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거침없는 보복 (8)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나는 계산을 하고 얼른 택시 아저씨를 보냈다.
“기택이. 잘 있었어? 비서 때리는 거 보니까 힘이 넘치네?”
“이라일!!!!!”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냅다 달려들었다.
꽈당!
결과야 뻔했다.
그냥 내 몸을 통과해 앞으로 엎어져 버렸다.
“야! 우리 지금 처음 대면하는 사인데 만나자마자 이러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
“닥쳐!!!! 죽여버리겠어!!”
녀석은 분노를 주체 못 하며 나에게 온갖 공격을 다 퍼부어댔다.
하지만 그의 발길질과 주먹질은 다 허공에서 놀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기택이 진정 좀 해야겠네.”
짝!!!!!!!!
“컥!”
나는 냅다 녀석의 뺨을 갈겨버렸다.
퍽!
그다음 녀석의 복부를 발로 차버렸다.
“크허억!!!!”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침까지 질질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게 왜 나이 처먹고 객기를 부리냐? 너가 그러니까 이렇게 얻어터지는 거야.”
“크윽······네놈.”
녀석은 고통이 가시지 않는지 갖은 인상을 다 썼다.
“어이구. 많이 아프세요? 저기 쓰러져 있는 네 비서는 얼마나 아프겠냐? 그래도 저렇게 끝까지 따라다니는 거 보며 충신인 거 같은데 그런 놈을 저렇게 패버리네. 넌 진짜 인간 말종이다.”
“뭔 상관이야?!!!!”
녀석은 좀 괜찮아졌는지 다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큰 소리를 질러댔다.
“아픈 건 좀 가셨나 봐? 아주 기운이 넘치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녀석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여기 대한민국 맞냐? 넌 어떻게 그런 걸 들고 다니냐?”
“죽어!!!”
탕! 탕! 탕!
녀석은 나를 향해 권총을 쏴댔다.
물론 권총을 사용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은 없었다.
총알은 그냥 내 몸을 통과할 뿐이었으니까
나는 유유히 녀석에게 걸어갔다.
그런 다음 친히 총구에 심장을 대줬다.
“쏴봐. 조준하기 편하게 이렇게 해줄게.”
“으아아아아!!!”
탕! 탕! 탕! 탕!
녀석은 약이 올랐는지 거칠게 총을 쏴댔다.
탁! 탁! 탁!
하지만 어느새 탄창이 비었는가 공허한 쇳소리만 났다.
“총알 다 떨어졌네. 설마 갈아 끼워서 또 쏠 건 아니지? 이미 충분히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길 빈다.”
녀석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시 총을 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양기택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대체 왜 나를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당연한 것 아니야?”
“너를 처음에 죽이려고 했던 것은 강기석과 정석한이라고! 그놈들 이미 잡혔으니까 이제 충분하잖아!!!”
“이것 봐라? 우리 아파트로 강철파랑 류헤이카이는 누가 보냈는데?”
“그건······”
녀석은 변명할 거리를 찾지 못했는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너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어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가만히 쳐 있어야지 왜 나대?!!!!”
꼴에 찾아서 한다는 말이 저거다.
진짜 한심해 죽겠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너라면 민망해서 그런 말이 안 나오겠다. 됐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이만하고 좀 맞자. 그래야 너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아.”
퍽!
나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아구창을 날렸다.
“크윽!”
녀석은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일방적인 나의 공격이 이어졌다.
퍽! 퍽! 퍽!
녀석은 계속 나에게 안면을 맞았다.
내가 권투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아프긴 할 거다.
“히익!”
실제로 녀석은 내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방금 코를 때렸는데 코피가 줄줄 흐른다.
나는 녀석을 신명나게 팼다.
정말 엄청나게 개운했다.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그만 해!!! 그만!!!!”
“누구 맘대로?”
퍽! 퍽! 퍽!
녀석은 힘에 부치는지 나에게 봐달라고 애원했지만 봐주거나 그런 거 당연히 없었다.
모든 체증이 다 가라앉는 듯한 이 개운한 느낌을 내가 왜 그만두겠는가?
나는 더 결렬하게 녀석을 팼다.
퍽!
결국 어퍼컷을 한 대 맞고 녀석은 뒤로 자빠져버렸다.
녀석은 힘도 없는가 일어서지 못하고 그냥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후아! 개운하다. 고맙다 기택아. 그동안의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 같아.”
