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1) (24/201)

23화. 유능한 따까리와 든든한 협업자 (1)

[라일 님. 지금 집에 누가 침입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디오가 일러주었다.

“······누군데?”

[일전에 제가 라일 님의 뒤를 캐고 있다고 알려드렸던 국정원 요원입니다.]

“드디어 나타나셨네. 언제 오는가 했어.”

며칠 전부터 디오는 국정원에서 warrior를 추적하고 있는 중이고 자기가 막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국정원 측에서는 디오와 되도않는 싸움을 계속하며 한창 삽질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누가 내 신상을 조회했다.

디오의 방어가 뚫긴 게 신기해서 알아보니 그 요원이 사이버상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직접 나서서 조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 요원은 정석한, 강기석에게 접근했고 그 녀석들은 warrior가 나인 것을 바로 불어버렸다. 또 이전에 집에 쳐들어왔던 삼합회랑 러시아 마피아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그 요원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줬다.

하여튼 그 새끼들은 끝까지 도움이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디오가 아무리 유능하다지만 인간의 뇌는 조작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의 증언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눈앞에 있었으면 전기 방화벽으로 지져서 바로 입막음시켰겠지만······

아무튼 그 요원이 현재 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근데 진짜 웃기는 놈이다.

“그놈은 뭔데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있어? 아무래도 내가 교육 좀 시켜야겠구먼.”

국정원 요원이 집에 왔다는 말에도 난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가 불타올랐다.

예전 같으면 국정원 요원이 내 집에 침입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천하무적이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됐다.

이 기회에 나를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을 국정원한테도 확실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그 국정원 요원에 대한 정보 좀 줄래?”

[이름 장수진. 나이 만 27살. 성별 여. 국정원 소속 블랙 요원이자 조직 내에서는 최고의 현장 요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재다능하며 최근에는 방한한 미국 국무부 장관을 공격하려는 중동 테러리스트들을 혼자서 제압했습니다. 그 일로 미국 CIA에서 그녀를 스카우트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녀는 거절했지만요.]

“엄청나네. 나이도 어린데 말이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재일 겁니다.]

“CIA에서 스카우트하고 싶어할 정도로 유능하고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재라······”

순간 그 국정원 요원을 내 부하로 만들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참에 유능한 따까리 하나 둬야지.

“걔 무슨 약점 같은 거 없냐?”

[흑역사가 몇 개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그거 녀석에게 공개할 준비 해둬. 그럼 따까리 한 명 만들러 가보자고!”

유능한 국정원 요원을 내 밑으로 둘 것을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났다.

집에 도착한 나는 일단 평상시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알아서 등장해줄 텐데 내가 굳이 찾을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불을 켜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랐다.

일단 목이 겁나 마르긴 했었다.

[지금 라일 님께 접근 중입니다.]

‘오케이.’

내가 물을 마시고 있는 동안 디오는 실시간으로 그 요원의 행동을 알려주었다.

“이라일.”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거실에 웬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

그 국정원 요원은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요원이라길래 뭔가 정장 같을 것을 입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청바지에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생각보다 패션이 캐주얼해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완전 예뻤다!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도저히 이 여자가 중동 테러리스트를 혼자서 제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흥! 내가 와 있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가 별로 놀라지도 않는군.”

그녀는 짧게 코웃음을 쳤다.

“초면부터 왜 반말이실까? 나이도 내가 더 많은데 말이야.”

그녀는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내 나이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그럼. 1993년생 장수진 씨. 다 알고 있지.”

“너······”

그녀는 빠르게 적의를 드러냈다.

“이라일. 너 대체 정체가 뭐냐?”

“warrior. 다 알고 온 거 아냐?”

나는 컵을 들고 거실 쇼파로 가 앉았다.

“앉아. 다리 아프게 서 있지 말고.”

“······”

그녀는 말없이 잠시 나를 노려보면서 버티더니 결국은 쇼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했다.

