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거침없는 보복 (5)
나는 특별히 류헤이카이 놈들에게는 볼일이 있었다.
이놈들은 멕시코 주요 카르텔 중 하나인 몬테레이 카르텔로부터 마약을 받아 문리버에 조달했다.
몬테레이 카르텔
바로 우리 부모님을 살해한 놈들이 있었던 조직이다.
마약 카르텔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
그러면 바로 다 내 타겟이 되는 거다.
밖을 보니 열 명의 무리가 차에서 내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녀석들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신속하게 들어왔다.
내가 살고 있는 층은 7층인데 녀석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계단으로 올라왔다.
하긴 열 명이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기는 힘들겠지.
괜히 사람들을 마주칠 수도 있고.
나는 계단에서 녀석들을 기다렸다가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류헤이카이들.”
야쿠자 놈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쓰러져 있는 강철파 보스를 발로 밀어 계단에서 구르게 했다.
쿵!
이미 기절해 있던 녀석은 야쿠자들에게 힘없이 굴러갔다.
야쿠자들은 그것을 보며 인상을 썼다.
“손님들이 먼저 와 있었어. 강철파라고 너희들도 다 알지? 지가연 씨도 여기 있었거든. 나랑 먼저 좀 놀고 있었어. 너희들도 곧 이렇게 될 거긴 한데 말이야.”
내 말에 일제히 야쿠자들은 품에서 회칼을 꺼냈다.
“와. 나 지금 영화보는 것 같아서 설레는데? 너희들 폼나긴 하네.”
“죽어라!!!!!”
야쿠자들은 앞에서부터 차례로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한테 처음 하는 소리가 ‘죽어라’야?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야쿠자는 내 말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은 채 칼로 나를 쑤셔대기 시작했다.
그는 찌르지도 못할 무의미한 칼질을 내게 계속해댔다.
“나는 강철파 놈들하고는 달리 너희들과 대화 좀 하고 싶은데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나랑 이야기 좀 할까?”
“빠가야로!!!! 닥치고 고이 죽어라!!!!!!”
“일단 말로는 안 되겠다. 너부터 닥치자!”
“끄아아아아아아!!!!”
전기 충격을 맞은 놈은 눈이 풀리며 그대로 기절했다.
쿵!
녀석은 털썩 쓰려진 다음 계단을 굴렀다.
그로 인해 분위기가 바로 바뀌었다.
야쿠자 놈들은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는지 공격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화가 통할 것 같은데?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우리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한 녀석이 나서며 말했다.
“내가 류헤이카이를 먹어서 너희 오야봉이 되려고 하는데 어때 괜찮아?”
다들 내 말에 황당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우리의 오야봉은 류헤이 님뿐이다. 그리고 우린 너 따위를 섬길 생각이 전혀 없어?”
“아까 네 동료 쓰러진 거 봐서 알겠지만 나 완전 강해. 그러니까 류헤이 같은 늙다리 밑에 있는 것보다는 내 밑에서 일하는 게 더 나을걸?”
“코노야로!!!! 더 이상 류헤이 님을 모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야쿠자 놈들은 모두 으르렁대며 나를 노려봤다.
“이야~ 아주 주인을 지키려는 충성심 높은 강아지 마냥 발끈하는구나. 으르렁대는 모습이 진짜 딱 개새끼다.”
난 녀석들에게 조소를 보내며 말했다.
“우리의 긍지와 자존심을 건들다니. 죽여버리겠어.”
좀 놀리니까 놈들은 싸울 의지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원래 죽일 생각이었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래. 그리고 야쿠자 따위가 무슨 긍지와 자존심을 찾아? 너희는 민간인 한 명 죽이려고 이렇게 떼로 몰려온 게 긍지냐?”
“죽어!!!!!!”
나랑 제일 가까이 있던 야쿠자 놈은 회칼을 화려하게 돌려대며 돌진했다.
솔직히 간지나긴 했다.
그래 봤자 헛짓거리긴 했지만.
