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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거침없는 보복 (7) (22/201)

21화. 거침없는 보복 (7)

“어떻게 말인가?”

이호영 원장은 직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시도를 다 해봤지만 쥐꼬리만 한 단서 하나를 얻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녀석이 디지털 세계는 조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머리는 조작할 수 없으니까요. 정공법으로 나갔더니 답이 바로 나왔습니다. 강기석과 정석한을 만나서 warrior가 누군 것 같냐고 물었더니 다들 똑같이 한 명을 지목하더군요.”

“그게 누구지?”

“녀석들의 회사인 디씨소프트의 이라일이라는 사원입니다.”

“뭐 하는 놈인데?”

“그냥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이호영은 어이가 없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자기 맘대로 다루고,

경찰 인트라넷인 폴넷에 야쿠자들에 대한 정보를 올린 다음 이동 경로를 생중계하고,

각종 비리들을 증거 자료와 함께 다 들추어낸 놈이 평범한 회사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 이 난리를 쳤다고? 평범하지 않았으면 세계를 정복했겠군.”

“신원 조회 상으로는 그렇단 말입니다.”

“무슨 뜻이지?”

“warrior를 조사했던 것과 같이 컴퓨터가 아닌 직접 발로 뛰어서 이라일에 대해 알아보니 실제로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디씨소프트 성추문 사태 피해자들의 증거를 복구시켜줬고 그로 인해 정 전무가 앙심을 품고 삼합회와 러시아 마피아 놈들을 시켜 녀석을 죽이라고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오히려 놈들을 경찰에 붙잡히게 했죠. 그리고 최근 양기택 대표 사건도 녀석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녀석은 양기택의 전 연인인 지가연을 포섭해 그녀가 양기택을 저격하도록 도왔습니다.”

“흠······”

“이라일과 관련된 사건들이 warrior의 저격과 모두 일맥상통한다는 게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수상합니다.”

이 원장은 부하의 말에 조금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 사항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자네가 방금 말했던 것은 다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잖아. 그 이전에 이라일과 관련된 사건은?”

“없습니다.”

“없다라······”

이전까지는 아무 짓도 안 했던 평범한 놈이 갑자기 요 한 달 사이에 이 모든 일을 일으켰다.

그게 가능한 것인가······

이 원장은 부하의 말에 더 황당함을 느꼈다.

“그게 저도 상당히 이상하기는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그 이전까지는 어떠한 사건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수진도 자기가 한 말이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얼른 해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지 warrior가 이라일일 거라는 촉이 강하게 왔습니다.”

“······”

장수진.

국정원에 들어온 이래로 모든 임무를 막힘 없이 해결했던 그녀다.

장수진은 CIA에서까지 스카우트하고 싶어 할 정도로 유능한 현장 요원이다.

이호영 원장 또한 그녀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warrior의 정체가 사실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믿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이런 일에 촉을 근거로 들다니······

“제 말이 이상하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확인해봐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수진은 이상하게 그 회사원에게 집착했다.

이전까지 이렇게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한 적이 있었나 싶다.

굳이 그녀의 의견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어차피 그녀 말대로 확인해 봐서 나쁠 것도 없다.

이 원장은 일단 장수진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서가 하나도 안 나오는 마당에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지. 바로 접근해서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수진은 이라일을 조사하러 다시 떠났다.

***

지가연과 나의 합작으로 많은 정황들이 드러났다.

디씨소프트 게이트에 이어 나이스 게이트, 그리고 문리버 게이트가 차례로 터졌다.

사람들은 특히 문리버 게이트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지가연은 문리버에서 마약 유통, 성매매 심지어 인신매매까지 이루어졌고 거기에 조직 폭력배는 물론 삼합회,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까지 연류되어 있으며 해외의 여러 큰손들이 여기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다 폭로했다.

-ㅁㅊ 이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 맞아?

-인신매매까지 주도했다고? ㅅㅂ 사람 새끼들인가······

-아니 심지어 엄청 글로벌해. 아주 세계 각국의 큰손들이 다 연관되어 있던데?