“그래서 장수진 요원은 내가 warrior인지 알아보려고 이렇게 굳이 찾아온 거야? 근데 집에 사람이 없으면 밖에서 기다릴 것이지 집주인이 없는데 예의 없게 먼저 들어와 있으면 쓰나.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나는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내가 요원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까불다니. 간댕이가 부은 건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인지 모르겠군.”

“아니지. 내가 간댕이가 부은 게 아니라 너가 별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까부는 거야.”

내 말에 장수진은 매섭게 째려봤다.

“지금 내가 장난하고 있는 줄 아나 본데 맘먹으면 당장 당신 모가지를 딸 수도 있어.”

“해봐.”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바닥을 위로 들며 권유했다.

그에 장수진은 인상을 썼다.

“뭐 해? 해보라니까.”

“이 새끼가······”

장수진은 순식간에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나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빨라서 그녀의 움직임이 눈에 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솔직히 놀라긴 했다.

하마터면 움찔해서 모양 빠질 뻔했다.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뭐, 뭐야?!!”

장수진은 디오의 보안 시스템을 처음 본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과 대사를 보여줬다.

그녀는 내가 손에 잡히지 않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봐봐. 별거 아니잖아. 날 잡지도 못하면서 무슨 모가지는 모가지야.”

“그놈들. ‘유령’이라던 말이 이런 거를 의미하는 거였나······”

아무래도 삼합회 놈들이랑 러시아 마피아 애들을 말하는가 보다.

“그놈들이 그것만 말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말이야. 전기 공격에 대해서는 말 안 했어?”

“뭐?”

지지지직!

“꺄악!”

나는 칼을 쥐고 있는 장수진의 오른손에 전기 공격을 가했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칼을 놓쳤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매만졌다.

출력을 낮게 해서 가하긴 했어도 많이 아플 거다.

나는 유유히 다가가서 떨어진 칼을 집었다.

“이런 흉악한 무기를 들고 사람을 덮치면 쓰나. 진짜 못 배운 티를 내네.”

“너 이 자식!”

장수진은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어이구 무서워라. 눈 좀 예쁘게 떠라. 아주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네.”

나를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쯤에서 나의 힘을 충분히 알았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아까처럼 갑자기 덮치거나 그러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하길 추천할게. 만약 그랬다가는 이전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전기 충격이 가해질 테니까 말이야.”

“······”

먹이 사슬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포식자라고 착각했던 장수진은 이제 되려 자신이 먹이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 어쩔 줄 몰라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마. 여기 집 규칙이 있거든. 들어올 땐 맘대로인데 나가는 것은 그렇게 안 돼. 그 살인 청부업자 녀석들에게 설명 좀 제대로 듣고 오지 그랬어? 그리고······”

지지지직!

“꺄악!”

그녀는 또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그녀의 주머니에 전기 공격을 가했다.

“도청도 안 되고 지원 요청도 불가능해. 그 기계 이제 고물단지가 됐을 거야.”

“크으윽!”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쓰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어차피 방금까지 너가 이러는 거 이미 상황실로 생중계됐어!”

장수진은 아직 패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건방졌다.

“누구 맘대로?”

“뭐?”

“이미 막아놓고 있었어. 너 내가 warrior인 거 모르는 거야? 맘만 먹으면 지금 당장 국정원 컴퓨터들 박살 내는 거 내겐 일도 아니야.”

“그, 그런······”

그녀는 내 말이 블러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 망연자실했다.

장수진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하하하. 이제야 그 건방진 표정이 사라지는구나. 그렇게 무서워 떨고 있는 거 보니까 보기 좋네.”

“너. 이미 나는 원장님께 너를 조사하러 간다고 보고한 상태야. 만약 나를 죽인다면 정부 차원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다.”

“그래?”

나는 싸늘하게 말하며 장수진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집었던 칼을 그녀의 목에 댔다.

“한번 죽여볼까? 어떻게 가만두지 않을지 궁금한데?”

“······”

그녀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표정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하!”

나는 그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아직 애네.”

나는 칼을 바닥에 던진 다음 다시 쇼파에 가서 앉았다.

“유능한 인재를 죽이면 쓰나. 실컷 부려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뜻이지?”