그 야쿠자는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들어 내 심장을 공격했다.
하지만 내 몸을 통과해 그냥 고꾸라질 뿐이었다.
“동료가 나한테 무력하게 당하는 걸 봤는데도 왜 깨닫지 못하는 거야? 너희는 나한테 안된다니까.”
“꾸에에에에엑!!!!!”
그 야쿠자 역시 전기 충격에 당해 기절했다.
이번 공격은 아까보다 효과가 큰 듯했다.
힘없이 축 늘어지면서 쓰러지는 동료를 보자 다들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는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너희는 어떤 선택을 할래? 나한테 개길래 아니면 밑으로 들어올래?”
퉤!
한 녀석이 내게 침을 뱉었다.
맞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엿 같았다.
“아쉽네. 밑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경찰한테서 도망치게 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지금 경찰을 여기로 불렀거든. 모두 콩밥 좀 먹으면서 정신 좀 차려야겠다.”
“이 개자식. 잔꾀를 부리다니!!”
야쿠자들은 경찰이 온다는 소리에 얼른 도망치려고 했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이 순간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중은 없어.”
“끄아아아악!”
도망가려는 놈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망할!!!”
야쿠자 놈들은 발을 매만지며 아등바등거렸다.
“어딜 가? 오야봉이 가란 말도 없었는데.”
나는 녀석들에게 싸늘한 미소를 보냈다.
“너희의 새로운 오야봉께서 모두 기절한 다음 경찰에게 잡혀갈 것을 명하노라.”
“으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야쿠자 놈들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면서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젠장할······”
이제 나를 습격한 야쿠자들 중 무리의 리더처럼 보이는 놈만 남아 있었다.
그는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하하하하. 아까의 그 간지 나는 모습은 다 어디로 갔데? 솔직히 처음 등장할 때는 멋있긴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볼품없어졌네.”
나는 여유롭게 녀석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흐흐. 무서워? 이제야 너희가 누구를 건드린 건지 상황 파악이 되지? 그러게 왜 나를 잡으러 왔어? 안 그랬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
난 가서 녀석이 입고 있는 셔츠를 매만져줬다.
녀석은 거기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어리둥절해 하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 하는 짓이야?”
“그래도 너가 꼴에 여기 대장인 거 같은데 이왕 기절하더라도 때깔 좋게 기절해야지. 오야봉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해.”
“뭐?”
“사실 너희의 동의가 있든 없든 류헤이카이는 내가 먹을 생각이거든. 아까 물어본 것은 너희가 어떤 놈들인지 보려고 그냥 형식상으로 한 거였어. 뭐 나를 오야봉으로 삼는다고 했으면 정말로 보호해줄 생각은 있었지만.”
난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방긋 미소를 보냈다.
“근데 안 그럴 거라고 다 알고 있었어. 그럼. 잘 가시게.”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온갖 경련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기절했다.
이제까지 감전됐던 녀석들 중 이 녀석이 가장 격렬하게 몸을 떤 것 같다.
그렇게 강철파와 류헤이카이를 정리한 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 건데 여기에 있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내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지가연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많이 놀랐는지 표정이 심각했다.
“방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나와 있었어요?”
“밖에서 비명소리가 그렇게 요란하게 들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잠깐 교육 좀 시키느라 그랬죠. 뭐 제가 다 알아서 정리했으니까 안심하세요.”
지가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라일 씨는 정말 알 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그 깡패들을 혼자서 정리했다는 게 말이 돼요?”
“말이 되니까 지금 제가 이렇게 멀쩡히 여기 있는 거 아닙니까.”
“그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상처 하나 없이.”
그녀는 여전히 믿기 어려워하는 듯했다.
그래.
나의 강함이 많이 판타지이긴 하지.
근데 지금 이런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곧 경찰이 올 거니까 저랑 말 좀 맞춥시다.”
“무슨 말이요?”
“밖에 기절한 녀석들 제가 한 거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저렇게 한 겁니다. 가연 씨는 그냥 양기택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세요.”