-와. 진짜 개 충격.

-양기택은 대체 어디에 쳐 박혀 있는 거야?

-이미 해외로 도주했을 수도.

-쥐새끼 같은 놈.

-경찰들이 뒤를 봐주니까 아주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운영했네.

-대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야? 뭔 끊이지 않고 이렇게 계속 터져?

-진짜 이참에 아주 뿌리를 뽑아야 해. 제대로 팀 구성해서 관련자들 싹 다 엄중 처벌해야 함.

국민 청원 게시판에서는 빨리 TF팀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하라고 난리였다.

이에 정부는 국민들의 요청에 빠르게 응답하며 어서 TF팀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사건의 규모가 큰 만큼 역대급 규모의 TF팀이 구성되었다.

TF팀은 곧바로 디씨소프트와 나이스 그리고 문리버를 압수수색에 했다.

하지만 워낙 자료들이 많아서 TF팀은 압수한 자료들을 보고 기겁했다.

그들은 ‘어느 세월에 이걸 다 조사해?’ 하면서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warrior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warrior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자료들의 위치와 내용을 싹 다 정리해서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증거 은멸을 시도했던 자료들을 자기가 모두 다 복구시켜 절대 지우지 못하도록 설정해놨으니 안심하고 수사에 착수하라는 말도 남겼다.

수사 초기에 TF팀은 warrior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공개한 정보를 무시한 채 자기식대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이들도 그냥 수사하기에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는지 결국 warrior의 안내를 참고했다.

그랬더니 일의 진도가 엄청나게 빨리 나가기 시작했다.

TF팀은 최소 1년이 걸려야 이 일이 끝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warrior의 도움으로 1개월 안에 조사가 끝날 전망이 보였다.

이 소문 또한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warrior는 더욱더 많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warrior 진짜 미친놈인 듯.

-대박 아니냐? 어딨다가 이런 놈이 이제야 나타난 거야?

-디.나.문 TF팀 warrior에게 엎드려 절해야 한다.

-당연하지. 거의 밥상 다 차려놔서 숟가락만 뜨면 된다던데.

-ㅅㅂ warrior에게 밉보이면 ㅈ될 듯. 디씨소프트랑 나이스가 이렇게 털릴 줄 누가 알았겠어?

-ㅈ되는 거 맞는 듯. 소문에 의하면 국내 해커 커뮤니티에서 warrior 털려고 했다가 오히려 그쪽 컴퓨터 다 작살났다고 함.

-ㅋㅋ 참교육 당했네. 미친놈들이 warrior는 왜 건들고 난리야?

-우리 warrior 건들면 내가 가만히 안 있는다.

-솔직히 국가적 영웅임. warrior 건들면 진짜 노답 새끼임.

“하하. 뭔 놈의 우리 warrior야?”

나는 인터넷 글을 읽다가 실소했다.

[warrior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점점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곧 라일 님의 뜻대로 될 것 같습니다.]

“좋아. 순조롭네. 곧 내 힘을 드러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띠리리리~!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뭐지?”

[양기택입니다.]

“어이구.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제가 일부러 막지 않아서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라일 님이 양기택의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요.]

“하하하하. 디오. 넌 정말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맞아. 기다렸지.”

난 기쁜 마음으로 양기택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쇼.”

“······”

전화를 걸어놓고 응답이 없었다.

“기택아. 너인 거 알아. 뭘 폼잡고 있어? 빨리 말해.”

“이라일······”

분노가 서린 양기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기택아. 숨어 있느라 애쓴다.”

“진작에 너를 없앴어야 했는데······”

“그건 불가능했으니까 아쉬워하지는 마. 너가 뭔 짓을 해도 그건 안됐어.”

“하! 진짜 어이가 없군. 어디서 개 같은 게 나타나 가지고.”

양기택은 실소했다.

“그 개 같은 놈이 지금 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중이잖아. 어때 기분이?”

“진짜 사람 열 받게 하는 데는 아주 뭐가 있군.”