“널 내 부하로 쓰겠다는 뜻이지. 장수진. 내 밑에서 일해라.”

“······”

장수진은 어이없어하며 나를 쳐다봤다.

“거절한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 밑에서 일하라는 거 그거 제안 아니야. 명령이지. 무슨 CIA가 너 스카우트하려고 할 때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

“또 그건 대체 어떻게······”

장수진은 이번에는 눈까지 크게 뜨며 질겁했다.

처음의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얘 표정 봐라. 뭘 그렇게 계속 놀라기만 해? 난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편해. 무튼 이제부터 내 밑에서 그냥 잠자코 일하는 게 나을 거야.”

“······싫다면?”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나 보네. 핸드폰 꺼내서 확인해 볼래? 내가 방금 자료를 보냈거든.”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겁하며 그것을 쳐다봤다.

“너 이 새끼······”

그녀는 분노하며 나를 죽일 듯이 째려봤다.

“2017년. 이라크에서 작전 수행 중 오판으로 민간인 특히 아이들 12명 사망. 요원이 아니라 그냥 살인마 아닌가? 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민간인을 죽이고 있어?”

“아니야!!!!!!”

장수진은 격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건 실수였어!! 의도한 게 아니었다고!!”

“너가 그렇게 말해도 죽은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아. 국정원에서는 이 사건을 아주 잘 덮었군. 너가 유능하긴 한가 보다 쉴드도 다 쳐주고.”

“그만······”

장수진은 괴로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이것만 있는 게 아니지. 2019년에는 정보를 잘못 입수해 범인이 아니라 엄한 가족을 죽여버렸네? 이것 또한 국정원이 잘 덮었고. 이게 세간에 공개되면 참 재밌겠어.”

“그만!!!!”

장수진은 악을 쓰며 말했다.

“그만해. 제발.”

“그래서 내 밑에서 일하겠다는 대답은?”

“······할게. 할 테니까 제발 공개하지 마.”

장수진은 아무래도 여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지 힘없이 대답했다.

어쨌거나 대답은 받아냈다.

“좋아. 드디어 말이 통하는구나. 잘 생각했어. 하는 거 봐서 이 자료 아예 말소해 줄 수도 있어.”

“그거······정말이야?”

장수진은 내 말에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당근. 대신 말했다시피 내 말에 잘 따른다는 조건 하에야.”

“······알았다.”

“허허. 부하가 왜 상사에게 반말일까?”

“······알겠습니다.”

“그래. 잘했어.”

나는 그녀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럼 지금부터 너가 할 첫 번째 임무를 알려줄게.”

그녀는 불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했다.

“첫 번째 임무는 바로······”

122화. 악당본색(惡黨本色) (1)

띠리리리-!

한밤중 갑자기 로버트 의원의 전화가 울렸다.

신원미상의 전화였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별게 다 나를 괴롭히네.”

잠에서 깬 그는 짜증 나서 그냥 전화를 꺼버렸다.

띠리리리-!

“!!!!!!”

로버트 의원은 깜짝 놀랐다.

분명 꺼버린 핸드폰에서 전화가 다시 울리는 것이었다.

“부, 분명 껐을 텐데?”

로버트 의원은 자신이 꺼놨다고 착각했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다시 껐다.

이번에는 확실히 껐는지 안 껐는지 확인까지 했다.

띠리리리-!

“!!!!!!!”

다시 전화가 울렸다.

로버트 의원은 섬뜩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분명 꺼놨을 텐데…….”

그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마약도 하지 않았다.

로버트 의원은 분명 제정신이었다.

“안 받고 뭐 해 새끼야?”

“!!!!!!”

이제는 알아서 전화가 받아져 버렸다.

“뭐, 뭐야?!!!”

로버트 의원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뭐긴 뭐야? 나지. 잭슨. 잭슨 앤서니.”

“너, 너…….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로버트 의원은 잭슨의 싸늘한 목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건 알 거 없고. 그동안 잘 지냈어?”

“……하하하하.”