“뭐 일단 알겠는데······저는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요? 여기 아파트 주민들이 그 난리를 다 들었을 거예요. 워낙 비명소리들이 커서요.”
“그건 다 조치 취했어요. 걱정 마요.”
다행히 이 아파트는 모든 가구의 현관이 디지털 도어락으로 되어 있어서 디오가 주민들이 밖으로 못 나오게 막을 수 있었다.
잠깐 동안 강제로 잠가 놨고 미세하지만 따끔한 전기를 흐르게 해서 도어락에 손도 못 대게 만들어놨다.
이제 풀어놨으니 지금쯤 밖으로 나오는 주민들도 있을 거다.
뭐 어차피 나는 여기 집에 있으니까 상관없다.
“깡패들은 어쩌게요?”
“놈들이야 제가 알아서 입막음시키겠습니다. 지가연 씨는 그냥 문리버를 포함해서 양기택에 대해서 모두 폭로하시고 그것 때문에 양기택 그 놈이 이렇게 깡패들을 시켜 가연 씨를 공격했다고 밝히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그건 맡겨주세요.”
“좋습니다.”
아직은 내 정체가 밝혀지면 곤란하다.
사실 이제껏 내가 소극적으로 나왔던 이유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때가 되면 내 힘과 정체를 세상에 알릴 거지만 그전에 해 놓아야 할 밑작업들이 있었다.
곧 경찰들이 왔다.
밖으로 나오니 주민들과 경찰들은 모두 기절해 있는 강철파랑 류헤이카이 놈들을 보고 기막혀했다.
“세상에······이게 뭔 일이래?”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주민들은 다들 이 진기한 광경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뭔 비명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가보려고 했더만 문에 전기가 흘러서 만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비명소리가 끝나니까 그제서야 문을 열 수 있었어요. 나가서 보니까 지금 이 광경이었죠.”
주민들은 하나 둘 경찰들에게 증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경찰관은 별 소득이 없던지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때 지가연이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사실 제가 뭘 좀 알고 있는데요.”
지가연은 그렇게 나랑 말을 맞춘 대로 경찰관에게 차분하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경찰관은 지가연의 말을 듣더니 그녀에게 경찰청으로 가서 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도 깡패들의 입도 막을 겸 보호자 역할로 그녀를 따라갔다.
경찰청은 난리였다.
잡혀 온 깡패들과 야쿠자들은 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나는 깨어난 녀석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날렸다.
녀석들은 내 미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킨 다음 입을 지퍼로 잠그는 모션을 취해 입조심하라는 것을 수신호로 알렸다.
대부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먹고 잘들 둘러대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간혹 눈치 없는 녀석들은 나를 지목하려다가 전기 공격을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지가연은 이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경찰관에게 밝혔다.
그녀는 양기택의 만행, 문리버의 불법사업, 경찰과의 유착 등 그 모든 것을 다 폭로했다.
나는 흐뭇하게 그것을 지켜봤다.
양기택.
너를 위해 빅엿을 준비했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네.
***
양기택은 이라일과 지가연이 처리됐다는 보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주 작정하고 야쿠자 놈들까지 투입 시켰으니까 분명 성공했을 거다.
띠리리리~!
부하가 다 처리했다고 보고하려는 전화인 줄 알았던 양기택은 의외의 발신자를 보고 당황했다.
[경찰청장]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양기택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신 청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양 대표! 지금 큰일 났네.”
“네? 큰일이라뇨? 그게 무슨?”
“지금 강철파 놈들이랑 류헤이카이 놈들이 싹 다 검거되었네.”
“네?!!!!!”
양기택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리고······”
경찰청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에 대한 모든 게 폭로됐어!!!!”
116화. 그 자식의 정체 (1)
“…그 새끼다.”
굉장히 작은 데이터의 흐름이라 하마터면 눈치 못 채고 놓칠 뻔했다.
이번에야말로 그 새끼가 누군지 밝혀낼 차례였다.
“디오. 시작하자.”
[네.]