“개······새······끼······”
녀석은 힘겨워하며 겨우 욕을 했다.
이 와중에도 저런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
“자존심 진짜 강하네. 한결같이 욕이구나?”
나는 쓰러져 있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신나게 맞아서 그런가 얼굴이 탱탱 부었고 피가 범벅이다.
“도망 못 쳤다고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 너가 그 어디로 도망가든 나는 너를 쉽게 잡을 수 있으니까.”
“지옥······에나······떨어져······”
“거기는 나쁜 짓거리를 한 네 녀석이나 가는 곳이야.”
카악! 퉤!
나는 녀석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크윽!”
“이건 그동안 지가연 씨가 당했던 수치에 대한 값이야. 물론 거기에는 한참 못 미치지.”
그다음 나는 녀석의 얼굴 정면을 발로 짓밟았다.
더 아프라고 부비적 부비적거려줬다.
“끄아아아아아!!!!”
“요건 그동안 너한테 당했던 피해자들이 당한 상처들.”
그다음에는 녀석의 얼굴에 싸커킥을 날렸다.
퍽!
“크억!!!!”
“요건 내가 당한 것들.”
양기택은 완전 망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녀석은 숨쉬기도 힘든가 헐떡댔다.
“이제 마무리 짓자. 경찰들 곧 올 거니까 잘 잡혀가라.”
삐용! 삐용!!!
멀리서 경찰차가 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난 이만 갈게.”
녀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난 그곳에서 사라졌다.
***
“이게 대체······”
경찰들은 떡실신되어 있는 양기택을 보며 놀라워했다.
마치 그 양기택이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그가 쓰러져 있는 것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들 뭐해? 안 잡아갈 거야?”
수사팀장은 그런 부하들에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저기······”
부하 경찰관들은 어처구니없어하며 양기택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왜?”
팀장은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허.”
그 광경을 보며 팀장 또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양기택은 온갖 힘을 다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포복하며 도망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추하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었다.
“크윽!”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제지당해 버리고 말았다.
경찰 쪽에서 잡은 게 아니었다.
바로 그의 비서가 덮친 것이다.
“너 미쳤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미친 건 너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뒤치다꺼리 다 해준 나를 감히 이렇게 대해?!!! 그래도 난 마지막까지 너를 위해 일했어!!!! 같이 죽자. 이 개자식아!!”
“저리 안 비켜?!!! 죽고 싶어?!!!”
“이익!! 쓰레기 새끼야. 그냥 뒤져버려!!!”
양기택이랑 비서는 둘이 그렇게 바닥에서 서로 레슬링 하면서 난리가 났다.
팀장은 어이가 터졌는지 그 꼴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보기 흉하다······어서 체포해.”
“······네.”
경찰들은 그들에게 수갑을 채우러 갔다.
“죽어!!! 이 개새끼!!!!! 이거 놔! 난 이 개자식 죽여야 하니까!!!!”
경찰들은 비서를 양기택으로부터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는 아주 발악을 하며 끝까지 양기택을 괴롭혔다.
실랑이가 한동안 계속된 후에야 경찰들은 비서를 겨우 뗄 수 있었다.
체포되어 끌려가는 와중에도 비서는 난리였다.
“양기택!!!!! 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버릴 거야. 으아아아아!!!!”
그동안 그는 쌓인 게 많았고 오늘 한 번에 다 터진 모양이었다.
반대로 양기택은 이미 초주검 상태라 쉽게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
***
집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지가연에게 통화를 걸었다.
“네. 라일 씨.”
“지가연 씨. 양기택 잡았습니다.”
“······그렇군요.”
지가연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안 기쁘세요?”
“솔직히 기쁘기보다는 개운하다랄까요? 이제 그 자식과의 악연이 끝났으니까요.”
“이제 맘 놓고 편히 지내세요. 녀석은 절대로 재기 못할 거니까요.”
“감사합니다······라일 씨······”
지가연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마 쌓여있던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왔을 테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테고······
그녀는 결국 어린애가 되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다 끝났습니다. 제가 양기택에게서 보상금도 뺐었어요. 계좌 보시면 입금되어 있을 겁니다.”
“라일 씨······정말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그녀는 계속 나에게 감사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럼. 건강히 잘 지내시길 빕니다. 이만.”
지가연과 통화를 마친 나는 ‘warrior가 양기택에게서 뺏어 전하는 보상금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금을 보냈다.
물론 나도 보상금을 챙겼다.