로버트 의원은 잭슨의 객기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상원의원인 자신이 잭슨에게 전혀 꿀릴 게 없었기 때문에 로버트 의원은 다시 자신감 있게 나왔다.

“잭슨. 이 아저씨에게 이렇게 건방지게 나오다니 많이 컸구나. 나야 이렇게 상원의원이 돼서 잘살고 있지.”

“그래? 축하해.”

“하! 고맙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더 일찍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크흐흐흐흐흐.”

잭슨은 미친 사람마냥 끌끌 대기 시작했다.

“진짜 아저씨는 그 개 같은 인성 여전하시네.”

“말조심해라 잭슨. 난 전과는 달리 상원의원이 됐으니까. 출소했다고 들었다.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게 까불다가는 다시 그곳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아저씨는 이제 그럴 힘이 있단다.”

로버트 의원은 한껏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내 아들이 너를 때린 것은 잘한 짓이지. 살인마가 될 싹을 미리 알아봤으니까 말이야. 민심이라는 것은 참 웃겨 안 그래? 한순간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한순간에 올라가기도 하지. 지금 이 아저씨처럼 말이야. 하하하하!”

로버트 의원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이죽댔다.

“아저씨. 상원의원 되고 나서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네. 마음에 들어.”

잭슨은 그런 거는 상관없다는 듯이 깔보듯 말했다.

로버트 의원은 자신이 잭슨에게 더욱더 빈정거렸음에도 뭔가 그에게 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잭슨. 고작 그딴 헛소리나 하려고 이 한밤중에 전화한 거야? 나를 화나게 할 목적이었으면 성공한 거 같네. 내가 지금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졌으니까 말이야.”

로버트 의원은 잭슨을 도발하고 싶은 마음에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말이야 너에게 충고를 하나 해줄게. 너 그렇게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가는 일찍 죽는다. 크리스틴처럼 말이야. 너 크리스틴 소식 들었지? 그러게 그냥 조용히 처 살 것이지 왜 한국에 가서 설치다가 그런 꼴을 당하냐고.”

“…….”

전화기에서는 잭슨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크리스틴이 네 유일한 친구였지 아마? 많이 슬펐겠구나. 우리 로버트도 굉장히 슬퍼하더라고. 아무튼 아저씨 말 듣고 조용히 살아라. 그래야 오래 살 수 있어. 알겠어?”

“로버트. 이 개새끼야!”

평온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잭슨은 결국 흥분하고 말았다.

로버트 의원이 그만 잭슨의 발작 버튼을 건들고 만 것이었다.

“허허허. 딱하구나. 아저씨가 이렇게 생각해서 충고해줬는데 전혀 씨알도 안 먹히다니.”

“충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잭슨은 미친 사람처럼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저씨. 나도 충고 하나 해줄까?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이제 곧 어마어마한 고통들이 밀려올 것이거든.”

“…뭐?”

“일단, 당신 아들은 먼저 세상을 떠났어.”

“……그게 무슨 소리지?”

로버트 의원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너 자꾸 장난치면 아저씨한테 혼난다? 무슨 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장난인지 아닌지는 내가 자료 보냈으니까 한번 확인해봐.”

“…….”

로버트는 황급히 귀에서 휴대폰을 뗀 다음 화면을 쳐다봤다.

확인해보니 잭슨이 영상을 하나 보내놨었다.

로버트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영상을 틀었다.

“!!!!!!”

로버트는 그 영상을 보다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잭슨 말대로 자신의 아들이 잔인하게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잭슨은 그의 아들을 사정없이 칼로 쑤셔대고 있었다.

“잭슨!!!!! 너 이거 대체 뭐야?!!!! 내 아들 어쨌어?!!!!!”

로버트 의원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보시는 대로 이미 세상 하직했지. 어때?”

“너 이 자식!!!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로버트 의원은 격분하며 외쳤다.

그는 피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자기 자식은 그렇게 소중히 여기면서 왜 남의 자식은 그렇게 만들었어? 크리스틴이 죽고 나서 걔네 부모님이 어떻게 된 줄 알아? 충격을 못 벗어나서 자살했어. 흐흐흐흐.”