조금만 방심해도 놓칠 것 같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데이터의 흐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왔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밀워키네.”
계속된 연습으로 인해 데이터 읽기 능력이 상당히 발달된 상태여서, 녀석이 흔적을 많이 지웠음에도 난 곧잘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애송이 녀석이 나를 많이 우습게 본 것 같다.
“이 데이터가 온 곳으로 바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그 녀석을 볼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놈 낯짝을 보는 건가?
지잉-!
나는 내 몸을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시켰고, 곧바로 디오는 그 데이터의 흐름이 온 통로로 나를 보내주었다.
“으아아아악!!!!”
20대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를 보고 기겁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진짜 귀청 떨어질 뻔했다.
나는 곧바로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잡았다. 이 새끼.”
“뭐, 뭡니까?”
그 남자는 상황 파악을 못 한 것처럼 보였다.
“뭐긴 뭐야? 너 잡으러 이 몸이 직접 여기에 온 거지. 그동안 재미 좀 봤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설마……. 속은 건가?”
“뭘 속아요?”
“닥쳐. 새끼야.”
나는 녀석을 집어 던진 다음 데이터 감옥에 가뒀다.
그다음 나는 그 앞에 켜져 있는 컴퓨터를 확인했다.
컴퓨터에는 별거 없었다.
단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warrior’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디오. 이 자식 신상 털어서 보여줘.”
[알겠습니다.]
곧바로 디오가 보내준 정보를 확인했지만,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컴퓨터 전공 대학생이었다.
이전까지 기록을 조회해봐도 별다른 것은 없었다.
나는 그 남자를 쳐다봤다.
녀석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만 있었다.
이렇게 끝나기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그 미세한 데이터 흐름이 오는 곳은 여기였다.
그 흐름이 단순히 나를 검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냥 나를 검색하는 데이터였다면 흐름이 정교하지 않고 거친 느낌이었겠지만, 아까의 그 흐름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느낌이었다.
마치 인위적으로 가공된 듯한 흐름이라고 할까?
“뭔가 이상해…….”
나는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녀석을 노려봤다.
“사, 살려주세요. 제게 왜 이러는 겁니까?”
녀석은 눈에 눈물까지 맺히며 애처롭게 나왔다.
[라일 님.]
갑자기 디오가 나를 불렀다.
[컴퓨터 화면을 보십시오.]
“…….”
컴퓨터 화면에는 어느새 warrior가 아니라 다른 글이 쓰여 있었다.
[엉뚱한 놈 잡고 뭐하냐? 병신아.]
“하아…….”
깊은 빡침이 올라와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곧바로 글을 쓴 데이터를 추적해봤으나 또 그 새끼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의 IP주소가 나올 뿐이었다.
“후후. 이 모든 게 너무 계획적인데?”
“어서 절 풀어줘요.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그 남자는 데이터 감옥을 쾅쾅 때리며 내게 시위해댔다.
[심장박동, 몸의 떨림, 혈압 등을 확인해 본 결과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
나는 코웃음을 친 다음 녀석을 노려봤다.
“야. 너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거짓말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낸 다음 그 얼빵한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은 긴장됐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고 있는 거 싹 다 말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갑자기 쳐들어 와 놓고서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까 네가 검색한 warrior다.”
“…….”
이미 알고 있던 건지 그렇게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분석해본 결과 방금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친절하게 디오가 또 확인 사살까지 해준다.
이 새끼 보소.
“당신이 warrior라고요?”
“그래.”
“이제 당신은 순간이동까지 할 줄 아는 겁니까?”
“딴소리하지 말고 묻는 거에나 대답해. 알고 있는 거 빨리 싹 다 안 불어?”
“대체 뭘 불라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릅…….”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녀석은 전기충격으로 인해 발광하며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주제에 여전히 꿋꿋하게 나오는 녀석이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멋모른다고 해야 할지.