그것도 제일 많이.
사실 다른 피해자들의 보상금을 다 합쳐도 내가 챙긴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고생은 내가 제일 많이 했잖아.
그러니까 뭐라 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양기택과의 악연도 끝났다.
***
장수진
그녀는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다.
그녀는 아직 20대였지만 다른 어떤 요원들보다도 일에 능숙했고 여러 어려운 임무들도 거뜬히 해냈다.
장수진은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것이 없었다.
전투, 첩보, 해킹, 필요하다면 암살까지.
모든 임무를 막힘 없이 해내는 그녀는 이호영 국정원장이 최고로 신임하는 요원이다.
제일 최근 임무였던 ‘소몰이’ 작전에서 그녀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세간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중동의 무장 테러집단이 방한한 미국 국무부 장관을 노리고 우리나라로 몰래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장수진은 테러집단의 핸드폰을 해킹해 녀석들이 잠복할 위치를 다 알아냈고 미리 가서 대기해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처리해버렸다.
그녀의 활약으로 다른 요원들과 특수부대원들은 할 게 없었다.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그녀가 너무나 깔끔하고 조용하게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맡은 일은 warrior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
국내 모든 포털 사이트를 점령하고 폴넷 뿐만 아니라 도로 CCTV망도 맘대로 가지고 노는 놈이다.
국정원 내 모든 전문가들이 warrior가 누군지 밝혀내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며 뒤졌지만 나오는 것은 죄다 null 값뿐이었다.
해외 서버를 통한 건지 우회를 한 건지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장수진은 방법을 바꿔 구치소에 있는 강기석과 정석한을 찾아갔다.
그들은 모두 치를 떨며 ‘이라일’에 대해서 말했다.
녀석에 대해서 바로 뒤져보았다.
정말로 형식적인 것만 딱 나왔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찾으려 했을 때 나오는 것은 없었다.
녀석이 해외 살인청부업자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도 접근했다.
그들은 이라일이 유령이 되었다라든지 보이지 않는 전기 공격을 했다든지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굉장히 수상한 놈이었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이라일이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지극히 평범했던 놈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녀석은 요 한달 새 몰아치기 시작했다.
해외 용병들로부터 이라일의 집 주소를 얻어낸 장수진은 많은 의문을 품은 채 그곳으로 갔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장수진을 조사도 할 겸 그곳으로 들어가서 이라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생각보다 문은 쉽게 딸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장치도 안 해 놨다.
집은 전형적인 30대 남성이 자취하는 방이었다.
특별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컴퓨터도 있는 거라곤 게임용 컴퓨터밖에 없다.
이 컴퓨터로 그 정도의 해킹을 했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깼다고 할 정도로 말이 안 된다.
warrior가 이라일이라는데 거의 확신을 가졌던 장수진은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작업일 수도 있다.
녀석은 확실히 수상하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녀석의 작업장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장수진을 이라일의 집에서 대기해 그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띡! 띡! 띡! 띡!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그리고 문이 열렸다!
121화. 그 자식의 정체 (6)
[라일 님.]
그 자식에 대한 흔적을 얻고 나서 6일째 되던 날, 디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알아낸 거야?”
[네.]
꽤 오래 걸렸다.
디오를 만나고 나서 작업 속도가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처음이다.
상대도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상 상대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실마리를 얻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보여줘 봐.”
[화면으로 띄우겠습니다.]
디오는 내게 어떤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어떤 허름한 아파트였다.
마치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좁은 방 하나가 보였다.
“뭐지 이건?”
[데이터가 최초로 보내진 곳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주소 불러 봐.”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프론트 스트리트 746입니다.]
역시 미국인이었나.
대충 예상은 했었다.
미국을 너무 확연히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 주인이 누군데?”
[잭슨 앤서니라는 사람입니다.]
“녀석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불어봐.”
[1998년생으로 고등학교 때 친구를 공격하려던 괴한을 벽돌로 내려쳐서 죽인 혐의로 5년 동안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 뒤 지금은 출소해서 나온 상태입니다.]
“……뭐야 그게 끝?”
[네.]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놈이었다.
[기록을 조사해보니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아!]
갑자기 디오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짧게 외쳤다.
진짜 이제는 완전 사람 다 됐다…….
“뭔데 그런 소리를 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혹시 참고 사항이 될 수도 있어서요.]
“그냥 다 말해줘. 녀석에 대해서는 뭐라도 알아내야 하니까.”
