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내가 바로 warrior다 (1)
“…….”
박이나는 마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제가 잘못 들은 것…….”
“아니에요. 잘 들으셨어요.”
“…….”
나는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정말요?”
“네. 대표시잖아요. 이번 신작 발표회. 우리 뉴디시소프트 새로운 대표님의 데뷔 무대가 될 겁니다.”
“하아……신고식부터 고되네요.”
그녀는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할게요!”
갑자기 눈을 번쩍 뜬 박이나는 급발진하며 말했다.
“라일 씨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이렇게 맡겨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해 드려야죠. 그리고 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아요. 아무래도 제가 경력도 없고 어리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다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겠어요.”
박이나는 확실하게 결심했는지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일단 태도는 합격이다.
“좋습니다. 그 자세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세요.”
“네! 열심히 준비할게요.”
“그러면 일수랑 상의해서 발표회 날짜 잡아주시고 언론에다가도 공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박이나는 패기 넘치게 대답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박이나 씨가 신작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잘 발표할 수 있으니까요. 신작에 대한 자료들은 일수한테 부탁해서 받으면 될 거예요.”
“당연하죠! 걱정 마세요!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
게임 커뮤니티들은 다시 디씨소프트 일로 시끄럽기 시작했다.
멸망 직전이었던 디씨소프트를 누가 한 번에 90%의 주식 지분을 획득해 경영권을 독점한 뒤 경영진을 싹 다 갈아엎었다.
그리고 갑자기 얼마 안 돼서 디씨소프트는 신작 발표회를 공지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디씨소프트의 행보에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난리였다.
-디씨소프트 망한 거 아니었어? 아니 어떤 미친놈이 그 망해가는 회사에 투자했대?
-차지한 주식 지분 90%래 .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듣자 하니 새로운 대표 겁나 젊다고 하던데.
-대체 뭐지? 이해할 수가 없네.
-신작은 대체 어떤 게임이래?
-메타버스 개념을 넣었다던데? 아직 공개된 게 거의 없어. 정확한 것은 발표회 때 알 수 있을 듯.
-뭔진 모르겠지만 어그로 하나는 제대로 끈 듯. 사람들 궁금해서라도 발표회 보겠다.
다들 디씨소프트의 신작 발표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발표회 당일이 왔다.
똑똑!
“들어오세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자 박이나가 반겨줬다.
“와…….”
박이나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힘을 완전 팍 준 그녀는 굉장히 예뻤다.
풀메이크업을 했는데 과도하기보다도 오히려 그녀의 미모에 날개를 달게 해준 격이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연분홍 치마를 곁들인 세련된 오피스룩은 그야말로 금상첨화
“왜요? 저 이상해요?”
그녀는 내 반응을 보고 불안한 듯이 물었다.
“아뇨. 최곱니다. 일단 외향적인 것만 봤을 때 기선제압 성공이에요.”
“하아…….”
박이나는 떨린 지 계속 심호흡을 했다.
“어때요?”
“솔직히 많이 긴장되네요.”
“처음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박이나 씨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준비 엄청 하셨잖아요.”
박이나는 정말 엄청난 열정을 지닌 노력파였다.
그녀는 이 발표회를 위해 밤낮 쉬지 않고 준비했다.
내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하루 정도는 쉬라고 만류해도 그녀는 발표회가 끝나야 쉴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누가 뭐래도 일단 확실히 태도 면에서는 합격이다.
역시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이제 그것을 실전에서 증명할 차례다.
“이제 곧 시작합니다! 준비해주세요.”
스텝이 들어와 알렸다.
“파이팅!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녀는 양팔을 불끈 쥐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발표회가 시작했다.
드디어 베일에 싸인 새로운 디씨소트프의 대표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말을 들어보니 완전 예쁘다느니 젊다느니 하면서 역시나 대부분 그녀의 외향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인사드리겠습니다. 뉴디씨소프트의 박이나 대표입니다.”
박이나는 참가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드디어 많은 분들이 고대하시고 궁금해하셨던 신작을 발표할 순간입니다. 그러면 먼저 준비된 트레일러부터 감상하시겠습니다.”
발표회장 불이 꺼지고 OST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그대로 박은 듯한 세계관
최고 수준이라 자랑할 수 있는 그래픽
그리고 현실 세계가 그대로 구현된 듯한 여러 컨텐츠들.
그러면서도 몬스터들이 나오고 레이드를 뛰는 가상세계.
나와 일수의 회심의 역작이다.
트레일러가 기가 막히게 뽑혔다.
[Friendship]
게임 제목이 공개되면서 영상이 마무리됐다.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마침내 박수 소리는 발표회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꽉 찼다.
기립박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박이야!!!”
“디씨소프트 드디어 정신 차린 거냐?!!!!”
“우와!!! 이거 나오면 무조건 한다!!!!”
사람들은 트레일러 영상을 보고 열광했다.
박이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신작 ‘프렌드쉽’ 트레일러 영상이었습니다. 메타버스 개념을 차용한 게임으로 넓은 세계관과 높은 자유도를 강점으로 내세운 저희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박이나는 준비했던 대로 게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는 차분하면서 침착하게 발표를 해나갔다.
아까 대기실에서 떨었던 모습과는 완전 정반대다.
아마 박이나는 무대 체질인가 보다.
사람들은 박이나의 설명에 압도됐다.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발표를 해냈다.