잭슨은 넋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우리 엄마는 내가 감옥 가고 나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나 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네? 이 모든 걸 누가 초래했을까?”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로버트는 공포가 온몸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바로 너지.”

“허업!!!”

로버트 의원은 경악하고 말았다.

어느새 잭슨이 자기 앞에 나타나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지경이었다.

“너, 너…….”

로버트 의원은 너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warrior 그 자식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이런 발상은 진짜 어떻게 하나 몰라? 순간이동 이거 해보니까 별거 아니긴 하네. 흐흐흐흐.”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넌 알 거 없어.”

잭슨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로버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로버트는 질색하며 자신의 책상으로 달아났다.

그는 거기에서 얼른 권총을 하나 꺼낸 다음 잭슨을 겨눴다.

“하하하하하. 아저씨. 제법 살벌한 것을 가지고 있네?”

“닥쳐라. 난 네까짓 것의 죽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덮을 수 있어.”

“흐흐흐흐흐. 그래?”

로버트가 총을 겨누고 있었음에도 잭슨은 완전히 여유로운 상태였다.

“허세 부리지 마. 내가 이걸 못 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아니. 그것보다는 그걸 나한테 쏴도 소용이 없어서.”

“뭐?”

“아저씨. 혹시 warrior라고 알아?”

로버트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놈 때문에 그가 애용하던 마약이 완전히 끊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로버트 쪽에서는 warrior를 없애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그놈은 왜?”

“내가 그놈과 비슷한 면이 있거든.”

“너… 설마…….”

로버트는 warrior와 관련하여 이전에 봤던 영상들이 떠올랐다.

warrior에게 총알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왠지 로버트는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니 눈치챈 것 같네. 그럼 이제 아저씨는 그냥 나한테 죽는 일밖에 없겠네?”

“저, 저리 꺼져!!!”

로버트는 잭슨에게 총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달리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탕-! 탕-! 탕-!

역시나 그의 공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총알은 잭슨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뒤에 있는 벽을 때릴 뿐이었다.

“인간들은 어쩜 그리 하나 같이 어리석은 줄 몰라. warrior가 그렇게 소용없다고 말해도 굳이 총을 쏘던데 아저씨도 똑같네.”

“닥쳐라!!!”

로버트는 악에 받쳐 총알을 계속 쏴댔다.

탁-! 탁-!

하지만 탄창은 금방 비워졌고 애꿎은 쇳소리만 났다.

“이제 뭘 더 할래?”

잭슨은 로버트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날렸다.

“할 거 없지? 그러면 그냥 나한테 죽어.”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로버트는 갑작스러운 전기 충격에 몸을 요란하게 떨며 쓰러졌다.

“신기하지? 아저씨 주위에 있는 공기 데이터를 전기 데이터로 변환하면 그렇게 돼. 내가 뭔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잭슨은 쓰러져 있는 로버트의 머리채를 잡았다.

“네, 네 이놈!”

로버트는 이를 악물며 잭슨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저씨. 이 와중에 표정 좋네? 완전 죽이고 싶게.”

푸슉-!

잭슨은 품에서 칼을 꺼내 그대로 로버트의 눈에 꽂아버렸다.

“꾸에에에에엑!”

로버트는 괴성을 질러대며 몸부림쳤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잭슨은 쾌감을 한껏 즐기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괴기 영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하하하하하. 아저씨. 너무 웃기네요. 더 몸부림쳐봐요. 하하하하하하하.”

“끄어어어어어.”

로버트가 신음할수록 잭슨은 더 즐거워했다.

잭슨은 마치 약을 한 것처럼 쾌감에 한껏 도취하여 있었다.

“더! 더 고통스러워하란 말이야! 그래서 나를 즐겁게 해줘. 더! 더 고통스러워해!!!”

“이, 이 사이코 자식아!!!!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더. 더 고통스러워 해!!!!!”

잭슨은 쓰러져 있는 로버트의 등에 칼을 꽂기 시작했다.