“너희한테 당한 게 많아서. 너네는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이 정도 당한 걸 가지고 뭘 그래?”

“넌 지금 너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그럼. 당연하지.”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 같아? 너에게 배로 갚아줄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크크크크크. 기택아. 아쉽게도 너는 이제 감옥에서 오랫동안 썩어야 하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녀석에게 조소를 보냈다.

“그리고 네 재산은 내가 몰수했어. 너한테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라도 보상을 해줘야 하거든.”

“뭐?”

양기택은 불안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못 믿겠으면 확인해 봐. 기다려줄 테니까.”

“······”

양기택은 자신의 계좌를 확인하고 있는 중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외침이 들렸다.

“이라일 이 개자식아!!!!!!!!!!!”

무방비한 상태로 있었던 나는 녀석의 엄청난 괴성으로 인해 하마터면 귀청 떨어질 뻔했다.

“야! 귀에서 피나겠다. 살살 말해라.”

“내 돈 어쨌어?!!!!!!!!!!”

“너 금붕어야? 내가 다 먹었다고 말했잖아. 너가 너무 뻔뻔해서 너한테 피해 입은 사람들한테 보상해줄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직접 친히 해주겠다고.”

“시이발!!!!!! 내 돈 당장 내놔!!!!!!”

양기택은 표독스럽게 악을 질러댔다.

이때까지 대화하면서 가장 열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돈에 굉장히 민감한 녀석인가 보다.

“기택아. 돈은 이미 떠나갔으니까 미련 갔지 마. 그리고 지금 너가 돈이나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내가 곧 네 위치 정보를 경찰에게 풀 예정이거든. 경찰들이 이제 너를 잡으러 갈 거다.”

“이 망할 새끼!!!!!! 내가 죽여버리고 말 거야!!!!!!!!”

“크크크크. 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그건 불가능해. 아무쪼록 잘 도망치기를 빈다. 물론 그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나는 가볍게 녀석과 통화를 마쳤다.

“그럼 이제 우리 기택이 빡친 면상을 보러 가볼까나?”

[경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 경찰한테도 양기택 위치 보내줘.”

[폴넷에 바로 올리겠습니다.]

“오케이!”

나는 택시를 잡아 녀석에게 갔다.

***

인천의 한 항구.

양기택은 비서와 함께 한국을 뜨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시발!!!! 내가 그 새끼 죽여버릴 거야.”

양기택은 분이 안 풀렸는지 계속 씩씩댔다.

“일단은 참으십시오. 어서 여기를 떠야 합니다. 복수는 나중을 노리십시오.”

“으아아아아아!!!!!”

양기택은 이 모든 상황이 짜증났는지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비서는 그 모습을 불안해하며 쳐다봤다.

“대표님. 이러다가 들키고 맙니다. 자중하십시오.”

“닥쳐!!!!!!”

퍽!

양기택은 엄한 비서에게 화풀이를 했다.

“큭!”

비서는 양기택에게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시발. 다 ㅈ같아!!!!!”

양기택은 쓰러져 있는 비서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다! 개 같다고!!!!”

부웅! 끼익!

한참 그가 자신의 비서를 때리고 있을 때 갑자기 택시 한 대가 와서 거기에 멈춰 섰다.

양기택은 그제서야 발길질을 멈췄다.

“뭐야?!!”

그는 택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이빔으로 인해 눈이 부셔서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누구야?!!!!”

“기택아!”

“너, 너!!!!”

택시에서 이라일이 내리며 그를 맞이했다.

“도망치라니까 왜 여기서 비서나 때리고 앉았어?”

119화. 그 자식의 정체 (4)

퍽-!

사물함에서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내고 있던 잭슨을 누군가가 뒤에서 갑자기 다짜고짜 가격했다.

“커헉!”

잭슨은 그대로 머리가 앞으로 날아갔고 그만 사물함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잭슨은 흐르는 피를 닦으며 뒤를 돌아 자신을 때린 상대를 쳐다봤다.

“뭘 봐 병신 새끼야.”