그중에서 Q&A 시간은 정말 기가막혔다.
사람들의 갖가지 질문에도 그녀는 현명하게 답을 해나갔다.
박이나는 질문자들에게 휘말리기보다는 답할 수 있는 것과 공개할 수 없는 것들을 잘 구분해 자신의 페이스대로 Q&A 시간을 주도해갔다.
그녀가 대표로서 경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몇몇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도 박이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열광했고 응원을 보냈다.
박이나.
누가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참 훌륭한 대표다.
스타성은 말할 것도 없다.
발표회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윽고 대기실로 박이나가 들어왔다.
“후아!”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카리스마 넘치고 차분했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심장이 아직도 쿵쾅쿵쾅 뛰어요.”
그녀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훌륭하게 하셨는데요?”
“정말요? 진짜예요?”
그녀는 내 말에 반색하며 물었다.
“분위기 보면 몰라요? 그게 망한 발표회라고 말하는 놈이 있으면 당장 정신 병원 보내야 합니다.”
“하아…….”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
뭐야?
갑자기
그녀는 감정이 갑자기 올라왔는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그 눈물. 기쁨의 눈물이라 봐도 될까요?”
“하하. 모르겠어요. 그냥 좀 눈물이 나네요.”
그녀는 민망해하면서 눈물을 닦아냈다.
“대표님이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렇게 눈물을 보이면 못 쓰는데?”
“아니에요! 저 안 울어요!”
그녀는 내 말에 다급히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려 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나왔다.
“첫 시작이잖아요. 오늘만 봐줄게요. 맘껏 울어요.”
“……흑.”
박이나는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고마워요……라일 씨.”
목이 메이는지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라일 씨 덕분에 제가 분에 넘치는 경험을 하네요.”
“고마우면 더 열심히 일해줘요.”
“네! 저 열심히 할게요!”
박이나는 당차게 말했다.
“오늘 수고했어요. 성공적인 데뷔였네요. 좀 쉬시고 다시 힘차게 나아가시게요.”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나왔다.
기분이 어떻냐고?
당연 최고지!
***
‘디씨소프트 새로운 대표 박이나의 화려한 데뷔’
‘디씨소프트 신작 ‘프렌드쉽’ 폭발적 반응!’
프렌드쉽의 발표회는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프렌드쉽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아이튜브를 통해 올라온 프렌드쉽의 트레일러 영상을 보며 각종 리액션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들 우리의 신작에 놀라워했다.
-미친!!!! 대박!!!!!
-진짜 미쳤다. 새로운 대표 개 쩜.
-겁나 예쁘던데.
-외모도 외모인데 완전 당차더라고.
-강기석 그 ㅅㅂ 새끼하고는 완전 달라. 박 대표를 안 좋아할 수가 없어.
-기레기들 도발에 안 넘어가는 거 봤어? 완전 멋있던데.
-나도 봄. 카리스마 넘치더라.
-게임도 미침.
-퀄리티가 장난 아니던데? 개 쓰레기 레인 오버와는 완전 차원이 달라.
-그 마르지 않는 컨텐츠는 뭔데? 진짜 하지 않을 수 없겠던데?
-완전 기대. 나오면 나 바로 한다!
-나도!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박이나에 대한 여러 별명들을 붙였다.
이를 테면 ‘대표좌’, ‘이나좌’, ‘박누님’ 등이 있었다.
“하하하하. 난 대표좌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데요?”
나는 박장대소 하며 박이나를 놀리듯 말했다.
박이나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만 하세요. 진짜 창피해 죽겠다고요.”
“난 이나좌. 뭔가 어감이 좋아.”
옆에서 일수도 거들었다.
“다들 왜 그래요? 우리 다른 이야기해요!”
박이나는 화가 좀 났는지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사람들이 우리 대표님께 열광하는데 기분이 좋잖아요.”
나는 달래주며 말했다.
“인터넷 지금 난리 났어요.”
일수도 거들어줬다.
“진짜 민망해요. 밥 먹는데 체하겠어요.”
하지만 박이나는 우리를 나무랐다.
그래 뭐 이쯤에서 칭찬은 마무리하기로 하자.
너무 과한 것도 좋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만하죠. 기분 좋게 밥 먹으러 왔는데 체하면 쓰겠어요?”
“야! 근데 여기 진짜 완전 짱이다!”
나는 성공적으로 발표회를 마친 것을 축하할 겸 박이나와 일수를 데리고 고급 레스토랑으로 왔다.
참고로 이 레스토랑 조직의 보스들과 한바탕 했던 곳이다.
진짜 겁나 맛있긴 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또 왔다.
“진짜 맛있긴 해요.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거 같아요.”
“그 가격을 받는데 당연히 맛있어야죠. 가격 봤어요? 아니 무슨 물값만 만원이냐?”
일수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나도 처음 볼 땐 어이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는 거라 맘 놓고 먹었지만”
그때 보스들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눈치 보지 말고 드세요. 고생했으니까 특별히 쏘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맘 편히 많이 먹도록 하겠습니다. 이나 씨도 더 시켜요. 뭐가 좋을라나?”
일수는 박이나에게 메뉴판을 보여줬다.
둘은 고심하며 뭘 시킬지 고르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러던 중 갑자기 내 전화가 울렸다.
[백기완]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얼른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네. 의원님 어쩐 일이십니까?”
“라일 씨. 당 사람들 설득시켰습니다. warrior 특별법 진행시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