그가 칼을 뺄 때마다 역한 소리와 함께 로버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더 고통스러워 해!!!”

잭슨은 미친듯이 로버트를 난도질했다.

로버트는 두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었다.

“사, 살려줘.”

로버트는 힘겹게 잭슨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아저씨. 그렇게 살고 싶어?”

“살려줘……. 난 이제 권력을 누리기 시작했단 말이야.”

로버트는 여전히 목숨을 구걸했다.

잭슨은 그런 그가 더 역겨워졌다.

“당신은 그딴 좆 같은 것 때문에 크리스틴을 죽였지. 안 그래?”

“자, 잘못했어……. 그러니까 살려줘…….”

“잘못을 뉘우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살고 싶은 건지 구분을 못 하겠네.”

잭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원대로 이제 그만 찌를게.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죽을 텐데 그냥 바로 죽이면 싱겁잖아. 너만큼은 편하게 죽게 할 수 없지.”

“으어어어…….”

로버트는 희망이 없는지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절규했다.

“아저씨. 어쩌면 먼저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크리스틴이 없는 이 세상은 어차피 내게 의미가 없어서 다 박살 내버릴 생각이거든.”

갑자기 잭슨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는 울먹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아저씨랑 아저씨 아들이 살아 있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먼저 죽이는 거야. 사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죽여버리고 싶었어. 그렇지만 warrior 그 새끼 때문에 몸을 사렸었지.”

잭슨은 허탈한 듯이 헛웃음 냈다.

“근데 이제 녀석에게 정체를 들킨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지 뭐야?”

로버트는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 전혀 듣고 있지 않았지만, 잭슨은 계속 독백을 이어나갔다.

“불쌍한 크리스틴. 이런 놈 때문에 죽어버리다니……. 크흑……. 불쌍한 크리스틴.”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로버트의 몸은 축 늘어지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잭슨은 싸늘한 눈빛으로 로버트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은 한국이다.”

123화. 악당본색(惡黨本色) (2)

“어젯밤 미 상원의원 로버트 의원이 자신의 집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칼에 수차례 찔린 것이 사인으로 드러났는데요. 그의 아들도 거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그 새끼. 결국 일을 저질렀네.”

아침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를 혀를 내둘렀다.

요즘은 일부러 미국 쪽 뉴스를 확인한다.

녀석 또한 나처럼 자신이 한 일을 숨기기 위해 외부 데이터 유입을 막고 있어서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금 저 사건도 디오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막혀있다.

그 자식도 학습 능력은 있는지, 이제 철두철미하게 흔적을 다 없애 놓는다.

“하……. 간만에 느껴보는 답답함이네.”

이전까지는 알고 싶은 것은 다 알 수 있었는데 방해자가 생겨 모르는 게 생기니 많이 답답해졌다.

하기야 원래는 이렇게 모르는 게 정상이겠지만, 이미 더 높은 차원을 경험한 입장에서 낮은 차원에 있게 되면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나만 답답한 게 아닐 테니까.

내 쪽에서도 필사적으로 우리 쪽 정보를 막고 있다.

녀석 또한 많이 갑갑할 것이다.

띠리리리-!

일수다.

나는 곧바로 일수 쪽으로 순간이동했다.

“깜짝이야!”

일수는 화들짝 놀라서 그만 자빠져버렸다.

“진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일수는 많이 놀랐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이미 몇 번 봤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래?”

“이건 진짜 적응이 안 된다고.”

“네가 불러놓고서는…. 아무튼, 뭔 일인데?”

일수는 나를 찌릿 한번 노려봤다.

“진짜 얄미워 죽겠네. 하아…….”

녀석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다 만들었어. 확인해봐.”

“오! 진짜?”

역시 일수는 성실하다.

상태를 보아하니 내가 부탁한 이후로 정말 하루도 안 쉬고 개발했나 보다.

나는 일수가 보여주는 데이터 응집체에 가까이 갔다.

세 개의 파란 구체가 내 앞에 놓였다.

“안녕하십니까.”