190cm를 훨씬 넘는 근육질의 남자가 잭슨을 같잖다는 듯이 쳐다봤다.

“안 그래도 버스에 지갑을 놓고 내려서 아침부터 기분이 거지 같은데 왜 눈에 띄고 지랄이야?”

“지갑을 잃어버린 게 내 탓은 아닐 텐데.”

짝-!!!!!

그 남자는 자신에게 대꾸하는 잭슨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버렸다.

어찌나 강한지 잭슨은 휘청거리며 사물함에 몸을 부딪쳤다.

“이 건방진 새끼가 어디서 말대꾸야?”

그 남자는 주먹을 들어 다시 잭슨을 때리려고 했다.

“로버트 그만해!!!”

갑자기 한 여학생이 나타나 로버트를 만류하며 나섰다.

로버트가 너무 강해서 아무도 선뜻 나서서 그를 막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용감하게 나선 것이었다.

“크리스틴. 이 건방진 새끼는 좀 더 맞아야 한다고.”

“힘이 남아돌면 운동장에 가서 럭비나 하시지? 엄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그 아름다운 금발 소녀는 로버트를 향해 당차게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로버트는 재밌다는 듯이 방정맞게 웃어댔다.

“크리스틴. 너도 나한테 저렇게 맞고 싶은 거야?”

“어디 한번 때려봐. 아빠한테 말해서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줄 테니까.”

“하하. 건방진 년. 아주 말은 잘해.”

“말만 잘하는지 진짜로 그러는지는 한번 확인해보시던가.”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판사였다.

안 그래도 냉혹한 판사로 유명한데, 자신의 딸이 맞았는데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로버트를 잡고 늘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리 개망나니 같은 로버트라도 섣불리 크리스틴을 때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로버트의 아버지가 상원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그가 크리스틴을 때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였다.

“만약 네가 문제를 일으켜서 선거 때 조금이라도 차질을 준다면 나는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의 아버지는 망나니 같은 로버트에게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안 그래도 로버트의 아버지는 그동안 로버트가 학교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덮느라 에너지를 많이 빼앗겼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로버트로 인해 덜미가 잡힌다면 그는 정말 폭발할 지경이었다.

로버트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시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가 사주기로 했던 슈퍼카는 날아가는 것은 물론 집에서까지 쫓겨날 판이었다.

로버트는 아무것도 못 한 채 크리스틴을 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때릴 용기가 없으면 이만 가줄래?”

크리스틴은 도도하면서도 품위 있게 말했다.

로버트는 약이 올랐지만, 간신히 화를 주체하고 있었다.

“크리스틴. 계속 그렇게 까불다가는 정말 큰코다칠 거야.”

로버트는 치켜세운 검지를 크리스틴의 얼굴에 가까이 대며 말했다.

“애꿎은 사람이나 때리는 그 더러운 손. 내 앞에서 치워줄래? 굉장히 역겹거든.”

“하! 하하하!”

로버트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냈다.

“병신 같은 놈들끼리 끼리끼리 잘 놀아라. 야! 잭슨.”

로버트의 부름에 잭슨은 몸을 움찔했다.

“나중에 보자. 차라리 지금 여기서 맞는 게 더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거다.”

“그럴 일 없을 거니까 꺼져.”

크리스틴은 로버트를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로버트는 썩소를 날리며 크리스틴을 향해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사라졌다.

크리스틴은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며 로버트가 사라지는 것을 한동안 지켜봤다.

잠시 뒤 그녀는 자기 옆에 있는 잭슨을 쳐다봤다.

“잭슨 괜찮아? 세상에……. 피가 계속 흐르네.”

크리스틴은 황급히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잭슨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이 정도쯤이야 별거 아니야.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흉지지 않을까 모르겠네. 진짜 로버트 그 개자식.”

평생 욕 하나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녀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풋!”

잭슨은 그 이질감 때문에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속도 좋네. 넌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그냥. 네가 욕을 하니까 뭔가 웃겨서.”