[4년 전에 일어났던 크리스틴 살해사건 아십니까?]
“응. 알지. 한동안 그걸로 시끄러웠었잖아.”
[그 크리스틴과 친구였습니다. 잭슨은 그 친구를 보호하려다가 감옥으로 갔고요.]
“그래?”
순간 이 사건을 캐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디오. 크리스틴 살해사건하고 잭슨 앤서니와 관련된 사항은 어떤 거라도 놓치지 말고 정리해서 알려줘.”
[예. 알겠습니다.]
잠시 뒤 디오는 내게 정리한 보고서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세밀하게 읽었다.
“하하하하.”
이로써 모든 실마리가 풀렸고 녀석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다 알아냈다.
***
“끝까지 쫓으니 단서가 잡히더군요. 제까짓 게 너무 설쳐댔어요.”
“하, 하핫!”
대통령은 내 말에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왜 그러신가요?”
“방금 확신이 딱 들었습니다. 역시 warrior 당신을 택한 게 잘한 것 같아요. 잭슨이 꼬리를 잡혔다는 것은 당신이 그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니까요.”
“하하하하.”
뭔가 바보 같은 그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게 더 있습니다.”
“뭡니까?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왜 잭슨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직접 싸우시지 않고 저만 이렇게 빼돌린 겁니까?”
“일단 바로 싸우기에는 부담돼서요. 만에 하나 제가 거기서 녀석에게 당할 수도 있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생각보다 엄청나게 주도면밀한 놈이더라고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잭슨이 능력을 가지게 된 시기와 내가 능력을 가지게 된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는 거다.
나는 드러내놓고 능력을 사용했던 반면, 조심성 많은 녀석은 계속해서 암암리에 활동해 온 것이었다.
“하아……. 제가 뭐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에이든 대통령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물었다.
안 그래도 그에게 부탁할 게 있었는데 이렇게 물어봐 주면 땡큐였다.
“할 수 있는 게 많지요.”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도와줄 테니 대통령님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십시오. 아직 정당성은 대통령님께 있고 그 녀석들은 현재 반란을 일으킨 상황이니, 여론전으로 나가면 그 건방진 녀석들이 맘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최선을 다해 모으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녀석들에게 역공을 가할 준비를 했다.
***
뉴욕의 한 음침한 골목.
“허억……. 허억…….”
로버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 찼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제, 젠장.”
그는 아까 벌어진 일로 인해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클럽에서 한창 놀고 적당히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괴한이 나타나 그를 칼로 찌르려는 것이었다.
“흐앗!”
특유의 운동신경으로 그는 공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뭐, 뭐야?!!”
로버트는 술이 확 깼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괴한을 향해 권투 자세를 취했다.
“넌 뭐냐?”
“…….”
로버트가 질문했지만, 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다시 로버트를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이 망할 자식.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매일 권투 연습을 했던 로버트는 호기롭게 그 괴한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괴한에게 날카로운 펀치를 날렸다.
휙-! 휙-!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가 날 정도로 그의 펀치는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괴한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는지 로버트의 공격을 잘 피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로버트는 약이 올라 그만 동작을 크게 하고 말았다.
괴한은 로버트에게 틈이 생기자 곧바로 돌진해 그를 칼로 찔렀다.
푸슉-!
“크윽!”
로버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괴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칼날을 직접 쥔 것이었다.
“끄아아아악!”
괴한이 로버트의 손을 떨쳐내려고 칼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결국 로버트는 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크흑!”
그의 손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괴한은 로버트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갑자기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더 나오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바로 위기를 직감했다.
이미 손도 망가져 있어서 제대로 된 펀치를 날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개자식. 두고 보자.”
결국 그는 도망치기로 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하아……. 하아…….”
그는 더 이상 도저히 못 뛸 것 같아 중간에 멈춰서 숨을 헐떡였다.
“우웨엑!”
그는 결국 역한 소리를 내며 아까까지 먹었던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하아……. 하아……. 시발.”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와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니들 뭔데?”
“…….”
괴한들은 대답하지 않고 로버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로버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권투 자세를 취했다.
“그 병신 같은 손으로 애쓰지 마라. 로버트.”
갑자기 어떤 남자가 괴한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다.
그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
로버트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잭슨…….”
로버트는 이를 갈며 그를 무섭게 노려봤다.
“감옥에서 출소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하는 짓이 이런 개 같은 짓이냐?”
