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이제부터 내가 니들 보스다 (3)
녀석은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으아!!!!!!!”
천마의 두목놈은 한바탕 성질을 낸 다음 자리로 돌아갔다.
룸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개기지 마. 다 ㅈ되기 싫으면.”
나는 최대한 무섭게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너희 비트코인과 돈은 내게 볼모로 잡힌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하면 돌려줄게. 그럼 내가 지시하는 대로 잘 해서 돈 돌려받을 사람은 손! 빈털터리 될 거면 그대로 있고.”
다들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모두 똥 씹은 표정이다.
아, 놔.
이렇게 나오면 나 삐뚤어지는데.
“높이 들어! 안 보인다!”
내가 호통을 치자 모두 손을 번쩍 높이 올렸다.
그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말 잘 듣길 바라. 자세한 사항들은 개인적으로 연락 갈 거야.”
나는 할 말이 다 끝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들 사고 치지 말고 내가 명령할 때까지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도록!”
나는 지나가면서 각 조직 보스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두 표정관리가 안 된다.
그러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밌다.
“흐흐흐.”
나는 드러내놓고 낄낄 웃으면서 룸을 나갔다.
***
조직 천마의 한국 지부 아지트.
천마의 두목은 씩씩거리면서 아지트로 들어왔다.
부하들은 두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모임 잘 다녀오셨습니까? 아까는 왜 그냥 철수하라고…….”
“으아아아아아!!!!”
그는 부하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천마의 두목은 이라일에게 당한 수치 때문에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부하들은 두목의 그런 모습에 당황했다.
“왜 그러십니까?”
“…….”
두목은 부하의 질문에 차마 비트코인에 이어 돈까지 다 빼앗겨서 이런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배신할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돈이 없다면 사실상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였다.
천마의 두목은 그걸 잘 알았기에 다른 이유를 댔다.
“그 개새끼가 내 가족까지 걸고 협박했어!”
그는 고함을 치며 화를 냈다.
“네?!! 아니 어떻게 알고 말입니까?”
“녀석이 아무래도 사이버 전에 능한 것 같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너희가 숨어있는 위치까지 알고 있어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하들은 황당해했다.
“그 건방진 자식. 내가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두목은 복수를 다지며 말했다.
“사이버 전이라면 나도 거기에 능한 놈들을 잘 알고 있지.”
“서, 설마 흑객연맹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하는 망설이며 물었다.
“형님. 그 녀석들과는 웬만하면 안 엮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시발!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야. 그 개자식 때문에 우리 조직이 망하게 생겼다고!”
천마의 두목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흑객연맹에게 연락해서 보수는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warrior 그 새끼 좀 털어버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부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천마의 두목은 warrior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결국 무리한 선택까지 해버렸다.
“warrior. 사람 잘 못 건드렸어.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
레스토랑에서 조직 보스들과 모임을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샤워를 한 다음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캬! 속이 다 풀리네.”
[녀석들의 호흡, 심장 박동수 등을 체크한 결과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그러겠지. 그 녀석들이 이때까지 누구한테 그런 취급을 받아봤겠어? 하하하하하. 아주 통쾌하다.”
나는 녀석들이 지었던 표정이 떠올라 혼자 깔깔대며 웃어댔다.
[라일 님. 그나저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수진 말이지? 이제 연락해봐야지.”
디오가 알려주길 아까 룸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국정원 놈들이 설치한 거였다.
당연히 나를 노린 것은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은 없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모른 채 그랬던 같은데
아무래도 주요 조직의 보스가 회동한다고 하니까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런 것 같다.
나는 장수진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여! 나야.”
“……어쩐 일이십니까?”
“왜 식사하고 있는데 몰래 도청을 하고 있어?”
“네?!!”
장수진은 내 말에 많이 당황했다.
“그 녀석들 내가 모은 거야.”
“아…….”
장수진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얘.
딱 보니까 지금 겁먹어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내가 훈육을 제대로 시켰나 보다.
“당신을 도청할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장수진은 내가 기분 상해서 해코지할 거라고 여겼는지 다급하게 해명했다.
“알아 나도. 너희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지는 않았겠지. 너무 겁먹지는 마.”
“…….”
“그래서 도청해서 뭐 좀 알아냈어?”
“……당신이 다 막아놔서 아무것도 못 알아냈습니다.”
뭔가 원망 섞인 말투였다.
뻔히 다 알면서 왜 물어보냐 이거지?
그냥.
재밌잖아.
“하하. 그렇네. 내가 막아놨었지. 좀 개인적인 내용이 있어서 말이야. 뭔 일인지는 관심 꺼줬으면 좋겠어.”
“……네.”
장수진은 염려하는 눈치였다.
“왜? 걱정돼? 그놈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 녀석들 절대 한국에서 소란 피우지 못할 거야. 내가 보장할게. 이호영 원장에게도 그렇게 전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죠.”
“대신 너희는 다른 일 좀 했으면 하는데.”
“……뭡니까?”
장수진은 내가 뭘 시킬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여론 형성하는 거 좀 도와줘라.”
“예?!!!”
장수진은 깜짝 놀라며 아연실색했다.
“뭘 그렇게 놀라? 너희가 잘하는 거잖아. 여론 조작하는 거.”
“…….”
장수진은 딱히 변명할 여지가 없는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존심 상해? 근데 사실이잖아. 그러게 자존심 상하는 짓은 왜 하는 거야?”