“웃기긴 뭐가 웃겨? 그런 개망나니 같은 녀석에게는 이런 욕도 사치라고.”

크리스틴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분했는지 계속 씩씩거렸다.

“크리스틴. 난 괜찮으니까 넌 나서지 마. 괜히 나 때문에 네가 피해를 입을까 봐 걱정돼.”

“걱정 마. 너 우리 아빠 모르냐? 안 그래도 로버트 녀석이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감옥에 당장 집어넣을 거라면서 벼르고 있어. 그런 녀석은 거기서 고생 좀 하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잭슨은 그윽한 눈으로 크리스틴을 바라봤다.

잭슨은 크리스틴이 로버트를 막아준 것도 고마웠지만, 자기보다 더 화를 내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그는 자기가 소꿉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다고 자부했다.

“끝나고 뭐하냐?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좋아! 나 뭐 다른 약속 없어.”

잭슨은 크리스틴의 물음에 반색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흐흐. 좋아. 그러면 학교 끝나고 보자고.”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해사한 미소를 보냈다.

그녀의 미소를 본 잭슨은 이마가 아픈 것조차 잊을 정도로 달콤함에 빠져 있었다.

“그나저나 몇 시야? 세상에!”

그 달콤함은 크리스틴이 복도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봄으로써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수업 늦겠다. 어서 가자. 나중에 만나! 로버트 조심하고!”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의 교실로 달려갔다.

잭슨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잭슨은 사물함에 다시 물건을 집어넣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끝나고 크리스틴을 만날 생각해 휘파람까지 불며 싱글벙글했다.

그 순간 잭슨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쾅-!

갑자기 로버트의 주먹이 날아와 잭슨의 사물함을 강타했다.

잭슨은 위기를 직감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내뺐기 때문에 다행히 잭슨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어쭈! 이 새끼가 피해?”

로버트는 곧바로 잭슨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에도 어디 한번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이 새끼야.”

잭슨은 발버둥 치며 로버트의 손을 떼내려고 했지만, 그의 악력이 너무 강해 멱살을 풀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결국 잭슨의 로버트에게 힘없이 맞기 시작했다.

“제, 제발 나를 내버려 둬.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잭슨은 로버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난리를 다 쳤다.

하지만 로버트는 흔들림 없이 잭슨을 꽉 붙잡고 있었다.

“내가 아까 아침에 그냥 그때 맞는 게 더 좋을 거라 했지? 넌 뒤졌어 이 새끼야.”

퍽-! 퍽-! 퍽-!

그렇게 가혹한 폭행이 계속 이어졌다.

퉤-!

어느 정도 다 때렸다 싶은 로버트는 쓰러져 있는 잭슨에게 침을 뱉었다.

침은 잭슨의 얼굴에 정확히 떨어졌다.

“오! 나이스 샷!”

로버트는 쓰러져 있는 잭슨을 향해 얄밉게 이죽댔다.

“그 같잖은 년 믿고 까부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년은 내가 우리 아버지 당선되고 나면 날 잡아서 조질 거야!”

퍽-!

“커헉!”

로버트는 잭슨에게 다시 한번 발차기를 가했다.

잭슨은 신음하며 맞은 곳을 부여잡았다.

“낼 보자. 병신 새끼야.”

로버트는 쓰러져 신음하는 잭슨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친구들과 함께 희희낙락거리며 사라졌다.

“흑, 흑흑.”

잭슨은 서러움에 복받쳐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로버트와는 달리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힘이 약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크리스틴의 아버지처럼 판사도 아니었고 또 가정 형편상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었기에 고소를 해봤자 로버트네의 어마어마한 변호사진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잭슨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탓하며 서러움에 땅만 쳐댈 뿐이었다.

***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근데 그 모자랑 마스크는 뭐람?”

크리스틴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잭슨을 향해 물었다.

“그냥. 좀 감기 걸린 것 같아서.”

“…….”

크리스틴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잭슨을 바라봤다.

그녀는 대뜸 잭슨에게 다가가 그의 마스크를 벗겼다.