“난 네가 아는 것을 불 때까지 계속 지질 생각이거든. 되도록 빨리 부는 게 너한테 더 좋지 않을까? 난 정말 진심으로 너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야.”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라고요!”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다시 시원한 비명을 질러대며 쓰러졌다.
이제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어때? 계속할까? 아니면 그냥 솔직하게 말할래?”
“몰라, 모른다고….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녀석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나왔다.
[눈물은 아파서 나는 눈물입니다.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오의 말이 없었다면 정말 믿었을지도 모르는 연기력이다.
굉장히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을 빌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나 보다.
“애석하게도 내가 속고 싶은데 속아줄 수가 없다. 내 파트너가 계속 네 신체를 분석하면서 네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거든.”
“…….”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말하기 싫어? 그러면 또 전기 맛 좀 봐야지.”
“자, 잠깐만요!!!”
녀석은 다급하게 외쳐댔다.
“마,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것 좀 그만하세요!”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잖아.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난리야?”
“……라이언 뱅크에서 저한테 접근해왔어요.”
호오라.
흥미가 확 생기기 시작했다.
방금 확인해본 결과 라이언 뱅크에서 이 자식에게 접근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이 자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기록을 지웠거나.
만약 기록을 지웠다면 그 새끼가 그런 것이겠지.
일단은 녀석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해봐.”
“저에게 USB를 하나 줬고 그걸 컴퓨터에 꽂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녀석은 자신의 컴퓨터에 꽂혀 있는 검은 USB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USB를 뺀 다음 분석을 시도했다.
분명 평범한 USB는 아니었다.
안에 세계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도 데이터 쉴드와 비슷한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계속 USB를 유심히 살펴봤다.
“흐흐. 재밌네?”
답이 나왔다.
난 그 USB를 들고 녀석을 다시 쳐다봤다.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너일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충 써먹다가 버릴 말이 필요해서 아무나 고른 게 아닐까요? 저야 돈만 받으면 상관없으니까 하겠다고 한 거고요.”
“그래?”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어?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괘씸해서 전기로 더 지져주었다.
“사, 사실대로 다 말했는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사실대로 말 안 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어?”
“너무 그 인공지능만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추앙하지만 결국 그 실체는 이렇군요.”
이게 내 인내심 테스트를 하네?
나는 녀석에게 대뜸 다가갔다.
“뭡니까?”
짝!!!!!!!
“…….”
타격이 꽤 셌는지 녀석은 정신이 잠깐 나간 것처럼 보였다.
“입 달렸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돼. 그러다가는 이렇게 뺨이나 처맞는다고.”
“당신 정말 미치셨습니까? 힘없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짝!!!!!!
“커헉!”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나는 USB를 녀석에게 던졌다.
“라이언 뱅크에게서 받기는 개뿔. 내가 지문까지 분석할 줄은 몰랐겠지? 거기에 묻어있는 지문이 죄다 네 것인데 어디서 약을 팔아?”
“!!!!!!”
녀석은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지금 네 표정을 보면 누가 봐도 딱 네가 거짓말하다가 들통났다는 걸 알 수 있겠다.”
“다, 당신…….”
“그리고 내 안에 인공지능이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건 인터넷에 공개가 안 된 정보인데 말이야.”
“그, 그건…….”
녀석은 당황한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대답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말해줄게. 그건 바로 네가 세계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놈이라는 거지.”
“크흑! 네놈.”
그 녀석은 곧바로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지금 누굴 노려보고 있는 거야?”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녀석은 또 전기충격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놈은 아마존에서 나를 공격했던 그 새끼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정체가 탄로 난 상황에서 굳이 내 공격을 맞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그 녀석에게 힘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칫!”
녀석은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쿵-!
하지만 이 멍청한 놈은 내 몸을 통과해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젠장할…!”
“그 녀석이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는 안 알려준 거야?”
“닥쳐!!!”
그 녀석은 갑자기 내 발에 손을 대더니 비물질화된 내 몸을 원래대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뭐……?”
“이거나 먹어라!!”
녀석은 주머니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 원래대로 돌아온 내 몸에 그것을 꽂으려고 했다.
