔로 장수진의 공격을 막았고 그에 살점이 찢겨져 나갔다.
“오우! 단단하긴 한가 보네. 완전히 팔을 자를 줄 알았는데 이게 안 잘리네?”
“너 이 새끼…….”
장수진의 공격에 당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그는 이를 갈며 그녀를 노려봤다.
푸슉-!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수진은 그의 몸에 그대로 단검을 꽂아버렸다.
“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살려달라고 빌었어야지. 그렇게 나오면 그냥 죽이고 싶을 뿐이라고.”
장수진은 죽어가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이년!”
백두단은 동료가 죽자 일제히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래.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시시한 주먹싸움보다는 이편이 더 재밌잖아.”
“이게 더 재밌다고?”
전일수는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오빠 잘 보세요. 이게 바로 국정원 최고 요원의 품격이니까요.”
“……넵.”
장수진의 포스에 전일수는 그냥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백두단과 장수진은 동시에 기합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끄아아아악!”
장수진의 공격에 한 명이 그대로 순식간에 썰려버렸다.
장수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적들을 베어냈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세 명이 쓸려나갔다.
“망할!!!!”
동료들이 하나둘 장수진의 공격에 당해 쓰러지자 백두단은 아까 자신감이 넘쳤던 것과는 달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간만에 좀 제대로 싸워 보고 싶은데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이러면 또 몸풀기밖에 안 된다고.”
“까불지 마!!!”
장수진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백두단은 더 격렬하게 장수진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장수진은 가볍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계속 이렇게 재미없게 나온다면 그냥 죽을 뿐이지.”
“끄아아아악!”
장수진 본인은 데이터 쉴드로 인해서 약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더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게 됨으로 인해 훨씬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백두단은 결국 장수진에게 무참히 쓸려나갔다.
결국 14명의 백두단 일원들이 쓰러지고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그는 대장처럼 보였다.
아까 장수진에게 단검을 던졌던 놈이었다.
“그래. 너가 끝판왕이라 이거냐?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