“세상에…….”

크리스틴은 엉망이 되어 있는 잭슨의 얼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쾅-!

“안 되겠어. 더 이상은 못 참아!”

분노한 크리스틴은 식탁을 내려찍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잭슨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

“어, 어디가?”

“당장 아빠에게 말해야겠어. 정말 해도 너무하잖아!!!”

당황한 잭슨은 크리스틴을 만류하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크리스틴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까지 흘렸기 때문이다.

“걱정 말고 따라 와…….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잭슨은 그대로 크리스틴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잭슨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상처를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로버트를 벼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잭슨의 상처를 보고 망설임 없이 일을 진행시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굉장히 척척 진행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로버트의 아버지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기꺼이 잭슨을 도와 로버트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만들었다.

결국 로버트는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잭슨!!! 너 이 개새끼!!!!”

로버트는 재판장 안에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잭슨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경비들에게 제압당했다.

“너 이 새끼!!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로버트는 계속 절규하며 그대로 끌려 나갔다.

나중에 로버트의 아버지가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게 그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크리스틴. 정말 고마워. 요즘 진짜 학교 다닐 맛이 난다니까?”

“그러게 내가 뭐랬어. 나한테 다 맡기라고 했잖아. 내 말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크리스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학기가 거의 다 끝나가서야 이런 평화가 왔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야? 아무튼 고맙다 크리스틴.”

“뭘. 이런 걸 가지고.”

크리스틴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크리스틴 저번에 말했던 할 이야기가 뭐야?”

“아! 지난번에 말한다고 해놓고서는 로버트 일 때문에 정신없어서 말 못 했다. 사실 말이야…….”

크리스틴은 웃고 있었지만, 또 그러면서도 슬픔이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나……. 곧 한국으로 떠나.”

“어?”

잭슨은 크리스틴의 말에 당황했다.

“내가 전부터 한국에 관심 있었다고 말했잖아.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가게 되었어.”

“…….”

그녀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가는 거라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잭슨은 마음이 울적해졌다.

“괜찮아. 나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나중에 네가 한국으로 놀러 올 수도 있는 거고.”

“놀러 갈게!”

잭슨은 자신 있게 말했다.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지르고 봤다.

“흐흐. 좋아. 거기서 같이 놀면 그것도 재밌겠다.”

크리스틴은 기뻐하며 말했다.

“아직 가려면 좀 남았으니까 작별하기 전까지 같이 많이 놀자.”

“그래.”

잭슨은 아쉬움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봤다.

“늦었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볼까?”

“응. 내가 데려다줄게.”

“흐흐. 좋아.”

둘은 식당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 둘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몰래 그들을 따라갔다.

120화. 그 자식의 정체 (5)

“집은 구했어?”

“응. 알아보니까 거기에 미국인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더라고.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라서 괜찮았어. 벌써 연락하는 친구도 생겼는데 걔가 좋은 위치에 있는 곳을 알려줬어.”

“오! 다행이다.”

잭슨의 호응에 크리스틴은 기분이 좋은지 흥얼대기 시작했다.

“근데 한국에는 왜 관심이 생긴 거야?”

“일단 문화가 좋은 거 같아. 음악과 드라마 같은 콘텐츠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분명 근미래에는 한국 문화가 주류 콘텐츠가 되어 있을 거야. 나는 미리 그 싹을 알아보고 투자하는 거지.”

“대단하다.”

잭슨은 벌써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크리스틴이 부러웠다.

크리스틴에 비하면 자기는 고작 컴퓨터 게임이나 프로그래밍만 하는 너드라는 게 잭슨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도 너처럼 꿈을 찾아서 거기에 열중하고 싶다.”

“하면 되지. 너 컴퓨터 잘하잖아. 저번에 네가 만들었다고 보여준 프로그램 완전 신기하던데? 그 목소리 변환하는 프로그램.”

“그 정도는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거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렇게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대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잭슨은 기분이 한결 풀렸다.

“그래. 맞어. 계속하다 보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드디어 긍정적으로 나오네.”