“칫!”
순간 방심해서 몸이 변환되어버렸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비물질로 변환시켰다.
이 녀석이 그렇게 세계 데이터를 다루는 데 능숙한 게 아니었기에 복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전기 충격기는 내 몸을 통과해서 지나갔고 허공에서 애꿎게 탁탁 소리만 냈다.
“마, 망할……!”
회심의 공격이 너무나 간단히 막혀버렸는지 녀석은 절망한 것처럼 보였다.
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내 쪽에서 전기충격을 먹여주었다.
괘씸해서 더 강하게 공격을 가했다.
“허억…. 허억…….”
이번에는 사선 근처까지 갔다 왔는지, 녀석은 몸을 와들와들 떨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보아하니 능력을 얻은 지 좀 안 됐나 봐. 잔재주는 부릴 줄 알지만, 너무 미숙해. 네 말대로 그 녀석이 대충 써먹다가 버리는 패로 너를 사용하는 것 같네.”
아마도 적당히 순진하고 힘을 갈구하는 녀석을 골라 꼬드긴 다음 이렇게 이용한 것 같다.
이 멍청한 놈은 그저 힘을 받았다고 좋아서 헬렐레 정신을 못 차렸겠지.
그 말로가 이거다.
“너한테 능력을 준 놈이 누군지 솔직하게 불어라. 그러면 살려줄 테니까. 진짜 마지막 기회야. 다음은 없다. 그 녀석이 너를 보호해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
녀석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지 침만 삼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정말 다 말하도록 하죠.”
“잘 생각했…….”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창문 밖을 보니 갑자기 건설 크레인이 나타나 이곳을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뭔데?”
“저건 뭡니까?”
이 얼빵한 녀석도 내 시선을 따라 크레인이 이곳을 덮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른 피해!!!!!!”
117화. 그 자식의 정체 (2)
“으어어어!!!”
저 멍청한 녀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야! 멍하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봐. 보호막 같은 거 쓸 줄 몰라?”
“모, 모릅니다. 으어어어.”
망할…….
무슨 좀비 같은 소리만 내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녀석이 죽을 거란 생각에 나는 녀석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갔다.
“여기 그대로 있다가는 매몰당하니까. 뛰어 새끼야!!”
“네, 넵!”
우리는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쿵-!
하지만 이미 크레인은 방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런 썩을!”
지잉-!
디오가 물리 방화벽을 활성화시켜 주었다.
콰앙-!
크레인에 맞은 우리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으아아아악!”
이 멍청한 새끼는 아프지도 않은데 정신 사납게 소리만 지르며 엄살만 부리고 있다.
“닥쳐 새끼야! 내가 막아주고 있는데 왜 지랄이야?”
“…….”
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쿠웅-!
크레인은 계속 건물을 부수며 지나갔다.
“젠장할.”
쿠쿠쿵!
결국, 견디지 못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건물 잔해들이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땅이 훅 꺼지면서 우리는 아래로 떨어졌고 녀석은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우리가 있던 건물은 완전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잔해가 우리를 덮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자식은 공황 상태에 빠져 냅다 살려달라고 소리만 꽥꽥 질러대고 있었다.
“제발 닥쳐줄래? 귀청 떨어질 거 같으니까?”
“살려주세요!!!!”
녀석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쉴새 없이 소리만 질러댔다.
아무래도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다.
충격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전기로 한번 지져진 녀석은 숨을 한번 크게 토해낸 다음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커헉! 컥!”
“정신이 들어?”
“허억……. 허억…….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 새끼가 너를 죽이려고 이렇게 한 거지 뭐겠냐?”
진짜 어마어마한 새끼네.
크레인으로 건물을 박살 낼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해야 나오는 거야?
“봐봐. 그 새끼는 네가 나한테 불까 봐 이렇게 없애려고 하는 놈이야. 설마 지금도 그딴 녀석에게 계속 붙어 있을 생각을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네. 알았으면 빨리 말해 봐.”