“저는 그 일 한 적 없습니다.”
그녀는 철저히 그 일과 자신을 분리시켰다.
하긴 장수진 성격과 커리어로 보아 여론 조작이나 할 사람은 아니다.
문제라면 그 윗대가리들이겠지.
“그래. 뭐 그 말은 믿을게. 아무튼 이호영 원장에게 여론 형성하는 것 좀 도와주라고도 전해 줘.”
“어떤 여론을 형성하라는 말씀입니까?”
“여당을 반대하는 여론. 내가 나중에 그 녀석들 비리 자료를 싹 다 공개할 건데 그때 너희는 거기에 호응만 해줘.”
"……"
국정원이 여당을 깐다.
이게 웃기는 상황이긴 하다.
국정원이 이제까지 여당을 위해 여론 조작을 했는데 갑자기 여당을 몰락시킬 여론을 형성하라니.
“여당 쪽에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시겠지. 근데 그건 걱정 마. 여당의 압박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해줄 테니까. 너희는 여론 형성에만 집중하면 돼.”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장수진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 수진아. 너는 이미 여당의 의원들이 어떤 놈들이지 충분히 알고 있잖아. 그것까지 부정할 거야? 넌 지금 여당 놈들에게 협조하고 싶냐?”
“……아닙니다.”
장수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그런 새끼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범법자들이 무슨 법을 제정한다고 그래? 이제 나는 적극적으로 비리 정치인들을 싹 다 몰락시킬 생각이야. 그리고 청렴결백한 사람들로 새 판을 짜는 거지. 어때?”
내 말을 듣고 생각할 게 많은지 장수진은 대답이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에 동참하겠습니다.”
장수진.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부류다.
이런 타입은 정의감이 투철한 편이지.
분명 자신이 속한 국정원이 비리투성이인 여당을 도와주는 것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힘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겠지.
이제 내가 뒷받침해주니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 한번 새 정치판 짜보자고. 그러니까 이호영 원장에게 단단히 전해 줘. 협조 안 하면 한번 두고 보자고.”
“제가 당신의 의지를 확실하게 전하도록 하죠.”
“오케이. 그러면 일단 내가 터트릴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네.”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자고.”
***
“으아!!”
일수는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아……진짜 뭐가 문제냐고.”
일수는 답답한지 머리를 빡빡 긁어댔다.
“야! 머리 상하겠다. 왜 그래?”
신작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러 왔는데 저러고 앉아있다.
“치명적인 버그가 생겼는데 왜 이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코드 확인하느라 눈 빠지겠어.”
일수는 나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니. 다 맞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몇 번을 다시 보고 있는지 모르겠네.”
“엉아가 도와줄까?”
녀석에게 넌지시 던져봤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일수는 나에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만만치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이 신작은 구현하기가 너무나 빡세다.
자유도가 높고 콘텐츠도 많아서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획 회의 할 때도 프로그래밍 팀에서 만드는 데 빨라 봤자 최소 5년 걸릴 거라고 했었는데 당연히 쉽지 않겠지.
“흐흐.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1초가 지났다.
"끝! 버그 고쳤어.”
“에이 설마…….”
일수는 서둘러 확인했다.
그리고 진짜로 버그가 고쳐졌음을 확인했다.
“하하하.”
일수는 로봇처럼 혼이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와……방금 진짜 현타 완전 세게 왔어. 내가 버그 고치려고 며칠을 소비해도 안 됐는데 1초도 안 돼서 끝났다고? 말이 돼? 대체 당신은 어떤 괴물인 겁니까?”
“세계 최강 괴물이지. 뭐 덕분에 빨리 끝났잖아.”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너가 직접 안 만드는 거야?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너가 디오랑 같이 이 게임 만들면 하루면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전에 적당히 도와주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래야 같이 만드는 게임이라면서.”
“그게 바로 접니다.”
녀석은 무안해하며 말했다.
“내가 다 하면 재미없잖아. 그리고 나는 너를 좀 더 성장시키고 싶어. 나중에 나랑 할 일이 좀 있거든.”
“응? 할 일? 갑자기 무슨…….”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줄게. 아무튼 일단은 신작 개발에 집중해주세요. 슬슬 트레일러도 공개하고 발표회도 준비해 볼까 하는데. 그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너가 도와준 덕에 기본적인 시스템은 갖춰졌어. 발표회를 위해서라면 3주 정도면 충분히 준비하지.”
“오케이. 그러면 부탁할게.”
일수와 작별인사를 하고 이번에 나는 박이나를 만나러 갔다.
똑 똑 똑!
나는 대표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라일 씨! 안녕하세요.”
박이나는 반색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박이나는 뭔가 대표 포스가 났다.
일단 외향적으로만 봤을 때는 최고다.
“우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완전 대표 느낌 나는데요?”
“뭘요.”
박이나는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어떠십니까?”
“지금 정신없어요. 이것저것 해야 할 게 산더미예요. 대학교에서 배웠던 거랑 실전이랑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처음이니까 당연히 그러시겠죠. 하지만 박이나 씨는 금방 적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저에 대한 믿음이 엄청 나시는군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일수 같은 친구 둔 것만 해도 알 수 있죠. 박이나 씨도 분명 훌륭한 대표가 될 거라고 저는 점치고 있어요.”
“빈말이라 해도 기분이 좋네요.”
박이나는 내게 해사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서요.”
“어떤?”
박이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신작 발표회 때 박이나 씨가 직접 발표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