“흐흐. 좋아. 우리 같이 열심히 해서 나중…….”

잭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웬 괴한이 나타나 크리스틴을 덮치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피해!!!!!!”

“뭐?”

크리스틴은 잭슨이 소리치는 곳을 향해 뒤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푸슉-!

“커헉!”

무방비인 상태인 크리스틴을 보호하려다가 잭슨은 그만 괴한의 칼에 맞아버렸다.

“꺄아악-!!!!!!”

크리스틴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마, 망할…….”

잭슨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해 옷이 빨갛게 물들어갔다.

다행히 잭슨이 몸을 옆으로 피해 칼이 몸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스치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괴한은 가소로운 듯이 칼을 돌리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웬 놈이냐?”

“…….”

괴한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잭슨을 공격하려고 했다.

잭슨은 바닥에 벽돌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하압!”

괴한은 다시 잭슨을 찌르려 했다.

잭슨은 황급히 몸을 숙인 다음 앞으로 굴러 괴한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놓인 벽돌을 집었다.

“하핫!”

괴한은 재밌다는 듯이 옅게 웃었다.

그는 다시 잭슨을 처리하기 위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잭슨은 크리스틴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괴한에게 초집중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어떻게든 괴한의 공격을 피하고 그 벽돌로 녀석의 머리를 가격한다.

잭슨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하압!”

괴한은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다시 잭슨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그에 잭슨은 그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벌벌 떨고 있는 잭슨을 보며 괴한은 완전히 방심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돌진에 괴한은 잭슨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이거나 먹어!”

퍽-!

“크핫!”

잭슨이 휘두른 벽돌에 머리를 제대로 맞은 괴한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잭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쓰러져 있는 괴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죽어 이 자식아!”

퍼억-!

잭슨은 다시 벽돌로 그 사람의 머리를 내려쳤고 벽돌은 그만 부서져 버렸다.

그 남자는 몸이 축 늘어지며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잭슨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잭슨……. 괜찮아?”

크리스틴은 공포감에 젖은 얼굴로 벌벌 떨며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잭슨은 기절해 있는 괴한의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남자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잭슨은 그의 숨결을 확인해봤다.

“…….”

그 남자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삐용-! 삐용-!

그때 경찰차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크리스틴이 부른 것이었다.

잭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찰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으십니까?”

“…….”

잭슨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상함은 감지한 경찰은 괴한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잭슨을 제압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네? 그게 무슨?”

크리스틴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체포해!”

“공격은 저 사람이 먼저 했어요. 잭슨의 상태를 보라고요.”

크리스틴의 말에도 경찰은 자기 할 일을 했다.

잭슨은 순순히 연행당했다.

***

이후 재판장에서 크리스틴은 증인으로 나와 잭슨의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 열심히 증언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잭슨은 3급 살인으로 징역 5년 형을 판결받았다.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과 이미 쓰러진 상대를 한 번 더 가격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러는 게 어딨어요?!! 잭슨은 저를 보호하려다가 그런 거라고요!! 안 돼 잭슨!!”

재판장에서 끌려가는 잭슨을 향해 크리스틴은 절규했다.

잭슨은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울부짖는 크리스틴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끌려갔다.

잭슨은 그렇게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왜 그 괴한이 크리스틴을 공격하려고 했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의 정체가 공개됐지만,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었다.

크리스틴 또한 그 남자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그는 단지 도박에 빠져 단지 빚을 많이 지고 있던 불량배였을 뿐이었다.

크리스틴은 계속 꾸준히 잭슨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고 감옥에서 나오면 꼭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잭슨은 자기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준 크리스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잭슨은 크리스틴의 편지에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버텨갔다.

하지만 그가 감옥에 들어오고 8개월째.

갑자기 크리스틴의 편지가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크리스틴은 잭슨에게 같이 한국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여전히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편지가 끊길만한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지났다.

감옥에 들어온 지 1년째.