“예. 일주인 전에 한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남자가 제게 접근해 왔습니다.”
“그 남자 인종은? 혹시 동양인이었어?”
“아닙니다. 저와 같은 백인이었습니다.”
백인이라…….
순간 그 자식이 미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하기는 일렀다.
일단은 계속 더 들어보기로 했다.
“오케이. 계속해봐.”
“그 남자는 저에게 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 믿었었는데 갑자기 AI 같은 게 제 안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자기 말을 잘 들으면 계속 그 힘을 가지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시키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게 다야?”
“네…….”
이 새끼가 장난하나?
“됐다. 너에게 설명을 들으니 그냥 내가 직접 분석하는 게 낫지. 이리 와봐.”
나는 이마에 손을 대려고 했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녀석은 또 불안해하며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봐. 새끼야. 아픈 거 아니니까.”
“……네.”
꼭 정색하고 말해야 말을 듣는다.
손을 대니 녀석 안에 있는 데이터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녀석이 받은 데이터 응집체는 너무나 허접했다.
자아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데이터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자식은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힘이 조금 생기니까 신났다고 냅다 받은 거다.
그 순간 녀석의 데이터 응집체로 외부 데이터가 유입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하. 또 방해한다 이거지?”
전에 아마존에서 데이터 유입을 막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데이터 벽을 만들었다.
“어림없다. 새끼야.”
역시 한번 경험해 봤다고 이제는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녀석한테 준 데이터 응집체를 파괴할 목적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이 녀석과 그 자식이 대화한 기록을 가져가 버렸다.
나는 찬찬히 대화 기록을 살펴보았다.
이 녀석 말대로 별다른 기록은 없었다.
대화를 살펴보니 이 녀석은 라이언 뱅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세계 데이터에 대한 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그 새끼가 시키는 대로 나한테 말했을 뿐이었다.
이대로 소득이 없이 끝날 뻔했으나 그래도 한 가지 재밌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바로 이 데이터 응집체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미세한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단 하나의 미세한 흔적밖에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소득이었다.
녀석에 대한 실마리가 거의 전무했는데, 잘만하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오. 이 흔적 좀 분석해줘.’
[네. 맡겨주십시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바로는 안 될 거 같은데?’
[흔적이 너무 미세해서 1주일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
이제껏 디오에게서 이런 기간이 나온 적이 있었나 싶다.
하지만 데이터 흔적이 정말 극악으로 엄청나게 조금 남아있었기에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디오라도 그걸 계산하고 복구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나 보다…….
일단은 이거라도 얻은 거에 대해 만족해야 했다.
“저, 저기 다 끝났나요? 이제 손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이 눈치 없는 놈은 이딴 말이나 하고 있다.
진짜 답 없는 놈이다.
“그래. 다 끝났다.”
“그럼 저희 이제 여기서 나갈까요?”
“나는 그냥 나갈 수 있는데 너는 어떻게 나가려고? 이 잔해더미를 어떻게 헤쳐나갈 건데?”
“…….”
내가 너무 태연하게 말하자 녀석은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설마……. 저를 이대로 내버려 두고 그냥 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래야지. 내가 여기 계속 갇혀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리고 내가 뭐가 좋아서 너 좋은 걸 해줘야 해? 너 아까 전기충격기로 날 공격하려 하지 않았었냐?”
“…….”
녀석이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제발요.”
“싫어. 잘못했으면 대가를 받아야지. 이 데이터 쉴드를 해체해 버리면 잔해더미가 너한테 그대로 떨어지겠지?”
“제,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죽기에는 너무 젊다고요.”
녀석은 또 질질 짜며 나한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보고 있으면 암 걸릴 것 같아 미치겠다.
“좋아.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서 데이터 쉴드는 없애지 않을게.”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가는 건 너 알아서 해.”
“…….”
순간 희망에 찬 건 같았던 녀석의 표정은 다시 일그러지고 있었다.
“잘 있어라.”
“저, 저기요?”
“수고.”