세 개의 구체는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다들 자아가 생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벌써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대단한걸?”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일수는 이제 어느 정도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손을 대며 데이터들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아직도 디오의 초기 버전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구색은 갖춘 셈이다.

내 노하우가 있으니까 업그레이드야 계속해 나가면 된다.

나는 일수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일수는 거기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분 좋게 호응해줬다.

“대단하다. 역시 넌 내 친구야.”

나는 녀석을 끌어안으려고 했다.

“워워! 나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남자가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또 질색하길래 그만뒀다.

짜식…….

튕기기는.

“이 정도면 이제 몸 안으로 받아들여도 될 거 같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내가 알려줄게. 그나저나 장수진 쪽은 어떻게 됐어?”

“수진이는…….”

일수가 설명하려는 데 수진이가 타이밍 좋게 딱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왔어요? 이번에도 순간이동 하셨어요?”

“응. 덕분에 심장마비 걸릴 뻔했지. 진짜 수명이 단축된다니까?”

일수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저 녀석.

괜히 수진이 앞에서 엄살이다.

“안 그래도 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네 진행 상황은 어떠냐?”

“흐흐. 한번 보실래요?”

기분 나쁘게 자신 있어 하는 장수진이었다.

녀석이 이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여줘 봐.”

“제 안에 있어요.”

“뭐?”

일수랑 나는 동시에 놀라며 물었다.

일단 나보다 일수가 더 놀란 상태인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랬는데?”

일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요. 방금 성공하고 온 거예요. 오빠에게 말하려고 왔는데 라일 님이 와 계신 거죠.”

“…….”

일수는 기가 차는지 뭐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수진이보다 진도가 늦은 것에 자존심이 좀 상한 거 같았다.

“넌 세 개를 동시에 만들었잖아. 네가 더 대단해.”

바로 녀석을 달래주었다.

그러자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일수 이 녀석만큼 다루기 쉬운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럼 확인해볼까나?”

나는 수진이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왠지 일수 녀석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일수야…….

전에도 말했지만 얘는 내 스타일 아니야.

녀석의 착각은 그냥 무시하고 나는 수진이 안에 들어간 데이터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수진이가 만든 데이터 응집체는 꽤 역동적이었다.

구성도 촘촘하게 잘 되어 있었다.

아까 일수에게 했던 말은 취소다.

장수진 이 녀석이 엄청난 놈이다.

벌써 이 정도 수준까지 오다니…….

수진이는 일수보다 훨씬 더 성장한 데이터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괜히 말해봤자 일수만 의기소침해질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엄청나네.”

“그렇죠?”

역시 수진이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 만했다.

인정.

“데이터 자아가 들어올 때 힘들지는 않았어?”

“솔직히 기분이 이상했지만 금방 적응했어요. 이래 봬도 전 고강도의 정신력 훈련을 받은 요원이라고요. 이 정도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죠.”

“하하하.”

그래.

너 잘났다.

“일수야. 사람들 불러올 테니까. 준비 좀 해줘. 우리도 어서 작업하자!”

“오케이.”

일수가 준비하러 간 동안 나는 사람들을 부르러 갔다.

***

“다 준비되셨나요?”

나는 줄지어 서 있는 박이나, 전일수 그리고 백기완 대통령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반면, 박이나와 백기완 대통령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직이요……. 마음이 준비가 좀 필요하네요.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박이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긴 나도 너무하긴 했다.

대뜸 시간 있냐고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순간이동 시켜버렸다.

박이나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때 박이나의 놀란 표정이 귀엽기는 했다.

좀 너무한 거 같아서 사과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해주니 박이나는 이해해주었다.

백기완 대통령도 박이나보다 정도가 덜하긴 했지만, 많이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전에 내가 순간이동 하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기는 했어도 직접 해보는 것을 처음이라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백기완 대통령도 바로 나를 이해해주었다.

“다들 급하게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제가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하하하. 좋네요. 미루는 것보다는 낫죠.”

백기완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지만 왠지 나한테는 다정한 것 같다.

박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동 때문에 속이 매스꺼운 것처럼 보였다.