그제야 잭슨은 왜 크리스틴의 편지가 끊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잭슨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차라리 크리스틴이 그가 싫어져서 편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러 온 그의 어머니는 크리스틴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잭슨은 미친 듯이 절규했다.

그는 완전 멘붕에 빠져 폐인처럼 지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망나니가 되었다.

그는 계속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는 교관까지 폭행했다.

그래도 인간적이었던 교관들은 잭슨이 그렇게 변한 이유를 알았기에 그를 달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다.

잭슨도 어머니가 있었기에 버티면서 나갈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출소 날짜가 거의 다 찼을 때 들려오는 소식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잭슨은 완전히 절망하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살하기로 했다.

잭슨은 가지고 있는 옷을 묶어 목을 매달려고 했다.

[보안 시스템 가동.]

갑자기 그의 머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그가 능력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

“잭슨 앤서니. 그 녀석의 이름입니다.”

“잭슨 앤서니라……. 제가 봐왔던 요주 인물들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에이든 대통령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당연합니다. 이전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놈이었으니까요. 갑자기 능력을 얻게 되었고 최근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대체 왜 한국과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입니까?”

“복수하기 위해서죠.”

“복수요? 설마…….”

에이든 대통령은 뭔가 좀 아는 듯한 눈치였다.

“맞습니다. 크리스틴 살인사건. 한국에서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사건이죠. 미국에서도 유명한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상원의원으로 있었죠. 그때 저는 한국의 태도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한국 정부는 일이 커질까 봐 그 사건을 대충 마무리 짓고 끝내려고 했었으니까요.”

부정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치부를 말하려니 씁쓸했다.

“결국 그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가해자가 자살해버렸으니까요.”

2017년에 일어난 크리스틴 살인사건.

미국 유학생 크리스틴이 한밤중에 동료 유학생 마틴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한국 정부는 책임을 떠맡기 싫어 황급하게 사건을 정리하게 했고 마틴을 서둘러 미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다시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섣부른 마무리로 인해 증거들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고 가해자인 마틴까지 자살해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혹들이 있었지만 그런 글들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그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 갔다.

“대통령께서는 크리스틴이 왜 죽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사실 마틴이 크리스틴과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

“하하.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시다니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대통령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마틴은 크리스틴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거의 말도 안 하는 사이였죠. 크리스틴과 제대로 대화도 안 해본 마틴이 그녀를 죽인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군요……. 그렇다면 마틴은 왜 크리스틴을 죽인 거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죠.”

“네?!!”

내 말에 에이든은 경악했다.

“그 말인즉슨 설마……. 로버트 의원이 그랬다는 것입니까?”

깜짝 놀라며 묻는 에이든 대통령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로버트 의원.

아들 로버트 주니어가 잭슨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스캔들이 터지면서 상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었다.

하지만 잭슨이 살인으로 인해 감옥으로 가면서 로버트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고, 그는 다시 선거에 도전해 당선되었다.

“하!”

에이든은 기가 막힌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로버트……. 그 악마 같은 새끼.”

에이든은 가감 없이 분노를 드러냈다.

“망나니 같은 아들보다 그는 더 극악무도한 놈입니다. 자신의 선거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크리스틴을 죽인 것이죠. 마틴 또한 걸림돌이 될 것 같으니까 자살로 위장시켜 살해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놈이었을 줄을.”

에이든은 로버트 의원의 진실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한국 쪽에서도 그걸 거들었죠. 로버트가 돈으로 꼬드겼었거든요. 그러니까 사건이 순식간에 정리됐을 수밖에요. 그래서 지금 잭슨이 한국을 부숴버리려는 겁니다.”

“그, 그런…….”

“녀석은 저처럼 능력을 얻고 나서 그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돌아버렸죠. 그 삐뚤어진 녀석이 앞으로 뭔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게다가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녀석이라 더 무서운 놈이에요.”

녀석의 처지가 딱한 것은 이해가 됐다.

나도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왜곡된 복수는 용납 못 한다.

그리고 설령 내가 녀석을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한국을 부숴버리려고 하는 녀석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warrior 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에이든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말씀하시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아내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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