나는 그대로 집으로 이동하며 사라졌다.
잠깐 ‘안 돼’라고 절규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게 내버려 두기는 그래서 구조대는 불러줬다.
아마 며칠 굶고 나면 구조는 될 거다.
나한테 개겼는데 그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지.
일단은, 실마리를 약간 얻었으니 조금씩 숨통을 조여나가기로 했다.
***
미국 백악관.
에이든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봤다.
여기에는 CIA, FBI 국장과 국방부 장관, 그리고 부통령 등 미국의 수뇌부가 다 모여있었다.
“대통령…….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까?”
CIA 국장 올리버가 같잖다는 듯이 에이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편을 들어주려고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드네만.”
에이든은 자신 앞에 놓아져 있는 서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서류에는 한국을 침공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국과 전쟁을 벌이자니. 지금 제정신이오?”
에이든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제정신이지요. 이것을 반대하는 당신이 오히려 제정신이 아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하.”
에이든은 국방부 장관의 말에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미치겠군. 이봐! 다들 단체로 약이라도 하고 온 건가?”
“대통령. 말조심하시오.”
부통령은 정색하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단체로 마약 카르텔 편을 들더니 이제는 이런 미친 소리나 하고 있길래 마약을 하고 온 줄로 알았네만. 약을 안 했다면 그냥 정신이 나간 거겠군.”
“…….”
다들 에이든을 무섭게 노려봤다.
그에 에이든은 피식 웃었다.
“한국과 전쟁을 할 명분이 무엇이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찾아낼 수가 없는데 말이오.”
“warrior 그 자식이 우리 미국을 농락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그 녀석을 대대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다른 어떤 명분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올리버는 답답하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거라면 warrior만 잡아들이면 되지 않소. 왜 굳이 전쟁까지 벌이겠다는 것이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사마 빈라덴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입니다. warrior 하나만으로도 전쟁을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봅니다만.”
“하! 진짜 그런 개 논리들은 어디서 배워오는지 모르겠소.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고 명문대에도 나왔으면서 왜 이렇게 사리 분별을 할 줄 모르는지 원. 아! 당신들이 왜 그러는지 알겠소.”
에이든은 그들을 향해 한껏 비꼬며 말했다.
“금융회사 연합이 warrior가 마약 카르텔을 없앤 것 때문에 뿔이 많이 났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이렇게 전쟁을 추진하라고 사주한 것이고 당신들은 그들의 개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지. 어떻소?”
에이든은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그들의 속내를 드러냈다.
“하아…….”
올리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에이든을 불렀다.
“거 알 거 다 아는 사람이 왜 이렇게 답답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네. 왜 혼자 독단적으로 나가려는 겁니까? 이 세상에는 예전부터 이어오던 힘의 균형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무너지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warrior를 없애지 않으면 분명 위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힘의 균형이라……. 그냥 당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거면서 고상하게 말은 잘하오.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warrior가 옳은 일을 하고 있고 당신들과 금융회사 연합이 나쁜 놈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당신들을 향한 비난을 보면 모르겠소?”
“대통령!!!!”
올리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악을 질렀다.
방 안은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것처럼 살벌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warrior는 우리 미국의 특수부대를 건드렸습니다!”
“그 머저리 같은 놈들 말이오?”
“나라를 위해 순국한 군인들을 그딴 식으로 말하다니 당신 정말 미쳤어?!!”
올리버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격분했다.
“특수부대들이 그렇게 된 것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약 카르텔을 돕다가 그런 것 아닌가? 내가 알기론 지금 미국 내에서 warrior에게 당한 특수부대원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하아…….”
올리버는 골치 아픈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warrior를 없애지 못하면 미국은 망합니다. 그걸 정녕 모르는 겁니까?”
“미국이 망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망하는 거겠지.”
에이든도 기분이 많이 상했는지 포커페이스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
올리버와 에이든은 싸늘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계속 기회를 줬지만 안 되겠군요. 계속 그렇게 나오겠다면 하는 수 없지요.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요…….”