“이나 씨. 많이 힘드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정도야 참을 만해요.”

걱정돼서 계속 쳐다봤지만, 박이나는 손을 들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훈련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들에 적응해야 한다.

그 녀석은 남의 사정을 봐줄 만큼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수진이야 어떻게 알아서 데이터 자아를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보내주는 게 더 빠르고 편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자아들을 주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네.”

다들 각오했는지 비장하게 대답했다.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요. 한 번에 끝내는 게 나을 거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네.”

“그럼 갑니다.”

나는 일수가 만들어준 데이터 자아들을 세 사람의 뇌에 들어가게 했다.

“꺄아악!”

“크흑!”

“허업!”

세 사람 다 고통스러운지 바닥에 쓰러지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에 난 장수진을 쳐다봤다.

“야……. 네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들 힘들어하는데?”

“훈련받은 저니까 참아낸 거라니까요.”

“……알았다. 너 잘났다.”

이왕 시작된 거 멈출 수는 없다.

아까 이들에게도 말했다시피 그냥 버텨서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게 낫다.

“크으윽!”

다들 괴로워하기는 했지만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산 사람들이다.

장수진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다들 정신력으로 밀릴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을 믿고 나는 계속 데이터를 주입해줬다.

“다 됐네.”

데이터 자아가 전부 다 들어갔다.

성공했다.

“하아……. 하아…….”

다들 거칠게 숨을 몰아내 쉬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네 말대로 한 번에 끝나는 게 낫다.”

일수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도 이렇게 힘들었었냐?”

“아니. 나는 그냥 바로 쉽게 들어왔어. 내 기억의 자아가 미리 내 뇌에다가 작업을 해 놓은 상태였거든.”

“그러면 너도 우리한테 그렇게 작업을 해주지 그랬냐?”

일수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다 훈련의 일부야. 직접 너에게 데이터 자아를 만들라고 부탁한 것도, 또 이렇게 데이터 자아를 생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도 말이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없단 말이야.”

“에휴. 나도 그 기억의 자아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수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그렇게 부러워하지는 마. 내가 기억의 자아를 받아들였을 때는 이것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었으니까. 난 녀석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겪었었던 외로움과 고통을 다 받아들였어야 했어. 강해지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정말 어떻게 버텼나 싶다.

“지금 너희는 내 덕에 쉽게 능력을 얻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 갖지 말라고.”

“알았어. 그냥 어리광 좀 부려본 거야.”

다행히 일수는 나를 이해해주는 듯 보였다.

백기완 대통령과 박이나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둘은 어느새 혈색이 돌아왔다.

“하아……. 이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엄두도 못 낼 겁니다.”

“저도요.”

둘은 질색하며 말했다.

한 번에 작업을 끝낸 것은 잘한 일이다.

매운 것도 질질 끌기보다는 한 번에 털어 넘기는 게 더 나은 법이니까.

중도에 포기했으면 아마 점점 더 힘들었을 거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이번 것은 한 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작업이라 그런 거지, 앞으로 이럴 일은 없습니다.”

난 둘을 안심시키면서 말했다.

“이제 들어온 데이터 자아와 친숙해지면서 능력을 사용해보십시오. 아마 재밌을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네.”

백기완 대통령과 박이나는 신기해하면서 자신 안으로 들어온 데이터 자아와 대화를 시도했다.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말을 걸었다.

“응. 왜 그래?”

[당장 뉴스를 확인해 보십시오.]

평소보다도 더 급박한 듯한 디오의 목소리였다.

분명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진 것이다.

나는 신속하게 인터넷에 들어가 뉴스를 확인했다.

“망할…….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네.”

띠리리리-!

백기완 대통령의 핸드폰도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아마 청와대 쪽에서도 방금 이 사실을 안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에서도 정보가 느린 걸 보면 잭슨 그 새끼가 작업을 해 놓은 것이겠지…….

“무슨 일이에요?”

이상함을 느낀 박이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박이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박이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경악했다.

[미국. 한국에게 선전포고.]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뉴스 기사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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