“개 같은 짓이라니. 그동안 내가 계속 꿈꿔왔던 순간인데.”
잭슨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로버트는 그것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일단 그는 여기서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잭슨을 달래기로 했다.
“잭슨. 고생을 많이 해서 얼굴이 많이 삭은 거 같아. 참 안타까워. 네가 너무 짠해서 내가 큰맘 먹고 돈을 줄 테니 이런 짓 그만하고 좀 쉬는 게 어때?”
“푸하하하하하하.”
로버트의 말에 잭슨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네가 나한테 돈을 준다고? 내 평생 들었던 소리 중에 제일 웃긴 소리다. 그래. 얼마나 줄려고 그래?”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잭슨이 괴한들을 믿고 설쳐대는 모습에 로버트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잘 알았기에 화를 꾹 억눌렀다.
“만 달러 줄게. 어때?”
“만 달러?”
“그래.”
갑자기 잭슨은 총을 꺼내 들었다.
“무, 무슨?”
탕-!
“끄아아아아악!”
다리에 총을 맞은 로버트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만 달러? 너는 네 목숨값이 만 달러밖에 안 되나 봐? 좀 더 써야 하지 않겠어?”
“이 개자식!!! 뭐 하는 짓이야?!!!”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로버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잭슨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게 네 본심인지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 인간 참 안 변한다 그치?”
잭슨은 쓰러져 있는 로버트에게로 다가갔다.
“근데 나는 많이 변했어. 더 이상 네가 가지고 놀던 그 잭슨이 아니라고.”
“끄아아악! 꺼져 이 개자식아!”
로버트는 잭슨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발을 잭슨의 다리를 그대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뭐, 뭐야?!!”
로버트는 유령이라도 본 듯이 놀란 눈으로 잭슨을 바라봤다.
“뭔지는 알 거 없고 액수나 말해. 나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너는 그냥 여기서 죽는 거야.”
잭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로버트도 어설픈 거래로는 여기서 못 벗어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시, 십만 달러 어떠냐?”
로버트는 너무나 아까운 마음에 망설이며 말했다.
“하! 십만 달러?”
탕-!
잭슨은 다시 한번 로버트의 다리를 향해 총을 쐈다.
“끄아아아아아악!”
로버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네 목숨값이 그것밖에 안 돼? 아쉽네.”
“시발. 십만 달러도 충분히 큰돈이잖아!!”
“허허. 네가 계좌에 가지고 있는 돈만 120만 달러인데, 10%도 안 되는 돈을 제시해 놓고서는 뭔 소리야?”
“뭐?”
로버트는 잭슨이 말한 정확한 액수에 경악했다.
“왜? 난 다 알어. 그러니까 개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 자! 마지막으로 물을게. 네가 얼마를 줘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
“배……. 배……. 백 이십만 달러.”
로버트는 피눈물을 흘릴 지경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제안했다.
“오! 계좌에 있는 돈 전부를 주겠다고?”
잭슨은 반색하며 나왔다.
로버트는 이제야 끝났다 싶었다.
그는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나중에 어떻게든 그 돈을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땡이야.”
“……뭐?”
“사실 네가 그 얼마를 준다고 해도 여기서 살아나갈 수가 없었어.”
“그, 그게 무슨……?”
“흐흐흐흐흐흐.”
잭슨은 로버트를 바라보며 미친놈처럼 끌끌 대며 웃어댔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틴을 죽게 만든 네 녀석은……. 그 어떤 돈을 줘도 살아남을 수가 없단 말이다.”
잭슨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는 마치 분노와 슬픔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틴……. 드디어 때가 왔어. 너의 복수를 할 때가 말이야.”
“내, 내가 안 죽였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버트가 시치미를 떼며 말하자 잭슨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잭슨은 마치 악마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석하게도 난 모든 것을 알아버렸어.”
잭슨은 옆에 있는 괴한에게서 칼을 넘겨받았다.
“머, 멈춰!!! 돈은 원하는 대로 줄게. 그러니까 멈추라고!!!”
로버트가 울부짖었지만, 잭슨은 망설임 없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했다.
“끄아아아아악!”
잭슨은 미친 듯이 로버트의 온몸에 칼을 꽂아댔다.
“커헉!”
로버트는 질질 기어가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몸이 축 늘어지며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잭슨은 얼굴의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피가 번진 얼굴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기분 최고네. warrior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는 끌끌 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다음 타겟으로 넘어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